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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컵 2차 예선]중국, 싱가포르에 4-1 대승
    [동포투데이] 이반코비치 감독이 이끈 중국은 26일 톈진 올림픽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조별리그 4차전 싱가포르와 홈경기에서 우레이(21',85), 페르난둬(65'페널티), 웨이시하오(90')의 골에 힘입어 4-1로 대승을 거뒀다.(사진출처 : 차이나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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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7
  • 북한, 일본 2-1로 꺽고 U20 여자 아시안컵 우승
    [동포투데이] 16일 막을 내린 20세 이하 여자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북한 여자 축구 대표팀이 일본을 2-1로 꺾고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20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일본, 북한과 같은 조에 편성된 중국은 조별리그에서 북한과 1-1로 비기고 일본에 0-2로 패해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한편 호주 여자축구는 3,4위 결승전에서 한국을 1-0으로 꺾었다. 두 팀은 일본, 북한 등 4개 팀과 함께 아시아를 대표해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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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7
  • 中, 귀화 선수 4명 대표팀 소집...축구팬 “늦었지만 다행”
    [동포투데이] 새로 부임한 이반코비치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대표팀의 최근 훈련 명단에 귀화 선수 4명을 포함시키기로 결정하면서 많은 중국 축구팬들의 관심과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페르난둬, 엘케손, 리커, 장광타이 등 4명의 귀화 선수가 포함된 이번 명단은 중국 축구 대표팀의 귀화 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결정이다. 중국의 한 축구 블로그는 귀화 선수를 한 명만 기용했던 이전 관행과 비교하면 이번 4명의 귀화 선수 소집은 대표팀 역사상 처음이며 새로운 시대에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귀화 전략이 다시 시작되었음을 분명히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평가했다. 오랫동안 중국 축구의 발전을 지켜본 팬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의심할 여지없이 흥미진진한 일이다. 지난 4년 동안 귀화 선수들은 축구 대표팀에서 보수적으로 활용되어 왔으며, 일부 비평가들은 중국 축구 발전을 위한 중요한 기회를 놓친 것으로 간주했다. 특히 얀코비치 감독 시절에는 엘케손과 페르난둬 같은 수준급 귀화 선수들조차도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고, 부패혐의로 구속된 전 중국 대표팀 감독 리톄와 전 중국축구협회 회장 천쉬위안 시절에는 귀화 선수의 활용이 더욱 제한적이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번 대규모 귀화 선수 영입은 대표팀의 경쟁력 강화에 대한 중국축구협회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엘케손과 페르난둬의 복귀, 특히 페르난둬의 부활은 대표팀에 새로운 활력과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리커와 장광타이의 귀화도 대표팀의 기술적인 측면과 전술적 다양성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 같은 변화는 중국 축구가 지난 4년간의 보수적 전략에서 벗어나 귀화 선수들에 대한 적극적인 활용을 재개한 것으로 널리 읽힌다. 아울러 대표팀이 새로운 감독과 코칭 스태프의 지도 하에 돌파구를 찾고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표팀의 이번 소집명단 발표는 귀화 선수 전략의 중대한 조정일뿐만 아니라 중국 축구가 더 높은 수준의 경기 성과를 추구하는 중요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향후 대표팀의 경기가 전개됨에 따라 이들 귀화 선수들의 경기력과 그들이 팀의 전술 시스템에 어떻게 융합되는지가 모든 중국 축구 팬들의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또한 이러한 전략 변화는 중국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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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2
  • 이반코비치 중국 대표팀 감독 “최종 목표는 월드컵 진출”
    [동포투데이] 8일 오전 11시, 중국축구협회는 톈진에서 브란코 이반코비치 신임 축구대표팀 감독을 위한 정례 기자회견을 마련했다. 크로아티아 출신의 이반코비치 감독은 "이렇게 많은 기자들이 참석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위대한 국가인 중국 축구 대표팀의 감독이 된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라고 말했다. 중국 대표팀은 3월 21일과 26일 조별리그 36강전 싱가포르와의 연속 경기를 앞두고 있다. 이반코비치는 “지금 기자회견부터 경기까지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리그가 시작된 지 얼마 안돼 선수들의 경기 감각도 좋지 않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우리의 1차 목표는 최종예선 진입이고 최종 목표는 강한 국가대표팀을 구성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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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9
  • 中 U-20 여자축구, 일본에 완패…월드컵 진출 불투명
    [동포투데이] 7일 밤에 끝난 AFC U-20 여자 아시안컵 경기에서 중국이 일본에 0 : 2로 패하면서 U-20 여자 월드컵 진출이 이론상으로만 가능해졌다. 이번 U-20 여자 아시안컵에서 중국은 전년도 준우승팀인 일본, 그리고 전년도 준우승팀인 북한과 같은 조에 편성되어 있어 U-20 여자월드컵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 2위 안에 들어가야만 했다. 상대의 강한 실력에 비해 중국은 라인업이 불규칙했고 중앙수비수인 차오루치(乔睿琪)가 경기 준비 마지막 순간 부상으로 물러났다. 1차전에서 중국은 1 : 1로 힘겹게 북한과 비기면서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일본은 지난 경기에서 베트남을 10 : 0으로 대파했다. 중국은 월드컵 진출의 주도권을 유지하려면 이번 경기에서 적어도 골을 넣어야 하고 최소 1점을 따내야 했다. 왕쥔(王军) 중국팀 감독은 경기 전 “일본은 기술이 뛰어난 팀이고 아시아에서는 최고의 강팀”이라며 “북한과의 경기에서 우리는 필사적으로 싸워야 하고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기술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지난 경기에 비해 중국팀의 이번 라인업이 다소 미세하게 조정되었으며 리팅잉거(李渟英格), 장천징(姜晨璟), 천자위(陈佳宇)가 선발로 나섰다. 초반에는 양 팀 모두 골문 앞의 절대적인 찬스가 있었지만, 득점을 못했다. 경기 20분 중국은 상대의 실수를 기회를 만들었지만, 아쉽게도 루자위(卢家玉)의 슛은 상대 골키퍼에 의해 무산되었다. 26분 페널티 구역에서 동료의 크로스를 받은 일본의 마야 히지카타가 슈팅으로 승부의 균형을 깨뜨렸고 88분에 아마노 스즈가 페널티 지역 정면에서 얻은 프리킥을 득점으로 연결하며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이번 대회에는 8개 팀이 참가하며, 중국은 일본, 북한, 베트남과 함께 B조에 편성됐다. 각 조 상위 2개 팀이 본선에 진출해 2024년 콜롬비아 U20 여자 월드컵 출전권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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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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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피겨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들 [사진]
    2014 피겨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들 [사진=러시아소리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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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01
  • 중국조선족 축구원로시리즈(6) 새중국과 더부러 살아온 축구인
    ●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우리 연변에 일찍 새중국의 탄생과 더불어 전업축구선수 생애를 시작한 축구원로 한분이 계신적이 있다. 성함은 이봉춘, 몇년전에 세상을 하직하였지만 새중국의 축구역사가 바로 이분들에 의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봉춘 원로가 태어나던 시기만 해도 “9.18”사변이 발발되기 직전이라 많은 조선의 애국자들은 간도땅을 발판으로 여러 명목의 반일활동을 전개하던 시기었다. 그중 축구운동은 축구라는 스포츠종목을 빌어 반일고조를 일으키던 형식이라 가장 보편적이고도 활발하게 진행된 종목이었다. 그래서인지 당시 소년 이봉춘도 일찍 7살 때부터 축구와 접촉하게 되었고 또한 이런 연고로 축구와 끈끈한 인연을 맺게 됐으며 1981년 정령퇴직할 때까지 장장 반세기 동안이나 축구공과 씨름하게 됐다. 1949년 축구동인 최증석, 김용호, 김호주 등과 함께 동북축구팀에 입선. 1951년 동북축구팀 일원으로 천진에서 진행된 전국축구경기대회에서 우승 쟁취. 1952년 최증석, 김용호, 김병구 등과 함께 중국국가올림픽팀에 입선. 1957년 국가팀에서 퇴역한 뒤 1975년까지 선후로 국가야금부, 국가공안부와 북경시청년축구팀 감독으로 활약하면서 김지양, 왕준생 등 200여명의 국내의 축구유명인재를 양성. 1975년부터 1981년까지 연변1중의 체육교원으로 사업…이봉춘원로의 프로필은 비교적 간단했다. 뿐만 아니라 건장칭호는 물론 그 무슨 직함도 받지 못하고 퇴직한 이봉춘 원로이다. 그도 그럴것이 1957년 국가팀에서 퇴역할 때는 중국내의 건장칭호제가 실행되기 전이었고 그뒤 1981년까지는 또한 중국국내의 축구감독의 직함평의제도가 실행되기 전이라 어찌보면 이봉춘 원로는 아주 재수없는 축구인, 어찌보면 바친 대가보다 얻은 것이 너무나도 보잘 것 없는 인생이기도 했다. 일찍 1942년에 부인 최유송녀사와 결혼하여 3남 2녀를 낳아 키우면서도 언제 한번 부인과 자식한테 잘해주지 못했던 이봉춘 원로, 그 아픔에 늘 가슴이 짜릿했으련만 한편 사망되기 몇해전까지만 해도 축구장의 격렬한 분위기에 말려들어 가군 하는 이봉춘 원로였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공방전, 꼴 넣은후의 쾌감, 환호하는 관중석, 그래서 남자라면 한번은 축구선수로 돼봐야 한다고 늘 외우던 이봉춘 원로었다. 그리고 지난 세기 90연대말 중국축구무대의 “오동현상(용감무쌍하고 굴할줄 모르는 풍격)”에 대해 이봉춘 원로는 “오동현상”이란 말만 90연대에 나왔을 따름이지 그런 현상은 옛날부터 있었다고 고집했었다. 이봉춘 원로의 추억에 따르면 옛날에도 팀에 조선족선수 2 - 3명만 끼우면 팀풍격이 달라지는 건 물론 다른 팀들에서 모두 두려워했다고 한다. 하다면 우리 조선족은 천성적으로 축구재질을 타고난 민족이라고 할수 있었다. 이봉춘 원로는 갔다. 하지만 우리한테 남겨놓은 조선족축구인들의 문화유산은 많다. 하다면 현재 살아있는 우리 세대가 이런 노일대들의 업적을 기리며 역사만은 기록해야 할 것이 아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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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3-31
  • 2014 갑급리그 제3라운드 연변팀 순위표
    갑급리그 연변팀 순위표(3월 30일까지) 갑급성적 제3라운드 석가장영창 2 : 3 중경역범 무한줘르 1 : 0 하북중기 광동일지천 0 : 1 신강천산 청도중능 1 : 1 심양중택 북경팔희 1 : 0 천진송강 호남상도 4 : 1 북경이공 성도천성 2 : 1 연변천양천 심수홍찬 0 : 0 청도해우 갑급대결 제4라운드(4월 5-6일) 북경이공 : 북경팔희 청도중능 : 무한줘르 광동일지천 : 심양중택 하북중기 : 호남상도 천진송강 : 석가장영창 청도해우 : 연변천양천 중경역범 : 성도천성 심수홍찬 : 신강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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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3-31
  • 안현수, 2015년 모스크바 월드컵 출전
    [동포투데이 스포츠] 쇼트트랙 올림픽 챔피언인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은 2015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되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R-스포츠 통신은 빅토르 안은 무릎 통증에도 불구하고 수상을 위해 경쟁에 참가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빅토르안은 무릎 부상 후 올바른 훈련으로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으며 현재 건강 상태는 좋으며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밝혔다. 전에 빅토르 안은 심각한 무릎 부상때문에 한국에서 경쟁을 못 이겨 대표팀에 선발되지 않았다.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안은 결국 소치올림픽에서 두개의 금메달과 하나의 동메달을 따냈으며 그리고 또 단체별 경기에서 금메달을 쟁취하고 6차 올림픽 챔피언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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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3-30
  • 연변천양천팀, 원정서 성도천성팀에 1 : 2 패전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올시즌 초기도 연변천양천팀(이하 연변팀)의 원정 1승이 물거품 되는가? 30일, 연변팀은 원정에서 성도천성팀한테 1 : 2로 패배, 원정징스크에 빠지던 이전의 국면을 돌려세우지 못했다. 경기초반 연변팀은 경기주도권을 잡고 상대방을 몰아부쳤다. 하지만 늘 상대방의 역습에 약한 연변, 경기 14분경, 성도팀의 프리킥에 덜컥 선제꼴을 내주었다. 그뒤 연변팀은 성도팀의 문전을 향해 련속적인 진공을 조직, 상대방 문전에서 선수 한명이 상대방 선수의 태클에 의해 넘어졌으나 경기는 계속됐다. 심판원 집법이 의문되는 순간이였다. 전반전 종료를 앞두고 연변팀은 쾌속반격으로 성도팀 문전까지 밀고들어갔으나 심판원에 의해 웹사이드로 판정돼 득점기회를 놓쳤다. 후반들어 연변팀은 지나친 체력소모로 경기절주를 늦추었고 이 기회에 상대방은 전면진공과 역습을 시도하면서 연변팀에 대해 압박을 강화했다. 후반 16분경, 성도팀은 무차별한 공격끝에 추가꼴에 성공해 2 : 0으로 앞섰다. 2꼴까지 허락한 연변팀은 더는 체면을 구길수 없어 전면진공에 나서 후반 23분경 한꼴 만회하는걸로 만족해야 했다. 오는 4월 6일 오후 3시 연변팀은 역시 원정에서 청도해우팀과 격돌하게 된다. 연변장백산천양천팀출전선수명단: 1-윤광, 2-리호걸, 3-한광호, 5-진효, 7-최인, 9-김도형, 10-지충국, 12-강홍권, 18-박만철, 20-최민, 28-리성림 후보: 15- 김홍우,17-고만국, 21-김현, 22-지문일, 25-리훈, 27-김파, 32-박세호 제3라운드 다른경기결과는 다음과 같다. 석가장영창 2-3 중경력범 무한줘르 1-0 하북중기 광동일지천 0-1 신강 청도중능 1-1 심양중택 북경팔희 1-0 천진송강 호남상도 4-1 북경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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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3-30
  • 일본 아사다 마오, SP서 세계 최고 기록 갱신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일본 사이타마 현에서 열리고 있는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이틀째 일정인 27일, 피겨 여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에서 아사다 마오(浅田真央) 일본 선수가 78.66 점수를 따내며 마지막 조 6명의 선수를 남기고 선두에 올랐다. 이전까지 세계 신기록 보유자는 2010 뱅쿠버 올림픽에서 78.50을 기록한 한국 김연아 선수였다. 소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러시아)가 불참한 가운데 소치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카롤리나 코스트너(이탈리아)가 77.24점으로 2위에 올랐고, 율리야 리프니츠카야(러시아)가 74.54점으로 3위를 기록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사다 마오는 기술점수에서 42.81점을 획득해 세계 역대 최고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연기 초반에 성공시킨 기본점수 8.50점의 고난도 기술 트리플 악셀을 완벽하게 해 내면서 1.86점의 가산점을 끌어내 10.36점이라는 고득점을 받았다. 표현력을 채점하는 연기에서는 이번 시즌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얻은 자기 최고점수를 0.94점 갱신, 코스트너에 이은 2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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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3-29
  • 중국조선족 축구원로 시리즈 (5) “출중한 선수 먼저 훌륭한 인간이 돼야”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지금 축구경기를 재미있게 보다가도 가끔씩 선수들이 심판들한테 트집을 잡는 행위를 보노라면 기분이 잡칠 때가 많다. 아무리 경기장에서 기술이 출중한 선수라 해도 유감을 표시하지 않을수 없다. 특히 국가를 대표한 선수들라면 이러한 행위는 결국 나라의 망신이다. 돌이켜 보노라면 옛날 우리가 볼을 찰 때에는 절대 안 그랬다. 그때는 대우가 형편없고 몹시 고생스러웠지만 선수들 거개가 자아형상을 몹시 중요시했기에 그들의 우수함은 오직 경기에서만 볼 수 있었다.” 이는 대졸생출신 축구원로 허명용 선생이 늘 하는 얘기이다. 일찍 1932년 도문에서 태어나 6살 때부터 해마다 열리는 만선(만주국 ㅡ 조선)축구경기대회를 통해 축구에 눈을 뜨기 시작했던 어린 허명용이었다. 했건만 허명용이 모교인 백봉소학교에 붙자마자 간악한 일제는 학교의 모든 체육과를 군사과로 대체했기에 허명용을 비롯한 축구조무라기들은 하학 후나 쉬는 날마다 끼리끼리 두만강변에 모여 공차기유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때의 조건이래야 축구화는 고사하고 고무신도 없어 늘 맨발로 볼을 차다보니 발톱이 빠지거나 발가락이 상하는 일은 예상사었지만 하도 축구를 좋아하는 애들인지라 학교와 가정의 뒤받침이 없어도 힘들고 짜증나는 줄 몰랐다. 그러던 어린 허명용한테 “8.15”광복은 배움의 길이 활짝 열린 동시에 축구를 체계적으로 전공할 터전도 마련됐다. 그 때로부터 어린 허명용은 초중과 고중 그리고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후에 연변대학에 입학해 공부를 하면서도 언제나 소속 학교팀의 중견선수로 활약했으며 1955년 길림성축구팀이 세워지자 이광수, 지청용, 최철봉, 김동하, 박광순 등 원로들과 함께 길림성팀의 제1대 선수로 됐다. 허명용 원로의 회억에 따르면 그 때 길림성팀의 선수들은 모두가 빈고농가정의 출신이었기에 겉은 순하나 속이 강한 것이 특점이었으며 또한 모두 부모가 공부를 못한 것이 한이었기에 공부에 대한 집념도 몹시 강했는바 공부에 열심했거나와 공부를 잘한 것도 사실이었다 한다. 그리고 규율을 잘 준수하기로 전국에 이름이 있었는바 보통 1년에 반년 이상은 외지생활을 했지만 불평을 부리는 선수는 한명도 없었다고 한다. 허명용 원로한테는 다음과 같은 애통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1960년, 그가 외지에서 한창 경기에 투신하고 있을 때 가정으로부터 애가 몹시 앓는다는 전보가 왔다. 헌데 당시 코치가 경기에 영향을 줄가봐 허명용한테 알리지 않고 있다가 경기가 끝난 뒤에야 전보문을 내놓았다. 그러자 단숨에 기차역에 달려온 허명용은 기차에 오른 뒤에 옷을 바꿔입으면서 연길까지 왔으나 그 때는 애가 이미 숨을 거둔 뒤었다. 이렇듯 기막힌 사연이었건만 허명용은 애를 산에 묻자 바람으로 다시 떠나야 했다. 하다면 집에서 애를 키우면서 가정중임을 떠메는 부인들의 고생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이렇게 고생을 초개처럼 여기는 선수들이었기에 당시 길림성팀은 완강하기로 전국에서도 이름이 있었으며 국가 체육운동 위원회에서는 외국의 축구대표단이 올 적마다 늘 길림성팀을 중국대표팀으로 출전시키군 했다. 왜냐하면 당시 외국축구인들은 중국의 기타 축구팀의 풍격을 두고 “무대예술표현”이라고 하면서 그들과 경기치르기를 꺼려했으며 그래도 길림성팀과 맞붙어 봐야 축구를 하는 맛이 난다고들 했기 때문이다. 한편 그 때의 선수들 또한 축구를 잘하는 동시에 정치면에서의 발전도 몹시 중시, 김승태, 손중천, 지운봉, 이창민 등 많은 선수들이 그 때에 입당을 쟁취했으며 전국에서 축구팀에 당지부가 있은 팀은 유독 길림성팀 뿐이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중국축구에 대해 허명용원로는 축구의 기전술이 많이 발전하고 장끼있는 선수들이 많이 나왔으며 받는 로임도 천문수자건만 빈곤호를 돕거나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선수가 적은 것이 몹시 유감스러우며 진정 가치가 있는 선수가 되자면 출중한 선수 먼저 훌륭한 인간이 돼야 한다고 힘주어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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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3-29
  • 아시안컵 조 추첨식 한국, 오스트랄리아, 오만, 쿠웨이트 한조
    3월 26일, 2015년 오스트랄리아 아시안컵 조 추첨식이 시드니극장에서 진행되였다.한국팀은 A조에 뽑혀 같은조에 오스트랄리아, 오만, 쿠웨이트가 있었다. 다른 소조별로는 중국, 북한, 사우디아라비아, 우즈베끼스탄이 B조; 카타르, 바레인, 아랍련합추장국, 이란은 C조; 이라크, 2014 아시아축구협회도전컵 우승팀, 요르단, 일본은 D조이다.
    • 스포츠
    2014-03-27
  • 2014시즌 연변팀 홈구장경기 연변위성 연변 TV사이트서 전부 생방송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27일, 연변장백산축구클럽으로부터 알아본데 따르면 올시즌 연변천양천팀(이하 연변팀) 전부의 홈장경기를 생방송, 팬들은 연변위성채널, 연변TV방송국사이트(www.iybtv.com) 및 휴대폰 모바일 사이트 (M.iybtv.com)를 통해 시청할수 있게 됐다. 올시즌 많은 축구애호자들이 연변팀의 경기를 접할수 있도록 연변TV방송국에서는 “2014 연변축구팀” 특집페이지를 개설, 특집페이지는 연변팀 관련뉴스, 포토, 영상 및 2014 갑급리그 경기상황 등 내용으로 이뤄졌다. 그외 연변축구팬들이 올시즌 연변팀 경기에 관련하여 상호간 정보교류를 할수 있도록 “2014년 갑급리그 점수예상 이벤트”를 연변TV 게시판에서(http://sq.iybtv.com/)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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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3-27
  • 중국조선족 축구원로 시리즈(4) 선수다운 선수의 자세는?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조선족축구가 중국에서 살아 버티자면 자기 전통풍격을 잃어서는 안된다. 지금 우리의 축구가 유럽식이요, 남미식이요 하는 축구형식을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굴할 줄 모르고 과감히 도전하는 정신력을 토대로 해야 한다. 왜냐하면 키가 크고 기술도 좋은 다른 팀들과 이기자면 오직 그럴 수밖에 없다. 남이 80%의 노력을 경주하면 우리는 100% 혹은 그 이상의 에너지를 발산해야 한다.”이는 중국조선족 축구원로인 지청용 선생이 다년간 자신의 축구생애를 통해서 얻어낸 결론이다. 오늘도 그렇지만 1965년 길림성축구팀이 전국갑급리그에서 우승을 할 때도 길림성팀에는 선수들의 신체소질이나 개인기술은 다른 팀과는 비교도 안될 지경이었다고 한다. 또한 전문 체육학교훈련을 거친 선수도 별반 없는 것이 더욱 사람들의 화제거리로 됐었다. 그것은 원로축구인 지청용 선생의 개인서류를 펼쳐봐도 대뜸 짐작할 수 있었다. 1935년 12월 26일, 지청용이 태여난 곳은 화룡현 2구(지금의 용성향)의 천수촌이었다. 그때는 일제식민지 시대인지라 다른 모든 가정과 마찬가지로 지청용의 가정도 째지게 가난했다. 때문에 남자 3형제중 막내인 지청용은 축구에 장끼가 있는 두 형의 영향을 받아 축구운동을 그토록 좋아하면서도 축구공이나 운동화 같은 것은 살 엄두도 못냈다. 그러니 당시 전문 축구인재를 키우는 학교도 없었거니와 설사 있다손 쳐도 그런 곳에 갈 형편이 못되기도 했다. 하지만 타고난 천성이라고나 할까? 그만큼 어린 지청용은 축구운동을 포기할 수가 없어 자주 집의 이불솜이나 베천같은 것을 훔쳐서는 볼을 만들어 차군 했으며 그때문에 부친한테 경하면 욕을 먹었고 심하면 휘초리에 장딴지에 줄이 가도록 얻어맞군 했다. 그후 소학교를 졸업해 해방을 맞자 지청용은 그래도 축구를 잘한 덕분에 구정부의 통신원으로 될 수 있었고 또 1년 후에는 구정부의 추천으로 돈화현 관지중학교에 가서 3년간 공부도 할 수 있게 됐다. 그 때로부터 지청용의 객지생활은 스타트를 뗀 셈이었다. 중학교를 마친 지청용은 다시 화룡으로 돌아와 현임업국의 과외축구선수로 활약하게 됐다. 그러다가 1955년에 화룡으로 선수고찰을 내려 온 길림성축구팀 박노석 감독의 눈에 들어 전업축구선수 생애를 시작, 그 때 길림성축구팀 선수들의 경력을 보면 모두가 전문훈련같은 것을 거치지 못한 것이 대체적으로 지청용의 경우와 비슷했다. 길림성축구팀은 창립되자 바람으로 공격형 축구를 팀의 풍격으로 자리를 굳혔다. 또한 앞이 강하고 뒤가 약한 팀 실정으로 봐도 공격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방어었기 때문이다. 그 때 길림성팀의 포메이션을 보면 공격선에 늘 이광수, 손중천, 지청용 이 3명의 선수가 포진, 이 3명이 서로 패스해 주며 공격한다 하면 모든 팀들이 주눅이 들기가 일쑤었고 두번의 공격에 한번은 기본상 골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길림성축구팀은 늘 전국 4개 강팀 중 하나로 인정받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일까. 국가체육운동위원회에서는 외국축구팀이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자주 길림성축구팀을 내세워 그들과 격돌하게 했다. 다음 더욱 주목할만한 것은 1959년 제1회 전국운동회 축구종목에서 지청용, 이광수, 지운봉 등 3명 선수가 득점순위 1, 2, 3위로 뽑혔고 지청용선수가 최우수공격수(골 13개 득점했음)로 선발됐는데 이것만 보더라도 길림성축구팀이 당시 얼마나 거센 공격형축구를 구사했는가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평소의 훈련에 대해 회고하면서 훈련이 경기보다 몇갑절 더 힘들었다는 것이 지청용 선생의 일가견이다. 그 때 길림성팀은 늘 땡볕이 쨍쨍 내리 쬐이는 한낮에 훈련, 훈련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 모두가 체력소모를 극한으로 요구하는 고강도 훈련이었으며 훈련내용의 70% 이상이 슈팅내용이었다. 하기에 일단 경기에 뛰어들면 선수들 모두가 지칠줄 모르는 체력과 투지를 갖고 90분간의 스피드를 보장했으며 슈팅명중율도 대단히 높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당시 선수들마다 완강하면서도 자아특점이 있었는바 예하면 “탱크”, “제비”, “무쇠머리”, “도리깨”, “집계”, “참새”, “특공대” 등 별호들이 있었다. “탱크”는 진공한다 하면 막을 수 없다는 이광수 선수의 별호었고 “제비”는 속도가 빠른 동경춘의 별호었으며 “무쇠머리”는 헤딩능수 최철봉, “도리깨” 공을 감아서 잘 차는 김동하, “집계”는 상대의 공격수를 물고 늘어지는 김익갑, “참새”는 패스기술이 뛰어난 손중천, “특공대”는 기습에 능한 정종섭의 별호(지청룡원로한테는 돌연슈팅으로 슈팅명중률이 높아 “대포”란 별호가 붙었음) 등이었다. 한편 당시 감독과 선수들 사이의 직책과 분공이 명확했다. 감독의 포치라면 선수들은 절대성, 무조건성 복종이 강요됐다. 1965년 길림성팀이 전국우승을 할 때 박만복 감독은 한창 30대의 젊은 축구인이었지만 선수들중에는 박만복과 나이가 엇비슷한 선수들이 한두명 아니었다. 하지만 선수들 모두가 선수라면 반드시 감독의 지시를 따라주는 것이 전반 길림성팀의 풍격중 하나었다. 팀의 실력을 따진다면 그 때 중국 국가축구팀은 모종 원인으로 올림픽이나 월드컵같은 경기에 참가하지 않다 보니 그 수준여하를 가늠할 수 없었지만 중국의 갑급팀중의 하나인 길림성 축구팀이 국제축구무대에 자주 진출하는 조선국가팀과 엇비슷한 실력으로 경기를 치렀으니 그 때 중국의 축구수준은 매우 괜찮은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런 논리로 추리해본다면 그 후의 30여년 사이에 아시아의 한국이나 일본,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축구는 많은 발전을 가져 왔으나 중국축구는 제자리에서 맴돌아쳤거나 아주 굼뜨게 발전했다는 설명이 된다. 이를 두고 지청용 원로는 중국선수들은 돈을 많이 받지만 직업선수의식이 결핍하다 보니 감독을 감독처럼 보지 않고 있으며 특히 운남의 해경훈련기지에는 숱한 삼배동아가씨들까지 선수들을 찾아오는 현상이 나타 난다는데 이 모든 것이 잘못돼도 한창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러한 것은 당시 1950년대나 1960년대에는 당치도 않는 행위로 치부됐다. 그 때까지만 해도 선수들은 무단적 외출이란 근본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고작 외출을 해도 영화구경이나 하면 그 것이 전부었다. 그리고 선수들은 결혼해도 집사람과의 생활을 몹시 절제 받아야만 했다. 지청용 선수만 해도 1957년에 부인인 한영혜 여사와 결혼했지만 결혼생활이란 1년에 겨우 1주일 정도, 그것도 경기가 없는 겨울철에만 가능했다. 오죽했으면 따님마저도 1년에 겨우 한번씩 집으로 아빠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정도었을까? 그러다보니 부인 한영혜 여사의 고생은 이루다 말할수 없었다. 남편이 없는 가정을 이끌어 나가느라 그토록 사랑했던 직업마저 버려야 했고 겨울에 온돌에 불길이 들지 않아 몇몇 선수의 안해들과 함께 집들을 돌며 온돌을 고치며 역사를 하군 했다. 아니 젊은 여인으로서 남편을 그리며 살아오던 그 수많은 나날들, 하여 지청용 원로는 지금도 자기 때문에 너무나도 고생한 부인 때문에 자주 눈굽을 찍군 한다. 하지만 프로선수라면 반드시 많은 것을 희생할 각오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바로 지청용 원로의 지조었고 양심이기도 했다. 우리 중국조선족축구의 어제와 오늘, 시대가 바뀌고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 받는 대우도 바뀐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조선족들로 주축을 이루고 공격형 축구를 구사하고 있는 우리 연변축구, 그렇다면 우리의 선수들은 그제날의 원로들한테서 과연 어떤 것들을 따라배워야 할까?
    • 스포츠
    201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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