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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전주국제영화제 정준호-민성욱 공동집행위원장 투톱체제 성공을 바라며
    독립영화의 요람 전주국제영화제가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로 전환해 정체성 확립과 대중성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지 관심을 받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위원장 우범기 전주시장)는 지난 14일 이사회에서 민성욱 부집행위원장과 정준호 영화배우를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의결했고, 지난 26일 조직위원장 우범기 전주시장은 시장실에서 위촉장을 전달했다. 마력은 동력의 단위로 높을수록 좋다. 이번 쌍두마차 체제가 앞으로 3년 동안 시너지 효과를 일궈낼 것으로 기대된다. 백제예술대학교 방송연예과 교수인 민성욱 신임 공동집행위원장은 전주국제영화제 출범부터 조직위의 사무국장 및 부집행위원장을 역임한 '지킴이'이고, 정준호 신임 집행위원장은 높은 인지도를 가진 대중성을 확보한 영화배우이기 때문. 어떤 조직이나 더 큰 발전과 생존을 위한 변화와 혁신이 요구되는 시점이 있다. 세계 초일류 전자제품 회사로 대한민국을 빛내는 삼성이 만일 제일제당 시절처럼 사카린을 밀수해 설탕을 팔던 그대로 운영되고 있다면 지금의 영광도 없었을 것이다. 2020년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는 비경쟁 위주로 실시됐고 올해 2022년 23회 영화제는 국제경쟁, 한국경쟁, 한국단편경쟁, 특별부문(한국 장편 다큐멘터리, 지역공모작품, 비경쟁 아시아 영화)로 진행되며 업그레이드 됐다. 2023년 24회부터 3년간 시행될 공동집행위원장 체제가 기존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보다 더 대중성을 일으켜 더욱 큰 소통을 통해 영화계 발전과 주최지인 전주 지역발전에 더 크게 기여하는 영광이 실현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쌍두마차 체제가 된 전주국제영화제는 전주시민의 선택을 받은 우범기 시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이끄는 마차다. 우 조직위원장이 전주시 발전을 위한 고뇌 끝에 내놓은 묘수라고 풀이된다. 시장은 시민의 행복과 시의 발전을 도모하는 자리기 때문이다. 공동집행위원장 체제에 대해 기대가 큰 반면에 걱정과 반감도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14일 이사회에서 공동집행위원장 체제가 수립되자, 권해효 배우, 방은진·한승룡 감독이 이사직을 사퇴했다. 이사회에서 자신의 의견과 다르게 의결되었다고 사퇴하는 것이 영화제에 대한 진정성일 수도 있지만 무책임하게 보일 수도 있는 지점이다. 고 자니윤(고 윤종승) 코미디언은 2013년 2월28일 해외동포들과 판문점을 방문한 후 가진 뒷풀이에서 "한국 사람들은 너무 똑똑해요.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이XX 안돼, 저XX 안돼 하는거에요. 일을 해보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미국에서 한국계 코미디언으로 성공하고 그의 인프라를 총동원해 조국 대한민국 관광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싶었으나 좌절된데 대한 의견으로 들렸다. 대한민국은 625전쟁 후 폐허에서 일어나 세계 경제 10대 강국이 되었고 민주주의를 이루어낸 나라다. 지난 80년간 대한민국이 변화가 없었다면 우리 국민들은 헐벗고 굶주리고 억압속에서 지옥살이를 하고 있었을 게 자명하다.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는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이사회에서 결정된 사안이다. 임기는 3년이다. 3년간 응원하고 3년 후 큰 성공과 발전을 이루면 박수를 치고, 변화의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때 가서 비판해도 늦지 않다. 한국언론인연대 박상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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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30
  • "일본 Z세대 중국에 호감" 중국 호감도 세대별로 다른 원인
    ●오카다 미츠루(일본 저널리스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7일 방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3년 만에 처음으로 중·일 정상회담을 갖고 악화된 양국 관계를 '재조정'하기 시작했다. 기시다는 대중 관계 개선에서 반중 여론과 대중 강경 자민당 우파의 제약을 받고 있지만 반중 여론을 거론하면 일본의 Z세대(18~29세)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40% 이상으로 다른 연령층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Z세대의 정치적 의지가 선거의 키를 쥐고 있는 세계적 흐름을 보면 '반중 여론'과 '우파'에만 의존하는 기시다 외교가 위태롭다. 45분 동안 진행된 이번 일-중 정상회담은 3시간여에 걸친 중-미 정상회담에 비해 일본의 대중국 중요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일·중 정상은 회담에서 국방부 해상 및 항공 연락 메커니즘의 직통 전화선 조기 개통, 새로운 중일 고위급 경제 대화의 조기 개최, 새로운 중일 고위급 문화교류 협의 메커니즘 회의 조기 개최 등 몇 가지 공감대를 형성했다. 향후 중일관계 개선의 지표 중 하나로 정상 간 상호 방문을 실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의 대중 관계 개선의 한 가지 저항은 '반중(反中)' 여론 고조다. 일본의 대중(對中) 인식 악화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각부가 매년 발표하는 '외교에 관한 여론조사'에는 흥미로운 수치가 나온다. 예를 들어 지난 1월 발표된 조사에서 응답자의 20.66%가 중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지난해보다 1.4% 증가)고 답했다.그러나 연령별로는 Z세대 중 중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는 비율이 41.6%로 전체보다 배 이상 많았다. 60~69세 13.4%, 70세 이상 13.2%에 비해 Z세대는 중국에 대한 친근감이 높다. 그렇다면 왜 연령대에 따라 중국에 대한 태도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분석하고 싶다. 나는 젊었을 때(저자는 1948년생) 중국의 사회주의에 대한 동경심을 갖고 있었고, 일본이 침략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속죄의식을 갖고 있었다. 중국이라는 '타자' 위에 자신의 생각을 투영해 기대를 부풀렸다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일본이나 구미의 통치체계를 중국의 정치와 사회에 투영해 일본이나 구미의 기준으로 중국을 관찰하고 판단한다. 요즘 60~70대 일본인들이 중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그러나 Z세대는 생각이 다르다. 내가 가르친 대학생의 경우 태어나기도 전에 일본 경제가 침체에 빠졌고, 일본 경제의 고도성장기를 경험하지 못했다. 이들이 철들었을 때 중국은 이미 미국을 추격하는 대국이 됐고 IT 기술에서 일본을 앞섰으며 애니메이션과 게임 품질에서도 일본을 추월하고 있다. 또 Z세대가 다니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많은 곳에서 중국 유학생과 접촉할 기회가 종종 있다. 다시 말해 Z세대는 중국을 일종의 '대등한'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특별한 생각이 없기 때문에 특별한 환상은 없다.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의 버팀목이 될 때 일본인 전체의 대중국 관념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쇠락이라는 역사적 변화, '탈아입구((脫亞入歐)'의식을 심리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대가 '2선 후퇴'하면 일본의 '반중' 여론도 달라질 것이다. 기시다 정권도 언제까지 반중 익찬 여론에 의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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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3
  • 강강술래는 야합(野合)의 축제였다
    한국국어사전은 강강술래와 강강수월래를 같은 말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강강술래는 한문 표기가 없고 강강수월래를 한문으로 ‘强羌水越來’로 표기하고 있다. 强은 강하다는 뜻이고, 羌(중국서부에서 양을 토템으로 삼은 민족이며 세력이 강해 늘 중원을 위협하여 한족정권은 그들을 오랑캐로 취급해왔음)은 오랑캐라는 의미이다. ‘强羌水越來’는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는 뜻이다. 필자는 한국국어학자 어르신들에게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즉 강강술래는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온 민속인데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오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아무런 연관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는 걸까? 답이 아닌 답이 하나 있긴 하다. 국어학자들이 강강술래를 한문으로 표기할 방법을 찾지 못해 본래 4음절인 강강술래를 음악의 필요에 따라 5음절로 늘린 강강수월래를 말도 안 되는 ‘强羌水越來’로 표기했을 것이다. 이런 억지춘향 표기현상을 가리켜 사자성어로 견강부회(牽强附會)라고 말한다. 강강술래를 ‘强羌水越來’로 표기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설명하려면 먼저 강강술래의 어원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강강은 본래 감감이다. 감은 감다, 감돌다 등등의 의미이며 감감은 감의 강조이다. 강강술래는 원을 그리며 빙빙 돌아가는 놀이이기 때문에 본래 감감술래였다. 감감술래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강강술래로 변음 되었던 것이다. 술래는 가운데서 눈에 띠를 두르고 숨은 자를 찾아내는 자를 일컫는 말이다. 한국국어학자들은 술래가 한자어인 순라(巡邏)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데 글쎄 썩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강강술래의 어원을 살펴보았으니 이번에는 강강술래란 도대체 어떤 놀이인지? 알아보자. 강강술래는 본래 순수 우리말이고 그 뜻은 원무를 의미한다는 데 포커스를 맞추고 유래를 찾아야 한다. 원무는 고대사회에 수많은 민족들이 보편적으로 추었던 춤이다.『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에서 저자는 원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영지주의자 예수는 미스테리아 입문식에서 원무를 이용하여 제자들을 이끈다. 그러한 입문식 춤은 이교도 미스테리아 의식에서 두루 나타나는 것이다.” 현대의 한 권위자는 이렇게 말했다. “고대입문식 축제 가운데 춤이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엘리우시스에서의 미스테리아 의식에서 입문식 후보자는 중심에 자리 잡고, 다른 사람들은 둘레에서 춤을 추었다. 그것은 행성과 별들의 궤도를 흉내 낸 것이었다. 미트라스 미스테리아의 의식에서도 미트라스를 상징하는 입문자는 중앙에 자리 잡고, 황도의 12궁을 상징하는 12명이 주위를 돌며 춤을 추었다. <요한행전>에서도 그와 비슷하게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춤을 춘다. 예수가 신호를 보내면 사도들이 신성한 말 ‘아멘’을 읊조린다. 예수는 이러한 ‘원무’를 통해서 ‘수난’을 나타낸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이것을 예수는 ‘신성한 비밀’이라고 부르도록 했다. 원무는 고대사회에 있어서 보편적인 춤이었으나, 그 형식과 내용 및 목적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위의 글에서는 원무가 이교도 입문식과 예수라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양의 원무가 행성과 별의 궤도를 흉내 낸 데서 유래되었다면 동양의 원무는 달을 흉내 낸 데서 유래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달을 흉내 내는 원무를 추는 것을 도월(跳月)놀이라 한다. 민속학자 임동권(任東權) 씨는 고대인들의 도월놀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원시시대에 있어서는 달을 중심으로 하여 행사가 많았다. 상원과 추석이 그러했고 달 밝은 밤이면 모두 모여 유희를 즐긴 것은 우리 조상만이 아니고 지금도 미개사회사회에서는 모두 그렇다. 따라서 옛날 1년 중에서 가장 달 밝은 한가윗날 마을의 소녀나 부인들이 모여 만월과 같은 둥근 원을 그리면서 놀이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때에 노래도 부르며 뛰기도 했을 것이니 강강술래가 임진왜란 때에 비로소 창안된 것이 아니고 그 이전에도 민족전래의 유희로 있었을 가능성이 많다. 강강술래처럼 대대적인 것은 아니나 달밤에 소녀나 소년들이 손을 잡고 뛰며 노는 유희는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그러한 뜻으로 강강술래를 보면 문헌고증을 할 수 없어서 그렇지 함화진(咸和鎭) 씨가 추상한 것처럼 마한 때의 민족유희였을지도 모르며 마한이 아닐지라도 백제 또는 고려시대에 이미 전파되었던 놀이인지도 모르겠다.” 중국소수민족문헌인『묘속기(苗俗記)』에 도월놀이에 관한 기사가 있는바,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른 봄에 남녀가 들판에 모여 배우자를 찾는 것을 이름 지어 ‘도월(跳月)’이라 한다. 정월 초 3일부터 13일까지 모두 도월놀이 기간이다. 13일 도월놀이가 끝나면 남자는 갈대피리를 불면서 앞장서고 여자가 띠를 끌고 뒤따르며 장내를 세 바퀴 돌고나서 손잡고 대나무숲속에 들어가 먼저 야합하는 바, 이름 지어 ‘라양(拉陽)이라 부른다. 그러고 나서 임신되면 시집가고 임신이 안 되면 이듬해에 또 반복해서 도월놀이에 참여한다. 『귀주통지(貴州通志)』에도 위의 기사와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다. “화묘(花苗), 매년 이른 봄에 남녀가 들판에 모이는 것을 ‘도월’이라 부른다. 평평한 곳(平壤)을 택해서 월장(月場)으로 삼는다. 남자가 갈대피리를 불고 여자가 방울을 울리며 빙빙 돌면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면서 하루 종일 즐긴다. 날이 어두워지면 남녀가 서로 짝을 지어 갔다가 날이 밝으면 헤어진다.” “백묘(白苗), 도월놀이 풍습이 화묘와 같다.” 우리는 전라남도 남해안 여러 지방의 강강술래도 역시 묘의 제족(苗之諸族)과 같은 순수한 도월놀이였으며 따라서 강강술래도 역시 청춘남녀들이 야합을 목적으로 한 놀이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인은 야합을 음란행위로 간주하지만 고대인에게 있어서 야합이야말로 자연의 원리에 순응하는 신성한 의무라고 여겼을 것이다. 중국 유명 학자 이중탠 교수는 이것을 ‘이른 새벽 모닥불 축제’라고 표현한다. 중국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위대한 공자님도 그의 부모가 매신을 제사하는 모임에서 만나 야합해서 탄생되었다고 한다. 『조선의 향토오락』에 의하면, 강강술래는 주로 상원과 추석, 즉 만월 시에 진행했다고 한다. 왜 강강술래놀이는 만월 시에 했을까? 중국신화연구자들에 의하면, 달은 여성의 생래규칙과 닮았다고 한다. 달이 이지러지고 차는 것은 여성의 임신현상과 닮았고, 또 여성의 월경주기는 달의 주기와 같다고 한다. 월경, 월신(月信), 월수라고 부르는 것은 달의 규칙과 같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달 속에는 생식을 주관하는 월정(月精)이 있는바, 개구리의 화신인 상아(常娥)가 곧 월정이라고 한다. 만월 시의 달의 모양이 아름다운 것은 달 속에 아름다운 상아가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며, 따라서 상아의 ‘출현’은 곧 인간의 생식을 관장하고 또 인간의 생식력을 왕성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강강술래가 만월 시에 진행된 것은 곧 고대인의 생식숭배의식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강강술래 참여자들이 본래 소년 소녀들이었다가 여자의 중심으로 된 것은 후대에 내려오면서 유교문화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두어 말하자면 강강술래는 순수한 우리말이며 원무를 뜻하며 원무는 곧 도월놀이며 도월놀이는 곧 남녀야합의 놀이었다. 후대에 내려오면서 소위 학자라는 어르신들이 영웅주의사상, 한문숭배사상, 유교사상의 덫에 걸려든 탓에 강강술래의 본래의 모습을 말살시켜 버렸던 것이다. 이는 고대문화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우리민족의 비극이다. 풍류인물이였던 세종대왕이 박연(朴堧)에게 고대로부터 내려온 민속을 채집하여 정리할 것을 부탁해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유생들이 그 귀중한 자료들을 전부 화롯불에 던져버렸다. 결과 오늘날 선조들의 수많은 풍부한 민속 문헌고증이 차단되었다. 그리고 한국인은 다재다난(多災多難) 했던 민족이어서 고유한 민속을 영웅주의에 덧씌워 풀이하다보니 역사가 유구했던 민속의 상한선을 기껏해야 임진왜란시기에 꿰맞추는 경향이 짙다. 이를테면 전라남도 남해안 일대 여러 지방의 고유민속인 강강술래를 임진왜란시기 의병술에 능하고 전쟁에 공이 많았던 이순신 장군이 창안해낸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후세인들이 강강술래놀이를 하는 것은 이순신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한 행사라고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민속학자인 임동권 씨는 1960년대 두 차례나 전라남도 여러 지방을 현지답사 하였는바, 현지고로들은 강강술래를 이순신 장군에 의해 창안되었다고 믿고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김창호(金昌浩), 어석경(魚錫經) 등 학자들도 현지고로들의 말을 믿고 역시 그렇다고 주장했다. 한 가지 미묘한 것은 강강술래의 전파지가 전라남도 남해안 일대로서 이순신 장군의 전적지와 맞물린다는 것이다. 허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강술래는 그 상한선이 마한 혹은 더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결코 이순신 장군이 창안해낸 것이 아니고 그의 공을 기리기 위한 놀이도 아니다. 다만 한 가지 가능성이 있다면 이순신 장군이 고유한 민속놀이를 의병술에 이용했을 것이다. 필자는 이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법무부 귀화시험 교재에 역시 강강술래를 이순신 장군이 창안한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될 이주민들한테 잘못된 역사교육을 시키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한국사회는 쩍하면 중국과 일본을 향해 역사왜곡을 하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는데 자기네들 역사를 자기네들이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으니 얼마나 비극적인가? 김정룡 '多가치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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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12
  • 한중수교 “50년”을 이야기한다
    ● 이 성 (By Star Lee) 오늘은 한중수교 30주년이다. 과거의 30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愛恨情仇(사랑, 원망, 정, 원한)이 뒤섞인 두 연인 간의 멜로드라마와 같았다. 한 때는 서먹서먹했던 맛선 본 선남선녀처럼, 한 때는 애정행각이 지나쳐 주변사람들이 눈쌀을 찌프렸던 연인처럼, 또 한 때는 서로간의 오해와 불만으로 사랑이 식어가며 냉정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커플처럼…. 어느 중국의 외교관이 사석에서 이런 농담을 하였다고 한다. 한국은 중국에 있어 매력적인 애인과도 같아 항상 그립고 가슴이 설레이지만 저 북방에 사는 본처를 생각하면 가까워지기에는 부담스럽고 떨어지려니 애간장이 탄다고 한다. 조금 불편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것이 양국간의 애뜻하고 불편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필자는 한국에서 수십년, 중국에서 수십년 살아오면서 ‘한중수교’라는 멜로 드라마를 본방사수하면서 지켜봤던 사람으로 각별한 애착과 소감이 있다. 열혈 팬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평범한 서민의 시각에서 한중간의 과거 30년 미래 20년을 논하고자 한다. 제1화 1992~2002 연모의 시대 30년전 한중수교가 이뤄졌다. 양국 대중에 있어 40년전 전쟁을 했던 ‘적대국가’, 서로 정체성마저 부정했던 ‘괴뢰정부’와 수교한다는 것은 조금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서먹함과 생소함을 덜하게 했던 것은 88 서울 올림픽과 90 북경 아시안게임이였다. 그 당시에 한중수교가 중국인에 가져다준 가장 큰 변화는 경제도 아니고 문화도 아니였다…스포츠 경기에서 국가명칭이 남조선이 대한민국으로 바뀌였고 중공이 중국으로 바뀌였던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의 신북방정책에 힘입어 중국동포들의 한국 친지방문이 한중교류의 물꼬를 텄으며 뒤따라 한국 제조업 기업의 중국진출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동남아국가에 진출하려면 상당히 많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극복해야 했지만 중국에서 수십년간 정착한 동포들은 한국기업의 중국 진출에 있어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말이 안통해도 현지에서 동포통역, 동포직원을 채용하면 모든 일이 다 순리롭게 풀릴것만 같았고 10억인구 상대로 한사람당 1원만 벌어도 10억원이 벌어진다는 차이나 드림에 벅차 북경, 상하이, 산동성, 요녕성, 강소성, 광동성 등 지역에 줄기차게 태극기를 꽂았다. 시험을 거치지 않고 빽으로 명문대에 입학한 학생이 잔혹한 대학생활을 맞이하게 되는 것처럼…중국진출의 열정과 자신감은 냉혹한 현실속에서 좌절하기 시작하였다. 세계의 역사를 보면 어느 나라도 신하나 내시에게만 의지하는 성군이 없었던 것처럼 언어가 통한다는 이유로 현지 동포직원에게 과도하게 의지하면서 구매관리, 고객관리, 직원관리를 소홀히 하며 많은 기업들의 경영이 난관에 부딪치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는 일부 실패의 요인에만 불과하다. 20년전 어느 삼성출신 중국 주재원이 쓴 책을 본적이 있다..중국에서 실패하지 않는 비법 중에서 1위가 중국여인과 거리를 두라는 것이다. 주색을 삼가라는 말이 당연해 보이지만 이 역시 그 시기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수준을 여실히 들어냈다. 결국 21세기에 들어서서 많은 제조업기업들이 중국을 탈출(심지어 야반도주)하게 되면서 중국 제조업 진출의 열풍은 서서히 저물어갔다. 이로서 제조업이 테마를 이루던 한중간의 사랑 드라마 1화는 막을 내리며 다음의 10년을 그리는 새로운 막이 열렸다. 제2화 2002~2012 동거의 시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제조업의 중국 정복은 순탄하지 않았지만 한중관계는 갈수록 돈독해졌다. 조심스럽게 상대방을 알아가면서 사랑의 싹을 틔우던 연인은 이제 동거를 하기 시작한 것과 같았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10년간의 하드웨어 교류의 시대를 넘어 소프트웨어 교류의 시대가 막을 올렸다. 이때부터 한국음식, 한국문화, 한국패션이 본격적으로 중국에서 대중화되기 시작하였다. 한국 드라마, 한국 음악이 중국에서 서서히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중국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한국은 중국인이 흠모하는 나라가 되였다. 젊은 층은 한국 현대문화의 모든 것을 따라하고 싶어했으며 우호적인 외교관계도 한중양국 국민감정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북경 올림픽 전까지만 해도 경제력이 3~4위에 불과하던 중국이 미래 G2 가 될 것이라는 예측을 과대평가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때만 해도 중국은 일인당 GDP가 3000달러 조금 넘는 빈국이였고 국민들에 있어 국가가 부강해진다는 기대감만 있을 뿐 미국을 도전할 수 있는 초강대 국으로 성장할 것이란 자신감은 아직 턱없이 부족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한국 학생의 중국유학 붐은 최고조에 달았으며 21세기 초반 월드컵 진출, 올림픽 유치, WTO진입 3대호재가 터지면서 “중국이 미래다”라는 여론이 세상을 뒤덮으며 한국 내 중국어 교육기관들은 최대의 호황을 누렸었다. 북경의 HSK학원에는 한국인 수강자들로 북적였으며 모든 중국의 대학교에는 한국인 유학생이 항상 1위를 차지하였다. 중국인의 해외관광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늘어나면서 한국방문 관광객이 100만명을 돌파하기 시작하였고 재한 화교들은 중국과의 혈연적인 연고를 무기로 내세워 중국인 인바운드 여행과 쇼핑을 거의 독식하다시피 하면서 한중 관광산업의 새 시대를 열어갔다. 이 시기는 한중간의 관계가 가장 안정적인 시기였으며 외교관계, 문화교류, 경제교류 모든 면에서 엄청난 변화와 성장을 가져왔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동거를 겪으면서 서로 간의 단점들이 속속히 들어나면서 한중관계는 새로운 양상을 맞이하기 시작하였다. 제3화 2012~2022 모순의 시대 20년간의 동거동락을 겪으며 한중관계는 새로운 시기에 접어들기 시작하였다. 한국에서의 중국열풍도 만만치 않겠지만 중국에서의 한류는 최고조에 달하며 주변국가의 질투를 살 정도로 뜨거웠다. 외교관계 같은 정치적인 요소를 떠나서 대중문화적인 영향력을 봤을 때 한국을 10으로 보면, 미국이 7, 일본은 4, 기타국가 합치면 3이였다. 이때가 한중 양국은 과거 수천년 교류 역사상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된 시기였을 것이다. 지난 역사상 한중관계 가장 가까웠던 시기는 아마 명나라 때였다. 明史를 보면 그때의 한중관계를 이렇게 평가했다 “他國不敢望也”(다른 나라가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밀접했다). 21세기에 들어서 한중관계가 바로 이렇게 “타국불감망야”가 된 것이다. 그러나 중국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物極必反(어떤 사물이든간에 도가 지나치면 그 반대로 바뀐다) 한중관계는 지나친 열정시기를 겪으며 결국 그 반대로 돌변하게 된 것이다. 한중관계는 정치인들과 경제인들만의 파티가 아니라 대중 속에 그 뿌리가 있다. 한중관계의 밀접함은 대중문화에서 여실히 반영 되였다. 중국의 방송을 켜보면 10대 예능프르그램 중 8개 한국 프로그램 포맷을 번안한 것이였다. 한국에서 인기있는 무한도전, 나는 가수다, 복면가왕, 진짜 사나이, 아빠 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온다, 런닝맨, 히든싱어 모두 중국에서 그 모조품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단순 도용이 아니라 대부분 저작권료를 주고 사들인 것이였다) 저자는 이런 광경을 목격하며…드디어 올 것이 온다는 안좋은 예감이 들었다. 한국 방송에서 중국의 예능 포맷이 80% 차지하고 중국 연예인이 한국 드라마 주연들을 독식한다면 한국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결과는 뻔하다…엄청난 후폭풍이 휘몰아치게 되는 것이다...그러한 전략적인 타산이 없이 2020년 마스크 붐 때 너도나도 마스크 사업하듯이 중국의 방송사들은 무분별하게 한국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결국 경착륙이란 국면을 맞이하게 되였다.. 사드사태는 다들 아는 내용이니 여기서 거론안하겠지만. 사드를 빌미로 행해진 한한령은 사드라는 계기를 이용했을 뿐이지 절대로 사드만이 불러온 결과가 아니라고 본다. 외국의 문화가 본국의 문화 발전공간을 무참히 짓밟고 본국 문화의 생존토양을 파괴했을 때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전세계 어느 문화도 한류가 중국에 끼친 영향처럼 큰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아무리 미국이 문화 선진국이라고 해도 영국과 멕시코의 문화를 이처럼 송두리째로 바뀌지는 못했지만 이 밀월기의 한국은 중국에서 그런 것을 이뤄냈다. 이는 칭찬이 아니다…오늘날의 국면을 자초한 도화선이라고 본다. 2016년 6월까지만 해도 태양의 후예를 정점으로 한류는 중국을 점령하면서 문화 식민지를 확장해 나갔다. 그러나 이 과열된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사드’가 그 ‘총알받이’가 된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2016년 7월 사드배치를 발표하면서 중국 정부에 한류를 경착륙시킬 명분을 주었다. 과도한 한류의‘횡포’를 지켜보던 중국 정부는 사드 사태에 대한 1차 타격목표로 한류 문화를 지목하게 되었다. 한중경제교류에 있어 한국문화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중국의 젊은 세대에 미치는 영향은 간과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음으로 부득이 손을 보게 된 것이라고 중국국내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한한령의 실시가 6년 지나면서 중국은 자국문화가 빼앗긴 고지를 되찾으며 포스트 한류시대 중국 본국 문화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주식시장에 청소부 법칙이란 재미있는 룰이 있다. 즉 모 주식을 청소부마저 관심가지고 샀을 땐 그 주식을 과감히 매각해야 한다는 것이다…즉 과열은 과냉을 초래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세번째 10년은 한중관계가 파란만장한 애정 스토리를 전개하는 과정이다. 곧 결혼을 할 것처럼 뜨겁게 사랑하다가 상대방의 단점이 하나 둘씩 보이고 거기에다 양가 부모의 반대, 주변인들의 험담, 자기 정체성의 약화를 겪으며 과연 이런 사랑이 진정으로 행복한지를 느끼게 하는 고비를 겪게 된다. 그 전환점이 사드라는 돌발사태로 인해 발생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계기일뿐 예고된 결과라고 말하고 싶다. 한중관계는 지나칠 정도로 뜨거웠던 것이 문제라고 본다…중국이 소위 혈맹이나 전통우방국가라고 이야기하는 북한, 파키스탄, 라오스 등 국가와의 관계를 보면 한국처럼 가깝게 지낸 적이 없다. 물론 이는 한국의 문화적인 선진성에서 유래되었지만 이러한 과도 밀접한 관계는 서로 간의 기대를 지나치게 부풀리게 되고 판단을 흐트리게 되며 상대방과의 문화적인 차이, 제도적인 차이를 약화시키다가 특정 시기에 특정 계기로 그 모순이 폭발하게 된 것이다. 사드는 한국의 친중파를 피말리고 씨말리게 만들었으며 중국의 민심을 한순간에 떠나게 만들었다. 또한 한국국민도 덩달아 중국을 불신하기 시작하였으며 중국과의 사랑이 결혼대상자에서 그냥 친구로라도 지냈으면 좋겠다는 관계로 강등하게 되었다. 제4화 2022~2032 냉정의 시대 올해가 한중 두 국가의 멜로드라마가 방영 된지 30주년을 맞이하는 시기이다. 공자님은 30이립(三十而立)이라고 이야기하였는데 군자는 서른살이 되면 가정을 이루고 철이 들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30년전 경제적으로 막상막하하던 중국은 이젠 어느덧 한국 경제력의 10배가 된 G2국가가 되었고 중국과 수교하면 큰 이득이 생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이젠 국운을 좌우지할 만큼 중요한 국가관계로 부상하게 되였다. 중국의 속담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三十年河東,三十年河西(삼십년은 하동에서 삼십년은 하서에서). 이제 한중관계는 30년간의 사랑과 원망을 겪으며 성숙된 어른이 된 것이라 본다. 또한 한중관계라는 고정적인 패턴도 이젠 30년의 역사를 겪으며 새로운 30년을 맞이하게 된다. 미래의 한중관계는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 이 글에서 필자는 단순히 한중관계 과거 30년을 돌이켜 보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 20년간 한중관계에 대해서도 전망을 적고자 한다. 30년전 한중 수교당시 한국은 미국의 눈치를 볼 필요없이 자유롭게 중국과의 관계를 정립할 수 있었지만 어느덧 미국과 대등한 체격으로 성장한 중국이 미국의 최대 경쟁자가 되면서 한중관계에 있어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게 되었다. 현재 한중관계는 항상 미중관계, 한미관계라는 변수들을 고려해가면서 대응해나가는 관계로 변모되면서 한국 정부에게 새로운 숙제를 마련하였다. 한중관계의 30년은 사실 두 연인이 맞선을 보면서부터 사랑에 빠지고 동거하고 서로 의심하고 관계가 나빠지는 식상한 멜로드라마의 스토리를 연출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파혼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다시 관계가 좋아질 수 있을까라는 시청자들의 궁금증이 많겠지만 필자는 이제는 과거로 돌아가기 어렵다고 본다…사드문제가 해결되고 양국 국민의 감정이 회복되었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0대부터 시작하여 20대를 겪으며 철없이 사랑에 푹 빠져 정신 못차리던 시기를 넘어서 이젠 성숙해졌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한중양국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서로 다른 가문에서 태어난 연인으로 사랑을 이루기엔 너무나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어찌보면 양국의 관계라는 것은 무거운 결혼보다 서로 애뜻한 정을 주고받는 애인관계가 더 아름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핀란드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어떻게 스웨덴을 평가하냐고 물으니 핀란드 남자는 스웨덴 남자들은 대부분 게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필자가 핀란드 사람은.스웨덴 사람을 좋아하지 않은 것이냐 따지니 하는 말이 “사이좋은 이웃국가가 없잖아요”라고 대답했다. 정말 그런 것인가? 중국의 주변국가 중 중국을 좋아하는 나라는 몇이 되는가? 또한 한국의 이웃국가 중 한국을 좋아하는 나라는 얼마인가? 아마 답은 머리 속에 떠올랐을 것이다. 강대국 속에서 생존과 발존을 모색하는 상황은 21세기 20년대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중국왕조의 전환기에 한반도 왕국이 항상 겪던 일이였다. 한나라와 흉노를 사이 둔 고구려, 고구려와 당나라를 사이 둔 신라, 거란과 송나라를 사이 둔 고려, 원나라와 명나라를 사이 둔 조선, 청나라와 명나라를 사이둔, 조선 고비마다 지혜롭게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전략을 모색하며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사직을 지킨 한반도의 왕국은 이 시대의 미중 양국의 경쟁구도 속에서 슬기롭게 난관을 이겨낼 것이라고 본다. 물론 그 과정이 험난하고 고달프고 마음이 힘들어도 말이다. 그것이 이 반도의 동포들이 회피하기 힘든 숙명일 수 있겠지만 그런 고난 속에서 더 강인해지고 똑똑해지는 법이다…그러한 차원에서 한반도는 중국왕조보다 더 강한 생명력을 가졌었다. 이 10년은 중국이 미국을 초월하여 세계 최대 경제강국으로 부상하는 시기일 것이다. 물론 PPP방식으로는 10년전에 이미 미국을 초과하였지만 허영심이 강한 백인은 실질보다 명목을 더 중요시한다. 그래서 올림픽에서도 자신에게 유리할때는 금메달로 순위 매기지 않고 메달수로 순위를 매긴다. 미쏘 갈등은 백인 내부 이데올로기적인 모순에 불과하다면 미중 갈등은 문명의 시프트를 상징함으로 엄청 신경쓰고 있는 것이다..문제는 이러한 동양 문명의 시프트가 10년 안에 이뤄질 것 같은 두려움에 빠지면서 오늘날의 국제관계를 혼돈에 빠뜨리게 만든 것이다. 서양문명은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겠지만 14억 인구인 중국의 발전 모멘텀을 막기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 있어 설마 중국이 경제적으로 넘버원이 되었다고 하여 엄청난 세계정치경제지형의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한국은 수천년간 겪어왔던 것처럼 세계의 정상으로 복귀한 중국을 맞이하게 될 것이지만 이는 하나의 축복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전세계에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4대 강국이 에워싸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거인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총각이라고 생각하기 보다 여러 미남들에 의해 에워싸인 미인이라 정의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는가? 한국은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 모두에 있어 항상 존중하고 아껴주고 자기 편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국가이다…드라마의 한장면이 떠오른다…어느 남자가 미인을 넋이 빠져 바라보다가 그 여성이 불쑥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시무룩해진 장면… 역시 미인은 싱글일 때가 더 매력적이다.. 정치적인 이야기를 조금 가미하자면 이 시기에 한국은 친미, 친중, 친일을 논하기 보다 모든 사안을 개별적으로 쪼개 국익에 부합되고 대다수 국민의 이익에 부합되고 실보다 득이 더 많은 것만 골라서 사안별로 입장을 취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이유는 “미인은 싱글일 때가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전세계의.미인 선발대회엔 미쓰만 참가할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시기는 또한 포스트 코로나의 시기이다. 포스트 코로나의 최대의 수혜주는 무엇인가? 두말할 것 없이 관광일 것이라 본다. 중국의 코로나 봉쇄가 해소되고 해외 관광이 자유로워지면 해외관광시장은 과거의 5배로 커질 것으로 예상하며 연간 5억명의 중국인이 해외 관광을 나설 것으로 본다. 코로나 기간 동안 힘든 민생을 무엇으로 달랠 것인가? 내부적인 지원책과 개혁만으로는 역부족일 것이다…외부적인 힘을 빌어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것이 답이 아닌가 생각한다. 꿈 같은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2023년 중국관광객 5천만명이 한국 방문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때 되면 한국의 대부분 서비스산업, 상당수 제조업이 혜택을 볼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식어간 모든 상권이 관광산업의 부흥으로 인해 엄청난 호황을 누릴 것이 틀림없다. 중국이 밉든 곱든, 인접국가로서 최대의 고객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 중요한 것은 중국이란 시장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부의 지침대로 움직이는 대형 시장임으로 한중관계의 꽃길 같은 미래만 꿈꿀 것이 아니라 그 꿈이 현실이 되도록 모든 이가 그 밑걸음을 깔아야 한다. 그 사이 맺힌 것도 많고 얽힌 것도 많고 섭섭한 것도 많겠지만…연인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포스트 코로나를 맞이하며 한중 양국이란 연인이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시기이다. 농담하나 하겠다. 오래 전에 헤어진 연인이 전화 올 땐? 정답은 “다단계 영업”이라고 한다….이것이 제 4화의 줄거리이다. 제5화 2032~2042 격변의 시대 2032년의 세상은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 10년후의 세상을 예측하긴 쉽지 않겠지만 현실을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중국의 부상은 모멘텀에서 현실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으며 미국은 여러가지 내부/외부적인 요인으로 말미암아 순탄치 않은 10년을 겪으면서 과거와 같은 영광을 누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북한에 대한 예측은 항상 어긋났음으로 변수가 아닌 그냥 무시해도 좋은 상수로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또한 한국은 일인당 소득이 4만 5천불이상의 선진국으로 도약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한중관계는 10년의 냉정기를 겪으며 새로운 시기에 들어설 것이라 보는데 학계나 정계에서는 여기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사람이 없는 것 같아 좀 안타깝다. 물론 예측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담대한 가정을 전제로 새로운 세상을 분석하며 한중관계를 다시 짚어보고자 한다. 지금 중국은 미국의 압박 속에서 어렵게 생존의 틈을 찾아가고 있는데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바로 반도체이다. 그러나 미국의 봉쇄가 과연 주효한지를 심각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초기에는 중국에 대한 반도체 봉쇄를 통해 중국의 성장을 늦출 수는 있겠지만 중국이란 거대한 공룡의 돌진을 막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10년 후 중국이 만약 반도체의 독립을 이뤘을 때 그때 세계의 패권은 진정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문제는 기술의 초격차를 지향하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미국의 영향 아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오기를 불러일으켜 10년의 시간으로 그 기술격차를 극복했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냐는 고민을 해보았는가? 실제로 지금 중국인 이미 자국기술력으로 7나노 반도체 파운드리를 이뤄냈다. 아직 삼성과 TSMC와 상당한 격차가 있지만 중국 상하이 중심국제반도체 회사의 리더가 바로 TSMC와 삼성의 기술혁신을 이뤄낸 CTO 량멍숭이란 사실이다. 반도체는 하나의 산업기술에 불과하지만 미래 10년 심지어 50년간의 국제관계를 재정립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바로 이런 요소 때문에 미중간의 디커플링이 쉽지가 않고 또한 국제관계의 이합집산이 이뤄지고 있다. 과거 20년간 한국은 항상 중국의 최대 수입국이였으며 중국은 한국의 최대 흑자국이였다. 중국이 미국에서 수천억달러를 벌어오면 거기에 한국이 수백억달러를 인출했던 구도였다. 그러나 올해에 들어서서 한중 교역은 처음 적자로 돌아섰다. 이는 액시던트가 아니라 이제는 자연스러운 모멘텀이라고 본다. 그동안 한국이 중국으로 수출한 제품 중 대다수는 중간재였다. 특히 미국으로 수출하는 비중이 제일 컸다. 그러나 미중갈등으로 인해 미국의 하이테크 중국제품 수입이 줄어들면서 중국의 한국 중간재 수입도 줄게 되었고 중국 자체 생산 원자재의 발전은 한국산의 수요를 감소하게 만들었다. 이런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한국의 산업은 과거의 패턴 그대로 작동하고 있지만 중국은 이미 크게 변하고 있다. 과거 20%이상 차지하던 삼성 핸드폰의 시장점유율은 0.5%로 떨어졌고 인기가 절정에 달하던 현대기아차도 이젠 중국차와 가격을 겨뤄야 하는 현실로 되고 있다. 이마저도 참담한 현실인데 10년 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현시점에서도 중국은 세계 최대의 핸드폰, 배터리, 전기자동차 생산국이다. 이는 이미 양적인 우위를 벗어나 질적인 우위라 내달리고 있다. 그럼 10년 후면…믿고 싶지 않겠지만 중국기업은 중국 방방곳곳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의 악몽이 될 수도 있다. 과거 신발이나 가전처럼 말이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도 아직 초격차를 운운하고 있다. 초격차는 이 10년간은 유효하지만 다음 10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초격차가 무격차가 되면 다음은 뭐로 먹고살 것인가? 전세계 역사상 어느 국가도 이처럼 초고속으로 성장하면서 글로벌 시장을 잠식한 이웃국가를 마주한 사례가 없었다… 중국의 위협은 현실뿐만 아니라 미래까지도 커버될 날이 멀지 않다. 삼성보다 싸고 좋은 메모리, 스크린, 핸드폰, 현대보다 싸고 좋은 자동차, 로보트, 한화, SK, 롯데, LG보다 싸고 좋은 화학원료의 메이드 인 차이나가 세계를 석권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는 중국의 위대함을 칭송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무감각하고 근거 없는 자신감이 팽배한 이 시대의 풍조를 바로잡고 싶을 뿐이다. 미래 10년후의 한중관계는 지금 겪어보지 못했던 심지어 과거 수천년간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라 본다. 역사 속에서 한반도는 현재의 중국처럼 나락에 떨어졌다가 다시 정상으로 복귀한 시대를 겪어보지 못했다. 미래의 10년을 대비하려면 대한미국은 어마어마한 중국전문가를 양성해야 하고 중국의 산업구조 산업발전을 제대로 분석하고 대응해야 한다. 중국과 등진 경쟁자가 아닌 중국이란 거대시장과 거대경장 속에서 자신의 포지셔닝을 제대로 하고 변화를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특공대가 되야 한다. 중국시장과 생산과의 융합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분석해야 한다. 이는 특정 기업만이 아니라 전체 국가와 국민적인 차원에서 다뤄야하는 숙제이다. 이 숙제를 잘 푸냐 못 푸냐는 미래 10년뿐만 아니라 미래 100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반중정서가 팽배해 있는 시기에 중국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 날 따라 줄어들고 중국 전문가들도 갈수록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중국은 어둠속의 도둑처럼 조용히 질주하고 있지만…대한민국은 태평성세의 연예가무에 빠져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이 든다. 사드 때가 위기이가? 진정한 위기는 다음 10년이라고 본다. 중국이란 거대 공룡을 옆에 두고 과연 몸집이 작은 파충류가 먹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란 현실적인 걱정이 든다…그러나 이 땅에서 과연 누가 이런 심각한 고민을 해보았는가? “중국은 파멸할 것이다. 분열할 것이다”라는 허황된 꿈으로 자기 위로하면서 살아갈 것인가? 노키아와 모토롤라의 몰락을 보면 경쟁 속에서 잘못된 전략이 얼마나 큰 피해를 초래할 것인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21세기 30년대의 한중관계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면모를 보일 것이다. 자신감이 넘치고 교만함까지 보이며 실질적인 파워까지 겸비하고 심지어 비민주적이란 프레임마저 사라진 미래의 중국을 다룰 생각을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고 그냥 어영부영 10년을 넘기다가 엄청나게 후회할 것이라 경고하고 싶다. 중국을 경계하고 두려워하기보다 옛정을 그리며 앞으로 어떻게 화합하며 살아가고 중국 부상의 피해자가 아닌 수혜자로 될 수 있는 가가 21세기의 나머지 시간의 테마가 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친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중(知中)이고 중중(重中)이다. 그런 의미에서 친미는 현상유지, 친일은 과거유지, 친중은 미래유지이다...라는 정의를 내릴수도 있다. 이로서 한중양국이 50년간 이뤄진 멜로드라마가 NEXT 시즌을 기대하며 종영이 된다. 한중수교 60주년일때는 환갑의 나이의 두 노인의 사랑 스토리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영화 "은교"처럼 될 것인가? "죽여주는 여자"처럼 될 것인가? 그것은 다음세대 출연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필자에 대해 당신이 뭔디 이렇게 거창하고 허황된 이야기를 꾸미는가 질타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나중에 지켜보면 이 드라마가 제가 예상한 각본대로 연출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럼 여기까지…글을 마치고 2032년에 다시 2탄을 올리겠다. 그때까지 이 글의 독자와 한중관계 모두 건강하시기 기원한다. 2022년 8월 24일 서울에서 (By Star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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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4
  • 아베 신조의 '정치적 유산'
    ● 양백강, 로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2022년 7월 8일 거리 연설에서 67세의 나이로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아베 신조 피살 사건은 일본 정계는 물론 국제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아베는 전 일본 총리로서 자신의 기록적인 초장기집권과 일본 내 보수세력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전후 일본 정치사, 국가전략 진화의 한 축을 차지하는 등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파장을 남겼다. 아베 자신은 역사가 됐지만 일본의 미래 국가 발전 방향에 대한 조명은 아베의 '정치적 유산'이라는 시각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정치인 가문의 출신인 아베는 1993년 7월 중의원 의원으로 처음 당선돼 당시 최연소 국회의원이 됐고, 2006년 9월 총리가 돼 첫 전후 출생 총리가 됐지만 1년도 안 돼 물러났다.이후 5년간의 칩거 끝에 2012년 9월 자민당 총재에 당선되고 12월 총리에 취임하면서 7년 8개월여의 '아베 시대'가 열렸고, 아베는 헌정 사상 최장수 총리가 됐다. 2020년 8월 퇴임 후 짧은 휴양을 거쳐 정계에 복귀한 아베는 정계 보수세력을 결집했다. 2021년 11월 아베가 자민당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 회장에 취임하면서 아베계로 기치를 바꾸는 등 정치권에서 강세를 보였다. 장기간의 임기를 제외하면 아베의 정치적 위상은 당시의 국제환경과 국내 정치상황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2007년 아베 총리 사임부터 2012년 재집권까지 5년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미·서방 국제체제에 크게 의존하던 일본은 충격을 받았다. 자민당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아소 타로(麻生太郞) 정권, 후속 민주당 3선 내각이 모두 난국에 빠졌다. 상대적으로 미국과 유럽의 패권이 쇠퇴하고,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이 집단적으로 부상하면서 2010년 중국 경제는 처음으로 일본을 추월하며 격차를 벌렸다. 국제 권력구조, 글로벌 거버넌스 시스템의 심각한 변화, 각 분야의 질서, 규칙, 발언권 다툼이 날로 치열해지고 일본의 대외위기의식, 국제게임의식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어 '강인정치'에 대한 요구가 더욱 절실해졌다. 당시 요미우리신문 사설은 잦은 총리 교체로 일본 지도자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외국 지도자의 모습은 "일본에 수치"라고 했다. 이런 '비정'적이고 대외적인 주장을 더욱 강하게 하는 전략적 마인드와 여론의 분위기는 아베가 재집권해 장기집권을 이어갈 수 있는 중요한 전제조건이 됐다. 총리 재임 후 아베는 계파적 자원과 정치적 수완을 앞세워 당내 최고 권력을 장악했고, 자민당의 6연속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우경화 보수적 정치관과 국제정세 및 일본 국민의 마음가짐 변화를 긴밀히 결합시켜 전략적 행동을 통해 일본을 '강대하게' 만들겠다는 자신의 정책 철학을 제시했다. 실제로 아베는 초대 총리 시절부터 방위청 승격, 교육기본법·국민투표법 개정, 해양기본법 제정 등을 추진해왔다. 2012년 이후 긴 임기 동안 아베는 정치·안보 분야에서 일본의 '자립'과 '자주'를 체계적으로 강화해 더 큰 '전략적 공간'을 넓히려 했다. 아베가 역사교과서 추가 수정, 무라야마 담화 부인 등 기존 역사 발언, 전후 외교 총결산 추진 등을 통해 일본 정치의 우경화를 가속화하고 아시아 이웃 국가들에서 우려를 낳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아베 시대'는 냉전 이후 일본의 국가전략 전환 발전의 중요한 단계로, 일본이 금융위기 이후 세계구도, 국제질서 변화에 적응하는 데 중요한 시기였다. 이 시기 '아베 노선'은 안보 분야의 '돌파'를 접점으로 국가전략의 전환을 추진하고, 다각화된 외교수단을 활용해 '종합전략의 활성화'를 높이겠다는 것이 기본 발상이었다. 국제사회, 특히 아시아 국가들이 이런 돌파구에 대한 우려와 의구심은 자명하다. 개헌 추진, 자위대 입헌 지원 외에 아베 주도로 2013년 첫 국가안전보장전략, 일본판 국가안보회의(NSC) 설립, 방위계획대강 조기 개정, 2014년 내각 정령으로 집단적 자위권 부분해제, 새로운 방위장비 이전 3원칙 마련, 2015년 평화안보법안과 국제평화지원법안, 이른바 신안보법 제정, 적에 대한 공격능력 보유 및 대형화·공격무기장비 플랫폼 도입 검토, 대외방위협력, 외교정책 안전화 등을 추진했다. 안보 분야에서도 아베가 추진한 '개혁'은 전략체제, 법치의 틀, 집행체제, 역량건설의 모든 측면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어 전후 일본 보수세력의 전후체제 돌파와 '안전 자주' 실현이라는 기본적 발상을 답습할 뿐 아니라 일본 안보전략의 외향성과 공격성을 더욱 가속화했다. 이는 평화헌법의 굴레를 뚫고 일본의 '국방정상화'와 '군사대국화'를 가속화하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일본의 안보정책과 방위정책, 방위력 건설 목표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어 아태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위협이 되고 있다. 외교 분야에서 아베는 '전략적 외교'를 적극 추진했으며, 재임 기간 동안 총 비행 거리는 158만km로 80개 국가와 지역을 방문했으며 이는 지구를 39바퀴 도는 것과 같다. 아베 총리는 또 '지구 외교' '적극적인 평화주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등의 개념을 내세워 '도덕적' 색채를 부각시키려 했다. 하지만 사실 아베 외교는 고도의 현실주의, 실력주의, 지정학적 경쟁 사고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강대국의 게임이 그의 핵심 관심사다. 아베의 입장은 미·중 간 총체적 균형을 유지하며 '좌우를 만나다'는 전략 아래 미·일 동맹의 '체제 내 발전'을 견지하고, 대외정책의 융합을 추진하고 경제·안보·문화적 수단을 통합 운용해 '중등 세력' 특히 유럽·인도·태국과의 전방위적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일본 국내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아베는 그동안 위축되었던 일본 외교를 크게 뒤집고 국제 담론력을 강화했지만 많은 논란과 문제점도 남겼다. 아베는 역대 총리 중 최장수 집권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정치인의 업적은 시차를 두고 평가되지 않는다. 내부적으로는 우익세력의 요구에 부응하고 외부적으로는 미국을 숭배하고 추종했지만, 저출산·고령화, 디지털 시대의 발전, 주요 외교 문제는 제때에 해결되지 않았다. 실제로 아베 총리가 2020년 8월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그의 '정치적 유산'에 대한 논쟁은 계속됐다. 아베의 '정치 유산'은 개인적 색채가 뚜렷하지만 전후 일본 보수 정치세력의 국제질서, 일본 국가 발전에 대한 해석을 대변한다.이런 해석은 1980년대 중후반부터 '정상국가론' '정치군사대국 몽'이라는 형태로 일본의 국가전략 방향에 영향을 미쳤다 아베는 그동안 자신을 '열린 보수주의자'라고 칭하며 자신의 보수적 정치이념을 확산시키고 개인 정치권을 공고히 하는 데 열심했다. 장기 집권을 거치면서 아베 주변에는 보수 정치인이 대거 포진했고, 그 중 적지 않은 수가 자민당과 정부 고위직을 차지하며 '아베 독트린'의 추종자이자 집행자로 자리매김했다. 현 일본 정계의 보수세력의 '정신적 지도자'인 아베의 죽음은 추종자들의 추종을 중단시키기는커녕 이들의 더 집요한 행동을 자극해 아베의 '미완의 의지'를 완성하겠다는 자세로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 아베의 후계자인 스가 요시히데와 기시다 후미오는 인맥·공직 경력에서 아베와 그의 측근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두 사람 모두 '아베 색채'에서 벗어나 자신의 특색을 살리는 경향이 있지만, 스가 시대 정책이나 지금까지의 기시다 정권의 정책을 보면 전체적으로 '아베 노선'을 답습하고 있다. 기시다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자주방위정책과 '신시대 현실주의 외교'도 아베의 정책과 유사하다. 기시다가 자신의 특성을 과시하기 위해 제안한 '일본식 신자본주의' 경제·사회 정책도 정책 여백이 부족해 '아베노믹스'로 회귀할 위험이 있다. 동시에 아베의 '정치적 유산'이 일본의 정치적 현실을 완전히 뒤흔들 수는 없다는 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외교안보정책 분야에서 일본의 '전략적 주관성'과 '역동성'을 모색하겠다는 아베의 제안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길잡이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대만 문제에 대해 아베 총리의 '대만 공동방위'에 대한 미일군사 개입 등 허위 주장은 일본의 현실적인 정책이 되기는 더욱 어렵다. 한반도와 러시아에 대한 외교 측면에서도 현 정부는 아베 총리의 기존 사고방식을 현 상황에 맞게 바꾸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의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을 배경으로 일본이 국제위기를 이용하여 국내의 전략적 변혁을 촉진하고 해외의 전략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관행은 아베 시대의 그림자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질서의 변화와 국가의 전략적 변혁에 직면하여 일본의 구체적인 대응책은 변함이 없을 것이며 아베의 '정치적 유산' 중 비합리적이고 비건설적이며 지속 불가능한 내용은 결국 폐기되고 잊혀질 것이다. 작자 양백강(楊伯江)과 로오(盧昊)는 각각 중국사회과학원 일본연구소 소장, 부연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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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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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이 되려는 윤석열에게는 ‘왕의 수업’이 우선이다
    ●김정룡(多가치 포럼 위원장) 전 정권 치하에서 ‘변방’을 맴돌던 자신을 벼락출세 시켜준 임명권자에게 반항하는 배짱으로 재직 시부터 야권 차기 대선후보1위로 부상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하 윤석열이라 함)은 3월 4일 사퇴하고 ‘대통령공부’에 몰입해왔다.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전해진 바에 의하면 야당의원 누구누구를 만나고 김형석 학계 원로를 비롯해 여러 교수들을 만나고 기타 분야의 영향력이 있는 분들을 만나 세상이 돌아가는 흐름을 파악하고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연수’에 노력해온 것 같다. 이런 과정을 밟는 것은 정치초보인 윤석열에게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코스’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이런 노력에만 의해서는 왕이 되기 어렵고 가령 왕이 되었다 해도 통치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은 야밤삼경에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왕이 되려면 우선 왕의 통치술부터 공부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삼김 정치’ 이후 대통령들은 왕의 통치술이 부족해 모두 실패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왕의 통치술이 부족한 것은 ‘왕의 수업’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정당 내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출마를 선언한 정치인이 많다. 여당인 민주당에는 9명이고 야당인 국민의힘에는 아직 출마선언에 불이 붙지 않아 잠잠하지만 8월 ‘버스’가 본격 출발하면 족히 10여 명의 정치인이 나서지 않을까 전망된다. 문제는 왕이 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정치인은 많은데 정작 왕의 통치술에 관심 있는 정치인은 없다. 출마를 선언한 정치인과 출마를 눈앞에 둔 정치인 중 다수는 이미 정치판에서 정치 물을 마셔본 경험이 있어 왕이 되면 왕의 통치술이 저절로 쏟아져 나올 것처럼 ‘왕의 수업’에 신경을 쓰지 않는데 이런 정치인들이 왕이 되면 100% 실패한다. 전통시대에 왕자는 왕자의 수업, 세자는 ‘세자 수업’ 태자는 ‘태자 수업’이 있었다. 이런 수업들이 괜히 있은 게 아니다. 이런 수업을 거쳐야 각자 처한 자리에서 무난하게 살면서 나라에 기여할 수 있고 특히 왕이 된 자는 왕의 대업을 수행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대한민국은 유교의 왕의 수업이라는 훌륭한 전통이 있었으나 민주화시대에 들어, 특히 ‘삼김 정치’ 이후 이런 전통은 사라지고 개인 인기에만 매달려 대통령이 되다 보니 대통령이 된 후 통치술이 부족해 천하가 아주 혼란스럽다. ‘왕의 수업’을 거치지 않은 대통령들의 어설픈 통치술에 의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정치판의 물을 전혀 마시지 못했던 윤석열은 다른 후보들에 비해 마땅히 더욱 ‘왕의 수업’에 신경을 써야 하건만 그도 역시 다른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이 부분을 아예 의식하지 않은듯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윤석열은 앞서 논의했던 여러 분야의 공부를 하는 것도 좋지만 한편으로는 ‘왕의 수업’을 병행했어야 한다. 특히 대선캠프를 차리는데 있어서 각 분야의 전문가 그룹을 섭외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왕의 수업’ 그룹도 반드시 차려야 한다. 윤석열은 정치 경험이 전무한 상황에서 ‘왕의 수업’조차 없으니 그 폐단이 출마를 선언하기 전부터 벌써 터져 나오고 있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윤석열 캠프에 1호 인사로 영입된 참모이자 대변인인 이동훈 전 조선일보 기자가 10일 만에 사퇴하는 불상사가 터졌다. 이 사건을 두고 온 대한민국이 시끌벅적하게 떠들썩하다. 100%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를 내린다. 이동훈 대변인의 사퇴이유가 건강상의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것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온천지에 단 한 사람도 없다. 윤석열의 식 전언정치가 빚은 결과라는 지적이 다수다. 이준석 신임 당대표는 윤석열을 ‘침대축구’에 비유했다. 점수가 앞섰다고 공격을 전혀 하지 않고 수비만 하려고 조금만 다쳐도 누워 딩구르는 것이 침대축구다. 매우 생동하고 적절한 비유이다. 이동훈 대변인의 사퇴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가장 설득력이 있는 이유로서 윤석열의 소통부족을 꼽고 있다. 지난 22일 한국일보에 <흔들리는 윤석열, 그에게 없는 세 가지에 답이 있다>는 기사가 게재되었는데 세 가지 답이란 무소통, 무세력, 무콘텐츠이다. 무세력과 무콘텐츠에 관해서 추후 다른 편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할 생각이며 여기서는 무소통을 주제로 논의해 보려고 한다. 정치를 한다는 것은 사람을 다스리는 일이다. 왕이 그 정점에 있는데 왕이 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인사권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요즘 민주화시대에도 대통령의 인사권은 어마어마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000개의 자리에 사람을 앉힐 수 있는 인사권을 갖고 있다고 하니 실로 대단한 권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2000개나 되는 자리를 대통령이 전부 일일이 관여할 수는 없고 수하에 10여 명의 인재만 두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다. 보수적으로 말하자면 수하에 3명만 진짜 인재가 있어도 성공한 왕이 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말하자면 왕의 성공여부는 곁에 어떤 사람을 두는가는 데 달려 있다. 당나라 때 출간된 조유의『반경』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상등의 군주 곁에는 스승이 있고, 중등의 군주 곁에는 친구가 있고, 하등의 군주 곁에는 관리가 있고, 망국의 군주 곁에는 시종이 있다.” 문재인 곁에 포진된 참모들은 ‘동지들’이니 문재인 대통령은 상등의 군주는 아니라는 얘기가 되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신은 최순실 아바타’라는 말이 나오자 이렇게 말했다. “최순실은 나의 시종 같은 사람이었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시종 같은 사람이 곁에서 보좌했으니 ‘망국의 군주’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박근혜는 이 한 마디 말만 보아도 왕의 수업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낸 셈이다. 왕은 어떤 사람을 곁에 두어야 성공할 수 있는가? “막사 안에서 전략을 세워 천 리 밖에서 승리를 이끄는 일이라면 나는 장량(張良)만 못하다.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보살피며 군량을 공급하고 보급로를 끊어지지 않게 하는 일이라면 나는 소하(蕭何)만 못하다. 백만 대군을 이끌고 전장에 나아가 싸우고 공격해 반드시 승리를 거두는 일이라면 나는 한신(韓信)만 못하다. 이 세 사람은 모두 걸출한 인물들이다. 그들을 잘 등용한 것이 바로 내가 천하를 소유할 수 있었던 이유다.” 유방이 천하의 주인이 되고 나서 한 말이다. 유방의 말대로 하면 요소요소에 모두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앉혀야 천하를 거머쥘 수가 있다. 유방처럼 이렇게 성공하려면 군주 되려는 자와 군주가 된 자는 두 가지 마음가짐을 갖춰야 한다. 첫째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부하가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인정해 주면서 장끼를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순신이 자신보다 우수하다고 여긴 선조(宣祖)는 질투심이 강해 이순신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선조야말로 왕의 자질이 부족한 군주였다. 둘째 믿음이 있어야 한다. 중국속담에 “의심스런 자는 기용하지 않고 사람을 일단 기용했으면 끝까지 믿으라.”라는 말이 있다. 이 두 가지 마음가짐은 말이 쉽지 실천에 옮기는 일은 정말 어렵다. 역대로 성공한 군주는 이 두 가지 마음가짐을 갖춘 자들이고 반대로 이 두 가지 마음가짐을 갖지 못한 자들은 모두 천하의 주인이 되지 못했거나 가령 운이 좋아 되었다 해도 실패한 군주로 역사에 기록되고 만다. 일각에서는 이동훈 대변인 사퇴이유에 대해 이런 추측을 내놓았다. 윤석열이 이동훈을 ‘기자 좀 했다고 나를 끌고 가려하나?’라는 생각으로 내 친 것 아니냐. 유방처럼 성공하려면 이 두 가지 마음가짐 외에 부하들과 소통하는 행동이 필요하다. 소통 없는 성공은 없다. 그럼 어떻게 소통해야 할 것인가? 이 면에 있어서 가장 모범적인 인물로서 유비를 들 수 있다. 유비는 소통의 달인이었다. 필자가 아는 역사인물 중 유비는 가장 뛰어난 소통가였다. 구체적인 증거가 있다. 유비는 관우와 장비를 만나 의형제를 맺은 이후로 매일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이 얘기는 진수의 <삼국지>에 기록된 것이니 믿을만하다. 어떤 학자들은 농담 삼아 이렇게 말한다. 유비가 매일 밤 부하들과 잠을 잤으면 그의 부인은 독수공방했단 말인가? 그 내막은 알 수 없으나 유비가 부하들과 잠을 자주 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관우와 장비뿐만 아니라 후에 삼고초려로 모셔온 제갈량과도 잠을 함께 잤다고 하고, 모사인 법정과 방통과도 한 침대에서 잤다고 한다. 부하들과 함께 한 침대에서 잠을 잤다는 것은 유비가 부하들과 얼마나 많은 소통이 있었는가는 좋은 증거이다. 유비의 이런 소통노력이 결국 일단 그의 부하가 된 자는 주군을 배반하지 않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무일푼으로 출발한 유비는 말이 왕족이지 정확한 족보는 없이 허울 좋은 왕족이지만 ‘한왕실부흥(漢王室復興)이라는 정치신념과 부하들과 소통하여 형제처럼 지내는 믿음으로 나중에 천하의 한 모퉁이의 주인 자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조조도 소통의 능수였다. 유비와 순욱을 비롯해 괜찮은 인물을 만나면 좌석격식 없이 함께 식사하고, 같은 수레를 타고, 때로는 잠도 같이 자면서 담론을 이어갔다고 한다. 모든 내를 흡수하는 큰 강처럼 천하의 영웅이 모두 조조에게 몰려든 이유 역시 조조가 소통의 능수였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조조는 넓은 도량으로 찾아오는 인재들과 소통하는 노력 덕분에 당시 천하의 지분을 가장 많이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유방과 대조적인 인물이 바로 항우다. 항우는 유방과는 아예 비교가 안 될 만큼 훌륭했고 천하쟁패에 있어 유리한 고지에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유방이 승리했고 항우가 실패하는 대역전극이 벌어졌다. 무엇 때문에 이런 결과가 초래되었을까? 항우는 명문가문 출신으로 농민출신인 유방에 비해 우선 가문이 좋았다. 항우는 타고난 싸움꾼이었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하다는 뜻) 영웅으로 묘사될 만큼 힘이 천하의 으뜸이었다. 전투도 잘했다. 70여 차례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천하는 항우의 것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런데 그토록 유리하던 항우가 보잘 것 없이 여겼던 유방에게 천하를 빼앗기고 말았다. 항우의 실패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본문의 주제와 연관시켜 말하자면 항우는 자신이 너무 뛰어나다고 여겨 부하들을 믿지 않았고 부하들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했다. 논공행상은 병가의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항우는 이 중요한 일마저 부하들의 말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처사했다. 부하들과 소통이 없었다는 뜻이다. 아예 소통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한신, 진평, 경포는 모두 본래 항우의 부하였다. 이들은 항우의 사람 됨됨이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고 게다가 천하의 주인이 될 그릇이 못된다고 판단되어 유방에게 귀의했다. 원소가 조조에 비해 여러모로 유리한 고지에 있었으나 실패한 원인 중에 그가 부하들과의 소통이 부족한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원소가 소통이 보족했기 때문에 순욱, 허유를 비롯한 훌륭한 부하들이 원소를 버리고 조조에게 귀의했던 것이다. 윤석열은 유비처럼 한 침대에서 만날 잠을 잘 정도는 아니더라도 함께 천하를 도모할 의기투합으로 캠프에 합류된 사람들과 긴밀한 소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입당 문제를 두고 한 시간 격차로 대변인의 말이 다르고 본인의 말이 다른 것은 소통이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다는 증거다. 대변인이 10일 만에 사퇴한 이유가 바로 소통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앞으로 헤쳐나아가야 할 일이 태산 같다. 현재 상황에서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통치술을 익히는 왕의 수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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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03
  • 자국민 철수 권유한 중국, 아프간 사태 얼마나 급박했나
    [동포투데이] 3일 전인 6월 20일 중국 외교부는 아프간 내 중국 시민들에게 "조속히 철수할 수 있도록 대비태세를 강화하라"고 주의를 줬다. 3일 뒤인 6월 25일에는 아프간 대통령 아슈라프 가니가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 미군 철수, 미·아간 관계 등을 논의하도록 초청된다. 지난 5월 미군 철수가 시작된 이후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에서 공세를 펼치면서 아프간 상황이 "1990년대 탈레반의 전면적인 권력 탈환 전"으로 치닫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한방에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처럼 아프간 안보군이 여전히 군사력과 실효적 통제에서 우위에 있다는 평가도 있다. 과연 아프간 상황이 어떤지 궁금하다. 탈레반은 왜 끝까지 쫓아가서 맹타하는가? 바이든은 이때 아프간 대통령을 왜 만나자 했을까.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탈레반은 5월 1일 이후 아프간 주도(州都)와 지역 중심도시, 군사기지를 맹공격했다. 전국 약 60개 지역이 피습돼 국토의 약 64%가 전쟁터로 전락했다고 한다. 또 5월 한 달에만 아프간에서 4375명이 사망해 4월의 1645명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방의 훈련을 받은 아프간 안보군이 전쟁의 불길에 허덕이고 있다. 탄약과 물자 보급 중단으로 26개 안보군이 있는 기지가 탈레반에 항복했고, 지난주 아프간 중북부에서 정예 특수부대가 격멸되는 등 안보군의 강점인 공중력이 사라지고 있다. 그 사이 아프간 대통령은 국방부 고위 관리 2명을 경질했다.。 카타르 반도TV는 아프간 상황이 1990년대 탈레반이 전면 탈환하기 전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전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주말 재아프간 자국민에 조속한 철수를 알리는 안전 경고를 내보냈다. 아프간 정세는 도대체 얼마나 위급할까? 아프간 보안군이 탈레반의 이 밀집 공격을 견뎌낼 수 있을까? 아프간전은 '파탄'으로 치닫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프간 안보군은 30만 명이 넘고 미군이 떠나면서 일부 첨단 무기를 남겼으며 탈레반은 약 8만 명의 무장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 아프간 34개 주 가운데 탈레반의 통제 아래 있는 성은 단 한 곳도 없다. 한방에 무너질리는 없는 것이다. 왕스다(王世達) 중국 현대국제관계연구원 난야(南亞)연구소 부소장은 "아프간 안보 상황이 이전보다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나는 미군 철수가 빨라져 당초 일정보다 일찍 철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탈레반과 다른 반군 조직을 제압하는 가장 중요한 세력인 미군의 이탈이 가속화되면 탈레반과 다른 세력에게 상당한 활동 여지를 남길 수밖에 없고 사기 면에서도 탈레반은 미군 철군을 20년간 미국의 침공에 저항한 성과로 간주해 최근 기세가 등등해 새로운 확장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아프간 전장은 부대 수, 무기 장비의 우수성으로 승부를 걸지 않는다. 왕 소장은 "1980~90년대 아프간 정부군이 소련에서 철수한 뒤 장비가 그리 뛰어나지 않고 파벌이 복잡한 '지하드' 게릴라에게 패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아프간 안보군은 숫자는 우위지만 영토방위 등 여러 책임을 지고 있어 실제 일선 전투력은 많지 않다. 아프간은 모두 398개 현으로 탈레반은 이전까지 수십 개의 현을 장악해 왔다. 현재 진정한 통제 구역은 이미 100개의 현을 넘었다. 아프간 전체 영토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며 갈수록 많은 현이 전쟁 교착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그만큼 탈레반의 힘과 통제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외신들은 탈레반 대변인 무자히드의 말을 인용해 탈레반은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계속 싸울 것이라며 첫째, 모든 외국군이 아프간을 떠나야 하고 둘째, 모든 아프간인을 포함한 이슬람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프간 대통령 가니는 25일 백악관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첫 만남을 갖는다. 미국과 아프간의 오랜 파트너십을 부각시키는 방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간 대통령에게 아프간 국민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보증할 것이라고 백악관 대변인이 밝혔다. 미국이 철수를 성큼성큼 하면서도 아프간인들과 함께 하는 자세를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미국을 위해 활동했던 아프간 1만 명 이상이 탈레반의 중점 보복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백악관은 '특수 이민 비자' 법안 통과를 추진 중이라고 두리뭉실하게 말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미국 국무부의 비자 발급 기간을 보면, 절차를 마치는 데 500일이 걸릴 것 같다.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가니의 이번 미국 방문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며 "그들은 개인 권력과 이익만 지키려 한다"고 말했다. 하미드 카르자이 전 아프간 대통령은 "미국과 나토가 없었다면 아프간 사람들은 더 잘 살았을 것"이라며 "지금 이 나라는 전쟁 유린과 치욕, 재앙에 시달리고 있다"고 직언했다. 류웨이둥(劉衛東) 중국 사회과학원 미국연구소 연구원은 "미군의 아프간 철수는 단일 사안이 아니라 바이든 정부의 분명한 전략적 전환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강대국 경쟁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간 문제가 어디까지 해결될지는 미국의 관심사가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의 에너지를 억제하고 전체 전략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아프간을 '미국식 국가'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다시는 테러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 측은 아프간 평화 프로세스를 원하고 있으며,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이 한발씩 양보해 전쟁의 불씨를 잠재우길 바란다. 내부 화해의 세부 사항은 의지도, 통제력도 없다. 그는 "이번 가니 초청은 미국의 전반적인 전략에 협력하고 세부적인 사안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류웨이동은 분석했다. 미국은 아프간에 대한 요구가 많이 줄었고, 지난 20년간 여러 분야의 재건 성과를 기대하지 않는다. 왕 소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소통하는 것은 평화 프로세스를 실질적으로 진전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자신의 철군이 더 그럴듯한 이유임을 시사했다. 아프간 정부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고, 적당히 압박할 수도 있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물음표를 찍어야 한다. 두 전문가는 전반적으로 미군이 철수하더라도 다른 형태로 존속할 것이며 아프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류웨이동은 "미국은 군사고문, 민간 보안회사 등은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존속할 것인 바 하나는 중국의 남서쪽 국경에서 어떤 억지력을 유지하면서 정보를 얻고, 다른 하나는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탈레반에 대한 일정한 통제를 형성해 내부 평화협상을 진전시키자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철수는 지상 전투 병력에 불과하다. 여전히 정보인력이나 국방부 직원, 국방부 계약직 등이 대거 포진해 있다. 그들은 사실 미국의 무장 세력이다." 왕 소장은 “더 중요한 것은 펜타곤과 미 국무부의 입장 표명으로 볼 때 미국은 주요 작전군이 철수해도 이 지역에 군사적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 지역에서 새로운 대체기지를 적극 찾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미군 주둔 요청에 대해 관련국들이 동의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현재로선 매우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파키스탄 정부가 자국 내 미군 주둔을 용인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한편 미 국방부는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밝힌 철군안대로 아프간 철수의 절반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은 21일 아프간 탈레반 공격의 증가 등을 고려할 때 미국의 아프간 철군이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미군은 매우 불명예스러운 탈출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아프간에는 휴전도 없고, 화해 합의도 없고, 공유 권리도 없다"며 "20년간 계속된 실패한 전쟁을 끝낸 것은 당연히 미국 사람들에게 환영받지만 아프간인들에게는 재앙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군이 떠나자 아프간과 주변 지역에서 공포가 고조돼 알카에다가 다시 날아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물산이 부족하고 사분오열된 아프간이라는 중앙아시아 내륙국가가 또다시 특수한 지리적 위치 때문에 대국의 신경을 끌고 있다. 영국은 1920세기 초 아프간을 중앙아시아로 통하는 통로를 만들려다 결국 아프간을 독립국가로 인정했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간 군사 작전은 인도양 요충지에 남하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10년 뒤 원기가 크게 다치고 말았다. 2001년 10월 미국은 이런 전철을 밟기 시작했지만 결국 제국으로서의 지정학적 요충지를 점령하지 못했다. 미군을 떠나보내는 아프간의 평화와 안정, 발전의 서광은 언제쯤 나타날까. 왕 소장은 "아프간 문제 해결이 복잡하고 내부 갈등도 있고 외부 강대국도 개입돼 있어 대내외적으로 어떤 균형이 형성돼야 평화 프로세스의 여건을 조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내부적으로는 지난해 초 이후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의 도하 회담이 상징적인 성과를 거두면서 적어도 양측 대표가 앉아 협상을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과의 철군 합의 이후 탈레반의 평화적인 입장이 강화된 것은 시간이 자기편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이후 평화 프로세스는 실질적 진전 없이 정체 상태다. 아프가니스탄 내 파벌과 종족 세력은 역사적 앙금을 털어버리고 현실에서 권력 나누기에서 각자가 납득할 수 있는 타협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아직 전쟁터의 힘겨루기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외부적으로는 중국이 일관되게 강조하듯 아프간 내 화해는 아프간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주도하고, 다른 나라들이 너무 많은 개입을 하면 할수록 사태를 복잡하게 된다. 이달 초에는 중국-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3자 외교장관 간 화상 대화도 가졌다. 이는 중국이 양국과 긴밀히 교류해 구축한 평화체제로, 정치적 화해·사회발전·안보협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이를 통해 중국은 아프간 평화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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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23
  • 조국사태와 성인숭배
    ●김정룡(多가치 포럼 위원장) 1년 남짓 대한민국을 시끌벅적하게 만든 이른바 ‘조국사태’가 사람들의 뇌리에서 차츰 떠나기 시작한 줄 알았는데 요즘 또 재 점화되고 있다. 이번에 불을 지핀 장본인은 보수 언론이나 보수유튜브도 아니고 ‘먼지 털이’로 조국일가를 지옥에 몰아넣은 검찰도 아니다. 조국 자신이다. 도무지 억울해 죽겠으니 변명으로 맘의 짐을 털려는 절박한 심정으로『조국의 시간』을 집필해 세상에 내놓았다. 대박이 터졌다. 『조국의 시간』이 6월 1일 시중에 ‘얼굴’을 내밀었는데 사전 예약 주문이 밀려 며칠씩 지나서야 책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베스트셀러다. 며칠 전 통계에 의하면 17만부 팔렸으니 지금쯤은 20만부 훌쩍 넘었을 것이다. 인세만 3억을 벌었다고 하니 실로 ‘헐, 대박이다.’ 책을 집필한 본인은 대박이 터져 만족했을 것이고 가슴에 맺혔던 응어리도 어느 정도 풀렸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논란이 만만치 않다. “왜 하필 이때?” 재판 중에 있는 피의자가 책을 통해 자기의사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이 사람 왜 이래?” 이런 질문도 있다. 나서지 말아야 할 사람이 나서서 세상을 또 한 번 시끌벅적하게 만든다는 의미일 게고 이 사람 진짜 얼굴에 철판을 깔았나? 하는 공격의 암시적 뜻도 있을 것이다. 조국을 공격하는 쪽과 공격 받는 쪽, 조국을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양대 진영을 이뤄 마치 ‘큰 판돈’이나 걸고 게임하는 듯 매우 분위기가 치열하다. 헌정사상 한 선비 출신을 둘러싸고 조국사태처럼 양대 진영으로 나뉘어 ‘전투’를 벌인 적이 없다. 조국을 반대하는 광화문 태극기부대와 조국수호를 외친 서초거리의 시위는 이른바 조국사태를 낳았고 지금까지도 진행형이며 앞으로도 몇 년간은 ‘전투’가 지속될 것으로 짐작된다. 여기서 의문 하나를 제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조국이란 인물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렇듯 찬반양론이 심각한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국사태는 조선의 역사적인 유교적인 성인숭배에서 기인된 사건이라고 보아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동양성인의 모습은 서양성인의 모습과 완전 다르다. 세계 사대 성인인 공자, 부처, 소크라테스, 예수 중 앞 두 사람은 아시아인이고 뒤 두 사람은 서양인이다. 그런데 앞 두 성인은 결점과 단점이 없는 완전무결한 인물인데 비해 뒤 두 사람은 결점과 단점이 많은 그냥 한 인간의 모습이다. 앞 두 사람은 완전무결하기 때문에 천수를 누렸고 뒤 두 사람은 세상의 논란을 야기하여 사형에 처해져 비운을 맞은 불행한 사람이다. “이게 무슨 성인이냐?” 동양의 성인에 대한 인식으로는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고 힘든 일이다. 노나라에 유하혜(柳下惠)라는 사람이 있었다. 한파가 몰아치는 추운 겨울 어느 날 어슬녘에 한 여성이 유하혜의 집 문을 노크했다. 유하혜가 집 문을 열고 보니 꽤나 매력적인 여성이 찾아왔다. “길 잃어 굶어죽을 직전인데 선생께서 가엽게 여기시어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여인의 몸은 손끝부터 발끝까지 얼어 온기가 전혀 없이 동태가 되어 있었다. 유하혜는 얼른 맞아들여 자기 몸 체온으로 여인의 몸을 녹여주었다. 잠깐이 아니라 온밤 품속에 품고 있었다. 마치 어미닭이 병아리 품듯이 애틋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믿기 어려운 희한한 일이 있었다. 유하혜는 여인을 밤을 지새우도록 품고 있었으나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녀 간의 일이 없었다는 뜻이다. 이 일을 두고 품에 안고서도 음란하지 않았다는 ‘좌회불란(坐懷不亂)이란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그 후 노나라에 홀아비 한 사람이 살고 있었고 옆집에는 한 과부가 살았다. 어느 날 폭우가 내려 과부의 집이 무너졌다. 과부는 오갈 데가 없어 옆집 홀아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홀아비는 문을 닫고 과부를 집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부인이 이같이 말했다. “선생은 왜 유하혜를 배우지 않았소?” 그러자 홀아비가 이렇게 대답했다. “유하혜는 여인을 품고 있더라도 아무 동요가 없었으나 나는 그렇지 못하오. 내가 잘할 수도 없으면서 유하혜의 전례를 좇아 당신을 방안에 들일 수는 없소.” 오갈 데 없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여인을 건드리지 않을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나 몰라라 방치하는 것이 과연 도덕에 맞는 것인지? 이런 질문은 필자 같이 칠정육욕을 가진 평범한 인간이나 하는 것이지 성인은 이 홀아비에게 후한 값을 매겨주었다. 공자는 이 얘기를 들은 후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유하혜를 배운 사람으로 노나라의 이 사람을 따를 자는 없을 것이오.” 공자의 이 한 마디 평가에 의해 유하혜는 지조가 있는 사나이로 기록되었고 후세 사람들은 유하혜를 성인으로 받들었다. 여인을 구해주고 사랑하면 안 되나? 서양의 귀족인 기사(騎士)들은 이렇게 한다. 동양의 선비들은 이렇게 하면 망나니로 몰린다. ‘처음부터 동기와 목적이 불순하다.’고 비난 받는다. 선비들의 세계에서 유하혜의 이 미담적인 이야기가 널리 전파되고 이를 따라 배우기 전통이 생겨났고 이 전통이 강호에게까지 전염병처럼 유행되었다. 결과 중국의 강호에 몸담은 영웅호걸 사나이들은 하나 같이 여인을 멀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노예가 되어 마땅히 누려야 할 남녀 간의 환락을 누리지 못하고 쓸쓸하게 일생을 보내는 것을 신념으로 삼아왔던 것이다. 여자문제는 그렇거니와 다른 모든 방면에서 성인은 완전무결해야 한다. 성인을 본받은 선비들도 마찬가지로 도덕수양에 위배되는 문제가 없어야 하고 타인에게 피해주는 일은 전혀 없어야 하고 매사에 사람 됨됨이의 사표(師表)가 되어야 한다. 우리 어릴 적에 주변에 남과 다투지 않고 남을 잘 배려하고 매사에 사리 밝은 사람을 선비 같다고 흔히 말해왔다. 즉 선비의 모습은 마땅히 완전무결해야 하는 인간의 모범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완전무결한 사람이 없다. 선비도 성인도 마찬가지로 완전무결하지 않다. 더욱이 인간은 모두 누구를 막론하고 전부 이중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를 착취와 피착취의 관계로 설정하고 이로 생겨난 불평등의 자본의 논리를 파헤친『자본론』의 저자 마르크스는 25년 동안이나 가정부의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공자는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인’이라 부인이 남편의 목상태가 걱정되어 늘 과일즙을 다려 공대했는데 과일즙에서 탄내가 난다는 이유로 부인을 세 번이나 쫓아냈음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인류역사상 최고의 도덕권자에서 내려올 줄 모른다. 조국도 보통 인간이고 가정을 꾸린 가장이다. 그가 아무리 완전무결해 보여도 자본주의사회에서 완전무결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조국사태의 본질은 조국이 교단에 있을 때 발표한 글들을 통해 조국을 지지하는 진영에서 그를 완전무결한 ‘성인’으로 낙인을 찍어버린 것이 문제의 발단이 아닐까? 즉 조국을 선비의 정신으로 무장된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는 완전무결한 성인으로 추앙하고 숭배해 왔는데 이런 선비를 건드리는 것은 말이 안 되는 하늘이 노할 일이라는 분노에 휩싸여 ‘조국수호’를 자신들의 신성한 의무로 간주하는데서 생겨난 현상이 아닐까? 조국은 문제가 없는데 ‘윤석열의 칼’이 조국을 마녀사냥으로 몰고 간 탓이라는 것이 조국지지자들의 변함없는 생각이다. 여기서 필자는 ‘윤석열의 칼’이 마녀사냥인지? 공정과 정의를 수호하는 칼인지? 이에 대한 논의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조국지지들도 조국을 한 평범한 인간으로 이런저런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보기를 바라는 맘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만약 조국이 계속 선비로 교단에서 여생을 보냈더라면 이렇듯 가문이 풍비박산 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 아닌가? 민정수석까지 마치고 교단으로 돌아갔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조국의 사례와 같이 한국정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선비가 아무리 허물이 많더라도 법을 위반한 행위가 드러나지 않으면 선비로 여생을 마무리 할 수 있다. 그런데 욕심에 의해 정계에 입문하면 ‘먼지 털이’를 당하고 특히 장관급에 진출하게 되면 ‘먼지 털이’를 호되게 당한다. 조국도 마찬가지. 민정수석 때까지 별로 문제가 없던 사람이 법무부장으로 부임하게 되자 가족문제까지 ‘먼지 털이’당해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비운을 맞게 되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문제들이 진정 해악이라면 왜 진즉에 파헤치지 않고 하물며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되니까 ‘칼’을 휘두르는지? 이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조국과 그 가족이 풍비박산 맞은 것은 검찰개혁의지가 그 누구보다 가장 강한 자와 그 누구보다 검찰조직을 지켜내려는 의지가 가장 강한 자의 충돌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은 깨지기 마련이다. 깨지는 쪽은 당연히 선비출신이다. 조국지지자들의 생각이다. 한국사회에서는 ‘펜이 총보다 더 무섭다.’는 속설이 있긴 하지만 조국과 윤석열 싸움에서 붓이 결국 ‘칼’을 이기지 못했다. 왜일까? 정(鄭)나라의 재상으로 15년 동안 태평성세를 구가하게 했던 신불해는 정치의 생명은 세(勢)에 달렸다고 했다. 세(勢)에 힘을 얹으면 세력(勢力)이 된다. 정치는 세력으로 하는 것이다. 세력이 약하면 세력을 키워야 한다. 약세에 있던 모택동이 강세에 있던 장개석을 무너뜨린 것은 민심이라는 세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선비는 세력이 없거나 있어도 매우 취약하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조국은 대통령이 뒷받침하고 지지자가 어마어마한데 왜 세력이 약하다는 것인가?’ 필자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조국의 세력은 허상이다.” 조국의 자리를 이은 추미애는 같은 장관이지만 5선 국회의원에 플러스 당대표까지 지낸 인물이다. 이것이 바로 정치판의 세력이다. 조국은 이에 비해 정치적인 세력이 전무하다. 그래서 ‘윤석열의 칼’은 조국에게는 아주 쉽게 겨눌 수 있었던데 비해 추미애에게는 함부로 겨누지 못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윤석열은 결국 추미애의 ‘등살’에 시달려 아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같은 자리에 있던 조국과 추미애, 이 두 사람의 세력은 결이 달랐다. 선비는 선비로 남는 것이 아름답지 않을까? 선비들이여! 괜히 어설프게 함부로 정치판에 뛰어들어 개고생 하지 말고 학문에 정진하여 여생을 평안히 보내소서!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1-06-22
  • 대한민국은 선비들의 왕국
    ●김정룡(多가치 포럼 위원장) 해당 부처의 차관이 장관이 되는 것이야말로 진짜 인사방침에 맞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 부처의 각종 행정시스템과 업무시스템을 잘 알고 있고 게다가 차관을 지냈으면 행정경험이 있고 업무에도 익숙하기 때문에 가장 적합하고 가장 이상적인 인선이다. 물론 그 차관이 특별한 흠결이 있다면 말이 달라질 수 있는 변수(이럴 경우 그 부처의 고위관료 중에서 장관으로 승진시키는 것)는 있겠으나 특별한 하자가 없으면 인사는 차관이 장관으로 승진하는 것이 모양새도 좋고 나라 발전에 이득이 된다. 진정한 좋은 인사는 본래 이렇게 되어야 한다.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에서는 장관 인사를 이 원칙에 따라 시행하고 있다. 이에 비해 대한민국 고위급 인사는 이 원칙을 적용하는 사례가 쌀에 뉘만큼 드물다. 문재인 정부 나머지 1년을 책임질 개각이 5월 14일 마무리 되었다. 이번 인사에 있어서 차관이 장관으로 승진시키는 사례가 어쩌다 시도되었다가 결국 불발되었다.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의 얘기다. 부인의 ‘도자기 사건’이 문제가 되어 자진사퇴하는 바람에 가장 이상적인 인사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여의도 정가의 뒷이야기에 의하면 박준영 후보자의 자진사퇴는 자신의 본의가 아니라고 한다. 박준영의 흠결보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부 장관후보의 논문 표절, 국비가족여행, 위장전입 등등의 흠결이 더 심한데도 문재인 대통령의 여성할당제 공약 때문에 남자인 박준영이 밀려났다는 후문이다. 남녀의 비례문제를 떠나 결과적으로 해당부처의 전문가가 장관이 되는 가장 이상적인 인사가 물거품이 되고 또 교수인 선비가 장관에 오르는 현인정치가 실시된 셈이다. 신임 금융감독원장 후보군으로 학계 출신 인물들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기존 금감원장 후보군으로 올랐던 관료 출신, 내부 인사 외에 전혀 새로운 인물들이 물망에 오르며 업계 안팎에서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또 선비 등용 인사의 전형(典型)이다. 연구원, 교수를 하다가 그 분야의 이론적인 전문성이 강해 학회 부회장, 회장직을 수행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하지만 이런 선비에게 갑자기 최고 행정직인 장관을 맡게 하는 것은 머슴에게 갑자기 비단옷을 입히는 것과 같이 전혀 맞지 않아 우스꽝스런 일이며 지극히 비정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고위급 인사는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으로 여겨왔으니 이것이야말로 비정상이 정상화로 되어온 전형(典型)적인 비극이다. 교수나 변호사가 고위급에 직행하는 현인정치 인사시스템은 따지고 보면 본질과 형식의 문제이다. 행정력이 있든지 말든지, 그 분야의 실천 경험이 있든지 말든지 겉 무늬만인 형식만 갖추면 된다. 진정 나라 발전을 위하는 본질을 추구하지 않는 허무맹랑한 인사방침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 개각을 지켜보노라니『한비자에』에 있는 두 고사가 떠올랐다. 옛날 진백(秦伯)이 자신의 딸을 진(晉)나라 공자에게 시집보낼 때 딸의 옷차림새는 진나라에 가서 꾸미도록 하고 몸종 칠십 명을 하려한 옷을 입혀 따라가게 했다. 진나라에 도착하자 진나라 사람들이 그 몸종만을 아끼고 공주는 천대했다. 이것은 몸종을 잘 시집보냈다고는 할 수 있지만 딸을 잘 시집보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초나라 사람으로 정나라에서 진주를 파는 자가 있었는데 목란(木蘭)으로 나무 상자를 만들고 계수나무와 초(椒)로 향기를 냈으며 주옥을 달고 붉은 보석으로 장식했고 비취 깃을 달았다. 그러자 정나라 사람은 상자만 사고 그 진주는 돌려보냈다. 한비는 이 두 가지 사건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이것은 상자를 잘 팔았다고는 할 수 있지만 진주를 잘 팔았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주변은 모두 교묘한 말이거나 장식적인 말이다. 군주는 그 꾸민 면만을 보고 실용적인 면은 잊고 있다. 만일 말을 교묘하게 한다면 사람들이 그 꾸민 면만을 마음에 담고 실질적인 면은 잊을까 두렵다. 이것은 꾸밈으로 실용적인 면을 해치는 것이며 초나라 사람이 진주를 팔려고 한 것이나 진백이 딸을 시집보낸 것과 같은 일이다.” 대한민국 선비들은 고위급에 직행하는 벼슬 외에도 사회 전반을 통틀어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신문에 칼럼을 쓰고 방송에 출연하는 것으로 대한민국 여론을 독점하고 있다. 한나라 때 한 무제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이후로 유학자인 선비들이 여론을 장악해 온 전통이 유교의 본산지인 중국에서는 사라진데 비해 한국은 유교일변도인 조선조 500백년을 거쳐 오늘까지도 선비들의 왕국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여론을 주도하는 기관은 주로 신문과 방송이다. 온라인 시대를 맞아 신문은 예전 같지 않게 인기를 잃어가고 있는데 비해 방송은 점점 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많은 이유이다. 방송 프로그램 중에 뉴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지상파 방송이든 종편방송이든 평일에는 거의 두 시간 간격으로 뉴스를 송출한다. 이 중에서 저녁 황금시간대인 8뉴스와 9뉴스가 뉴스 중의 메인이다. 한국에 이주해서 처음 몇 년 동안 한국뉴스를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많은 분야의 뉴스를 비롯해 민생 분야까지 고르게 진행하여 다양성이 풍부한 재미도 있지만 특히 찬양일색 뉴스만을 보다가 부정적인 뉴스가 비중이 더 많은 뉴스를 접하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한민국 얼굴인 대표방송 메인 뉴스인 9뉴스가 심지어 오토바이 안장 밑에 벌이 둥지를 튼 일까지 뉴스로 취급하는 것을 보고 쇼크를 먹은 적이 있다. 만약 중국에서 이런 일까지 뉴스로 취급한다면 하루 뉴스시간이 24시간이 아니라 240시간도 모자랄 것이란 생각을 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렇듯 한국뉴스를 재미있게 보다가 어느 시점에 맛을 잃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사소한 가령 살인사건과 뉴스를 매일 여러 차례 한두 동안 너무 지루하게 방송하니 신물이 나고 지겨워서 뉴스에서 눈을 떼기 시작했던 것 같다. 특히 조국사태와 윤석열사태는 일 년 넘게 매일 수차례씩 지속적으로 뉴스로 다루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뉴스를 멀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시청자들을 지겹고 지치게 만드는 뉴스는 이른바 뉴스분석 프로그램이다. 대한민국 지상파방송과 종편방송은 교수, 변호사, 연예인 등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의 세상이다. 시청자들이 먹고 살만한 세상이라 그들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프로그램을 마들다보니 연예인의 대거 출연은 이해할 만한데 교수와 변호사의 대거 출연은 어쩐지 시청자들의 눈꼴을 시게 만든다. 특히 종편방송은 아침 일찍부터 저녁시간까지 하루 종일 뉴스와이드, 뉴스파이터, 돌직구쇼, 신통방통, 정치부회의 등 패널들을 출연시켜 뉴스분석 프로그램이 엄청 많다. 이 모든 프로그램이 다루는 뉴스의 주제는 거의 비슷하게 거기서 그것이다. 패널들도 이 방송국 저 방송국에 요일에 따라 시간대에 따라 쳇바퀴 돌듯 빙빙 돌아다닌다. 문제는 이 프로그램들의 패널들이 절대다수가 교수와 변호사들이라는 것이다. 다른 분야의 패널, 예하면 전직 국회의원, 가끔 행정직에 있었던 전직 고위공무원들이 가끔 출연하고 있고 박사출신 연구원들도 출연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패널은 선비중심으로 채워져 있다. 이론만 강하고 실전경험과 현장경험이 전무한 선비들이 뉴스분석을 하는 것을 보면 마치 다른 세상의 얘기를 하는듯한 웃기는 일들이 많다. 여의도 00연구소 00박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 방송 저 방송, 시간대에 따라 여기 저기 출연하는데 하는 발언을 듣노라면 이 분은 마치 진공 속에서 사는 인간 같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이 분은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비핵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은 거짓말을 한 것인데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십계명을 어긴 행위’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범죄혐의가 드러나면 일차적으로 하는 말이 ‘절대 그런 일이 없다.’ 증거가 하나 둘 밝혀지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범죄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나면 그때서야 ‘신중치 못했다.’는 말로 한 발 크게 물러선다. 어떤 거물급 정치인은 ‘만약 사실이라면 손바닥에 장을 지지겠다.’ ‘지하철역에서 할복자살하겠다.’고 만천하에 하늘에 맹세하듯 결백을 주장하다가 범죄사실이 드러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눈을 질끈 감는다. 이렇듯 대한민국에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이 얼마나 많은데 이 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지? 김정은 국방위원장에게 십계명을 들이대는 언행을 너무 유치해서 차마 듣기조차 보기조차 거북할 정도다. 학계는 학계의 생리가 있듯이 행정은 행정의 생리가 있다. 어쩌면 행정의 생리가 학계의 생리보다 더 복잡하고 추접스럽기까지 하다. 학계는 행정에 비해 보편적으로 깨끗하고 신성한 이미지가 강하다. 이런 ‘청정지역’에서 살아온 학자가 갑자기 흙탕물로 비유되는 고위행정직에 오르면 맡은바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은 뻔한 사실이다. 이와 마찬가지 도리로 뉴스분석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정부의 행정비판에 열을 올리는 선비들은 오히려 사회를 혼란시키는 작용을 일으키기 일쑤이다. “세상의 어리석은 학자들은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지는 것의 본질을 알지 못하면서 옛 서적들만 읊어대며 시끄럽게 떠들고 있으니 이는 시대의 치세를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지식이나 생각만으로는 인간사의 재난을 피하기에 부족한데도 함부로 통치술을 익힌 인사들을 헐뜯고 있다. 그들의 말을 듣는 자들은 위험해질 것이며 그들의 계획을 사용하는 자는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어리석음이며 가장 심한 재앙인 것이다. 그들은 통치술에 정통한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담론과 유세에 뛰어나다는 세상의 평가를 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것이 명분은 같으나 실질이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세상의 어리석은 학문을 추종하는 자와 통치술을 익힌 인사를 비교한다는 것은 개미구릉을 큰 언덕에 비교하는 것과 같이 차이가 대단히 크다.” 한비자가 한 말이다. 선비들이 판치는 선비의 왕국, 이것도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취급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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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기고
    2021-06-04
  • 조선족 가요 혁신적 창작으로 자리매김해야
    ● 이강춘 전통민요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음악을 상징하고 있는 대표적인 민요이다. 세계 아름다운 곡 선정대회에서 82%라는 엄청난 지지를 받으면서 1위로 선정된 적 있는 그야말로 세상에 자랑할만한 선율이다. 하지만 현재 중국 조선족 문화에서 '아리랑'이 지나치게 범람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리랑'을 붙인 노래 명칭만 보더라도 '장백의 아리랑', '나의 아리랑', '아리랑 정가', '내 고향 아리랑', '아리랑 총각', '연변 새아리랑', '새아리랑' 등이 있다. 기업 명칭들로는 '아리랑 미식거리', '아리랑 식품유한회사', '아리랑 김치공장', '아리랑 식당' 등이 있고 지어 텔레비전 프로와 시나리오 명칭에도 아리랑이 붙는다. 실로 '아리랑' 이 없으면 조선족을 홍보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아리랑' 의미는 무엇일까? '아리'의 뜻은 하나는 '고운'을 뜻하며 또한 '사무치게 그리운'의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랑'은 '님'이라는 뜻이다. '님'은 한국어 사전에서 사모하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했다. 이처럼 '아라리'는 고대에는 '상사병'의 뜻으로 판단된다. 현대에 상사병을 나타내는 '가슴 아리(가슴 앓이)'에서 그 흔적이 어렴풋이 보인다. '아리랑'의 가사를 현대어로 리듬을 접어두고 해석하면 '곱고 그리운 님 사무치게 그리워 상사병이 났네'의 뜻이 된다. '아리랑 고개 넘어간다'라는' 곱고 그리운 님이 고개를 넘어간다'라는 뜻이다. 이처럼 '아리랑'은 청춘 남녀의 순결하고 변함없는 애정을 반영한 전통민요이다. 이런 독특한 민요의 뒤에 각가지 명칭들을 붙여 민족을 홍보하려고 한 것은 이해가 가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무엇 때문에 중국 조선족은 '아리랑'을 이렇게 남용할까 하는 물음표가 생긴다. '말리꽃(茉莉花)'은 중화민족의 대표적인 전통민요이다. 한족 문인들은 이 민요의 사용에 각별한 중시를 돌리고 있으며 일반 문예 야회에는 이 노래를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송조영(宋祖英)은 오스트리아의 빈 황금홀에서 이 노래를 불러 중화민족의 예술을 세계에 홍보하였다. 하지만 '말리꽃'이란 노래 뒤에 갖가지 명칭을 붙인 현상을 보았는가? 혁신은 한 민족의 진보하고 발전하는 동력이다. 개혁개방 30년이 지난 오늘 이 같은 '아리랑' 현상에서 느껴지는 점이 있어 우리 민족의 가곡 창작에 몇 마디 성숙되지 못한 견해를 이야기해 보려 한다 수십 년 동안의 조선족 노래를 보면 아주 훌륭한 대중가요도 많지만 적지 않은 가사는 지금도 지난 50년대의 틀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혁개방 후 중국의 조선족은 한국 문화, 조선 문화, 중화 문화의 영향하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런 독특한 사회와 생활 배경은 우리 민족 예술창작에 전례 없는 절호의 기회를 창조해 주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지금도 몇십 년 변함없는 풍격으로 노래를 창작하고 있는 점이다. 무엇이 훌륭한 노래일까? 민족성과 현대성을 밀접히 결합하고 대중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아닐까. 14억 국민을 대상으로 지금 서장, 신강, 내몽골, 운남 등지 소수민족들의 문화는 민족 특색을 보류하고 있는 한편 한족 문화를 비롯한 각 민족의 우수한 문화요소들을 흡수하여 중화 문화권에 자리매김 하고 있다. 변혁의 시대, 약동하는 시대에 우리 민족의 예술도 과감한 혁신을 통해 전통 민요에서 체현된 사랑의 힘으로 새 세기, 새 시대에 알맞은 민족 가요를 많이 창작하여 기타 소수민족 가요와 어깨 나란히 중국무대, 나아가서 세계무대에서 중국 조선족을 대표할 수 있는 노래가 나왔으면 한다.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1-05-28
  • 한국 현인 정치는 적폐청산의 대상
    ●김정룡(多가치 포럼 위원장) 동양역사를 돌아보면 주나라 초기까지 선비가 고위관료에 등용 되는 현인정치가 아니었다. 우스운 것은 상나라 초대 왕 탕을 보좌한 이윤(伊尹)과 상나라를 뒤엎고 주나라를 세우는데 일등 공신은 강태공은 현인이 아니고 순수 모략가인 데도 유가는 이 두 사람을 자기네 족보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춘추전국시대부터 이어온 선비 관료등용을 합리화 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수법이었다. 유가뿐만 아니라 도가, 병가, 법가들도 이 두 사람을 자기네 족보에 끌어들여 ‘가문’을 빛내기 경쟁을 벌려왔다. 이윤의 생애를 보면 노예 출신으로 이수(伊水) 가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원래 유신씨(有莘氏) 군주 곁에서 노복으로 있었는데 상탕과 유신씨가 혼인관계를 맺게 됨에 따라 이윤은 유신씨 딸의 배가(陪嫁) 노예(시집갈 때 함께 딸려 보내는 노예)로 따라와 탕의 '소신(小臣)'이 되었다. 이윤은 요리사이기도 했다. 그는 가마솥을 둘러메고 탕을 보좌했다고 한다.『한비자』에 따르면 이윤이 탕을 무려 70번이나 설득했으나 받아주지 않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이윤은 탕의 눈에 들어 국정을 맡아 상탕이 하걸을 멸망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한편, 하 왕조 내부에 잠입하여 '하나라를 이간시키는' 첩자 노릇을 하기도 했다. 이렇듯 이윤은 선비가 아니었고 그의 몸에서 현인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강태공도 이윤과 마찬가지로 선비도 현인도 아니었다. 그는 동해 바닷가 동이족 출신인 강씨 집안은 귀족이었다가 강자아(강태공의 이름)에 이르러 집안은 거의 천민과 다를 바 없었다. 강자아의 인생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민간에서 밥장사, 도살업에 종사했고, 그마저 여의치 않자 고향을 떠나 상나라의 수도인 조가부근으로 이주했다. 여기서 강태공은 장사와 종업원 생활을 전전하면서 여러 차례 거처를 옮긴 끝에 상나라의 수도 조가에 주점을 열고 많은 사람들과 접촉했다. 그러다 점쟁이 ‘여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상나라 조정의 대신 비간을 만나 주(紂) 임금을 잠깐 섬기기도 했다. 그 후 무제의 눈에 들어 책사를 맡아 모략가로 뛰어나 주나라 창업에 지대한 공을 세운다. 중국역사에서 공자 같은 순수 선비가 고위관료에 등용된 것은 아마 현인정치 선구자 반열에 오르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순수 선비가 고위관료 직책을 수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자가 노나라에서 정치를 할 때는 백성들이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았다. 제나라 경공(景公)은 이것을 알고 걱정했다. 여저(黎且)가 경공에게 말했다. “공자를 떠나게 하는 것은 털을 부는 것처럼 쉽습니다. 당신은 어째서 공자에게는 두터운 봉록과 높은 지위를 주고 애공(哀公)에게는 음악을 할 줄 아는 여자를 보내 마음을 어지럽히고 미혹되게 하지 않습니까? 애공이 이것을 즐기게 되면 반드시 정치에는 나태해질 것이고 공자는 반드시 간언하게 될 것입니다. 공자는 자신의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반드시 노나라를 쉽게 떠날 것입니다.” 애공이 여저의 말대로 했더니 과연 공자는 노나라를 떠나 초나라에 갔다. 그 후 공자는 여기저기 이 나라 저 나라 떠돌면서 감투를 얻기 위해 무려 14년이란 세월을 분주하게 뛰어다녔으나 끝내 어느 나라의 감투도 그를 외면했다. 선비는 배운 것은 많으나 현실정치에 맞지 않고 너무 이상적인 세계를 추구하다보니 입만 번지르르 했을 뿐 실용적이지 못했다.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려고 하자 노나라는 자공(子貢, 공자의 수제자)을 시켜 설득하도록 했다. 제나라 사람이 말했다. “당신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얻으려고 하는 것은 토지이지 현실을 떠난 메마른 이론이 아니다.” 유가의 선비들이 현실정치에서 밀려나 있던 상황을 반전시킨 것이 바로 앞장에서 말했듯이 한무제와 동중서의 덕분이며 관료사회에 전면 포진되어 독점한다. 한나라 때부터 천거(薦擧)와 찰거(찰거)에 의해 관료자리를 채웠고 수나라 때부터는 과거제를 실시하여 관리를 선발했다. 그러나 중국역사 상황은 유불도 삼교 합일에 의해 문화 다양성이 이뤄졌고 관료사회도 유생일색은 아니었다. 물론 과거시험의 주 내용은 사서삼경을 비롯한 유가경전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래도 관료사회는 다양한 인재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이에 비해 조선조 500년은 유교일변도였기 때문에 유가 선비의 현인정치가 판을 쳐왔고 그 영향이 오늘 대한민국까지 이어져 오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은 사무라이가 관료사회를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을 ‘칼의 역사’라 하는데 한반도는 자신들이 ‘붓의 역사’라는 자부심을 갖고 줄곧 일본을 매우 천박하게 여겨오다가 결국 그들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비운의 역사를 맞게 되었다. 본장의 주제는 한국에서 현재까지 선비를 고위관료로 중용하는 현인정치의 폐단을 파헤치는 것이므로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 보려고 한다. 한국의 현재 상황은 고위관료 자리에 대학교 교수와 변호사가 직행하는 것이 다반사인데 이 인사시스템은 문제가 많다. 이런 선비 현인정치는 우선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어 관료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다. 고위관료의 전문성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람을 관리하는 행정력이고 다른 하나는 업무에 대한 전문성이다. 어느 나라든지 어느 민족이든지 사람 사는 동네(직장)는 서로 질투하고 서로 헐뜯고 서로 시기하고 서로 깎아내리고 서로 물어먹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특히 공무원사회가 더욱 심각하다. 오너의 주요역할은 직장 내의 갈등을 최소화하여 업무효율을 높이는 것인데 행정경험이 전혀 없는 교수가 장·차관이 되거나 청와대 수석으로 발탁되어 중임을 맡는다면 사람관리를 제대로 해낼 수가 없다. 아무리 뛰어난 두뇌를 가진 교수일지라도 사람관리는 말단 직원으로부터 위로 단계를 밟으면서 경험에서 노하우가 생기는 것인데 학문의 세계에 파묻혀 있던 교수가 갑자기 ‘흙탕물’과 같은 무리에 들어가 관리해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조국사태에 있어서 한 가지 떠돌아다니는 말(방송에서 패널이 한 말)이 있는데 조국이 민정수석 자리에 있을 때 부하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통제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후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교 교수 출신인 조국이 검찰 출신, 경찰 출신 및 여러 분야에서 모인 민정수석실 부하들을 제대로 관리하고 통제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어두운 야밤삼경에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공자도 아마 왕도만 외치면서 현실을 외면했고 메마른 이론에만 매달리고 사람관리행정력이 부족한, 요즘 말로 한심한 ‘꼰대’였기 때문에 노사구(魯司寇, 노나라의 법무장관) 직을 맡았다가 금세 쫓겨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교수뿐만 아니라 변호사도 마찬가지로 행정력이 부족하다. 경험 없는 행정력이란 있을 수가 없다. 어떤 변호사는 판·검사 출신이라 해도 행정경험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교수와 변호사뿐만 아니라 영화감독과 영화배우가 문화관광부 장관 최고급 벼슬자리에 오르는 사례도 있는데 역시 그들의 최대 단점은 행정력 부족일 것이다. 그리고 행정경험이 전혀 없는 국회의원이 장관 자리에 부임하는 것도 역시 폐단이 심각하다고 생각된다. 다음 관련업무의 전문성이 전혀 없는 교수나 변호사가 부처의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으로 직행하는 현인정치 인사시스템은 조속히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왜냐면 해당 업무에 대해 전문성이 없는 관료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나라 발전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앞서 이웃 나라인 일본과 중국에서는 교수나 변호사가 장·차관이나 주석과 총리의 수석비서관을 맡는 경우가 없다. 먼저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자. 냉전시대 일본외무성 중국담당 사무관을 맡으려면 10여 년의 경력이 필요했다. 우선 자국 내에서 중국어 전공을 졸업하고 대만에 유학 간다. 당시 대만은 대륙과 아주 적대관계에 있다. 대만유학을 마치면 본국으로 귀국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 역시 최대 적국인 미국에 유학 간다. 그다음에는 유럽에 유학 가고 마지막에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권인 소련에 유학 가서 대만이나 미국이 중국을 보는 시각과 전혀 다른 시각을 경험해 보기위해서다. 이 유학코스를 마치려면 적어도 아무리 짧아도 1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12년 이상의 경력은 진짜 중국을 아는 베테랑급에 오는 진짜 중국통이다. 한국사람들은 중국에 한두 번 말 타고 꽃구경 식으로 다녀와도 중국통이라고 호들갑 떤다. 중국에 가서 주재원이나 유학을 다녀오면 서로 앞다퉈 중국통이라 자랑한다. 필자는 중국에서 태어나 40여 년 살았지만 중국을 잘 모른다고 말한다. 실제로 ‘통’이 될 만큼의 중국을 다 아는 사람이 오리지날 중국인일지라도 없다. 중국이란 나라는 영원히 다 알 수가 없는 나라이다. 상해에 다녀온 한국 사람은 중국이 한국을 앞섰다고 호들갑 떨고 어느 후진 지역을 다녀온 한국 사람은 ‘우리 6·70년대와 같다고 보면 된다고 큰소리친다. 이런 코끼리 장님 만지기로 알면서도 불구하고 저마다 중국통이라 자부한다. 한국 외교부를 비롯해 여러 부처의 중국 담당들이 진짜 중국을 아는 전문가가 얼마나 되는지? 의심스럽다. 중국의 공무원사회 즉 각 부처 수장이 되려면 어떤 코스를 밟고 있는지? 알아보자. 중국에서는 모든 간부는 전부 기층 행정기관의 장으로부터 층층이 사다리 식으로 위로 밟아 올라간다. 향·진 수장부터 현·시급 및 성·부급(省部級)에 오르고 직할시(直轄市 : 북경, 상해, 천진, 중경 등) 수장을 수행하고 더 잘하는 간부는 마지막에 중앙기관의 수장을 맡고 나중에 이중에서 총리가 되고 주석이 된다. 이렇게 층층이 위로 밟아 올라가려면 우수한 자가 점점 더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는 중도에서 고만고만한 자리에 머무르기 마련이다. 이런 사다리 식 승진시스템을 ‘적우제(積優制)’라고 한다. 이 ‘적우제’를 통해 최고위급에 오르면 그 해당부처에 잔뼈가 굵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중국외교부 수장은 모두 그 부처에서 잔뼈가 굳히고 그 중 가장 우수한 자가 부장(部長, 장관)이 되는 것이다. 해당 부처에서 잔뼈를 굳힌다는 것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중국 관료들은 두 말 할 것 없이 그 부처의 업무에 대해 눈 감고도 전부 꿰고 있어 전문성이 바싹하다. 한국 사람들은 흔히 중국공산당에 대해 독재만 운운할 뿐 왜 중국공산당이 올해로 100살을 맞이하고 있는지? 이에 대해선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한 정당이 100살을 유지해왔으면 나름대로 그들만의 소이연이 있을 것이 아닌가? 그 소이연 가운데 각 부처의 장들이 전문성이 뛰어난 요소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 고위관료들은 가뜩이나 해당 행정력과 업무 전문성이 결여된다가 직무 수행시간이 너무 짧아 미처 그 분야의 업무를 읽히기도 전에 물러나니 나라가 어떻게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을까? 한국의 행정시스템은 미국 것을 옮겨다가 시행하고 있는데 미국은 일단 내각이 조성되면 적어도 4년은 함께 간다. 이에 비해 한국 내각은 대통령 5년 임기 동안 적어도 3번, 많게는 5번 이상 바뀐다. 교육은 백년대계라 말하지만 교육부 수장이 대통령 임기 동안 한해 한 번 꼴로 바뀌니 백년대계가 아니라 1년 소계(小計)에도 못 미치는 것이 대한민국의 행정시스템의 현주소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들어섰다. 과거보다 더욱 전문성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 하고 있다. 교수나 변호사가 고위관료로 직행하는 현인정치 인사시스템은 이미 적폐가 되고 있다. 대한민국이 세계무대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이 적폐를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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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27
  • ‘중국 공포증’에 시달리는 미국 정치인들
    ●두란 (중국국제연구원아시아태평양연구소 부 연구원) 현재 일부 미국 정치인들은 ‘중국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을 야수에 비교하며 반중을 끝까지 이행하겠다고 공언한다. 최근 미 상원이 내놓은 ‘2021 전략경쟁법안’은 이런 비뚤어진 심경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281쪽짜리 이 장문의 법안은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의 '중요한 이익과 가치'를 보호하고 촉진하기 위해 중국과의 전면적인 ‘전략적 경쟁’을 요구한다.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21대1의 높은 지지율을 얻은 법안은 국회 양원을 통과해 대통령 재가를 받아 법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법안이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 도입되었거나 숙고된 대부분 조치들로 지난 몇 년간 주로 중국 관련 정책과 법률, 행정명령 등을 통합한 내용이다. 다만 특별한 의의는 이 법안이 외교전략 수립, 가치생산, 기술혁신, 경제무역보호, 군사증강, 인프라 구축, 동맹관계, 전략안보 등 광범위한 내용을 포함한 가장 포괄적인 중국 관련 법안이라는 점이다. 이는 미국 정부가 중국을 억압하기 위해 가장 최근에 취한 조치이며 미국의 대중 전략 경쟁의 강령적 문서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미국 정치권은 미국에 대한 중국의 이른바 '위협'에 맞서 정당·의회·국내사회·동맹 파트너의 역량을 통합하려 하고 있다. 상원은 "법안은 전례 없는 양당의 협력을 대변한다"며 "중국의 부상하는 글로벌 역량에 맞서기 위해 미국의 모든 전략, 경제 및 외교를 동원하겠다"고 공언했다. 법안에 담긴 중국에 대한 인식에는 주관적 억측과 불안감이 가득 차 있다. '중국 공포증'에 걸린 것은 미국 정치인들이 미국 내에서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스스로 원인을 찾지 않고 자신들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중국의 '도전'과 '위협' 탓으로 돌리며 책임을 회피하고 민의를 우롱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미 정치인들이 미·중 관계를 제로섬 게임 사상과 유아독존, 타국의 정상적 발전은 용납할 수 없다는 패권을 갖고 있으며, 미·중 관계에서 '손해'와 '피해자' 심리가 있고, 중국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편견으로 가득 차 있어 중국의 발전과 중국 공산당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점이다. 셋째, 이들 정치인들은 이번 중국과의 경쟁이 '미-소 패권의 카피'라고 보고 경쟁과 억제, 적대적 분위기를 조성 하고 중국에 대한 '악마화'를 통해 국내 극우 역량을 통합하고, 국제적으로 동맹들의 지지와 단합을 공고히 하며 '집단화' '작은 텃밭'을 통해 미국의 패권을 지키려 한다는 점이다. 바이든 정부가 집권 한 지 100일 만에 전임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정책에 일련의 중요한 조정을 가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유일하게 옳은 것은 중국 정책"이라고 주장하며 대립 정책을 대부분 계승한 것은 현재 미국의 대중(對中) 인식의 근본적 전환이 두 당의 중요한 컨센서스(공감대)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가 '2+2' 고위급 전략대화, 기후변화 문제 대화에서 건설적인 진전을 이룬 점은 긍정적 신호로 봐야 한다. 반면 미 의회 반중(反中) 정치인들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정책이 앞으로 누그러지거나 편향될 것을 우려해 정부 외교정책이 완전히 가시화되기 전에 '전략적 경쟁법안'을 던지며 선제적으로 어젠다를 설정하는 데 급급하다. 또한 이들은 정부 정책을 법적으로 구속하고 바이든 정부가 중국에 전면적으로 맞서도록 압박해 미·중 관계를 철저히 경쟁하고 완전히 대결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음흉한 속셈을 가지고 있다. 스원(史文) 미국 싱크탱크 퀸시연구소 동아시아프로젝트 주임은 최근 ‘전략경쟁법은 중국에 대한 위험한 냉전 선언’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법안에 구체화된 대중국 '제로섬 전략'은 양국이 반드시 대립과 확전의 길을 걷게 할 것”이라고 날카롭게 경고했다. 미국으로선 중국을 압박하고 억제하는 것이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미국이 ‘더 위대함’을 원한다면 남을 때릴 게 아니라 칼날이 안으로 향하고 스스로를 보완해야 한다. ‘중국 공포증’은 미국의 몇몇 정치인들이 무기력하고 무심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중국에 대한 공포’를 과장하는 것이 미국 자체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며 미국으로서는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진정 글로벌 리더십을 유지하려면 올바른 태도를 가져야 하고, 과거의 좋은 전통을 지키고 이행해야 하며, 스스로 개혁하고 조정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미국은 중-미 관계로부터 훨씬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현재 중미 대립의 본질은 패권과 단극 세계를 유지하고 중국의 발전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이 유발 한 양국 간의 싸움이다 중국이 미국과 싸우는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발전권을 수호하고 세계 다극화를 추진하며 국제질서를 보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정의로운 행동이다. 세계평화를 수호하고 공동발전을 추진하는 것은 중미 양국의 공동책임이자 사명이다. 중미 양국이 세계에 도움이 되는 관계를 구축 할 수 있을지 여부는 미국이 중국의 부상과 세계 지형의 변화를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바라보며 일부 정치인이 이기적으로 중·미 관계를 위험천만한 상황으로 몰고 가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지혜롭고 합리적이며 실행 가능한 대중(對中)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미국 ‘타임 주간’의 유명한 작가 로버트 라이트가 책 '논제로섬: 인간 운명의 논리'에서 지적한 것처럼 인류 운명의 번영은 '제로섬'시대에서 '논제로섬' 시대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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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16
  • ‘프로보커터’와 ‘조선족코인’
    ●김정룡(多가치 포럼 위원장) 자고 깨면 신조어가 생겨나는 요즘 세월에 글깨나 쓴다는 나도 신조어 하나 만들어봤다. ‘조선족코인’ 어쩌다 신조어를 하나 만들어냈다 하여 이순 나이에 창의성이 뛰어난 아이큐 덕분이 아니다.『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는 저자 김정운 교수는 창의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창의성이란 본래 없던 것을 새로 창조해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널려 있는 정보들을 편집하여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창의성이다.” 백 프로 공감한다. 요즘 나는『프로보커터』라는 책을 읽었다. 지난 달 초에 빛을 본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저자는 연세대학교 박사 과정 재학 중인 1992년 출생인 20대 열혈 청년 김내훈이다. 책의 편폭은 가벼운 편이나 내용이 참신하고 술술 잘 읽힌다. 저녁 밥 먹고 하룻밤 사이 다 읽었다. 그만큼 매력적이었다. ‘프로보커터’라는 어휘는 자극적인 도발 언행으로 ‘우리 편’을 결집하여 이익을 챙기는 행위를 일컫는 말인데 외래 수입품으로서 한국사회에서는 아직 낯선 용어이다. 비록 낯선 용어이긴 하나 한국사회 곳곳에도 이미 ‘프로보커’들이 활개치고 있었다. 다만 그들을 이론적으로 정의를 내리지 않았고 라벨을 달리 붙여주지 않았을 뿐이다. ‘프로보커터’를 잘 이해하려면 먼저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일개 장사꾼이었던 트럼프는 자극적인 도발언행으로 지지층을 확보하여 대통령이 된 사람이고 백악관에 입주한 후에도 대통령답지 않게 체신 머리 없이 쩍하면 허위정보와 가짜뉴스를 터뜨려 자기를 추종하는 지지 세력을 만들어왔으며 가장 큰 재미를 톡톡히 본 장본인이다. 실로 트럼프야말로 ‘프로보커터’의 모범적인 인물이다. 미국에는 트럼프뿐만 아니라 수많은 ‘프로보커터’들이 민주주의 꽃으로 인정받아온 미국사회를 흙탕물로 만들고 있다. 미국만을 웃을 일이 아니다. 아세아에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프로보커터’가 있었다. 희한한 것은 이 주인공은 10대 소년이라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아모스 이이며 싱가포르 태생이다. 아모스 이는 자신의 유튜브에 싱가포르 국부인 이콴유(李光耀)를 파렴치한 독재자로 비난하고 예수처럼 숭배 받는 것은 지극히 잘못된 일이라고 공격했다. 이 일은 아모스 이가 기독교를 모독하는 사건이 되었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철없는 10대 소년의 행위이겠거니 할 수 있었는데 유튜브 조회수가 급증하자 더 자극적인 스토리를 조작해 세인의 주목을 받는 사건을 터뜨린다. 이콴유와 마가렛 태처 부인의 불륜 동영상을 아주 어설프게 허위 합성 제작하여 올렸는데 생각 밖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건을 조작하여 유포하는 행위를 정부가 눈감고 가만히 둘리가 없다. 법적 조치에 의해 구금당했다. 그런데 소위 자유주의를 외치는 인권수호자들이 나서 아모스 이 구출 작전에 돌입하여 보석석방을 이뤄냈다. 이 일을 계기로 아모스 이는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위한 세계적인 영웅이 되었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실로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일들이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다. 세계적인 영웅이 된 아모스 이는 자유주의 본산지인 미국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점점 더 자극적인 소재를 조작해내야 더 크게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궁리 끝에 이슬람교를 건드렸다. 말로만 한 것이 아니라 이슬람교의 성경인 ‘코란’을 사타구니에 끼고 섹스 하는 행위를 영상으로 제작하여 퍼뜨렸다. 아무리 살해 위협까지 받고 있었으나 세인의 주목을 받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아모스 이는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사건을 또 저지르고 만다. 소아성애와 아동 성착취 영상 옹호사건을 저지른 것이다. 미국당국은 결국 아모스 이의 유트뷰, 워드프레스, 페이스북, 트위터 등 모든 소셜미디어 계정을 강제 폐쇄해버렸다. 한국의 ‘프로보커터’ 상황의 현주소는 어떨까? 진보정권인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4년 동안 이른바 ‘우파코인’이 점점 판을 치고 있고 박원순, 오거돈, 안희정 사건 이후 ‘폐미코인’이 ‘인기상품’으로 떠올랐다. ‘우파코인’이란 무릇 현정부를 비판하는 우파유튜브들이 경제적인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는 허위사실 유포와 가짜뉴스를 생산하여 퍼뜨리는 것으로 조회 수를 늘리고 있고 따라서 경제적인 수익도 창출하고 있다. 이렇게 하려면 자극적인 소재를 조작하여 도발하는 것으로 목적을 이룰 수밖에 없다. 우파유튜브 ‘프로보커터’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가로세로 연구소, 이하 가세연으로 지칭함)’ 이름으로 된 유튜브를 들 수 있다. 가세연의 대표 강용석은 변호사 출신 국회의원 뺏지를 단 이력이 있고 성희롱 사건에 의해 국회를 떠난 이후 정치평론가 겸 예능방송출연으로 얼굴을 크게 알렸는데 한 때는 화려한 입담으로 인기 인물이었다. 잘 나가다가 불륜사건으로 모든 방송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되었고 사문서위조 사건으로 구속수감 되기까지 했다. 실로 바닥까지 추락한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플러스 민주주의사회에서는 얼굴에 철판 깔고 돈 벌이에 맘만 먹으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강용석이 택한 것은 유튜브였다. 가세연은 연예계 소식을 전한다는 명분으로 악랄한 수법으로 연예인들의 신상을 털어 조회 수를 대폭 늘렸다. 가세연의 가장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사건은 박원순 자결 이튿날 이른바 ‘코스 답사’를 영상으로 찍어 올리는 수법으로 고인의 얼굴에 먹칠 하는 것이었다. 이런 저급적인 영상을 누가 볼까 싶겠지만 이 콘텐츠는 단 며칠 만에 수백 만원의 슈퍼챗 수입을 가세연에 안겼다. 한 통계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슈퍼챗 수익을 기록한 유튜브 채널은 가세연이란다. 아무리 자본주의사회라지만 이렇듯 저질스럽고 악랄한 수법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지? 사회주의에서 살다 온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국 프로보커터는 보수만의 일이 아니다. 진보논객으로 인정받아온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현정부 비판에 가장 열과 성을 다 바치는 지식인이다. 어쩌다 이 분은 자극적인 도발언행으로 현정부를 비판하고 또 이것저것 분야를 가리지 않고 까대는데 보수언론 수장격인 조선일보가 지난 한해 인용한 건수가 1000건이고 중앙일보가 인용한 건수가 900건이라고 하니 하루 평균 3건인 셈이다. 조선일보의 영향력과 진중권의 하청업이 서로서로 윈윈이 된 전무후무한 사건으로 역사에 남을 일이다.『프로보커터』저자는 진중권을 대한민국의 ‘프로보커터’의 전형(典型)으로 꼽았다. 김내훈의『프로보커터』에는 ‘주목경제’와 ‘주목경쟁’이란 말이 등장한다. ‘프로보커터’가 되어 돈을 벌고 명성을 얻으려면 주목을 끌어야 수익이 생기고 이득이 따른다. 그런데 평범한 인성과 착한 실력으로만은 절대 주목을 끌지 못한다. 그래서 주목을 끌기 위해서는 자극적인 도발을 일삼아야 한다. 이것이 ‘주목경제’이다. 물론 정당한 수법에 의해 주목을 받아 명성을 얻고 부를 쌓는 사람이 있겠지만 극히 소수일 것이다. 『프로보커터』에 등장하는 ‘우파 코인’ ‘폐미 코인’ ‘주목경제’ 등 이 세 가지 키워드를 접하고 나서 이를 힌트로 나는 ‘조선족코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게 되었던 것이다. ‘조선족코인’이란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가상화폐 코인에 투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조선족을 키워드로 혹은 조선족을 소재로 영화나 드라마작품 혹은 방송프로그램을 만들거나 기사를 작성하면 사회적인 주목을 받고 따라서 수익성이 생기는 현상을 지칭하고자 하는 뜻으로 이해하기 바란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방송, 신문, 연구소, 다큐창작소, 연극창작소, 석·박사 수료 과정 대학원생들 등 수많은 기관과 개인의 인터뷰에 응할 때면 ‘왜 한국인은 조선족 동포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있는지?’ 다시 말하자면 ‘한국인이 조선족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 한국인이 조선족을 혐오하고 차별하고 무시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정부정책제도의 문제도 있고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고 깔보는 이유도 있겠고, 전통적인 양반과 상놈의 차별문화 이유도 있을 것이고 등등의 이유가 수두룩하다. 나는 처음 몇 년 동안에는 마이너리티란 어느 나라에서든 차별과 무시 받기 마련이고 세월이 약이라고 시간이 흐르면, 조선족사회 경제수준과 문화수준이 상승하면 자연적으로 해결되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생각은 유치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최근 몇 년 동안 심심히 느끼고 있다. 그렇다며 한국인이 조선족을 혐오하고 차별하고 무시하는 문제는 조만간 해결이 안 되고 장기적인 현상으로 흘러 갈 것인데 여기서 한 가지 이유만 중점적으로 논의해보겠다. 인간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하려고 하는 성향이 짙다.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도 마찬가지다. 영국이 지구촌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식민지 개척에 나설 때 앵글로 색슨 민족의 우월성을 ‘무기’로 삼았다. 앵글로 색슨 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하려면 자기네보다 못한 민족 혹은 국가 집단을 타자로 설정해야 한다. 그 타자의 타깃이 처음에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였다. 일본도 한반도 침략과 대륙침략에 나서면서 한반도와 중국을 타자의 타깃으로 삼았다. 반도 사람을 낙후하고 가난하다는 뉘앙스가 내포된 조센징이라 부르고 중국인을 동아병부(東亞病夫)부르면서 야마토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것으로 침략행위를 정당화하는 작업을 벌렸다. 히틀러는 유태인을 타깃으로 삼았고.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남의 침략을 받아만 왔을 뿐 남을 침략해본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래서 남을 타자화하는 타깃으로 삼아본 적이 없다. 타자화하는 타깃을 외부에 돌릴 수 없었으니 내부에서 타깃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즉 내부에서 자기보다 신분이 낮거나 혹은 자기보다 가난하고 못 사는 개인 혹은 집단을 타깃으로 삼아 타자화하여 혐오하고 차별하고 기시하고 무시하고 괴롭혔던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특히 남북분단 이후 남한은 북한을 타깃으로 타자화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남이 북을 타자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즉 나라적인 타깃은 될 수 있으나 개개인의 생활 정서상의 타깃은 될 수가 없었다. 왜냐? 서로 얼굴을 맞대고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형제간에도 만날 수 없으니 당연히 차별하고 무시하고 말 것 없었다. 이런 와중에 올림픽을 계기로 외국인이 한국에 정착하고 결혼이민자가 늘어나고 게다가 1992년 한중수교를 계기로 대량으로 밀려온 조선족집단을 가장 좋은 타깃으로 삼게 되었던 것이다. 2010년 이후 재한조선족사회가 한국에서 장기적인 체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하자 한국인은 이들을 자신들의 밥그릇을 빼앗는 이방인으로 취급하면서 비난과 공격을 하기 시작하였다. 있는 그대로 비난하고 공격하면 모를까, 자극적인 도발로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데 앞장 선 것이 바로 한국 언론이다. 기자들은 팩트와 거리가 먼 가짜뉴스를 생산한 것은 물론이고 공영방송인 KBS마저 조선족을 범죄 집단으로 비방하는 보이스피싱을 주제로 한 ‘황해’라는 개그프로그램을 일 년 넘게 지겹도록 방송하여 한국인의 심리에 조선족은 범죄 집단이라는 인상을 뼛속까지 각인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 이웃나라인 일본의 NHK나 중국의 CCTV는 자민족 약소 집단을 KBS처럼 범죄 집단으로 비방하지 않는다. 영화계는 스토리 소재 찾기 쉬운 것이 바로 조선족을 타깃으로 삼는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영화 <청년경찰>의 김주환 감독은 조선족을 타깃으로 소재로 삼은 이유에 대해 냉전시대에 미국 할리우드에서 소련을 적으로 소재로 한 영화가 많았다. 조선족을 영화 소재로 한 이유를 이런 맥락으로 이해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이 양대 적국이었다. 이런 맥락으로 이해한다면 조선족은 한국인의 최대 적이 된다는 것인가? 영화 ‘청년경찰’을 비롯해 ‘범죄도시’라든가 그 외에 수많은 조선족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졌고 드라마들도 경쟁하다시피 조선족을 소재로 하는 바람이 불었는데 대체적으로 조선족을 살인, 청부살인, 장기밀매, 보이스피싱, 폭력 등 강력범죄 조직으로 매도하는 것이 주 내용으로 다뤄지고 있다. 이러한 자극적인 도발행위를 다룸으로써 이를 통해 경제적인 수익을 챙기는 것이 바로 ‘프로보커터’들이다. 즉 ‘조선족 코인’을 이용하는 ‘프로보커터’들이다. 2020년 4.15총선을 눈앞에 두고 터진 이른바 ‘조선족게이트’와 ‘중국게이트’ 사건도 역시 ‘프로보커터’의 소행이고 정치판도 뒤질세라 ‘조선족 코인’을 이용하는 ‘프로보커터’들이 속출하고 있다. ‘조선족 코인’을 이용하는 ‘프로보커터’들이 당분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이들이 혐오와 차별을 선도하고 조장함에 따라 조선족사회는 앞으로 일정기간 계속 혐오와 차별을 받으면서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니 참으로 암울하고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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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14
  • 조국은 문재인 정권의 주공?
    ●김정룡(多가치 포럼 위원장) 민주당과 청와대는 4.7보궐선거 참패의 데미지가 치명적이다. 순간 된 매를 맞아 어찌할 바를 몰라 멍하니 있을 때 순발력이 있는 80여 명의 여당 초선의원들이 데미지를 안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조목조목 짚어서 반성문을 냈다. 그런데 바닥까지 추락한 당을 추슬러보려는 순수한 동기로 출발한 초선의원들의 반성이 외려 자신들이 큰 데미지를 입게 생겼다. 조국사태 때문이다. 문재인 열렬 지지자, 이른바 강성 문파들이 조국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초선의원들을 향해 막말에 상욕까지 해가며 당을 떠나라고 협박하고 심지어 적을 대하듯 다섯 명을 지칭하여 ‘오적(五賊)’이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고 있다. 하루 수백 통에 달하는 메시지 발신자와 내용을 일일이 확인할 순 없지만 육두문자나 성희롱은 부지기수고, 심한 경우 가정사나 가족의 장애까지 들먹이며 악담을 퍼붓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진 의원은 “역사적으로 강성 지지자들이 이렇게까지 한 경우는 없었다."며 "꼬리가, 아니 깃털이 몸통을 흔들게 되면서 당이 선거 이후에도 반성할 기회를 잃게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하여 여당 내에서 쓴 소리 잘하는 조응천 의원이 4월 13일 의미심장하고 심사숙고할 만한 발언을 했다. “조국사태는 보수 탄핵 같이 장기적으로 진보의 발목 잡을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다.” 진보진영의 이러한 혼란스런 ‘추태’를 지켜보던 2030젊은이들이 ‘왜 조국이 그토록 중요한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왜 조국이 문재인 정권에게 있어서 그토록 중요한 인물인지? 이에 관하여 필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에서 답을 제시해보려고 한다. 하나는 역사적으로 흘러온 유교적인 현인정치 인사시스템에서 문제점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보진영의 강성지지자들의 종교가 아닌 종교적인 신앙 심리에서 찾으려 한다. 유교적인 현인정치 인사시스템이란 선비 중에서 뛰어난 자를 고위관료로 등용하는 인재중용시스템이다. 동양역사에서 언제부터 유교적인 현인정치시스템이 시작되었나? 주나라 때 선비가 하나의 계급으로 역사무대에 등장함에 따라 시작되었고, 주공 이후 특히 춘추시대에 이르러 각 제후국들은 선비를 중용하는 바람이 불었고 이때부터 선비현인정치 인사시스템이 본격적으로 역사무대에 등장했다. 선비를 ‘사(士)’라고 하는데 ‘사’는 주나라 천자, 제후, 대부, 사, 서민 등 다섯 계급 중에서 아래로 두 번째에 속했다. 서민은 백성이니 ‘사’는 엘리트층에서 말단 계급이었다. ‘사’는 비록 계급은 낮은 편이지만 취직에 있어서 유동성이 강해 대부에게 중용되거나 제후국에서 각 부처의 장·차관은 물론 재상자리까지 쉽게 오르는 등 하루아침에 벼락출세할 수 있었다. 유가의 이상인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 선비가 공부를 통해 수양을 닦아서 대부를 도와 제가를 하고, 제후를 도와 나라를 다스리고, 천자를 도와 천하를 태평하게 한다는 뜻이다. 『한비자』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강대한 초나라 한 선비가 쇠약한연(燕)나라가 걱정되어 연의 재상에게 편지를 보내게 되었다. 한참 편지를 진지하게 쓰고 있는데 날이 어두워지자 하인에게 촛불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선비는 잠시 집중을 잃었는지 그만 편지에 ‘거촉(擧燭)’이란 두 글자를 써넣었다. 편지를 받아 본 연나라 재상은 ‘거촉’의 의미를 진지하게 연구한 끝에 자기 나름대로 ‘어두운 세력을 몰아내고 현인을 등용하라’는 뜻으로 이해하였고 이를 왕에게 보고했다. 연나라 왕은 과연 현인을 등용했고 그 결과는 나라가 잘 다스려졌다고 한다. 한비자는 이 이야기를 본래의 뜻을 떠난 오해의 사건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한편으로는 당시 현인정치 인사시스템이 활발했다는 사실을 밝히려는 의도로 생겨났고 전해온 것이 아닌가 싶다. 춘추시대에 이르러 각 제후국들이 패권을 다투려고 선비를 애지중지 받들었으며 선비 중 뛰어난 현인들은 왕을 우습게 여길 정도로 높은 대우와 예우를 받았다. 전국시대에는 이런 기류가 더욱 농후해졌다. 유가는 명사, 도가는 은사, 법가는 모사라고 정리한다면 전국시대 말기, 유가의 명사인 현인들과 도가의 은사들은 찬밥신세였고 간혹 그들을 중용한 나라들은 실패하여 법가의 모사들을 중용한 진나라에게 모두 먹히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법가를 중용하여 천하통일이라는 위대한 대업을 이뤄냈고 천년만년 영원하리라던 진나라는 2세를 넘기지 못하고 15년 만에 홀딱 망해버렸다. 중국 23개 왕조역사에서 가장 단명이었다. 진의 뒤를 이은 한고조 유방은 천신만고 끝에 나라를 세웠으나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법가의 설계도에 따라 군·현제를 실시하자니 단명인 진나라 전철을 밟을 것 같고, 그렇다고 유가의 패턴으로 이뤄졌던 주나라 봉건제로 다시 돌아갈 순 없지 않느냐? 결국 수도권인 경기지역은 군·현제를, 각 지방은 제후를 세우는 봉건제를 실시하였고 통치무기는 유가도 아니고 법가도 아닌 속박이 없이 스스로 그렇게 맡겨서 돌아가게 하는 도가의 무위자연론이었다. 백성들이 자유로운 세상을 만나 신나게 일한 덕분에 곡식이 곳간에 넘쳐났고 서로 다툼이 없는 태평성세를 맞았던 것이다. 화무십일홍이라더니 한나라 초기 좋았던 세상이 오래가지 못했다. 문제는 너무 느슨한 통치는 사람들의 정신상태가 느슨해져 기강이 문란하고 국가는 강력한 힘을 가질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전반 사회기강이 바로 서고 나라가 힘을 갖게 할 수 있을까? 이때 눈치 구단인 동중서(董仲舒)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한 무제를 찾아가 역사를 바꾸는 거대한 흥정을 한다. “유가를 다시 살리고 선비(유생)들을 관료로 전면 등용하십시오. 그래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고 유씨 왕조는 오랫동안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OK!” 한 무제는 동중서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유생을 관료사회에 전면 배치한다. 선비들이 살판났다. 한 무제는 관료로 써먹을 유생을 배출하는 태학을 세운다. 후한에 이르면 유교가 뿌리를 내려 낙양의 태학 학생은 3만 명에 달했고, 태학의 건물도 여러 번 증축되어 말기에는 24동에 1,850개의 교실을 갖게 되었다. 아마 요즘 지구촌의 지식분야의 최대 상징인 하버드를 훨씬 능가하는 규모였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지방에서도 각각 사숙이 만들어져 이름 있는 학자를 스승으로 하는 동문의 학생들이 배출되었다. 동중서와 한 무제의 주거니 받거니 하는 흥정에 의해 선비를 관료로 전면 등용하는 유교적인 현인정치 인사시스템이 청나라 말기까지 이어진다.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때에 중앙 귀족 자제에게 경학, 문학 따위를 가르치던 국립 교육 기관을 설치하였다. 고려 인종 때에 국자감을 설치하여 고급 벼슬아치의 자제들에게 유가 경전인 사서오경을 가르쳤다. 1308년에 성균감을 성균관으로 바꾼 최고 국립교육기관에서 역시 유학교육이 중점이었고 고려 말기에 이르러 정몽주와 정도전 같은 뛰어난 학자를 배출하여 정계를 흔드는 거목으로 역할 한다. 정도전은 이성계에게 있어서 선비 현인정치 모델이었고 중국 주나라 주공에 비견할 만한 인물이었다. 그 후 조선조 500년 동안 선비가 관료사회에 등용되는 유교적인 현인정치 인사시스템이 지속되어 왔던 것이다. 중국과 한국은 같은 유교문화권에 속한다. 유교적인 현인정치가 똑 같이 근대시기까지 유지되어 오다가 중국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폐지한데 비해 한국은 아직도 유교적인 현인정치 인사시스템을 그대로 시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서 교수와 변호사가 고위관료로 직행하고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현시대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매우 특이한 사례이다. 현재도 진행형인 조국사태의 논란에 대해 말하자면 조국의 정체성은 문재인의 뒤를 이어 노무현의 유업을 계승하는 사명을 지닌 인물이다. 노무현의 숙원사업이었던 검찰개혁을 문재인이 바통을 이어받아 역시 가장 야심찬 프로젝트로 추진하려고 했는데 이 역사적인 사명을 완수할 인물로서 바로 조국이 선택받았던 것이다. ‘검찰개혁의 대명사’ 이것이 조국에게 붙여진 ‘오사모(烏紗帽)’이다. 조국의 이 ‘오사모’는 조국이 선비 중 으뜸의 현인이라는 의미를 강력하게 지니고 있다. 문재인 정권에게 그렇고 강성 문파들에게도 그렇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 문재인 정권과 강성 문파들은 조국을 주나라의 치국시스템을 창안해낸 주공처럼 대한민국 검찰역사를 바꿀 인물로 강력한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토록 굳게 믿었던 ‘현인 조국’이 가족이 탈탈 털리는 사태가 벌어지자 문재인 정권과 강성 문파들은 도무지 견뎌 낼 수가 없어 분노에 가득 차 펄쩍 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강성 문파들은 서초거리에서 데모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장장 1년이란 시간을 끌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국사태는 문재인 정권에게 있어서 현인 중 현인으로서 마치 주공에 버금가는 조국이 아니면 검찰개혁을 완수할 수 없을 것처럼 국민에게 비쳐졌기 때문에 오늘 날까지도 여전히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현대사에서 ‘두 대통령 종교’가 생겨났는데 하나는 ‘박정희 종교’이고, 다른 하나는 ‘노무현 종교’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것은 ‘박정희 종교’ 덕분이고 박근혜가 탄핵되자 광화문에 나선 이른바 태극기 부대가 바로 ‘박정희 종교’ 독실한 신도들이다. ‘박정희 종교’와 대척점에 있는 것이 바로 ‘노무현 종교’인데 그 신도들이 현재 강성문파들이다. 이들은 노무현이 사라지고 문재인은 곧 5년 임기를 마치면 정계를 은퇴할 것이니 조국을 정신지주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누구든 조국을 건드리면 마치 자기네 조상을 욕보이는 것처럼 간주하고 도저히 용납 못하고 곧 공격적인 행동에 나선다.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조국사태 같은 정치파문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유교적인 현인정치 인사시스템을 폐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 제2, 제3의 조국사태가 벌어질 것이며 사회는 내편 네편 가르기로 크게 혼란에 빠져들 것이다. 한편 조국과 같은 선비를 고위관료로 중용하는 유교적인 현인정치 인사시스템이 대한민국 발전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는 폐단에 관해서 다음호에 논의를 이어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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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04
  • 중·미 경쟁 속 한국 외교의 헤지(对冲) 노선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12일, 중국 신화통신은 중미 경쟁 속 한국 외교의 헤지 노선(履冰外交:韩国在中美竞争之下的对冲路线)’란 제목으로 된 다롄 외국어학원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이며 동북아 연구센터 연구원인 루핑(吕平)의 기고문을 실었다. 다음은 기고문 전문이다. '달걀 세 개 위에서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은 미묘한 구도에서 재롱을 부릴 수 있는 춤꾼들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이는 현재 한반도의 지도자들을 놓고 볼 때 해당 지역의 권력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해야 힘의 여유도 생긴다는 말로 되고 있다. 근대 한반도 역사상 강대국 사이를 교묘하게 오가며 자국의 기본권을 유지한 사람은 아마도 민비가 아니었던가 생각하게 된다. 민비는 먼저 일본에 달라붙었다가 후에는 청 왕조에 의거했으며 청일 전쟁 후에는 또 러시아와 비밀리에 접촉했다. 결국 일본의 비위를 건드리는 길을 선택해 비참하게 죽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이는 각국과 모두 사이좋게 보내려면 그만큼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100여 년래 한반도는 줄곧 대국 경쟁 사이에 있었다. 처음에는 일본의 식민통치 하에 있었고 전쟁 후에는 각자의 점령군에 의해 민족이 분열되었으며 후에는 한국이 일본과 수교하며 ‘화해’는 했었지만 일본한테 당한 민족의 쓰라림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냉전 결속 전후를 계기로 한국의 국제 활무대는 전례 없는 진전을 가져왔다. 구소련과 중국과의 수교를 통하여 한국은 동북아 지역에서 ‘가교’ 역할을 하면서 무역 왕래로 영토가 협소하고 인구 규모가 제한적인 불리한 조건을 돌려세웠다. 또한 유럽연합, 미국과 중국 등 글로벌 3대 경제체계와 선후로 자유무역 협정를 맺으면서 일약 세계 10대 경제 체 반열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 뒤 중국과 미국 간의 경제구도가 형성되면서 한국이 갖고 있던 기존의 활무대가 크게 위축 받게 되었고 그만큼 국제 환경도 더욱 복잡하게 되었다. 2020년의 미국 대선은 한국 각계로 하여금 한숨 돌리게 만들었고 바이든의 당선은 ‘트럼프 드림’의 종말을 의미했다. 지난 4년래 트럼프는 선후로 한미 자유무역 협정를 수정했고 주한미군의 방위비 비율을 크게 높이려고 시도하는 등 의제로 한국으로 하여금 난감하게 하였으며 북한과 대화하는 것 외에는 미국과 한국이 호흡을 함께 하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 정부와 마주할 때의 난감 정도는 설명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알 수 있었다. 총체적으로 볼 때 현재 한국 국내는 바이든의 집정에 대해 아주 정면적인 태도이다. 대체적으로 오바마 정부 때의 동맹과 규칙을 중시하고 다자주의로 글로벌 문제를 해결하려는 외교 노선을 실행하던 과거로 다시 돌아온 듯한 느낌이다. 물론 바이든 행정부가 집권 후 신속하게 동맹관계를 수복하는 목적은 급속도로 굴기하는 중국을 겨냥하는 것이 틀림없으며 이는 한국 외교에 새로운 난 제 거리로 되고 있다. 일찍 미국 대선 기간 바이든은 의도적으로 많은 전 오바마 행정부 성원들을 선거인단에 가입시켰으며 아울러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의 요구를 무시하고 파트너를 쥐어짜는 것에 대한 비난을 통해 미국 내 건제파 엘리트(建制派精英)들과 연대함으로써 집권 후 대중 포위망을 빠르게 완성할 수 있는 전략적 포석을 마련했다. 국무장관 브린켄, 국방부 장관 오스틴, 국가안보보좌관 설리번은 여러 나라를 방문하고 미국, 일본, 인도와 호주 등 4개국 체제를 구축하여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에 압력을 가하기로 했으며 유럽연합(EU)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추진하여 EU에 대한 투자협정 발효를 연기할 것을 요구하는 '5안(眼)연맹'의 활동을 활발히 벌여 눈길을 끌었다. 아울러 이 활동의 진척 중 한국은 미국의 전략포치에서 중요한 작용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우선 미국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중국과 선진국 사이의 연계를 제한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통신기술 협력 분야에서 그랬다. 한국은 세계에서 5G 통신, 조선 등 산업에서 중국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공업화 실체로써 미국에 얼마든지 중국제 ‘대체’ 상품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음, 중국의 제조업과 큰 연관을 맺고 있으면서도 미국의 동맹이기도 한 한국은 미국의 엘리트들이 보기에 중국과 한국의 산업협력에 제한을 가하는 것으로 자신의 기량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동북아 대륙에서 미국의 유일한 동맹으로 황해 일대에서 미군과 필요한 협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이 중국과 북한을 근접 압박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존재이다. 이를 위해 한국의 전략적 역할이 바이든 정부를 위해 ‘재발견’이 될 수 있었다. 이로써 외교 및 국방장관의 ‘2+2’ 회담을 계기로 미국의 새 정부가 한국과의 고위급 접촉이 급물살을 타면서 표류하던 한·미·일 3각 협력체제 복원까지 전개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한편 한국으로 놓고 말하면 ‘사드 사건’의 충격은 완전히 가셔지지 않았다. 한국은 미국과의 공조를 강화해 주변국과 대국(大國) 사이의 게임 카드를 늘려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한국이 완전히 미국 편에 기운다면 중한 간 금방 회복되기 시작한 신뢰 회복에 영향을 미쳐 양국 경제협력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것도 불 보듯 뻔한 것이다. 한 시기 한국은 미국을 위해 ‘화중 취편(火中取栗)’를 시도했으나 결국 돌아온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사드 추가 배치 비용 및 기타 방위비 인상 등 ‘협박’을 해온 것이다. 이를 감안해 현재 문재인 정부는 중국, 미국과의 공조를 동시에 강화하는 ‘헤지(对冲)’ 노선으로 중미의 전략 경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얼마 전 정의용 한국 외교장관이 샤먼(厦门)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 양국의 코로나19 시대의 전방위 협력을 모색했고 이에 앞서 서훈 한국 국가안보실장이 워싱턴에서 설리번 미 국가 안보보좌관을 만나 한미일 공조의 전략적 가치에 대해 논하기도 했다. 한국 스스로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차원에서 보면 중미와의 관계를 융통성 있게 잘 처리하는 것은 양강(兩强)의 경쟁 불확실성을 피할 수 있는 기본 전제이겠으나 이는 마치 살얼음 위에서 안전 통로를 찾는 것처럼 난이도가 크다. 첫째로 ‘헤지’ 노선의 외교는 관련 당사국들이 오랫동안 중립에 가까운 외교적 입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방관하겠는가 하는 것이 의문이고 또 과연 한국 국내에서 이 노선이 장기적으로 관철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외교의 흐름은 일관되게 여야 간 논란의 대상이었고 특히 ‘이데올로기(意识形态)’에 대한 한국 보수 세력의 편견과 중국에 대한 불신감으로 이는 사드 사태 이후 한국 민간이 중국을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한 것과도 서로 결합된 것이다. 현재 문재인 정부의 대중국 우호적 입장을 이끌어낼 민심의 기반은 아직 더 다져져야 한다. 이번에 여권이 서울과 부산 시장 보궐선거에서 패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이른바 ‘사대주의’, ‘종북 외교’에 대한 보수 세력의 비난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이 높아져 한국 정부의 대중국 우호 유지가 보다 어려워진 상황이다. 둘째로 한국에 대한 바이든 정부의 ‘우호적’ 자세가 장기적으로 유지될지도 불확실한 것이다. 미국 민주당 정부가 동맹 시스템을 재가동한 것은 중국에 대한 규제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동맹의 역량을 총동원하려는 의도로도 보이며 한국이 대중국 정책에 있어서 미국과 ‘상향적’ 입장을 보이지 않으면 미국 선의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 집권 기간에도 강제의 방식으로 한국에 향해 무조건 미국과 가까이 다가오기를 촉구하고 한일 정보 공유 등의 문제에 대해 협정을 타결시켰다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국은 각종 협력 체제를 재개하면서 시종 동맹국의 대중국 규제 참여가 제공될 수 있는 ‘자원 지원’을 명확히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다가는 미국에 유익한 일만 해주고 돈 한 푼 벌지 못하는 신세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행운스러운 것은 중국은 한국 정부의 기본 외교노선을 총체적으로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문재인 대통령 집권 기간 중한 관계 회복을 추진하였고 한반도 평화구축에 기여한 점도 고무적이다. 중국은 한국을 비롯한 중소국가들이 대국의 경쟁과 거리를 두려고 하는 심리도 이해하며 각국의 독자적 외교노선을 인정하고 있다. 하다면 한국 측도 중한 양국의 우호의 토대를 다지고 이해와 신뢰를 증진해 코로나19 시대에 양국이 함께 협력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데 힘써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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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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