• 최종편집 2024-06-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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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꼭두의 계절’ 김다솜, 감춰진 비밀 드러났다…긴장감 고조
    [동포투데이] ‘꼭두의 계절’ 김다솜의 감춰진 비밀이 드러났다. 지난 24일, 25일 방송된 MBC 금토드라마 ‘꼭두의 계절’ (극본 강이헌, 허준우/ 연출 백수찬, 김지훈/ 제작 피플스토리컴퍼니, 스토리티비) 9, 10회에서는 집 앞에 아빠 태중식(김영웅 분)이 갑작스레 나타나 두려움에 떠는 태정원(김다솜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정원은 한철(안우연 분)과 티격태격 케미를 선보였다. 정원은 자신의 사무실에 찾아온 배 교수와 말다툼을 하고 있었고 이를 들은 한철은 배교수를 스토커로 오해, 사무실로 들어와 그를 제압했다. 이로 인해 한철과 경찰서에 가게 된 정원은 기죽은 한철에게서 강아지가 겹쳐 보이자 이를 부정하며 자리를 피했다. 이후 연락을 계속 안 받던 한철과 다시 만난 정원은 관심이 없는 척 그를 도도하게 대했다. 그럼에도 다정하게 대해주는 한철을 보며 정원은 자신도 모르게 “정체가 뭐니? 진짜”라며 속마음이 튀어나와 당황해했다. 이어 그는 한철의 실없는 이야기에도 미소를 지어 보는 이들을 설레게 했다. 그러나 정원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철과 인사한 뒤 집에 들어가려던 정원은 뒤에서 나타난 중식을 보자 파랗게 질렸다. 그는 엄마를 때리던 아빠를 교도소에 보낸 장본인이었던 것. 돈을 달라는 중식의 말에 정원은 협박하지 말라며 단호히 얘기 했지만 중식이 사라지자 그는 웅크린 채 덜덜 떨며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처럼 김다솜은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한철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는 태정원의 입덕 부정기로 은근한 설렘을 더해 시청자들을 웃음 짓게 했다. 반면 그는 아빠 중식의 등장으로 불안함과 두려움에 휩싸인 모습을 보이며 긴장감을 더했다. 김다솜은 당당하고 도도한 태정원은 어디에도 없고 겁에 질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불안한 심리상태를 보이는 그의 감정선을 밀도있게 그려냈다. 이에 2막으로 들어선 ‘꼭두의 계절’에서 김다솜이 그려낼 태정원의 이야기에 관심이 모인다. 한편 김다솜을 비롯해 김정현, 임수향 등이 출연하는 ‘꼭두의 계절’은 매주 금, 토 밤 9시 50분 방송된다.
    • 연예·방송
    2023-02-27
  • 일본, 3월 1일부터 중국발 입국자 방역조치 완화
    [동포투데이] 일본이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방역 조치를 3월 1일부터 완화하고 모든 입국자에 대한 코로나19 검사를 무작위 검사로 대체하기로 했다. 27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27일 기자회견에서 3월 1일부터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완화하고 현재 중국 본토에서 직항으로 들어오는 모든 입국자를 대상으로 하는 코로나19 검사를 무작위 검사로 대체한다고 발표했다. 출발 전 72시간 이내에 음성 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는 조치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마쓰노는 완화 이유에 대해 입국자 양성률이 지속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축적된 경험에 따르면 지금까지 공항만에서 발견된 바이러스는 모두 일본에서 이미 검출된 오미크론 계열이라고 밝혔다.
    • 외국인· 출입국
    2023-02-27
  • ‘대격변의 겨울’ 소련 붕괴 이후의 참상
    [동포투데이] 소련의 붕괴가 러시아 경제에 끼친 심각한 재난을 돌이켜보면 그것은 경제적 차원에만 그치지 않는다. 니콜라이 리시코프 구소련 부장회의 전 주석은 “소련의 붕괴는 러시아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으며, 이러한 상황은 삶의 모든 측면,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위신과 역할, 경제, 국가 및 국방 능력, 과학 발전, 생산 및 문화, 주민 생활 수준 등과 관련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소련과 그 연맹의 해체로 인한 심각한 경제 위기로 인해 러시아는 오랫동안 혼란에 처해 있었다. 러시아의 1인당 소득, 생활 수준, 사회 보장 등이 모두 구소련에 비해 크게 떨어졌고 사회의 빈부격차가 심각했다. 계층적 창과 방패 그리고 민족적 창과 방패가 두드러졌다. 인간 도덕이 추락하고, 사회 폭력 범죄와 자살 수가 크게 증가했으며, 인구가 급감했다. 1992년 1억4,800만 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러시아 인구는 2001년 1억4,400만 명, 2009년 1억4,190만 명에 그쳤다. 러시아는 15년째 매년 60만 또는 90만 명씩 인구가 줄었고 1990년부터 러시아인의 사망률은 부쩍 높아졌다. 1998년 러시아의 인구 출생률은 8.8‰, 사망률은 13.6‰였고 신생아 사망률은 1988년 이전에 비해 2배 증가했다. 소련은 계층적 차별을 없애기 위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가장 포괄적인 사회보장체계인 무상교육, 무상의료, 주택배분 등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국민은 노동, 주택, 의료, 교육, 노후 등 여러 산의 중 압박으로 아이를 낳을 엄두를 내지 못해 러시아 인구의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인구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등 인구 고령화 문제가 심각해졌다. 1990년 69.2세였던 러시아의 1인당 기대수명은 2001년 65.3세로 거의 4세 감소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남성의 1인당 평균 수명이 10세 감소하기도 했다. 소련이 붕괴된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러시아인의 평균 수명은 유럽 국가 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 세계 100위권 이하로 추락했다. 2021년에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0년 러시아 주민의 1인당 평균 수명이 처음으로 73세를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같은 시기 중국 주민의 1인당 평균 수명은 이미 77세를 넘어섰다. 소련이 붕괴된 후 사회주의의 이상은 산산이 조각나고 공산주의의 도덕은 버림받으며 사심이 없는 헌신과 남을 돕는 것은 어리석은 일로 여겨졌으며 서구의 이기적 가치관이 주류를 이루며 사회도덕은 급속히 무너졌다. 물질주의, 금전숭배가 만연해 있어 많은 사람이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법과 규율을 어기고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소련 붕괴 후의 첫 4년 동안 새로 등록된 고아와 부모에 의해 버려진 어린이의 수는 거의 70% 증가했다. 더 심각한 것은 많은 러시아 청년들이 더 이상 노동을 영광으로 여기지 않고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기를 갈망했으며 국가의 인재는 해외로 나가 재능을 미국에 바치거나 금융 분야에 투자하여 돈을 벌었다. 더 이상 차가운 걸상에 앉아 착실하게 과학 연구하려 하지 않았다. 소련의 붕괴는 또한 러시아에서 알코올 중독, 정신 질환, 노숙자, 유랑아동, 매춘과 같은 사회적 문제로 이어졌다. 소련의 붕괴로 러시아에서 알콜 소비도 급증했다. 알콜중독으로 매년 겨울 모스크바 길거리에서 술에 취해 동사하는 사람이 2,300명을 넘겼다. 알콜중독은 또한 다양한 사회 문제를 일으켰다. 저품질 알콜중독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1997년 1993년에 비해 거의 두 배로 증가했다. 이밖에 러시아 남성의 2/3와 여성의 1/3이 ‘애연가’로 집계됐다. 알콜중독, 흡연중독, 마약중독, 성병 등도 부모의 건강 문제를 일으키고 많은 아기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소련 붕괴 10일 후 러시아는 독극물 사용으로 인한 사망률이 11배 증가했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취학 연령 아동과 대학생 중독자 수는 5~7배 증가했다. 1990년 99명이던 독극물 중독자 러시아 주민은 1997년 4,337명으로 급증했다. 1990년 러시아의 자살자 수는 2만 6,400명, 1998년 3만5,400명, 2001년 3만9,700명에 달했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의 사회 보장은 완전히 악화되었다. 1989년에 인구의 하위 10%와 상위 10%의 소득 비율은 1:4.7이었지만 1999년에는 이 비율이 1:80이 되었다. 부자들은 삼엄한 경비와 외출할 때 경호원을 데리고 나가고, 주택 상공에는 헬리콥터가 빙빙 돌며 보호하고 있어도 피살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1990년 러시아에서 피살 사건은 1만4,300건, 1998년 2만3,000건, 2001년 2만9,800건, 2002년에는 3만2,000건을 초과했다. 러시아는 성인 남자 4명 중 1명이 전과자라는 충격적인 수치도 만들어냈다. 러시아 내무부 자료에 따르면 소련 해체 후 불과 몇 년 사이 전국적으로 8,000여 개의 조직적인 대형 범죄조직이 생겨났다. 옐친은 1996년 연두교서에서 "오늘날의 러시아는 이탈리아를 제치고 국제사회에서 가장 큰 마피아 왕국이 되었으며 마피아는 러시아 연방의회에도 검은손을 뻗쳤다고 시인했다. 1961년부터 1965년까지 연평균 범죄율을 기준으로 하면 1981년부터 1986년까지 범죄율은 123%, 1986년부터 1990년까지는 142%, 1991년부터 1995년까지는 435%, 1996년에는 437%, 1997년에는 400%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따라서 범죄자 수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많은 러시아 교도소에는 수감자들로 가득 찼고 일부 수감자는 침대 부족으로 잠을 나누어 자기도 했다. 물론 소련의 해체가 초래한 각종 재난적 결과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 정치 분야에서 러시아의 극권 통치가 강화되어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국민도 정부와 정치에 대해 극도의 실망을 하였고 금융공업의 과두들이 모든 것을 장악하였다. 군사 분야에서 러시아는 구소련에 의존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군용 화기를 재판매하고 군대의 개인 주머니를 풍요롭게 하는 현상이 끝없이 나타났고 군비도 크게 감소했으며 군의 전투 효율성도 약화되었다. 소련 붕괴 이후 독립국가연합에서 약 52건의 핵 물질 절도사건이 있었다는 점도 주목할 가치가 있다. 1994년 제1차 체첸전쟁 당시 체첸 무장세력은 소련이 붕괴된 후 남겨진 미사일, 항공기, 탱크, 장거리포, 총과 탄약으로 약 2,000명의 러시아 장교와 군인을 죽이는 데 사용했다. 소련이 붕괴된 후 약 1,000만 명의 러시아인들이 독립국가연합과 발트해 국가를 떠돌았고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의 경제 상황은 러시아보다 더 나빴다. 양극화가 더 심각해지고 국민들의 생활은 더없이 고통스러웠다. 또한 소련의 붕괴로 인해 그루지야 내전이 끊이지 않았고 체첸이 고립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충돌이 끊이지 않았으며, 아르메니아와 그루지야 국경전쟁도 발생했다. 이 창과 방패는 미국을 비롯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쪽 확장에 보기 드문 계기를 제공했다. 당시 소련의 해체에 직접 관여한 빅3 중 한 명인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은 1991년에 나라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차라리 벨라베자 조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소련의 붕괴로 미국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경쟁할 수 있는 초강대국을 잃게 되었고 미국은 유일한 패권국이 되었다. 소련의 붕괴는 또한 한때 활발했던 공산주의 운동을 저조하게 만들었다. 세계적 범위 내의 마르크스주의 이론, 사회주의 제도와 공산당에 대한 모독이 난무했다. 자산계급의 어용문 인사들은 ‘공산주의 실패론’, ‘역사 종결론’을 외쳤고 무수한 사람들이 추구했던 사회주의 사업은 중대한 좌절을 겪었다. 소련의 붕괴가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면 그것은 아마도 소련에 대한 마오쩌둥의 비판이 비할 데 없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차세대 사회주의 혁명가들에게 경험과 교훈을 제공한 것이다. 소련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마도 향후 100년 동안 세계 공산주의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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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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