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6(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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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광저우 도심서 집단난투극 경찰 제압에 나서
    [동포투데이] 중신넷에 따르면 지난 4월 28일 15시 50분경, 중국 광저우 웨수이구 베이징로 208번지의 모 점포앞 보행거리에서 집단난투극이 벌어져 경찰이 제압에 나섰다. 이 싸움으로 2명이 부상당한 걸로 집계됐다. 경찰들은 싸움을 제압하는 과정에 허공을 향해 실탄 2발을 발사했고 6명의 사건연루자들을 검거하는데 성공했다. 경찰조사에서 밝혀진데 따르면 이번 싸움은 상가들간의 점포 인테리어로 인한 분쟁이라고 한다. 해당 사건은 진일보 조사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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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뉴스
    • 아시아
    2014-04-30
  • 오묘한 세계 대백과(8)한 방울의 물도 없는 수성
    수성은 태양계 중에서 가장 명실에 부합되지 않는 하나의 행성이다. 그것이 비록 이름은 수성이라고 달았지만 실제상에서는 한방울의 물도 없다. 그리고 액체 상태의 물질은 근본상 수성에 자리잡을 방법이 없는바 이는 무슨 원인일까? 원래 수성은 태양과의 거리가 아주 가깝기에 이글거리는 태양의 복사에 태양을 향한 수성의 한쪽 면은 극도로 뜨거운바 최고 온도가 무려 427도에까지 이른다. 이렇듯 높은 온도속에 돌과 같은 금속마저 용화되기에 물이 있다고 해도 진작 증발해 버릴 가능성이 크다. 한편 태양을 등진 수성의 다른 한쪽 면은 온도가 특별히 낮아 령하 173이다. 이렇듯 낮은 온도하에서 물의 전부가 얼어붙어 빙산이 됐으므로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수성에는 물이 없을뿐만 아니라 표면층의 공기도 몹시 희소하다. 이런 공기는 태양풍이 몰아오는 원자로 구성되었기에 수성은 몹시 더우며 이런 원자 또한 아주 빨리 태공중에서 흩어져 버린다. 이로 보아 수성이란 얼마나 황량한 성구인가를 알 수 있다. 【동포투데이 김철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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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연재
    2014-04-30
  • 중국유학생 재영국 신이민군체로 부상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목전, 날로 많은 중국학생들이 영국에가 공부하고 그중의 일부가 여러 경로로 영국에 남음에 따라 그들은 재영 중국이민자들의 새로운 군체로 되고 있다고 중국신문망이 30일 보도했다. 총부가 영국 런던에 있는 해외학생봉사센터의 집행이사 진일은 최근년간의 중국학생들의 영국 유학과 이민 상황을 소개하며 중국 유학생이민은 신이민 또는 내륙이민 가운데의 일부분으로 그들의 도래는 재영국 중국이민 전반 구조를 변화시켰다고 밝혔다. 그는 이전의 중국인 전통업종은 주로 홍콩인들을 대표로 하는 중식업이었고 그 외 중의약업을 대표로 하는 상당 오래된 이민들이 있었는데 목전, 상황은 매우 큰 변화를 가져왔다면서 우선 업종에 변화가 발생했는바 교육자문업이 있는가 하면 부동산업, 금융업, 무역과 인터넷업들이 나타났으며 이들은 주로 중국 내륙지역으로부터 온 신이민들이라고 소개했다. 이들 유학생들은 영국에 체류한 후 새로운 이민역량으로 발전, 문화교육 정도가 비교적 높고 언어능력도 강해 각종 사회단체를 통해 영국의 주류사회에 접근했으며 그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그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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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
    2014-04-30
  • “중국 올해 미국 제치고 세계 최대경제체로 부상할 것”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영국 “금융시보”는 세계은행의 데이터를 인용, 미국은 곧 세계 “최대경제체”라는 칭호를 잃을 것이며 올해 중국의 경제규모가 미국을 초월할 것이라고 전했다고 30일 중국 텅쉰망이 보도했다. 이에 앞서 적지 않은 경제학자들이 중국의 경제규모가 2019년에 이르러 미국을 초월할 것이라 인정했다. 미국은 1872년에 영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경제체로 부상, 지금까지 그 지위를 굳건히 지켜왔다. 2005년에 세계은행은 중국의 경제규모가 미국 경제규모의 절반도 안되는 43%라고 발표했다. 헌데 구매력평가라는 새로운 방식을 사용하고 거기에 중국의 경제성장 속도가 미국보다 훨씬 빠르다는 사실을 감안해 세계은행은 2011년 중국의 국민총생산(GDP)이 미국의 87%에 달한다는 연구결과를 일전 발표했다. 이 연구보고는 “2011년에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경제체였다. 그리고 구매력으로 평가하면 중국이 미국 다음의 세계 제2대 경제체로 된다”고 밝혔다. 한편 국제화페기금기구는 2011년―2014년 기간, 중국의 경제규모는 24% 성장할 것이고 미국은 7.6%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로부터 중국의 경제규모가 올해 미국을 초월할 것이라고 세계은행은 전망했다. 이번 세계은행의 데이터는 세계 경제전경을 완전히 개변시켰는바 대형의 중등수입 국가들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인도는 세계 제10대 경제체로부터 세계 제3대 경제체로 부상했다. 2005년 인도의 경제규모는 미국 경제규모의 19%밖에 되지 않았지만 2011년에 이르러 미국 경제규모의 37%에 달해 거의 배로 성장했다. 러시아, 브라질, 인도네시아와 멕시코 등이 모두 세계 12강 반열에 올랐으며 원가가 높고 성장이 낮은 원인으로 영국과 일본은 2005년에 비해 미국 경제규모와의 차이가 더욱 벌어졌다. 독일의 경제규모 순위는 조금 상승했고 이탈리아는 답보상태였다. 목전, 부유한 국가들이 여전히 전 세계 GDP의 절반을 점하는데 그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17%밖에 점하지 않는다. 부동한 국가의 진실한 생활원가를 비교한 후 보고서는 세계적으로 생활원가가 가장 높은 4개 국가로 스위스, 노르웨이, 버뮤다와 호주를 꼽았고 생활원가가 가장 낮은 국가로는 애급, 파키스탄, 미얀마와 에티오피아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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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2014-04-30
  • 세계여자격투기 챔피언과 중국 조선족 여성
    [동포투데이 리포터 철민] 인간운명에 있어서 선택이란 아주 중요한 것 같다. 어제의 약자가 오늘의 강자 되고 오늘의 거지가 내일의 부자로 될 수 있는 세상, 여기서 물론 노력과 분투가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이겠지만 선택 역시 노력과 분투를 토대로 하는 것이라 해야겠다. 심영희 - 태평양 건너 세계의 최강국이며 제일 부유하다는 아메리카란 나라에서 여자이종격투기 세계챔피언이 된 여인이다. 워낙 중국 연변의 일개 수수한 조선족 여인에 불과했던 그녀, 어릴 적 스포츠에 신체적 소질이 있었고 육상같은 종목에 재질을 과시한 적이 있었으나 가령 후날 여자격투기계에 투신하지 않았더라면, 여자의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치고 차고 깔아뭉개는 혈투에 끈질긴 노력을 경주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오늘의 그 녀가 없었을 것이다. 심영희 – 그녀의 이름은 워낙 이영희었다. 1963년 중국 연길시 철남 동광촌에서 태어난 그녀는 일찍 8살 적부터 체육에 재질이 있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체육운동에서 남다른 싹수를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만도 연변의 스포츠 분야는 그 종목별로 아주 단조로왔던 상황, 영희가 선택한 것은 육상종목이었다. 다리가 길고 동년배들에 비해 5센치메터가량 키가 더 큰 영희로 놓고 볼 때 이는 정확한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영희의 아버지는 늘 “육상은 모든 체육의 기초이므로 체육선수라면 반드시 이 관문을 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뜻을 잘 알았고 기량연마에 땀동이 쏟기를 아끼지 않았다. 결과 소학교시절에는 육상경기의 1500미터와 3000미터 달리기에서 늘 우승해 어릴 때부터 저력을 보여줬고 중학교 시절에는 배구, 농구 등 구기종목에서도 두각을 자주 나타냈다. 그녀가 무술에 취미를 느낀 것은 고중을 졸업해서부터였다. 그 때인즉 중국의 영화관과 극장가에서 무술영화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다. 헌데 당시만 해도 연변에서 무술을 배울만한 체육관과 무술지도가 별로 없었던 상황어서 무술계에 입문하고 싶어도 생각뿐이었다. 또한 아버지를 비롯한 가정에서도 “하필이면 여자가 무슨 무술인가”고 하면서 내켜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그 생각을 접어두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또 몇년간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그러던차 1986년 서울아시아게임을 계기로 중한 사이가 급기야 가까와졌다. 그러자 오래동안 품었던 영희의 꿈도 실현될 희망이 보였다. “그렇다. 남조선(한국)으로 가서 무술을 배운다.” 그래서 1988년 무작정 한국행을 한 그녀였다. 새롭고도 커다란 꿈을 갖고 한국땅에 발을 들여 놓은 이영희, 하지만 그녀를 맞은 한국사회는 이전에 그렇게도 동경하던 “무릉도원”이 아니었다. 우선 동포라고 하면서도 동족취급을 하지 않았고 인격과 대우면에서도 차별이 심했다. 우선 그녀가 취직해 일하던 음식점 주인부터가 중국조선족에 대한 태도가 확연히 달랐다. 같은 일을 하는 한국인보다 봉급을 적게 주는가 하면 나중엔 차일피일 미루더니 3개월치까지 체불했다. 그래서 왜 “나의 봉급만을 체불하는가”고 따졌더니 “너 불법체류신세에 뭘 따지느냐”면서 파출소로 가자며 협박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인내력은 한계에 이르렀다. “그래 가자. 파출소로 가면 무서워하는 줄 아느냐. 너 오늘 사람 잘못 선택했다. 난 여기서 안하고 중국에 가면 그만이지만 너 어떻게 되나 좀 보자.” 영희는 수많은 중국조선족이 한국땅에서 기시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그 음식점 주인을 엄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멱살을 잡자 키가 작은 음식점주인은 영희가 흔드는대로 휘친거렸다. “너 파출소로 갈래 아니면 여기 2층에서 떨어져 볼래?!” 음식점 주인여자는 영희앞에 무릎을 꿇면서 빌었다. “안돼, 오늘 파출소로 간다. 너 이제 사정하긴 이미 늦었어. 너와 나 오늘 판을 깬다. 나 보따리 싸고 강제귀국 당하고, 넌 내 봉급 지불하고 벌금까지 당해야 해.” 좀 지나치긴 했다. 하지만 영희의 거동은 당시 현장에서 목격한 많은 한국인들의 동정을 자아냈다. 그들은 “미스리의 봉급은 자기들이 조해시켜 해결해 주겠다”고 하면서 파출소행만은 극구 만류했다. 그러자 가까스로 참았던 영희의 눈물이 쏟아졌다. “저도 중국에서는 잘 나가는 여자였어요. 제가 왜 한국에 와서 저런 저질적 여자한테서 기시를 받아야 되죠?!…” 후에 영희는 그 음식점이 있는 동의 동장과 주위사람들의 도움으로 체불됐던 봉급도 다 받고는 보다 일당이 많은 건설현장으로 일자리를 옮겨 남자들도 힘들다는 “노가다판”에 뛰어 들었다 … 한국에 체류하는 2년간 그녀는 음식점과 건설현장 등을 전전긍긍하면서 막노동에 투신하는 한편 체육관을 찾아다니며 무술기능을 연마하기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의 무술계 역시 한계가 있었다. 아니 중국조선족인 영희로서는 한국정상급의 무인들과 만날 수가 없었고 혹시 만난다 해도 그들이 그녀를 받아 줄런지도 미지수였다. 그 기간 영희한테는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피곤하고 방방하던 시기였다. 당시 그녀는 하마트면 무술연마를 포기할 번하기도 했다. 1990년 마음속으로부터 일종 실망의 그림자를 지니고 귀국했던 그녀는 인차 결혼했고 그 이듬해엔 아들 김영국이를 낳으면서 일약 가정주부로 됐다. 헌데 인간이란 자기가 희망했던 것을 쉽게 포기할수 없는 법, 때마침 중국의 스포츠 격투기분야에서는 미국 권투계의 타이센이 새별로 떠올랐다. 이는 거의 사그라지던 영희의 가슴속에 새로운 욕망이 불타오르게 했다. 새로운 꿈을 찾아 미국으로 간다? 하지만 미국은 가까이에 있는 한국이 아니었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또한 멀리에 있는 나라이다. 비자를 받기가 힘들거니와 간다 해도 어떻게 자리를 잡는가 하는 것도 문제였다. 하지만 미국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한 이상 그녀는 갖은 경로를 통해 끝내 미국행비자를 손에 쥐고야 말았다. 1999년 그녀가 태평양상공을 날아 넘어 미국으로 향할 때 그녀는 이미 이영희가 아닌 심영희로 탈바꿈한 뒤였다. 그리고 그 때의 그녀의 나이 36세, 여자로서 격투기프로로 되자면 늦어도 한참 늦은 나이였다. 심영희씨는 지꿎은 노력과 강훈련으로 나이가 많은 것을 미봉했다. 합기도외 유술과 킥복싱도 익혔고 하루 잠자는 시간은 3 ∼4기간에 불과했다. 일종 행운이랄까. 당시 그녀가 찾은 체육관은 덴젤 워싱톤, 제니퍼러그 휴이트와 마이클 타이센 등 세계정상급 스타를 탄생시킨 “할리우드 짐”이었다. 그렇듯 유명한 체육관인만큼 개인지도료도 엄청났다. 미국생활초기 미용원에서 아르바이트로 받는 800달러의 절반 이상이 그 비용으로 나갔다. 그 뒤 그녀는 월세 1500달러씩 하던 세집에서 300달러씩 하는 단칸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이를 미봉하기 위한 그녀의 훈련은 계속됐고 그러는 사이에 수년간 세월이 훌쩍 지나갔으며 그녀는 어느 덧 합기도 5단, 중국무술 5단, 검도 5단 등 무술 종합 15단에 달하는 헤비급 무인으로 발돋음했다. 그 뒤 부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4차례의 감사장을 받으면서 심영희란 이름은 미국 로스안젤레스의 한인사회에 널리 알려졌고 얼마 안돼 그녀는 로스안젤레스 웰셔 경찰서로부터 평생회원배지을 발급 받았으며 또한 미국사상 처음으로 여자경호원증을 수여받기도 했다. 심영희씨가 미국 이종격투기계에서 소문을 놓기 시작한 것은 2006년 미국 로스안젤레스를 방문한 당시 한국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의 경호를 맡아해서부터였다. 당시 로스안젤레스의 한인사회에도 한다하는 무술인들이 많았다. 특히 거의 본질적으로 중국 조선족이라면 색안경을 끼고 보거나 기시부터 하는 한인사회에서 심영희씨가 한국의 유명한 정치인의 경호를 맡을 수 있었다는 것은 그녀의 무술실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충분히 설명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만큼 심영희씨는 미국사회의 도처에서 무술시범을 보여 그 실력을 인정받은 중국무술, 합기도와 검도 등에 정통한 조선족 여중호걸이었으며 또한 5톤 짜리 자동차가 배우로 지나가도 끄떡없는 기합도 가진 그런 “철의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녀한테는 무술시범을 하여 돈을 많이 버는 것이나 어느 한 정치인의 경호를 맡아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 아니었다. 그녀의 목표는 여자이종격투기계의 챔피언이 되어 이 분야를 제패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그 날이 왔다. 그 이듬해 4월, 그녀와 맞붙은 상대는 먼저 번 세계여자이종격투기 챔피언으로 등극했던 멕시코의 이사벨 마르테네즈였다. 당시 심영희는 이미 44세가 되는 중년층이었지만 상대는 22살이 되는 프로로는 한창 나이라 할 수 있었으며 특기 또한 발차기로 세계에서 유명했다. 심영희씨는 사전에 마르테네즈의 특기에 대해 깊히 연구했다. 몸이 날래고 특히 발차기를 잘한다는 것, 그 것을 잘 피하고 자기의 특기인 둘러 메여치기를 잘 활용해야 했다. 겨루기가 시작되자 아니나 다를가 눈깜짝할 사이에 상대의 발길이 수시로 날아왔다. 만약 그녀의 발길에 요해 부위만 맞았더라면 나의 챔피언꿈은 수포로 됐을 것이었다… 하지만 심영희는 마르테네즈의 발길을 잘 피했고 수차에 거쳐 상대를 둘러 메치기에 성공했으며 그 뒤엔 마르테네즈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팔로 상대의 목부위를 휘감아 머리를 들 수 없도록 만들었다. 심영희의 전술은 과연 효과를 봤다. 이종격투기에 있어서 밑에 깔린 측이 항상 힘을 더 빠져 버리기 마련이었다. 2회전에 거쳐 수차씩이나 심영희한테 깔려 일어나기에 실패한 마르테네즈는 3회전을 앞두고는 아예 기권해 버렸다. 믿기 어려운 기적이 이역만리 아메리카땅에서 일어났다. 중국 조선족여인이 여자이종격투기 세계챔피언이 됐다. 세계가 열광했다. 세계챔피언상과 금띠를 받는 순간 심영희는 울었다. 오, 얼마나 큰 대가로 얻어낸 챔피언 등극이었던가?! 한편 심영희씨한테 챔피언보좌를 빼앗긴 멕시코의 마르테네즈는 목과 어깨부위에 심한 타격을 입은 듯 한쪽 켠에 밀려 의사의 치료를 요청했다. 치명타를 당한 것이 분명했다. 심영희씨는 미국에서 수차의 이종격투기 경기에 참가, 지금까지 43차의 경기에서 무려 41차나 우승을 했다. 이런 공로가 인정되어 심영희씨는 미국대통령으로부터 수차 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미국에서의 대통령상 인선 및 추천은 대통령상을 수상한 시민들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게 심영희씨의 설명이다. 또한 미국에서는 대통령상을 미국 국민만 따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각지, 그 어느 국가의 국민도 미국대통령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심영희씨의 설명이다. 얼마전 그 심영희씨가 재차 고향행을 했다. 오바마 미국대통령상을 받은 연길 윤세미용성형병원 윤경애 원장한테 대통령상을 전해주러 왔다. 그 상 역시 심영희씨가 미국사회에 추천하여 이뤄진 것이었다. 그렇듯 세계를 놀래운 여인이었지만 필자와 만났을 때 그녀는 아주 차분한 자세였다. “2007년 저한테 당한 마르테네즈가 몇해전 또 재 도전을 해 왔어요. 두번째에도 보기 좋게 제압해 버렸죠. 어렵게 딴 챔피언띠를 다시 그녀한테 돌려줄 순 없잖아요. 이는 단지 저의 영예뿐이 아닌 우리 연변의 영예를 지키는 일이라고 해야겠죠?!” 한편 그녀는 미국 로스안젤레스에서 “유나이티드 유스 파운데이션”이란 도관도 경영, 청소년육성에 성의를 아끼지 않고있다. 그리고 무료시범과 모금활동을 통해 지역사회봉사에도 한몫 크게 기여하고있는걸로 알려지고있다. 심영희씨가 무르익히고있는 또 하나의 꿈이라면 미국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자기의 재능을 영화에 재현시키는 것, 현재 할리우드측과도 여러번 접촉이 잦았고 협상도 바야흐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심영희 – 중국조선족이 낳은 “철의 여인” 심영희! 이제 그녀가 할리우드로 진출하는 그날이면 심영희는 미국영화계에 발을 들여놓는 첫 중국조선족이 될 것이다.
    • 사람들
    2014-04-30
  • 체육인가정 정순도일가 노부부, 아들 내외까지 스포츠맨
    【동포투데이 김철균】나많은 노부부, 아들·며느리까지 스포츠에 장끼와 싹수를 보이는 가정, 그들인즉 지난 세기 60연대에 각각 길림성축구팀과 연변배구팀에 몸을 담근 적 있는 정순도/김명숙네 일가이다. “나늘 놓고 보면 1962년 체육운동학교를 졸업할 때만 해도 아이스하키팀을 따라 길림성 청소년아이스하키선수권경기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그러다 체능이 좋고 속도가 빠른 덕에 1964년 길림성축구팀으로 자리를 옮겼겼는데 경기장에서 한창 전성기를 맞이 할 무렵 맹랑하게도 문화혁명이 터졌다.” 그 후 팀이 해산되고 연길시 농구공장에 배치받았지만 축구꿈만은 버릴 수 없었던 정순도 선생이었다. 그는 함께 배치받은 김석주, 홍종우, 김윤철, 허태열 등 원 길림성팀에 있던 동료들과 함께 종업들속에 축구봄이 일게 했는바 그가 소속된 공장팀은 1970년대에 들어 연길시내 각종 명목의 축구경기에서 줄곧 앞자리를 차지했다. 외지의 전업팀이 와도 해당 부문에서는 자주 연길시 농구공장팀을 내세우군 했다. 정순도 선생은 지난 2009년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정순도 선생은 연변 주 노년축구팀 일원으로 활약하는 한편 아이스하키종목의 국가1급심판원으로 스포츠분야에서 남다른 열성을 보이였었다. 고 정순도 선생의 부인 김명숙 여사는 초중시절에 워낙 농구선수였다. 키가 껑충하게 컸기 때문이었다. 당시 연변 주정부 남명학 부주장이 언젠가 기층학교를 돌던 중 그녀를 보고 “넌 머리칼이 많으니 이악스럽겠구나. 배구나 좀 전공해 보렴”라고 말한 것이 인연이 되어 연변 주체육운동학교를 거쳐 연변배구팀 선수로 부상하였다. 그 시기 그녀는 말그대로 이악스러웠는바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장거리달리기를 포함한 모든 고강도 훈련을 용케 견디어 냈으며 얼마 안되어 팀에서 한다 하는 주력선수로 부상, 1965년에는 팀을 따라 전국여자배구리그에 참가하여 2등까지 하였다. 문화혁명후기 소속배구팀을 따라 연변신화인쇄공장에 배치받은 뒤 김명숙 여사는 공장과외배구팀과 함께 훈련에 정진, 애어머니로 된 몸임에도 처녀들 못지 않게 경기에서 남다른 활약을 보이군 했다. 특히 주종업원 여자배구팀이 제7회 길림성운동회에서 여자배구우승을 할 때는 6살난 아이를 달고다니며 경기에 참가하여 관람자들의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 뒤 연변 주마마배구협회가 서자 김명숙녀사는 솔선적으로 그 조직에 참가하여 부회장직을 맡고는 저조기에 처한 연변의 배구운동을 재활시키고저 동분서주하였다. 고 정순도 선생의 아들네 내외도 스포츠인이다. 아들 정은철씨는 교통분야에서, 며느리 최은숙씨는 소학교 체육교원으로 서로 다른 분야에서 사업하게 됐지만 스포츠집념은 그들 사이를 더욱 가깝게 되게 했다. 지금 정은철씨는 주 공안분야의 과외축구팀 일원으로, 최은숙씨는 체육교원으로 서로 장끼를 보이고 있다. 고 정순도 선생은 육상은 모든 체육을 잘할 수 있는 기초로서 우선 육상관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고 김명숙녀사는 이악스럽고 고생을 이겨낼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이었으며 정은철, 최은숙부부는 기술을 잘 연마해야 한다는 것이다. 체육인으로서 더듬어 낸 각자의 관점, 모두 일리가 있었다.
    • 스포츠
    2014-04-30
  • 주 칭다오 한국 총영사관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분향소 설치
    [동포투데이 칭다오] 한국 국내에서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에 대한 국민적 애도와 추모가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실종자 구조 수색작업도 진행 중이다. 아울러 주 칭다오 대한민국 총영사관은 정부의 방침에 따라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를 위한 추도를 희망하는 중국 현지 한인들을 위해 29일(화)부터 분향소를 설치 운영한다고 밝혔다. 분향소 운영시간은 매일 09:30부터 21:00(주말 및 공휴일 포함)까지이며 분향소는 주 칭다오 대한민국 총영사관 1층에 마련되어 있으며 교민들은 방문 시 반드시 여권(또는 기타 유효한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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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2014-04-30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뉴욕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 조문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9일,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와 관련해 유순택 부인과 함께 뉴욕주재 한국 총영사관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를 방문해 조문했다. 반기문 총장은 한글로 조문록에 “희생자 여러분의 명복을 빕니다”고 기재하고 제단에 헌화했다. 조문을 마친 후 기자단에 “많은 한국국민, 특히 젊은 학생들이 많이 희생된 것에 대해 한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사무총장으로서 마음 속 깊이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또 희생자 가족들이 이번 비극을 하루 속히 딛고 일어서 앞으로 희망과 미래를 이끌어 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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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메리카
    2014-04-30
  • 임금근로자 절반은 월급여 200만원 미만
    임금근로자 절반은 한달 월급으로 200만원 미만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은 30일 취업자의 산업 및 직업별 특성을 주제로 이같은 내용의 2013년 하반기 지역별 고용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하반기 전체 취업자 중 임금근로자 1848만9000명을 임금수준별 비율로 보면, 100만∼200만원 미만이 37.8%(698만5000명)로 가장 많았다. 100만원 미만은 12.9%(238만6000명)였다. 월급여가 200만원 미만인 임금근로자가 전체의 50.7%인 절반을 차지했다. 200만∼300만원 미만이 24.3%(449만3000명), 300만∼400만원 미만이 12.8%(237만4000명), 400만원 이상이 12.2%(225만1000명)로 나타났다. 고임금 근로자가 가장 많은 산업 분야는 전문, 과학 및 기술서비스업과 금융 및 보험업으로, 월 400만원 고임금근로자 비율이 각각 30.8%, 30.0%에 달했다. 반면 농림어업 분야는 월 100만원 미만 임금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56.9%로 절반을 넘었다. 농림어업 종사자 중 월 400만원 이상 급여 생활자는 3.4%에 그쳤다. 출판, 영상, 방송통신 및 정보서비스업 분야는 월 200만∼300만원 미만 임금근로자가 29.1%로 가장 많았다. 공공행정, 국방 및 사회보장행정 분야는 월 300만∼400만원 미만 임금근로자 비율이 23.7%로 높았다. 직업대분류별로 보면 관리자는 월 400만원 이상 임금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69.2%로 높았다. 기능원 및 관련기능 종사자는 월 200만∼300만원 미만 임금근로자가 38.3%로 많았다. 그 외 직업에서는 월 급여가 100만∼200만원 미만인 임금근로자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직업대분류별로 성별 취업자 비율을 살펴보면, 관리자는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88.8%로 가장 높았다. 반면 서비스 종사자는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64.9%였다. 산업대분류별로는 건설업과 운수업에서 남자 비율이 각각 91.7%와 90.7%로 매우 높았다.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과 교육서비스업은 여성 비율이 각각 80.1%와 66.7%로 높았다. 숙박 및 음식점업도 여성 비율이 64.5%에 달했다. 산업대분류별, 직업대분류별을 함께 살펴보면, 금융 및 보험업, 공공행정, 국방 및 사회보장행정은 사무종사자 비율이 각각 51.0%와 46.7%로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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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30
  • 돈 선거’기승, 경찰청 집중단속 하기로
    [동포투데이] 경찰청(청장 이성한)은, 세월호 침몰 관련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애도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고, 선거 열기 또한 다소 주춤한 가운데, 최근 경선 과정에서 돈 봉투가 오고간 사례가 적발되거나 적발된 불법행위 유형 중 금품 살포 등 ‘돈 선거’가 가장 큰 비중(27.6%)을 차지하고 있는 등 심각한 것으로 판단되어 금품 살포 등 ‘돈 선거’에 대해서는 선거사범 수사전담반 등 가용인력을 총 동원하여 발본색원.단속 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현재까지(4.29기준) 총917건.1,306명에 대해 수사 중이며, 불법 유형별로는 금품.향응제공이 360명(27.6%)으로 가장 많았고, 여론조작.현수막훼손.선거폭력등 기타 288명(22.1%),후보비방.허위사실공표 257명(19.7%), 사전선거운동 176명(13.5%), 인쇄물 배부 141명(10.8%), 공무원선거영향 84명(6.4%) 順으로, 사회가 투명해 지면서 상당수 근절 된 것으로 생각된 금품살포 등 ‘돈 선거’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최근 적발된 주요사례로는 ’13년 3월 측근을 통해 소개받은 사업가에게 선거때까지 자신의 지인에게 매달 200만원씩 교부하도록 지시하고, 상대 입후보 예정자를 비방하는 문건을 작성하여 인터넷에 게시하도록 한 혐의 등으로 某 자치단체장 등 3명을 구속한 사례와 ’14년 4월 하순경 ○○군수 경선에서 특정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지지문자를 주변에 보내달라며 ○○지도자협의회장 등에게 도합 100여만원 상당의 현금봉투를 제공한 혐의로 1명을 긴급체포하여 구속한 사례가 있다. 이밖에 ‘14년 4월 중순경 ○○시장 경선에서 특정 후보를 당선시킬 목적으로 경선선거인에게 200만원을 제공한 혐의로 1명을 긴급체포하여 구속영장을 신청한 사례 그리고 ‘14년 3월 ○○지사 출마예정인 특정 후보의 당선을 위해 주민 60여명을 상대로 식사 등을 제공한 혐의로 선관위로부터 고발된 사례등이 있었다. 경찰은‘돈 선거’를 근절하기 위해, 현재 전국적으로 선거사범 수사상황실을 설치하고, 3,123명의 수사전담반을 편성, 24시간 단속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특히 사회 분위기에 맞지 않는 ‘돈 선거 사범’에 대해서는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자금 흐름을 역추적하여 관련자들을 발본색원 하는 한편, 돈 선거를 부추기고 있는 선거 브로커들에 대해서도 첩보수집을 강화하여 엄정단속 할 방침이다. 아울러 경찰청에서는 돈 선거관련 내용을 신고하시는 경우, 신고보상금을 최대 5억원까지 지급하고, 신고자에 대해 철저히 비밀보장을 하고 있는 만큼 국민들께서도 불법 선거운동 등에 대해 알고 있는 경우, 112나 가까운 경찰관서로 적극적으로 신고하여 줄 것을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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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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