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핀 베이커ㅡ 훤칠한 키, 커피색의 피부, 새까만 눈동자, 미끈한 두 다리, 한번만 미소를 지어도 천하의 웃는 얼굴 그 전부가 이에 무색하게 된다.
일찍 미술계의 거장 피카소는 이렇게 조세핀 베이커를 묘사했다.
지난 세기 30~40연대, 미국의 흑인 무용 및 가수 그리고 영화스타인 조세핀 베이커는 성감이 짙은 무용과 아름다운 노래로 전반 프랑스를 설레이게 하여 세계의 첫 “흑인 녀슈퍼스타”로 불리웠다.
얼마전, 외국의 한 책자에서는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공개, 조세핀 베이커가 지난 세기 30~40연대 프랑스 정보부문에서 근무하는 비밀녀첩자로 일찍부터 나치 독일의 고위관들로부터 대량의 중요 정보를 수집했었다는 것이다.
이 책자의 제목은 “조세핀 기갈이 든 미녀”였고 이 책자를 집필한 저자는 미국무용평론가협회 주석이며 작가인 패트릭 스웨이지이다. 이 책에서는 조세핀 베이커가 1906년 미국 세인트 루이스의 한 빈곤가정에서 태어났고 부친은 스페인 사람이고 어머니는 흑인이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녀는 어릴적부터 가무를 몹시 사랑했으며 16살에 뉴욕으로 가서는 브로드웨이(百老汇)로 되면서 그곳에서 스타의 꿈을 갖게 되었다고 소개했다.
계속하여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민족적 기시로 인하여 조세핀 베이커는 19살인 1925년에 부득불 뉴욕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가서 정착, 생계를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만 했다. 당시 그가 파리에서 첫 무대로 출연한 극목은 “흑인개그맨”이었다. 그뒤 그녀는 “미친목양녀”란 저명한 나이트클럽에 들어가 공연하게 되었다.
무대에서 조세핀은 베이커는 항상 무대조형의 선두에 배치, 무대에서 긴 머리를 날리는 모습이 마치 조각같았다. 거기에 흥겨운 음악이 배합되어 더욱 감동을 주었다. 무대에서의 조세핀 베이커의 모습은 아름다운 미녀로 되는가 하면 어찌보면 기계같기도 했으며 그 때 무대의 분위기는 그 무엇으로도 형언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인차 이름을 날리게 되어 연예계의 스타로 되었다.
당시 조세핀 베이커의 성감적인 무용과 과다노출된 복장은 뭇사람들의 논쟁거리로 되었디만 많은 세계의 저명한 예술가와 작가들은 분분히 그녀를 변호하며 그녀의 명분을 살려줄 때가 많았다.
이것을 두고 20세기 미국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 헤밍웨이는 “조세핀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영원히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될 것”이라고 찬탄했고 20세기의 위대한 화가 피카소 역시 그녀의 미모와 눈동자에 깊이깊이 반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프랑스의 여성들은 머리방에 가기만 하면 곧 조세핀의 머리같은 스타일로 만들어달라고 했고 그녀가 출연하는 나아트클럽은 항상 초만원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렇게 매혹적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그녀가 프랑스 정보기관의 여첩자는 것이 최근에야 밝혀졌다. 세상에는 아마 영원한 비밀이란 있을 수 없는 모양이다.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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