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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전주국제영화제 정준호-민성욱 공동집행위원장 투톱체제 성공을 바라며
    독립영화의 요람 전주국제영화제가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로 전환해 정체성 확립과 대중성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지 관심을 받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위원장 우범기 전주시장)는 지난 14일 이사회에서 민성욱 부집행위원장과 정준호 영화배우를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의결했고, 지난 26일 조직위원장 우범기 전주시장은 시장실에서 위촉장을 전달했다. 마력은 동력의 단위로 높을수록 좋다. 이번 쌍두마차 체제가 앞으로 3년 동안 시너지 효과를 일궈낼 것으로 기대된다. 백제예술대학교 방송연예과 교수인 민성욱 신임 공동집행위원장은 전주국제영화제 출범부터 조직위의 사무국장 및 부집행위원장을 역임한 '지킴이'이고, 정준호 신임 집행위원장은 높은 인지도를 가진 대중성을 확보한 영화배우이기 때문. 어떤 조직이나 더 큰 발전과 생존을 위한 변화와 혁신이 요구되는 시점이 있다. 세계 초일류 전자제품 회사로 대한민국을 빛내는 삼성이 만일 제일제당 시절처럼 사카린을 밀수해 설탕을 팔던 그대로 운영되고 있다면 지금의 영광도 없었을 것이다. 2020년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는 비경쟁 위주로 실시됐고 올해 2022년 23회 영화제는 국제경쟁, 한국경쟁, 한국단편경쟁, 특별부문(한국 장편 다큐멘터리, 지역공모작품, 비경쟁 아시아 영화)로 진행되며 업그레이드 됐다. 2023년 24회부터 3년간 시행될 공동집행위원장 체제가 기존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보다 더 대중성을 일으켜 더욱 큰 소통을 통해 영화계 발전과 주최지인 전주 지역발전에 더 크게 기여하는 영광이 실현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쌍두마차 체제가 된 전주국제영화제는 전주시민의 선택을 받은 우범기 시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이끄는 마차다. 우 조직위원장이 전주시 발전을 위한 고뇌 끝에 내놓은 묘수라고 풀이된다. 시장은 시민의 행복과 시의 발전을 도모하는 자리기 때문이다. 공동집행위원장 체제에 대해 기대가 큰 반면에 걱정과 반감도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14일 이사회에서 공동집행위원장 체제가 수립되자, 권해효 배우, 방은진·한승룡 감독이 이사직을 사퇴했다. 이사회에서 자신의 의견과 다르게 의결되었다고 사퇴하는 것이 영화제에 대한 진정성일 수도 있지만 무책임하게 보일 수도 있는 지점이다. 고 자니윤(고 윤종승) 코미디언은 2013년 2월28일 해외동포들과 판문점을 방문한 후 가진 뒷풀이에서 "한국 사람들은 너무 똑똑해요.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이XX 안돼, 저XX 안돼 하는거에요. 일을 해보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미국에서 한국계 코미디언으로 성공하고 그의 인프라를 총동원해 조국 대한민국 관광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싶었으나 좌절된데 대한 의견으로 들렸다. 대한민국은 625전쟁 후 폐허에서 일어나 세계 경제 10대 강국이 되었고 민주주의를 이루어낸 나라다. 지난 80년간 대한민국이 변화가 없었다면 우리 국민들은 헐벗고 굶주리고 억압속에서 지옥살이를 하고 있었을 게 자명하다.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는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이사회에서 결정된 사안이다. 임기는 3년이다. 3년간 응원하고 3년 후 큰 성공과 발전을 이루면 박수를 치고, 변화의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때 가서 비판해도 늦지 않다. 한국언론인연대 박상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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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30
  • "일본 Z세대 중국에 호감" 중국 호감도 세대별로 다른 원인
    ●오카다 미츠루(일본 저널리스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7일 방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3년 만에 처음으로 중·일 정상회담을 갖고 악화된 양국 관계를 '재조정'하기 시작했다. 기시다는 대중 관계 개선에서 반중 여론과 대중 강경 자민당 우파의 제약을 받고 있지만 반중 여론을 거론하면 일본의 Z세대(18~29세)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40% 이상으로 다른 연령층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Z세대의 정치적 의지가 선거의 키를 쥐고 있는 세계적 흐름을 보면 '반중 여론'과 '우파'에만 의존하는 기시다 외교가 위태롭다. 45분 동안 진행된 이번 일-중 정상회담은 3시간여에 걸친 중-미 정상회담에 비해 일본의 대중국 중요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일·중 정상은 회담에서 국방부 해상 및 항공 연락 메커니즘의 직통 전화선 조기 개통, 새로운 중일 고위급 경제 대화의 조기 개최, 새로운 중일 고위급 문화교류 협의 메커니즘 회의 조기 개최 등 몇 가지 공감대를 형성했다. 향후 중일관계 개선의 지표 중 하나로 정상 간 상호 방문을 실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의 대중 관계 개선의 한 가지 저항은 '반중(反中)' 여론 고조다. 일본의 대중(對中) 인식 악화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각부가 매년 발표하는 '외교에 관한 여론조사'에는 흥미로운 수치가 나온다. 예를 들어 지난 1월 발표된 조사에서 응답자의 20.66%가 중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지난해보다 1.4% 증가)고 답했다.그러나 연령별로는 Z세대 중 중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는 비율이 41.6%로 전체보다 배 이상 많았다. 60~69세 13.4%, 70세 이상 13.2%에 비해 Z세대는 중국에 대한 친근감이 높다. 그렇다면 왜 연령대에 따라 중국에 대한 태도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분석하고 싶다. 나는 젊었을 때(저자는 1948년생) 중국의 사회주의에 대한 동경심을 갖고 있었고, 일본이 침략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속죄의식을 갖고 있었다. 중국이라는 '타자' 위에 자신의 생각을 투영해 기대를 부풀렸다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일본이나 구미의 통치체계를 중국의 정치와 사회에 투영해 일본이나 구미의 기준으로 중국을 관찰하고 판단한다. 요즘 60~70대 일본인들이 중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그러나 Z세대는 생각이 다르다. 내가 가르친 대학생의 경우 태어나기도 전에 일본 경제가 침체에 빠졌고, 일본 경제의 고도성장기를 경험하지 못했다. 이들이 철들었을 때 중국은 이미 미국을 추격하는 대국이 됐고 IT 기술에서 일본을 앞섰으며 애니메이션과 게임 품질에서도 일본을 추월하고 있다. 또 Z세대가 다니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많은 곳에서 중국 유학생과 접촉할 기회가 종종 있다. 다시 말해 Z세대는 중국을 일종의 '대등한'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특별한 생각이 없기 때문에 특별한 환상은 없다.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의 버팀목이 될 때 일본인 전체의 대중국 관념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쇠락이라는 역사적 변화, '탈아입구((脫亞入歐)'의식을 심리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대가 '2선 후퇴'하면 일본의 '반중' 여론도 달라질 것이다. 기시다 정권도 언제까지 반중 익찬 여론에 의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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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3
  • 강강술래는 야합(野合)의 축제였다
    한국국어사전은 강강술래와 강강수월래를 같은 말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강강술래는 한문 표기가 없고 강강수월래를 한문으로 ‘强羌水越來’로 표기하고 있다. 强은 강하다는 뜻이고, 羌(중국서부에서 양을 토템으로 삼은 민족이며 세력이 강해 늘 중원을 위협하여 한족정권은 그들을 오랑캐로 취급해왔음)은 오랑캐라는 의미이다. ‘强羌水越來’는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는 뜻이다. 필자는 한국국어학자 어르신들에게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즉 강강술래는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온 민속인데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오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아무런 연관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는 걸까? 답이 아닌 답이 하나 있긴 하다. 국어학자들이 강강술래를 한문으로 표기할 방법을 찾지 못해 본래 4음절인 강강술래를 음악의 필요에 따라 5음절로 늘린 강강수월래를 말도 안 되는 ‘强羌水越來’로 표기했을 것이다. 이런 억지춘향 표기현상을 가리켜 사자성어로 견강부회(牽强附會)라고 말한다. 강강술래를 ‘强羌水越來’로 표기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설명하려면 먼저 강강술래의 어원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강강은 본래 감감이다. 감은 감다, 감돌다 등등의 의미이며 감감은 감의 강조이다. 강강술래는 원을 그리며 빙빙 돌아가는 놀이이기 때문에 본래 감감술래였다. 감감술래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강강술래로 변음 되었던 것이다. 술래는 가운데서 눈에 띠를 두르고 숨은 자를 찾아내는 자를 일컫는 말이다. 한국국어학자들은 술래가 한자어인 순라(巡邏)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데 글쎄 썩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강강술래의 어원을 살펴보았으니 이번에는 강강술래란 도대체 어떤 놀이인지? 알아보자. 강강술래는 본래 순수 우리말이고 그 뜻은 원무를 의미한다는 데 포커스를 맞추고 유래를 찾아야 한다. 원무는 고대사회에 수많은 민족들이 보편적으로 추었던 춤이다.『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에서 저자는 원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영지주의자 예수는 미스테리아 입문식에서 원무를 이용하여 제자들을 이끈다. 그러한 입문식 춤은 이교도 미스테리아 의식에서 두루 나타나는 것이다.” 현대의 한 권위자는 이렇게 말했다. “고대입문식 축제 가운데 춤이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엘리우시스에서의 미스테리아 의식에서 입문식 후보자는 중심에 자리 잡고, 다른 사람들은 둘레에서 춤을 추었다. 그것은 행성과 별들의 궤도를 흉내 낸 것이었다. 미트라스 미스테리아의 의식에서도 미트라스를 상징하는 입문자는 중앙에 자리 잡고, 황도의 12궁을 상징하는 12명이 주위를 돌며 춤을 추었다. <요한행전>에서도 그와 비슷하게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춤을 춘다. 예수가 신호를 보내면 사도들이 신성한 말 ‘아멘’을 읊조린다. 예수는 이러한 ‘원무’를 통해서 ‘수난’을 나타낸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이것을 예수는 ‘신성한 비밀’이라고 부르도록 했다. 원무는 고대사회에 있어서 보편적인 춤이었으나, 그 형식과 내용 및 목적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위의 글에서는 원무가 이교도 입문식과 예수라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양의 원무가 행성과 별의 궤도를 흉내 낸 데서 유래되었다면 동양의 원무는 달을 흉내 낸 데서 유래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달을 흉내 내는 원무를 추는 것을 도월(跳月)놀이라 한다. 민속학자 임동권(任東權) 씨는 고대인들의 도월놀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원시시대에 있어서는 달을 중심으로 하여 행사가 많았다. 상원과 추석이 그러했고 달 밝은 밤이면 모두 모여 유희를 즐긴 것은 우리 조상만이 아니고 지금도 미개사회사회에서는 모두 그렇다. 따라서 옛날 1년 중에서 가장 달 밝은 한가윗날 마을의 소녀나 부인들이 모여 만월과 같은 둥근 원을 그리면서 놀이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때에 노래도 부르며 뛰기도 했을 것이니 강강술래가 임진왜란 때에 비로소 창안된 것이 아니고 그 이전에도 민족전래의 유희로 있었을 가능성이 많다. 강강술래처럼 대대적인 것은 아니나 달밤에 소녀나 소년들이 손을 잡고 뛰며 노는 유희는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그러한 뜻으로 강강술래를 보면 문헌고증을 할 수 없어서 그렇지 함화진(咸和鎭) 씨가 추상한 것처럼 마한 때의 민족유희였을지도 모르며 마한이 아닐지라도 백제 또는 고려시대에 이미 전파되었던 놀이인지도 모르겠다.” 중국소수민족문헌인『묘속기(苗俗記)』에 도월놀이에 관한 기사가 있는바,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른 봄에 남녀가 들판에 모여 배우자를 찾는 것을 이름 지어 ‘도월(跳月)’이라 한다. 정월 초 3일부터 13일까지 모두 도월놀이 기간이다. 13일 도월놀이가 끝나면 남자는 갈대피리를 불면서 앞장서고 여자가 띠를 끌고 뒤따르며 장내를 세 바퀴 돌고나서 손잡고 대나무숲속에 들어가 먼저 야합하는 바, 이름 지어 ‘라양(拉陽)이라 부른다. 그러고 나서 임신되면 시집가고 임신이 안 되면 이듬해에 또 반복해서 도월놀이에 참여한다. 『귀주통지(貴州通志)』에도 위의 기사와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다. “화묘(花苗), 매년 이른 봄에 남녀가 들판에 모이는 것을 ‘도월’이라 부른다. 평평한 곳(平壤)을 택해서 월장(月場)으로 삼는다. 남자가 갈대피리를 불고 여자가 방울을 울리며 빙빙 돌면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면서 하루 종일 즐긴다. 날이 어두워지면 남녀가 서로 짝을 지어 갔다가 날이 밝으면 헤어진다.” “백묘(白苗), 도월놀이 풍습이 화묘와 같다.” 우리는 전라남도 남해안 여러 지방의 강강술래도 역시 묘의 제족(苗之諸族)과 같은 순수한 도월놀이였으며 따라서 강강술래도 역시 청춘남녀들이 야합을 목적으로 한 놀이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인은 야합을 음란행위로 간주하지만 고대인에게 있어서 야합이야말로 자연의 원리에 순응하는 신성한 의무라고 여겼을 것이다. 중국 유명 학자 이중탠 교수는 이것을 ‘이른 새벽 모닥불 축제’라고 표현한다. 중국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위대한 공자님도 그의 부모가 매신을 제사하는 모임에서 만나 야합해서 탄생되었다고 한다. 『조선의 향토오락』에 의하면, 강강술래는 주로 상원과 추석, 즉 만월 시에 진행했다고 한다. 왜 강강술래놀이는 만월 시에 했을까? 중국신화연구자들에 의하면, 달은 여성의 생래규칙과 닮았다고 한다. 달이 이지러지고 차는 것은 여성의 임신현상과 닮았고, 또 여성의 월경주기는 달의 주기와 같다고 한다. 월경, 월신(月信), 월수라고 부르는 것은 달의 규칙과 같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달 속에는 생식을 주관하는 월정(月精)이 있는바, 개구리의 화신인 상아(常娥)가 곧 월정이라고 한다. 만월 시의 달의 모양이 아름다운 것은 달 속에 아름다운 상아가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며, 따라서 상아의 ‘출현’은 곧 인간의 생식을 관장하고 또 인간의 생식력을 왕성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강강술래가 만월 시에 진행된 것은 곧 고대인의 생식숭배의식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강강술래 참여자들이 본래 소년 소녀들이었다가 여자의 중심으로 된 것은 후대에 내려오면서 유교문화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두어 말하자면 강강술래는 순수한 우리말이며 원무를 뜻하며 원무는 곧 도월놀이며 도월놀이는 곧 남녀야합의 놀이었다. 후대에 내려오면서 소위 학자라는 어르신들이 영웅주의사상, 한문숭배사상, 유교사상의 덫에 걸려든 탓에 강강술래의 본래의 모습을 말살시켜 버렸던 것이다. 이는 고대문화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우리민족의 비극이다. 풍류인물이였던 세종대왕이 박연(朴堧)에게 고대로부터 내려온 민속을 채집하여 정리할 것을 부탁해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유생들이 그 귀중한 자료들을 전부 화롯불에 던져버렸다. 결과 오늘날 선조들의 수많은 풍부한 민속 문헌고증이 차단되었다. 그리고 한국인은 다재다난(多災多難) 했던 민족이어서 고유한 민속을 영웅주의에 덧씌워 풀이하다보니 역사가 유구했던 민속의 상한선을 기껏해야 임진왜란시기에 꿰맞추는 경향이 짙다. 이를테면 전라남도 남해안 일대 여러 지방의 고유민속인 강강술래를 임진왜란시기 의병술에 능하고 전쟁에 공이 많았던 이순신 장군이 창안해낸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후세인들이 강강술래놀이를 하는 것은 이순신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한 행사라고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민속학자인 임동권 씨는 1960년대 두 차례나 전라남도 여러 지방을 현지답사 하였는바, 현지고로들은 강강술래를 이순신 장군에 의해 창안되었다고 믿고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김창호(金昌浩), 어석경(魚錫經) 등 학자들도 현지고로들의 말을 믿고 역시 그렇다고 주장했다. 한 가지 미묘한 것은 강강술래의 전파지가 전라남도 남해안 일대로서 이순신 장군의 전적지와 맞물린다는 것이다. 허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강술래는 그 상한선이 마한 혹은 더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결코 이순신 장군이 창안해낸 것이 아니고 그의 공을 기리기 위한 놀이도 아니다. 다만 한 가지 가능성이 있다면 이순신 장군이 고유한 민속놀이를 의병술에 이용했을 것이다. 필자는 이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법무부 귀화시험 교재에 역시 강강술래를 이순신 장군이 창안한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될 이주민들한테 잘못된 역사교육을 시키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한국사회는 쩍하면 중국과 일본을 향해 역사왜곡을 하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는데 자기네들 역사를 자기네들이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으니 얼마나 비극적인가? 김정룡 '多가치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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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12
  • 한중수교 “50년”을 이야기한다
    ● 이 성 (By Star Lee) 오늘은 한중수교 30주년이다. 과거의 30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愛恨情仇(사랑, 원망, 정, 원한)이 뒤섞인 두 연인 간의 멜로드라마와 같았다. 한 때는 서먹서먹했던 맛선 본 선남선녀처럼, 한 때는 애정행각이 지나쳐 주변사람들이 눈쌀을 찌프렸던 연인처럼, 또 한 때는 서로간의 오해와 불만으로 사랑이 식어가며 냉정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커플처럼…. 어느 중국의 외교관이 사석에서 이런 농담을 하였다고 한다. 한국은 중국에 있어 매력적인 애인과도 같아 항상 그립고 가슴이 설레이지만 저 북방에 사는 본처를 생각하면 가까워지기에는 부담스럽고 떨어지려니 애간장이 탄다고 한다. 조금 불편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것이 양국간의 애뜻하고 불편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필자는 한국에서 수십년, 중국에서 수십년 살아오면서 ‘한중수교’라는 멜로 드라마를 본방사수하면서 지켜봤던 사람으로 각별한 애착과 소감이 있다. 열혈 팬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평범한 서민의 시각에서 한중간의 과거 30년 미래 20년을 논하고자 한다. 제1화 1992~2002 연모의 시대 30년전 한중수교가 이뤄졌다. 양국 대중에 있어 40년전 전쟁을 했던 ‘적대국가’, 서로 정체성마저 부정했던 ‘괴뢰정부’와 수교한다는 것은 조금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서먹함과 생소함을 덜하게 했던 것은 88 서울 올림픽과 90 북경 아시안게임이였다. 그 당시에 한중수교가 중국인에 가져다준 가장 큰 변화는 경제도 아니고 문화도 아니였다…스포츠 경기에서 국가명칭이 남조선이 대한민국으로 바뀌였고 중공이 중국으로 바뀌였던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의 신북방정책에 힘입어 중국동포들의 한국 친지방문이 한중교류의 물꼬를 텄으며 뒤따라 한국 제조업 기업의 중국진출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동남아국가에 진출하려면 상당히 많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극복해야 했지만 중국에서 수십년간 정착한 동포들은 한국기업의 중국 진출에 있어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말이 안통해도 현지에서 동포통역, 동포직원을 채용하면 모든 일이 다 순리롭게 풀릴것만 같았고 10억인구 상대로 한사람당 1원만 벌어도 10억원이 벌어진다는 차이나 드림에 벅차 북경, 상하이, 산동성, 요녕성, 강소성, 광동성 등 지역에 줄기차게 태극기를 꽂았다. 시험을 거치지 않고 빽으로 명문대에 입학한 학생이 잔혹한 대학생활을 맞이하게 되는 것처럼…중국진출의 열정과 자신감은 냉혹한 현실속에서 좌절하기 시작하였다. 세계의 역사를 보면 어느 나라도 신하나 내시에게만 의지하는 성군이 없었던 것처럼 언어가 통한다는 이유로 현지 동포직원에게 과도하게 의지하면서 구매관리, 고객관리, 직원관리를 소홀히 하며 많은 기업들의 경영이 난관에 부딪치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는 일부 실패의 요인에만 불과하다. 20년전 어느 삼성출신 중국 주재원이 쓴 책을 본적이 있다..중국에서 실패하지 않는 비법 중에서 1위가 중국여인과 거리를 두라는 것이다. 주색을 삼가라는 말이 당연해 보이지만 이 역시 그 시기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수준을 여실히 들어냈다. 결국 21세기에 들어서서 많은 제조업기업들이 중국을 탈출(심지어 야반도주)하게 되면서 중국 제조업 진출의 열풍은 서서히 저물어갔다. 이로서 제조업이 테마를 이루던 한중간의 사랑 드라마 1화는 막을 내리며 다음의 10년을 그리는 새로운 막이 열렸다. 제2화 2002~2012 동거의 시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제조업의 중국 정복은 순탄하지 않았지만 한중관계는 갈수록 돈독해졌다. 조심스럽게 상대방을 알아가면서 사랑의 싹을 틔우던 연인은 이제 동거를 하기 시작한 것과 같았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10년간의 하드웨어 교류의 시대를 넘어 소프트웨어 교류의 시대가 막을 올렸다. 이때부터 한국음식, 한국문화, 한국패션이 본격적으로 중국에서 대중화되기 시작하였다. 한국 드라마, 한국 음악이 중국에서 서서히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중국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한국은 중국인이 흠모하는 나라가 되였다. 젊은 층은 한국 현대문화의 모든 것을 따라하고 싶어했으며 우호적인 외교관계도 한중양국 국민감정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북경 올림픽 전까지만 해도 경제력이 3~4위에 불과하던 중국이 미래 G2 가 될 것이라는 예측을 과대평가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때만 해도 중국은 일인당 GDP가 3000달러 조금 넘는 빈국이였고 국민들에 있어 국가가 부강해진다는 기대감만 있을 뿐 미국을 도전할 수 있는 초강대 국으로 성장할 것이란 자신감은 아직 턱없이 부족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한국 학생의 중국유학 붐은 최고조에 달았으며 21세기 초반 월드컵 진출, 올림픽 유치, WTO진입 3대호재가 터지면서 “중국이 미래다”라는 여론이 세상을 뒤덮으며 한국 내 중국어 교육기관들은 최대의 호황을 누렸었다. 북경의 HSK학원에는 한국인 수강자들로 북적였으며 모든 중국의 대학교에는 한국인 유학생이 항상 1위를 차지하였다. 중국인의 해외관광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늘어나면서 한국방문 관광객이 100만명을 돌파하기 시작하였고 재한 화교들은 중국과의 혈연적인 연고를 무기로 내세워 중국인 인바운드 여행과 쇼핑을 거의 독식하다시피 하면서 한중 관광산업의 새 시대를 열어갔다. 이 시기는 한중간의 관계가 가장 안정적인 시기였으며 외교관계, 문화교류, 경제교류 모든 면에서 엄청난 변화와 성장을 가져왔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동거를 겪으면서 서로 간의 단점들이 속속히 들어나면서 한중관계는 새로운 양상을 맞이하기 시작하였다. 제3화 2012~2022 모순의 시대 20년간의 동거동락을 겪으며 한중관계는 새로운 시기에 접어들기 시작하였다. 한국에서의 중국열풍도 만만치 않겠지만 중국에서의 한류는 최고조에 달하며 주변국가의 질투를 살 정도로 뜨거웠다. 외교관계 같은 정치적인 요소를 떠나서 대중문화적인 영향력을 봤을 때 한국을 10으로 보면, 미국이 7, 일본은 4, 기타국가 합치면 3이였다. 이때가 한중 양국은 과거 수천년 교류 역사상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된 시기였을 것이다. 지난 역사상 한중관계 가장 가까웠던 시기는 아마 명나라 때였다. 明史를 보면 그때의 한중관계를 이렇게 평가했다 “他國不敢望也”(다른 나라가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밀접했다). 21세기에 들어서 한중관계가 바로 이렇게 “타국불감망야”가 된 것이다. 그러나 중국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物極必反(어떤 사물이든간에 도가 지나치면 그 반대로 바뀐다) 한중관계는 지나친 열정시기를 겪으며 결국 그 반대로 돌변하게 된 것이다. 한중관계는 정치인들과 경제인들만의 파티가 아니라 대중 속에 그 뿌리가 있다. 한중관계의 밀접함은 대중문화에서 여실히 반영 되였다. 중국의 방송을 켜보면 10대 예능프르그램 중 8개 한국 프로그램 포맷을 번안한 것이였다. 한국에서 인기있는 무한도전, 나는 가수다, 복면가왕, 진짜 사나이, 아빠 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온다, 런닝맨, 히든싱어 모두 중국에서 그 모조품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단순 도용이 아니라 대부분 저작권료를 주고 사들인 것이였다) 저자는 이런 광경을 목격하며…드디어 올 것이 온다는 안좋은 예감이 들었다. 한국 방송에서 중국의 예능 포맷이 80% 차지하고 중국 연예인이 한국 드라마 주연들을 독식한다면 한국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결과는 뻔하다…엄청난 후폭풍이 휘몰아치게 되는 것이다...그러한 전략적인 타산이 없이 2020년 마스크 붐 때 너도나도 마스크 사업하듯이 중국의 방송사들은 무분별하게 한국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결국 경착륙이란 국면을 맞이하게 되였다.. 사드사태는 다들 아는 내용이니 여기서 거론안하겠지만. 사드를 빌미로 행해진 한한령은 사드라는 계기를 이용했을 뿐이지 절대로 사드만이 불러온 결과가 아니라고 본다. 외국의 문화가 본국의 문화 발전공간을 무참히 짓밟고 본국 문화의 생존토양을 파괴했을 때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전세계 어느 문화도 한류가 중국에 끼친 영향처럼 큰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아무리 미국이 문화 선진국이라고 해도 영국과 멕시코의 문화를 이처럼 송두리째로 바뀌지는 못했지만 이 밀월기의 한국은 중국에서 그런 것을 이뤄냈다. 이는 칭찬이 아니다…오늘날의 국면을 자초한 도화선이라고 본다. 2016년 6월까지만 해도 태양의 후예를 정점으로 한류는 중국을 점령하면서 문화 식민지를 확장해 나갔다. 그러나 이 과열된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사드’가 그 ‘총알받이’가 된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2016년 7월 사드배치를 발표하면서 중국 정부에 한류를 경착륙시킬 명분을 주었다. 과도한 한류의‘횡포’를 지켜보던 중국 정부는 사드 사태에 대한 1차 타격목표로 한류 문화를 지목하게 되었다. 한중경제교류에 있어 한국문화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중국의 젊은 세대에 미치는 영향은 간과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음으로 부득이 손을 보게 된 것이라고 중국국내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한한령의 실시가 6년 지나면서 중국은 자국문화가 빼앗긴 고지를 되찾으며 포스트 한류시대 중국 본국 문화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주식시장에 청소부 법칙이란 재미있는 룰이 있다. 즉 모 주식을 청소부마저 관심가지고 샀을 땐 그 주식을 과감히 매각해야 한다는 것이다…즉 과열은 과냉을 초래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세번째 10년은 한중관계가 파란만장한 애정 스토리를 전개하는 과정이다. 곧 결혼을 할 것처럼 뜨겁게 사랑하다가 상대방의 단점이 하나 둘씩 보이고 거기에다 양가 부모의 반대, 주변인들의 험담, 자기 정체성의 약화를 겪으며 과연 이런 사랑이 진정으로 행복한지를 느끼게 하는 고비를 겪게 된다. 그 전환점이 사드라는 돌발사태로 인해 발생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계기일뿐 예고된 결과라고 말하고 싶다. 한중관계는 지나칠 정도로 뜨거웠던 것이 문제라고 본다…중국이 소위 혈맹이나 전통우방국가라고 이야기하는 북한, 파키스탄, 라오스 등 국가와의 관계를 보면 한국처럼 가깝게 지낸 적이 없다. 물론 이는 한국의 문화적인 선진성에서 유래되었지만 이러한 과도 밀접한 관계는 서로 간의 기대를 지나치게 부풀리게 되고 판단을 흐트리게 되며 상대방과의 문화적인 차이, 제도적인 차이를 약화시키다가 특정 시기에 특정 계기로 그 모순이 폭발하게 된 것이다. 사드는 한국의 친중파를 피말리고 씨말리게 만들었으며 중국의 민심을 한순간에 떠나게 만들었다. 또한 한국국민도 덩달아 중국을 불신하기 시작하였으며 중국과의 사랑이 결혼대상자에서 그냥 친구로라도 지냈으면 좋겠다는 관계로 강등하게 되었다. 제4화 2022~2032 냉정의 시대 올해가 한중 두 국가의 멜로드라마가 방영 된지 30주년을 맞이하는 시기이다. 공자님은 30이립(三十而立)이라고 이야기하였는데 군자는 서른살이 되면 가정을 이루고 철이 들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30년전 경제적으로 막상막하하던 중국은 이젠 어느덧 한국 경제력의 10배가 된 G2국가가 되었고 중국과 수교하면 큰 이득이 생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이젠 국운을 좌우지할 만큼 중요한 국가관계로 부상하게 되였다. 중국의 속담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三十年河東,三十年河西(삼십년은 하동에서 삼십년은 하서에서). 이제 한중관계는 30년간의 사랑과 원망을 겪으며 성숙된 어른이 된 것이라 본다. 또한 한중관계라는 고정적인 패턴도 이젠 30년의 역사를 겪으며 새로운 30년을 맞이하게 된다. 미래의 한중관계는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 이 글에서 필자는 단순히 한중관계 과거 30년을 돌이켜 보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 20년간 한중관계에 대해서도 전망을 적고자 한다. 30년전 한중 수교당시 한국은 미국의 눈치를 볼 필요없이 자유롭게 중국과의 관계를 정립할 수 있었지만 어느덧 미국과 대등한 체격으로 성장한 중국이 미국의 최대 경쟁자가 되면서 한중관계에 있어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게 되었다. 현재 한중관계는 항상 미중관계, 한미관계라는 변수들을 고려해가면서 대응해나가는 관계로 변모되면서 한국 정부에게 새로운 숙제를 마련하였다. 한중관계의 30년은 사실 두 연인이 맞선을 보면서부터 사랑에 빠지고 동거하고 서로 의심하고 관계가 나빠지는 식상한 멜로드라마의 스토리를 연출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파혼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다시 관계가 좋아질 수 있을까라는 시청자들의 궁금증이 많겠지만 필자는 이제는 과거로 돌아가기 어렵다고 본다…사드문제가 해결되고 양국 국민의 감정이 회복되었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0대부터 시작하여 20대를 겪으며 철없이 사랑에 푹 빠져 정신 못차리던 시기를 넘어서 이젠 성숙해졌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한중양국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서로 다른 가문에서 태어난 연인으로 사랑을 이루기엔 너무나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어찌보면 양국의 관계라는 것은 무거운 결혼보다 서로 애뜻한 정을 주고받는 애인관계가 더 아름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핀란드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어떻게 스웨덴을 평가하냐고 물으니 핀란드 남자는 스웨덴 남자들은 대부분 게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필자가 핀란드 사람은.스웨덴 사람을 좋아하지 않은 것이냐 따지니 하는 말이 “사이좋은 이웃국가가 없잖아요”라고 대답했다. 정말 그런 것인가? 중국의 주변국가 중 중국을 좋아하는 나라는 몇이 되는가? 또한 한국의 이웃국가 중 한국을 좋아하는 나라는 얼마인가? 아마 답은 머리 속에 떠올랐을 것이다. 강대국 속에서 생존과 발존을 모색하는 상황은 21세기 20년대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중국왕조의 전환기에 한반도 왕국이 항상 겪던 일이였다. 한나라와 흉노를 사이 둔 고구려, 고구려와 당나라를 사이 둔 신라, 거란과 송나라를 사이 둔 고려, 원나라와 명나라를 사이 둔 조선, 청나라와 명나라를 사이둔, 조선 고비마다 지혜롭게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전략을 모색하며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사직을 지킨 한반도의 왕국은 이 시대의 미중 양국의 경쟁구도 속에서 슬기롭게 난관을 이겨낼 것이라고 본다. 물론 그 과정이 험난하고 고달프고 마음이 힘들어도 말이다. 그것이 이 반도의 동포들이 회피하기 힘든 숙명일 수 있겠지만 그런 고난 속에서 더 강인해지고 똑똑해지는 법이다…그러한 차원에서 한반도는 중국왕조보다 더 강한 생명력을 가졌었다. 이 10년은 중국이 미국을 초월하여 세계 최대 경제강국으로 부상하는 시기일 것이다. 물론 PPP방식으로는 10년전에 이미 미국을 초과하였지만 허영심이 강한 백인은 실질보다 명목을 더 중요시한다. 그래서 올림픽에서도 자신에게 유리할때는 금메달로 순위 매기지 않고 메달수로 순위를 매긴다. 미쏘 갈등은 백인 내부 이데올로기적인 모순에 불과하다면 미중 갈등은 문명의 시프트를 상징함으로 엄청 신경쓰고 있는 것이다..문제는 이러한 동양 문명의 시프트가 10년 안에 이뤄질 것 같은 두려움에 빠지면서 오늘날의 국제관계를 혼돈에 빠뜨리게 만든 것이다. 서양문명은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겠지만 14억 인구인 중국의 발전 모멘텀을 막기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 있어 설마 중국이 경제적으로 넘버원이 되었다고 하여 엄청난 세계정치경제지형의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한국은 수천년간 겪어왔던 것처럼 세계의 정상으로 복귀한 중국을 맞이하게 될 것이지만 이는 하나의 축복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전세계에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4대 강국이 에워싸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거인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총각이라고 생각하기 보다 여러 미남들에 의해 에워싸인 미인이라 정의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는가? 한국은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 모두에 있어 항상 존중하고 아껴주고 자기 편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국가이다…드라마의 한장면이 떠오른다…어느 남자가 미인을 넋이 빠져 바라보다가 그 여성이 불쑥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시무룩해진 장면… 역시 미인은 싱글일 때가 더 매력적이다.. 정치적인 이야기를 조금 가미하자면 이 시기에 한국은 친미, 친중, 친일을 논하기 보다 모든 사안을 개별적으로 쪼개 국익에 부합되고 대다수 국민의 이익에 부합되고 실보다 득이 더 많은 것만 골라서 사안별로 입장을 취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이유는 “미인은 싱글일 때가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전세계의.미인 선발대회엔 미쓰만 참가할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시기는 또한 포스트 코로나의 시기이다. 포스트 코로나의 최대의 수혜주는 무엇인가? 두말할 것 없이 관광일 것이라 본다. 중국의 코로나 봉쇄가 해소되고 해외 관광이 자유로워지면 해외관광시장은 과거의 5배로 커질 것으로 예상하며 연간 5억명의 중국인이 해외 관광을 나설 것으로 본다. 코로나 기간 동안 힘든 민생을 무엇으로 달랠 것인가? 내부적인 지원책과 개혁만으로는 역부족일 것이다…외부적인 힘을 빌어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것이 답이 아닌가 생각한다. 꿈 같은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2023년 중국관광객 5천만명이 한국 방문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때 되면 한국의 대부분 서비스산업, 상당수 제조업이 혜택을 볼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식어간 모든 상권이 관광산업의 부흥으로 인해 엄청난 호황을 누릴 것이 틀림없다. 중국이 밉든 곱든, 인접국가로서 최대의 고객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 중요한 것은 중국이란 시장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부의 지침대로 움직이는 대형 시장임으로 한중관계의 꽃길 같은 미래만 꿈꿀 것이 아니라 그 꿈이 현실이 되도록 모든 이가 그 밑걸음을 깔아야 한다. 그 사이 맺힌 것도 많고 얽힌 것도 많고 섭섭한 것도 많겠지만…연인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포스트 코로나를 맞이하며 한중 양국이란 연인이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시기이다. 농담하나 하겠다. 오래 전에 헤어진 연인이 전화 올 땐? 정답은 “다단계 영업”이라고 한다….이것이 제 4화의 줄거리이다. 제5화 2032~2042 격변의 시대 2032년의 세상은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 10년후의 세상을 예측하긴 쉽지 않겠지만 현실을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중국의 부상은 모멘텀에서 현실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으며 미국은 여러가지 내부/외부적인 요인으로 말미암아 순탄치 않은 10년을 겪으면서 과거와 같은 영광을 누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북한에 대한 예측은 항상 어긋났음으로 변수가 아닌 그냥 무시해도 좋은 상수로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또한 한국은 일인당 소득이 4만 5천불이상의 선진국으로 도약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한중관계는 10년의 냉정기를 겪으며 새로운 시기에 들어설 것이라 보는데 학계나 정계에서는 여기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사람이 없는 것 같아 좀 안타깝다. 물론 예측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담대한 가정을 전제로 새로운 세상을 분석하며 한중관계를 다시 짚어보고자 한다. 지금 중국은 미국의 압박 속에서 어렵게 생존의 틈을 찾아가고 있는데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바로 반도체이다. 그러나 미국의 봉쇄가 과연 주효한지를 심각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초기에는 중국에 대한 반도체 봉쇄를 통해 중국의 성장을 늦출 수는 있겠지만 중국이란 거대한 공룡의 돌진을 막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10년 후 중국이 만약 반도체의 독립을 이뤘을 때 그때 세계의 패권은 진정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문제는 기술의 초격차를 지향하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미국의 영향 아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오기를 불러일으켜 10년의 시간으로 그 기술격차를 극복했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냐는 고민을 해보았는가? 실제로 지금 중국인 이미 자국기술력으로 7나노 반도체 파운드리를 이뤄냈다. 아직 삼성과 TSMC와 상당한 격차가 있지만 중국 상하이 중심국제반도체 회사의 리더가 바로 TSMC와 삼성의 기술혁신을 이뤄낸 CTO 량멍숭이란 사실이다. 반도체는 하나의 산업기술에 불과하지만 미래 10년 심지어 50년간의 국제관계를 재정립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바로 이런 요소 때문에 미중간의 디커플링이 쉽지가 않고 또한 국제관계의 이합집산이 이뤄지고 있다. 과거 20년간 한국은 항상 중국의 최대 수입국이였으며 중국은 한국의 최대 흑자국이였다. 중국이 미국에서 수천억달러를 벌어오면 거기에 한국이 수백억달러를 인출했던 구도였다. 그러나 올해에 들어서서 한중 교역은 처음 적자로 돌아섰다. 이는 액시던트가 아니라 이제는 자연스러운 모멘텀이라고 본다. 그동안 한국이 중국으로 수출한 제품 중 대다수는 중간재였다. 특히 미국으로 수출하는 비중이 제일 컸다. 그러나 미중갈등으로 인해 미국의 하이테크 중국제품 수입이 줄어들면서 중국의 한국 중간재 수입도 줄게 되었고 중국 자체 생산 원자재의 발전은 한국산의 수요를 감소하게 만들었다. 이런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한국의 산업은 과거의 패턴 그대로 작동하고 있지만 중국은 이미 크게 변하고 있다. 과거 20%이상 차지하던 삼성 핸드폰의 시장점유율은 0.5%로 떨어졌고 인기가 절정에 달하던 현대기아차도 이젠 중국차와 가격을 겨뤄야 하는 현실로 되고 있다. 이마저도 참담한 현실인데 10년 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현시점에서도 중국은 세계 최대의 핸드폰, 배터리, 전기자동차 생산국이다. 이는 이미 양적인 우위를 벗어나 질적인 우위라 내달리고 있다. 그럼 10년 후면…믿고 싶지 않겠지만 중국기업은 중국 방방곳곳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의 악몽이 될 수도 있다. 과거 신발이나 가전처럼 말이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도 아직 초격차를 운운하고 있다. 초격차는 이 10년간은 유효하지만 다음 10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초격차가 무격차가 되면 다음은 뭐로 먹고살 것인가? 전세계 역사상 어느 국가도 이처럼 초고속으로 성장하면서 글로벌 시장을 잠식한 이웃국가를 마주한 사례가 없었다… 중국의 위협은 현실뿐만 아니라 미래까지도 커버될 날이 멀지 않다. 삼성보다 싸고 좋은 메모리, 스크린, 핸드폰, 현대보다 싸고 좋은 자동차, 로보트, 한화, SK, 롯데, LG보다 싸고 좋은 화학원료의 메이드 인 차이나가 세계를 석권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는 중국의 위대함을 칭송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무감각하고 근거 없는 자신감이 팽배한 이 시대의 풍조를 바로잡고 싶을 뿐이다. 미래 10년후의 한중관계는 지금 겪어보지 못했던 심지어 과거 수천년간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라 본다. 역사 속에서 한반도는 현재의 중국처럼 나락에 떨어졌다가 다시 정상으로 복귀한 시대를 겪어보지 못했다. 미래의 10년을 대비하려면 대한미국은 어마어마한 중국전문가를 양성해야 하고 중국의 산업구조 산업발전을 제대로 분석하고 대응해야 한다. 중국과 등진 경쟁자가 아닌 중국이란 거대시장과 거대경장 속에서 자신의 포지셔닝을 제대로 하고 변화를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특공대가 되야 한다. 중국시장과 생산과의 융합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분석해야 한다. 이는 특정 기업만이 아니라 전체 국가와 국민적인 차원에서 다뤄야하는 숙제이다. 이 숙제를 잘 푸냐 못 푸냐는 미래 10년뿐만 아니라 미래 100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반중정서가 팽배해 있는 시기에 중국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 날 따라 줄어들고 중국 전문가들도 갈수록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중국은 어둠속의 도둑처럼 조용히 질주하고 있지만…대한민국은 태평성세의 연예가무에 빠져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이 든다. 사드 때가 위기이가? 진정한 위기는 다음 10년이라고 본다. 중국이란 거대 공룡을 옆에 두고 과연 몸집이 작은 파충류가 먹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란 현실적인 걱정이 든다…그러나 이 땅에서 과연 누가 이런 심각한 고민을 해보았는가? “중국은 파멸할 것이다. 분열할 것이다”라는 허황된 꿈으로 자기 위로하면서 살아갈 것인가? 노키아와 모토롤라의 몰락을 보면 경쟁 속에서 잘못된 전략이 얼마나 큰 피해를 초래할 것인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21세기 30년대의 한중관계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면모를 보일 것이다. 자신감이 넘치고 교만함까지 보이며 실질적인 파워까지 겸비하고 심지어 비민주적이란 프레임마저 사라진 미래의 중국을 다룰 생각을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고 그냥 어영부영 10년을 넘기다가 엄청나게 후회할 것이라 경고하고 싶다. 중국을 경계하고 두려워하기보다 옛정을 그리며 앞으로 어떻게 화합하며 살아가고 중국 부상의 피해자가 아닌 수혜자로 될 수 있는 가가 21세기의 나머지 시간의 테마가 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친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중(知中)이고 중중(重中)이다. 그런 의미에서 친미는 현상유지, 친일은 과거유지, 친중은 미래유지이다...라는 정의를 내릴수도 있다. 이로서 한중양국이 50년간 이뤄진 멜로드라마가 NEXT 시즌을 기대하며 종영이 된다. 한중수교 60주년일때는 환갑의 나이의 두 노인의 사랑 스토리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영화 "은교"처럼 될 것인가? "죽여주는 여자"처럼 될 것인가? 그것은 다음세대 출연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필자에 대해 당신이 뭔디 이렇게 거창하고 허황된 이야기를 꾸미는가 질타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나중에 지켜보면 이 드라마가 제가 예상한 각본대로 연출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럼 여기까지…글을 마치고 2032년에 다시 2탄을 올리겠다. 그때까지 이 글의 독자와 한중관계 모두 건강하시기 기원한다. 2022년 8월 24일 서울에서 (By Star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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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4
  • 아베 신조의 '정치적 유산'
    ● 양백강, 로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2022년 7월 8일 거리 연설에서 67세의 나이로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아베 신조 피살 사건은 일본 정계는 물론 국제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아베는 전 일본 총리로서 자신의 기록적인 초장기집권과 일본 내 보수세력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전후 일본 정치사, 국가전략 진화의 한 축을 차지하는 등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파장을 남겼다. 아베 자신은 역사가 됐지만 일본의 미래 국가 발전 방향에 대한 조명은 아베의 '정치적 유산'이라는 시각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정치인 가문의 출신인 아베는 1993년 7월 중의원 의원으로 처음 당선돼 당시 최연소 국회의원이 됐고, 2006년 9월 총리가 돼 첫 전후 출생 총리가 됐지만 1년도 안 돼 물러났다.이후 5년간의 칩거 끝에 2012년 9월 자민당 총재에 당선되고 12월 총리에 취임하면서 7년 8개월여의 '아베 시대'가 열렸고, 아베는 헌정 사상 최장수 총리가 됐다. 2020년 8월 퇴임 후 짧은 휴양을 거쳐 정계에 복귀한 아베는 정계 보수세력을 결집했다. 2021년 11월 아베가 자민당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 회장에 취임하면서 아베계로 기치를 바꾸는 등 정치권에서 강세를 보였다. 장기간의 임기를 제외하면 아베의 정치적 위상은 당시의 국제환경과 국내 정치상황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2007년 아베 총리 사임부터 2012년 재집권까지 5년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미·서방 국제체제에 크게 의존하던 일본은 충격을 받았다. 자민당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아소 타로(麻生太郞) 정권, 후속 민주당 3선 내각이 모두 난국에 빠졌다. 상대적으로 미국과 유럽의 패권이 쇠퇴하고,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이 집단적으로 부상하면서 2010년 중국 경제는 처음으로 일본을 추월하며 격차를 벌렸다. 국제 권력구조, 글로벌 거버넌스 시스템의 심각한 변화, 각 분야의 질서, 규칙, 발언권 다툼이 날로 치열해지고 일본의 대외위기의식, 국제게임의식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어 '강인정치'에 대한 요구가 더욱 절실해졌다. 당시 요미우리신문 사설은 잦은 총리 교체로 일본 지도자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외국 지도자의 모습은 "일본에 수치"라고 했다. 이런 '비정'적이고 대외적인 주장을 더욱 강하게 하는 전략적 마인드와 여론의 분위기는 아베가 재집권해 장기집권을 이어갈 수 있는 중요한 전제조건이 됐다. 총리 재임 후 아베는 계파적 자원과 정치적 수완을 앞세워 당내 최고 권력을 장악했고, 자민당의 6연속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우경화 보수적 정치관과 국제정세 및 일본 국민의 마음가짐 변화를 긴밀히 결합시켜 전략적 행동을 통해 일본을 '강대하게' 만들겠다는 자신의 정책 철학을 제시했다. 실제로 아베는 초대 총리 시절부터 방위청 승격, 교육기본법·국민투표법 개정, 해양기본법 제정 등을 추진해왔다. 2012년 이후 긴 임기 동안 아베는 정치·안보 분야에서 일본의 '자립'과 '자주'를 체계적으로 강화해 더 큰 '전략적 공간'을 넓히려 했다. 아베가 역사교과서 추가 수정, 무라야마 담화 부인 등 기존 역사 발언, 전후 외교 총결산 추진 등을 통해 일본 정치의 우경화를 가속화하고 아시아 이웃 국가들에서 우려를 낳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아베 시대'는 냉전 이후 일본의 국가전략 전환 발전의 중요한 단계로, 일본이 금융위기 이후 세계구도, 국제질서 변화에 적응하는 데 중요한 시기였다. 이 시기 '아베 노선'은 안보 분야의 '돌파'를 접점으로 국가전략의 전환을 추진하고, 다각화된 외교수단을 활용해 '종합전략의 활성화'를 높이겠다는 것이 기본 발상이었다. 국제사회, 특히 아시아 국가들이 이런 돌파구에 대한 우려와 의구심은 자명하다. 개헌 추진, 자위대 입헌 지원 외에 아베 주도로 2013년 첫 국가안전보장전략, 일본판 국가안보회의(NSC) 설립, 방위계획대강 조기 개정, 2014년 내각 정령으로 집단적 자위권 부분해제, 새로운 방위장비 이전 3원칙 마련, 2015년 평화안보법안과 국제평화지원법안, 이른바 신안보법 제정, 적에 대한 공격능력 보유 및 대형화·공격무기장비 플랫폼 도입 검토, 대외방위협력, 외교정책 안전화 등을 추진했다. 안보 분야에서도 아베가 추진한 '개혁'은 전략체제, 법치의 틀, 집행체제, 역량건설의 모든 측면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어 전후 일본 보수세력의 전후체제 돌파와 '안전 자주' 실현이라는 기본적 발상을 답습할 뿐 아니라 일본 안보전략의 외향성과 공격성을 더욱 가속화했다. 이는 평화헌법의 굴레를 뚫고 일본의 '국방정상화'와 '군사대국화'를 가속화하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일본의 안보정책과 방위정책, 방위력 건설 목표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어 아태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위협이 되고 있다. 외교 분야에서 아베는 '전략적 외교'를 적극 추진했으며, 재임 기간 동안 총 비행 거리는 158만km로 80개 국가와 지역을 방문했으며 이는 지구를 39바퀴 도는 것과 같다. 아베 총리는 또 '지구 외교' '적극적인 평화주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등의 개념을 내세워 '도덕적' 색채를 부각시키려 했다. 하지만 사실 아베 외교는 고도의 현실주의, 실력주의, 지정학적 경쟁 사고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강대국의 게임이 그의 핵심 관심사다. 아베의 입장은 미·중 간 총체적 균형을 유지하며 '좌우를 만나다'는 전략 아래 미·일 동맹의 '체제 내 발전'을 견지하고, 대외정책의 융합을 추진하고 경제·안보·문화적 수단을 통합 운용해 '중등 세력' 특히 유럽·인도·태국과의 전방위적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일본 국내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아베는 그동안 위축되었던 일본 외교를 크게 뒤집고 국제 담론력을 강화했지만 많은 논란과 문제점도 남겼다. 아베는 역대 총리 중 최장수 집권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정치인의 업적은 시차를 두고 평가되지 않는다. 내부적으로는 우익세력의 요구에 부응하고 외부적으로는 미국을 숭배하고 추종했지만, 저출산·고령화, 디지털 시대의 발전, 주요 외교 문제는 제때에 해결되지 않았다. 실제로 아베 총리가 2020년 8월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그의 '정치적 유산'에 대한 논쟁은 계속됐다. 아베의 '정치 유산'은 개인적 색채가 뚜렷하지만 전후 일본 보수 정치세력의 국제질서, 일본 국가 발전에 대한 해석을 대변한다.이런 해석은 1980년대 중후반부터 '정상국가론' '정치군사대국 몽'이라는 형태로 일본의 국가전략 방향에 영향을 미쳤다 아베는 그동안 자신을 '열린 보수주의자'라고 칭하며 자신의 보수적 정치이념을 확산시키고 개인 정치권을 공고히 하는 데 열심했다. 장기 집권을 거치면서 아베 주변에는 보수 정치인이 대거 포진했고, 그 중 적지 않은 수가 자민당과 정부 고위직을 차지하며 '아베 독트린'의 추종자이자 집행자로 자리매김했다. 현 일본 정계의 보수세력의 '정신적 지도자'인 아베의 죽음은 추종자들의 추종을 중단시키기는커녕 이들의 더 집요한 행동을 자극해 아베의 '미완의 의지'를 완성하겠다는 자세로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 아베의 후계자인 스가 요시히데와 기시다 후미오는 인맥·공직 경력에서 아베와 그의 측근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두 사람 모두 '아베 색채'에서 벗어나 자신의 특색을 살리는 경향이 있지만, 스가 시대 정책이나 지금까지의 기시다 정권의 정책을 보면 전체적으로 '아베 노선'을 답습하고 있다. 기시다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자주방위정책과 '신시대 현실주의 외교'도 아베의 정책과 유사하다. 기시다가 자신의 특성을 과시하기 위해 제안한 '일본식 신자본주의' 경제·사회 정책도 정책 여백이 부족해 '아베노믹스'로 회귀할 위험이 있다. 동시에 아베의 '정치적 유산'이 일본의 정치적 현실을 완전히 뒤흔들 수는 없다는 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외교안보정책 분야에서 일본의 '전략적 주관성'과 '역동성'을 모색하겠다는 아베의 제안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길잡이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대만 문제에 대해 아베 총리의 '대만 공동방위'에 대한 미일군사 개입 등 허위 주장은 일본의 현실적인 정책이 되기는 더욱 어렵다. 한반도와 러시아에 대한 외교 측면에서도 현 정부는 아베 총리의 기존 사고방식을 현 상황에 맞게 바꾸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의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을 배경으로 일본이 국제위기를 이용하여 국내의 전략적 변혁을 촉진하고 해외의 전략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관행은 아베 시대의 그림자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질서의 변화와 국가의 전략적 변혁에 직면하여 일본의 구체적인 대응책은 변함이 없을 것이며 아베의 '정치적 유산' 중 비합리적이고 비건설적이며 지속 불가능한 내용은 결국 폐기되고 잊혀질 것이다. 작자 양백강(楊伯江)과 로오(盧昊)는 각각 중국사회과학원 일본연구소 소장, 부연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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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기고
    2022-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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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배굽이와 개산툰
    ● 허성운 어릴 적에 밤하늘에 보이는 별빛이 수백 년 전에 출발한 것이고 또 지금 별에서 출발한 빛이 수백 년 뒤에야 사람들에게 나타난다는 글을 책에서 읽어 본적이 있다. 그 옛날 샘물터에 내려앉은 총총한 별빛들이 파묻힌 개산툰 땅들을 두루 밟으며 걷고 있노라면 땅속에 묻힌 샘터 별빛들은 두만강 강물처럼 흘러 흘러서 마음속에 흘러든다. 재난과 가난이 먹장구름처럼 드리워 캄캄했던 그 옛날에 가진 것 하나 없이 빈주먹으로 꿈 하나를 보따리에 넣고 별빛처럼 깜빡이는 삶의 섬광(閃光)을 따라 두만강을 넘어 연변 땅으로 퍼져 들어와 함경도 사람들의 특유의 그 끈질긴 노력으로 메마른 땅을 기름진 옥토로 가꾸어왔다. 오늘날 다시 되돌아보면 그 시기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첫 발자국을 들여 놓았던 곳이 바로 개산툰이다. 사람들은 흔히 개산툰(开山屯)이란 지명을 산이 열린 곳에 자리 잡았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자를 풀이하여 단순하게 해석하여 왔다. 석문에서 형제봉이 돌문처럼 서있고 그 돌문을 나서면 산이 쫙 열린 듯 광소, 광종, 선구 자동 등 마을들이 별처럼 널려있어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허나 개산툰 지명은 사실 20세기 2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야 쓰이기 시작한 지명으로서 1933년도 광궤철도로 바꿔 놓으면서 역 명칭으로 정식으로 불리였고 그 후 차츰 역전 부근 지역을 뜻하는 지명으로 고착되었다. 그 시기 개산툰 지명은 절과 관련되어 있는 명칭으로 풀이 된다. 개산툰 역에서 산 굽이를 에돌아 들어가면 애민촌이라고 부르는 마을이 나타나는데 옛날에는 이 골짜기를 절골 이라고 불러왔고 사료에서는 개문사 사동으로 표기되어 있다. 두만강을 사이 두고 행인평(애민1대)과 마주하여 있는 조선 상삼봉 형제바위 밑에도 절이 자리 잡고 있어 이 두 곳 사람들의 발길이 서로 끊이지 아니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거기에 세월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두만강 양안의 이런 큰 절과 이름 모를 암자들 이를테면 20세기 초에 탄앞 (애민7대)마을에 있었던 개인 절집 같은 암자들이 옹기종기 들어 앉아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산골짜기를 메웠었던 적이 있었다. 절이 세워지기 전에도 산이야 그 가슴을 열고 있었지만 특히 절이 세워진 후에야 산이 열렸다고 하는 开山 의미를 짚어보면 그것은 어두운 산에 문명의 등불을 밝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개산툰 지명을 절골의 이름 있는 사찰 혹은 이름 없는 암자의 기와 파편에서 찾을 수도 있으나 보다 과학적으로 풀이한다면 빛이 밝아온다는 뜻으로 통하는 불교적 색채를 지닌 지명으로 바라보게 된다. 어원적으로 한자 개(开)를 풀이하면 열리다 는 단순한 어미로 풀이 되지만 북방언어체계에서 바라보면 개(开)자 음은 빛(光)을 뜻한다. 개똥벌레는 몽골어에서는 gerelt horhoi 빛이 나는 벌레라는 뜻을 지니고 만주어에서 gerhen은 빛을 말하고 만주어 gehun는 햇빛이 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우리말에서 날이 갠다는 뜻과 동일하다. 이제 다시 개산툰 지역 지명들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광서 연간에 이 지역에 녕원보를 세우고 그 아래에 개운사 개태사 개화사 개문사와 같이 개(开)자로 시작되는 사(社)들과 광소사 광종사 광덕사 광화사와 같이 광(光)로 시작되는 사(社)들 지명이 나타난다. 맨 앞 글자에 개(开)와 광(光)자가 절묘하게 대응되어 붙여진 이 지역 지명들은 모두 빛을 나타내는 의미가 유난히 돋보이며 한 계열을 이루어 정체성을 띤 지명으로 보여 진다. 이런 맥락에서 광복 전 광개촌 명칭과 해방 후 광개향 이라고 부른 지명이 이런 의미를 잘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과거 두만강 양안은 울창한 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그 경치가 아름다웠다. 두만강에는 강을 따라 이동하는 뗏목이 경관과 어우러지면서 수려한 산수풍정과 조화를 이뤄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펼쳐 놓았다. 거기에 달빛 밝은 밤이면 고기잡이배들의 불빛이 두만강 강변에 어리여 아름다운 야경을 이루었다. 뫼(山)가 열리여(开) 두 팔을 쫙 벌리고 뭇 중생을 품 안으로 받아들여 힘없이 사는 백성의 삶을 어루만진다. 산이 열리고 절이 서니 꽃이 더 아름답게 피고 생명이 더 화사하게 움트는 법이다. 우리가 그 시기 개산툰을 희망의 빛 동네라고 부르게 되는 것은 호천개의 김영렬 선교를 중심으로 북관(北關, 북간도) 12종도로 부르는 이들이 별빛처럼 간도 각지로 퍼져 나가 최초로 서구문명을 연변 땅에 전파였기에 가능하다. 연변 최초의 천주교는 개산툰의 호천개에서 공동체를 이루는 기틀이 마련되어 연변 전역으로 뻗어나가 대교동이 세워졌고 삼원봉본당과 용정본당이 설립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리동촌 강백규와 같은 유명 인사들이 일찍이 이곳에 학교를 세우고 문명의 등불을 켜놓았기에 개산툰은 어두운 세상에 수많은 이주민들의 발길을 밝혀주는 빛의 등대로 거듭날 수가 있었다. 그런데 개산툰이란 지명해석은 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개산툰 원래의 지명은 무엇이라고 불렀을까 하는 핵심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천도경편철도 변천사는 개산툰 지명 연혁과정을 밝혀주는 유익한 자료가 된다. 이 자료에 따르면 개산툰은 최초에 地坊으로 표기되고 그 후 図們江岸으로 적혀 있고 나중에 開山屯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1920년대를 전후하여 일본인들이 쓴 여행기에서는 地坊洞 이라는 이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작가 이문열이 쓴 불멸2에서는 안중근이 처음으로 간도에 들어선 지점을 화룡현(和龍縣) 지방전(地坊典)이라고 쓰고 있다. 먼저 図們江岸이라는 이름을 살펴보기로 하자. 천도경편철도는 운행초기에 민간업체들이 주도로 맡았기에 재력이 충족치 못하여 개산툰과 상삼봉 사이의 다리조차도 가설 못하고 배나 도르래로 화물을 운송하였다. 그러던 어느 해 콩과 잡곡이 산처럼 쌓여 적치되자 속이 탔던 화물운송사에서 돈을 내여 다리를 놓아 운송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 시기에 잠간 쓰였던 図們江岸이라는 역명은 사실 콩과 잡곡이 산처럼 쌓인 역이였기에 응당 豆満江岸이라고 표기해야 한다고 예전 로인들은 주장하여 왔다. 북간도지역은 콩의 원산지의 하나로서 중국 역사책인 당서에는 발해 사람들이 메주를 성처럼 쌓아 놓았다고 적고 있다. 천도경편철도를 이용하여 일본은 연변의 콩을 유럽에 대량 수출하여 엄청난 이익을 얻었다. 이제 마치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서로서로 엉키고 설키여 마구 뒤엉키어 있는 개산툰 지명을 풀어낼 수 있는 관건적인 실마리로 地坊이라는 지명을 살펴보자. 도도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두만강 푸른 물은 수많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오랜 세월 두고 천평벌을 무법으로 훑고 지난 간 옛터들은 폐허로 되고 아픈 과거를 흔적 없이 지워놓았다. 과거에 두만강은 웃 물학성과 아래 물학성 사이에 자동물과 호천개 강물을 받아들이면서 두 갈래 물줄기로 갈라지어 흘렸다. 아래 물학성을 기점으로 고섬까지 크고 작은 섬이 이어지다가 노째굽이에 이르러 다시 합치여 흘러 내려갔다. 그 시기에 지명과 더불어 생겼던 많고 많은 이야기들은 두만강의 푸른 물에 씻기어 서서히 잊혀졌다. 지금의 개산툰 기차역으로부터 종이공장일대에 이르는 산굽이를 따라 오랜 옛적부터 초라한 땅굴집과 농막집들이 띄엄띄엄 들어앉았는데 그 시기 아래 물학성 쪽을 바라보면 넓은 호수를 방불케 하였고 늙은이들은 이 일대를 지배굽이라고 불러왔다. 오늘날에 와서 지배굽이라는 땅이름은 역사 뒤안길에 사라진 죽은 지명으로 되어 있지만 개산툰 지명 연구에는 관건적인 실마리를 제공하고 먼지가 두텁게 쌓인 문헌자료에서 확실한 증거를 끄집어 낼 수 있는 귀중한 단서를 제공한다. 우에서 언급하였지만 한국에서는 안중근이 1907년 북간도에 들러선 첫 지점 지명을 화룡현(和龍縣) 지방전(地坊典)이라고 적고 있지만 지배굽이(地坊曲)로 표기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본다. 그리고 1920년대를 전후하여 일본인들의 만주 여행기에서 적은 地坊洞은 지배굽이를 저들 나름대로 한자로 옮긴 지명이다., 한 순간 속에도 천년 세월이 들어 있다는 말이 있다. 조선왕조실록 단종실록편 (1455년) 기록에는 종성(鍾城) 서쪽 20리 강외江外 수주(愁州)라는 지명이 튕겨 나온다. 옛 문헌文獻에 기록에 따르면 강외江外 수주(愁州)가 개산툰 지배굽이로 추정된다. 만주어에서 근심愁 을 뜻하는 말로 jobocun 라고 하는 단어가 있는데 한자 愁의 단순한 근심걱정 뜻을 넘어 염려한다는 함의도 내포되어 있다. 함경도방언 자식 지배 쎄다는 말은 아들딸들에 대하여 어머니가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써서 걱정한다는 강한 모성애를 드러내는 뜻으로 만주어 jobocun와 그 뜻을 같이 하고 있다. 개산툰 옛 지명 지배굽이는 수주(愁州)라는 만주어 말로 풀이가 가능하다. 놀라운 것은 함경도 종성은 강내 江内 수주(愁州)로 표기되고 개산툰 일대의 수주(愁州)는 江外 수주(愁州)로 적혀 있어 마치 쌍둥이처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江外 수주(愁州) 지명표기는 16세기 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강내 수주는 후에 종성으로 그 명칭이 바꾸게 된다. 종성 시가지에 수항루라는 오랜 건물이 있는데 최초에는 뇌천각이라고 부렸고 장대將台로 썼다. 개산툰에도 장대將台로라는 지명이 있는데 개산툰 종이공장 세워지기 이전에 그곳에 우람진 바위들이 많았다. 그중 북바위라고 부르는 바위가 강가에 들어 앉아있어 고요한 밤이면 귀신 울음소리를 냈다고 로인들은 전하고 있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강 양안에 쌍둥이처럼 나타난 지명은 종성의 금산(禁山)과 덕신향 큰산(金山 )지명 ,종성 함지산과 회경 막치기골 작은 함지산 지명, 종성 국시고개와 덕신향 상국시 석정향 중국시 월청향 하국시 등 지명들이다. 오늘날 지배굽이란 이름은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처럼 역사 속에 파묻히어 망각되어 온지도 어느덧 백년 세월에 가까워 온다. 과거의 지명흔적들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세월의 무상(無常)함속에 어둡고 우울하고 과묵한 옛 선인들처럼 지배굽이 옛 지명은 광채 잃은 눈빛으로 남산 언덕위에 앉아 물끄러미 천평벌과 개산툰 작은 시가지를 굽어보며 눈가에 그렁그렁한 이슬방울을 맺는다.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 한 방울 무게는 깃털처럼 가벼울 수도 있지만 때로는 바위덩어리보다 더 무거워서 일어서지 못하고 엎드려 울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연변 개산툰 지명 변천 과정을 다시 되돌아보노라면 오랜 세월 속의 쌓이고 쌓인 옛 선인들의 피와 땀과 슬픔과 한이 쏟아지어 무거운 눈물로 한 방울 한 방울 고여 흐르는 경우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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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기고
    2017-08-25
  • [칼럼] 경찰 공무집행 중 사고에 따른 개인 구제 제도 필요
    ●이치수 경찰이 범법자를 검거하는 공무집행 중 상대의 폭력을 제지하려다 전치5주의 상처를 입혔다면 이는 정당방위에 해당하는 것일까. 현행법상 이는 사적제제에 해당돼 처벌될 가능성이 많다. 상대의 위해행위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대응이 정당방위였더라도 처벌될 때가 있어서 법적 판단기준과 처벌수위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특히 가혹한 처벌에 따른 공적 구제제도가 전무해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형법 제 21조 1항에 명시된 정당방위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행동을 말한다.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않고,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 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때에는 방위행위를 벌하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다.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취지로 행동했더라도 이견은 생긴다. 과거가 아닌 위협 행위를 끝내기 위한 정당방위 시행 시점의 행동이더라도 이에 대한 판단기준에 따라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한 경찰관이 주폭을 제지하다 합의금 5천만 원을 물어주고 소송에 시달린다는 기사가 22일 보도됐다. 지난 17일 경찰 인트라넷(내부 통신망)에 서울 한 지구대 소속 박모(34) 순경이 지난해부터 주폭(酒暴•술에 취해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과 소송전(戰)을 벌인다는 사연이 실린 데 따른 것이다. 주점에서 난동을 피운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박 순경은 만취 상태의 남성(34)을 지구대로 데려왔는데 이 과정에서 때릴 듯한 자세를 취한 남성을 제지하려다 목 부위를 밀쳐 넘어뜨렸다. 이 남성은 바닥에 부딪혀 머리 등에 전치 5주의 상해를 입었다며 형사와 민사소송을 냈고, 박 순경은 취객을 폭행한 혐의(특가법상 독직폭행)로 기소됐다. 박 순경은 형사합의금 5천만 원과 치료비 300만원을 물었으며, 지난 7월 법원으로부터 징역 6개월에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만취 남성이 위협적인 행동을 했지만, 박 순경이 주먹이나 팔을 잡는 방법으로 제압이 가능했다"고 봤다. 하지만 경찰 내부에서는 이 판결에 대해 "위협을 받는 찰나의 순간에 나온 대처에 너무 엄격한 잣대를 댔다"며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경찰의 공무 집행 중 범죄자로부터 위협을 당하는 경우는 부지기수인 것으로 알려진다. 일례로 2015년 기준 공무 집행 방해 사범은 1만4천556건에 달한다. 하지만 이에 적극 대응하다가는 민원과 소송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아서 경찰의 ‘무관용 원칙과 대응’ 대책은 매번 수포로 돌아갈 때가 많다. 정당방위란 부작용 및 악용의 폐단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서 엄격해야 한다. 반면 공적 영역에서의 사적 제재는 처벌받는 것이 당연하다. 이 경우, 그럼에도 의도와 상황에 따라 방어행위가 사적제재로 비친 것에 지나지 않는지는 법적 판단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공무집행 과정에서의 억울함을 구제할 길은 없는지 다시 한 번 고심해봐야 한다. 사적제재란 국가 또는 공공의 권력이나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 개인이나 사적 단체가 범죄자에게 벌을 주는 일이다. 즉 내가 상대에게 법익을 침해당하더라도 그 법익을 침해하는 것은 정당방위가 아닌 사적제재에 해당한다. 박 순경의 사례가 만약 상대의 위해 행위를 벌주기 위한 것이었다면 사적제재로서 처벌대상이다. 반면 그것이 아닌 단순 방어차원에서의 행위였고 상대의 피해여부를 가늠하지 못했다면 이는 또 다른 판단의 여지를 둬야 한다. 박 순경은 이번 사건의 합의금 마련을 위해 무리한 대출을 했고, 딱한 처지를 안 동료 경찰들이 십시일반 사비를 모아 모금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7일 인트라넷에 관련 글이 실린 뒤 이틀간 경찰 5천730명이 모금에 참여하면서 박 순경의 계좌에는 약1억4천만 원이 쌓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내부에서는 공무를 집행하다 억울한 일을 경험한 경찰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많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공무집행방해사범에 대해서는 엄벌해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공무집행 과정에서의 부담을 한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성격에 따라 공적 구제제도를 이용하도록 관련 대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그래야만 경찰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책임과 사명감을 적극 발휘할 수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특히 음주로 인한 사건이나 사고에 대해서는 관대한 면이 있다. 우리 사회의 안녕과 질서 유지를 위해서 앞으로는 음주로 인한 사건 등은 가중 처벌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도 마련해 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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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8-22
  • [김혁 칼럼] 죽음의 방주 - '페스카마'호
    ● 김 혁 (재중동포 소설가) 요즘들어 배가 화두다. 만경창파를 누벼야할 배가 어쩌구려 사람들의 눈물 속에 스미고, 가슴패기를 짓누르고 있다. 요즘처럼 배가 사람들에게 회자된적은 없는 것 같다. 무엇보다 수년 내내 눈물 위로 떠다니는 배는 '세월호'일 것이다. 3년전,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서 침몰, 300여명의 애닯은 청춘을 수장(水葬)시킨 비정의 “세월호”. 그 미수습자 신원의 발견과 확인에 온 세간의 젖은 눈길이 오늘도 모이고 있다. 대한민국의 바다에서 일어난 해난사고들 중 두 번째로 많은 사상자를 낸 사고에 조선족 한금희(녀, 37)씨와 리도남(남, 38)씨도 조난당했음이 확인됐다. 하지만 동질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게시판에 세월호 중국인 사망자를 비하하는 글을 올린 혐의(형법상 모욕)로 권모(당시 27세 ·무직)씨가 불구속 입건되는 불미스러운 일도 발생했다. 권씨는 인터넷 한 사이트의 게시판에 '실종자 중 조선족 2마리가 있다는데, XX버리고 학생들이 살아났으면 좋겠다'란 글을 올려 중국인 실종자를 모욕한 혐의로 입건되였다. 또한 배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연극이 막을 올려 화제다. 선상 반란 사건 '페스카마호' 실화를 담은 문제작 연극 '페스카마-고기잡이 배'가 대통령의 취임 이튿날인 10일 막을 올렸다. 연극 '페스카마- 고기잡이 배'는 1996년 8월 남태평양에서 조업중이던 원양어선 페스카마15호에서 일어난 선상(船上) 반란 사건을 다룬다. 1996년 여름. 남태평양. 참치잡이배 “페스카마호”에 오른 승선경험이 전무한 조선족선원들은 수차례 작업설명을 해도 손이 느리고 서툴러 갑판장과 갑원에게 구타를 당한다. 한국선원들은 조업 실패를 조선족선원들의 탓으로 돌리며 더욱 심한 폭력을 행사하고 조선족선원들은 비인간적인 처우에도 한국 배에 타기 위해 맡겨놓은 거액의 보증금 때문에 협조하지 않으면 하선시키겠다는 선장의 말에 굴복하고 작업에 림한다. 평소의 열배나 많은 참치가 낚시에 달려 올라온다. 태풍이 예고된 상태에서 선장까지 갑판에 내려와 작업을 하기에 이른다. 이때 조선족 선원이 낚시에 걸린 참다랑어 한 마리를 바다에 떨어뜨린다. 이에 격분한 선장이 조선족 선원을 구타하자 맞은 선원도 선장의 뺨을 때리는 일이 벌어진다. 순식간에 칼과 흉기를 든 한국선원과 조선족 선원들이 갑판에서 대치하는데 나이가 많은 기관장이 중재하여 사태를 수습한다. 분을 삭이지 못한 선장이 조선족 선원 전원을 강제 하선시키기로 통보한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조선족 선원들은 선장에게 찾아가 한번만 용서해달라고 빌지만 오히려 선장으로부터 강제하선은 물론이고 선상란동으로 형사고발조치를 하고 조업 손실금에 대한 손해배상까지 청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절망한다. 실의에 빠진 조선족 선원들은 한국인 선원들을 차례로 살해한다... 이 연극이 주목을 모은것은 제38회 서울연극제 공식 작품으로 선정된 작품이고, 충격적인 사건을 다룬 소재에도 있겠지만, 금방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이 인권변호사 시절에 변론을 맡았던 사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당시, 이 사건의 조선족 선원 6명의 변론을 맡아 화제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일각에서는 당시 문재인이 조선족 인권을 자국민에 우선시했다며 비난하면서 “문재인의 '아킬레스건'”이라 부르기도 했다. 조선족들의 선상 반란 사건에서 한국인 선원 7명, 조선족 선원 1명, 인도 네시아 선원 3명 등 11명이 숨졌다. 이 과정에서 조선족범인들은 칼과 도끼로 피해자들을 무자비하게 란자(亂刺)하고 찍었으며 저항력이 없는 환자를 산채로 바다에 내던져 죽이기도 했다.법원은 1심에서 해상 강도살인 및 시체유기 등 혐의로 전원 사형을 선고했다가 항소심에서 주범을 제외한 5명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이후 주범인 전재천 씨는 2007년 12월31일 로무현 정부 말기 특별사면으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연극은 비극적인 사건을 재구성하면서 “인간의 권리”에 대한 많은 담론과 정서를 만들어 내는 한편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몸부림쳤던 조선족 선원들의 비극을 보여준다. 모두를 경악케 했고 가슴아프게 했던 이 사건은 이데올로기의 장벽에 불협화음으로 얼룩졌던 지난 90년대 중기를 다시 무대우에 소환한다. 20년전 한척의 배위에서 벌어진 연극과도 같은 이야기는 력사와 세월의 “만경창파”에서 한국과 민족적 동질성을 가졌던 이민자의 후예들이 만나는 과정을 서로 잘못 풀었던 시대적 “침몰”을 소급해 보여준다. 아픈 상처를 건드리며 동포 사이의 참극을 반추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오늘도 우리는 다시 한번 그 상처자욱을 들여다 봐야 한다. 이 사건이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의 100여년 정착사에서 그 선례를 찾아볼 수 없고 한국과의 관계사에서 있을수 없는 끔찍한 비극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조선족 사망자를 비하하는 글을 올린 상기 사례에서도 보다싶이 조선족에 대한 몰리해, 비하와 질시는 지금도 한국사회에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비일비재한 악폐이다. 한국내 조선족 체류자가 70만을 넘기고있는 현재에도 선입견과 랭대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불협화음의 상대로 전락된 조선족도 부에 대한 단순하면서도 화급한 욕망으로 가족과 고향도 쉽게 내치고 스스로 "떠돌이자"를 자처한, 일그러진 “코리안 드림”의 허허실상에 대해 심각한 반추와 검토가 재다시 수요된다. 이렇게 서로의 소통과 화합과 상생의 장을 모색하지 않는 한, 페스카마호처럼 “어사망파”의 침몰선이 또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장하는 수가 없다. 중한수교 25주년을 맞은 시점에서, 이로부터 한국과 조선족이 모두 교훈을 얻고, 상처를 리성으로 치유하는 예시로 이 연극에 큰 의미를 두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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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28
  • 사드 배치의 ‘희생양’이 된 롯데, 누구의 탓인가
    ● 우림걸 지난 2월 28일, 롯데그룹이 한국 국방부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부지 교환 계약을 체결했다. 국방부가 소유한 경기도 남양주시 6만7000m2 규모의 군 용지를 롯데가 가진 148만m2의 성주 골프장과 맞교환해 이를 사드 배치용 부지로 활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소식은 중·한 양국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한국 정부에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양국 국민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계약이 체결된 날 서울에 위치한 롯데 본사 앞에는 사드 부지 제공을 반대한다는 피켓을 든 시위대의 항의 시위가 이어졌다. 한국인들뿐 아니라 중국 네티즌들도 ‘롯데마켓(樂天市場)’이라는 웨이보(微博) 계정에 잇따라 불만의 글을 남겼다. 불과 1주일 만에 롯데는 중국 소비자들의 거센 압박을 체감했다. 롯데의 해외 사업부문 가운데 중국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중국 롯데의 사업 범위는 24개 성·시에 매장 120곳과 백화점 5곳에 이른다. 또 한국 각지에 분포한 롯데면세점의 매출액 가운데 70%는 중국 관광객으로부터 나온다. 이 때문에 롯데가 중국 소비자들의 장기 보이콧을 유발하면 막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을 물론, 한국 정부 사드 배치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롯데그룹 계열사들의 주가는 연일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 재계 5위에 속하는 롯데 같은 대기업의 영업활동이 이처럼 엄청난 타격을 받고있는 것은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먼저 현재의 피동적인 국면이 초래된 데에는 국방부에 사드 배치용 부지를 제공하기로 한 롯데의 잘못된 결정 자체에 직접적인 원인이 있다. 롯데가 한국 정부와 교환하기로 한 토지가 일반 상업용지나 국방용지로 활용될 예정이었다면 이처럼 큰 논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롯데 측이 해당 부지가 일반적 용지가 아닌 국내외적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사드 배치용 부지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있는 상황에서 여러 반대 의견에도 불구, 토지교환 계약을 승인했다는 점이다. 이는 일반적인 비즈니스 의사결정이 아닌 명백한 정치적 의사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롯데는 앞으로 스스로 화를 자초한 대가를 무겁게 치르게 될 것이다. 두 번째로 자국 기업의 희생에도 아랑곳 않고 독단적으로 사드 배치를 강행한 한국 정부의 행태 역시 롯데가 뭇매를 맞게된 근본적 이유 중 하나다. 한국 정부는 사드 배치라는 국가 이익과 결부된 중대한 사안 결정에 대해 국회와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지 않고 오히려 여론과 사회의 분열을 초래했다. 게다가 자국의 민간기업을 논란의 중심에 올려놓고 막대한 손실을 입도록 방조한 정부는 결코 책임있는 정부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중국 정부는 한·미가 주도하는 한국 사드 배치가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심각하게 깨뜨리고, 중국을 비롯한 지역 관련국들의 전략적 안보 이익을 훼손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중국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한편 자국 기업에게 토지 제공을 압박했다. 이 때문에 중국 소비자들의 한국기업 보이콧이 일어나고 중·한 관계가 후퇴하는 등의 결과가 초래됐다. 이런 정부는 주변국에 우호적인 정부라고도 볼 수 없다. 한·미의 한국 사드 배치 결정으로 인한 중·한 관계 급랭은 양국 국민 모두 바라지 않는 결과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이 있다. 부디 한국 정부가 한반도 및 아시아 평화와 양국민의 이익을 위해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하루빨리 깨닫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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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기고
    2017-05-28
  • 자신감 얻은 연변 FC, "어떤 강팀도 이길 수 있다"
    ●김창권(연변대학 체육학원 교수) 최근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는“동병상련”의 두팀인 장수 쑤닝과 연변부덕은 살아남기 위한 “생존”싸움에서 1대 1 무승부를 냈다. 첫승이 절실했던 장수는 아연실색 했으나 연변은 대체적으로 반기는 모습이다. 연변은 적지에서 소중한 승점 1점을 따냈다. 아쉬운 무승부였지만 후회없이 잘 싸운 경기였다고 본다. 원정에서 장수를 상대로 무승부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경기내내 보여준 연변 선수들의 전투정신은 물론 살아난 조직력과 골 결정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연변은 장수와의 경기에서 원정 첫 승을 향한 간절한 마음가짐과 정신적 준비가 잘 된데서 그동안 원정경기에서 노출되었던 조직력결여와 골 결정력 부족이라는 단점을 완전히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번 경기에서 상당히 고무적인 것은 살아난 조직력과 공격력이라고 볼 수 있는데 바로 그 동안 이루지 못했던 원정경기에서의 선제골을 넣었을 뿐만아니라 상대가 추격해오면 다시 힘을 내서 분위기를 재차 가져오는 저력을 보여주었으며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된 점이라고 본다. 이번 경기에서 연변의 수비적인 전략(5-3-2 전술시스템)이 어느정도 예상되었으며 당연히 그래야 했다. 첫승에 목마른 장수의 파상공세(4-4-2 전술시스템)도 불 보듯 뻔했다. 연변은 세계 정상급 스타들을 보유하고 있는 장수보다 객관적인 전력도 열세라고 볼 수 있으나 전혀 움츠리지 않았다. 원정경기인만큼 경기 내용에서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기회가 올때마다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며 장수를 수시로 위협한 점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고 본다.  이번 경기에서 경기내내 연변은 자신의 장점인 패싱축구와 빠른 공수전환에 의한 간결한 역습으로 상대팀을 수차나 거세게 몰아부쳤으며 팬들은 오랜만에 연변의 약속된 플레이와 조직적인 플레이를 감상하게 되었다. 뭐니뭐니 해도 하나로 뭉친 연변의 해결사는 “아프리카 표범” 스티브였다. 날카로운 돌파와 공간침투를 과시하던 스티브는 전반 13분에 김파의 패스를 받아 시원한 슈퍼골을 성사시키면서 팀분위기를 완전히 연변 쪽으로 돌려놓았다. 이로 인하여 전반전은 마치 연변이 홈장전을 치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원정경기에서 비록 아쉬운 무승부로 승리를 거두지 못했지만 연변도 호락호락한 팀이 아니라 저력이 있는 팀이며 그것이 우연히 반복된게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을 슈퍼리그 각 제후들에게 알려준 한판 승부였다고 본다. “든 자리”는 몰라도“난 자리”는 “티”가 난다는 말이 있다. 이번 연변의 원정경기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연변은 68분 핵심 수비수 니콜라가 부상 때문에 교체되면서 5분도 채 안된 시각 73분에 상대방의 간판 공격수 테세이라(니콜라의 마크상대)를 막지 못한데서 아쉬운 동점골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수비수들의 개인 수비능력의 부족은 물론 체력저하로 인한 수비수들의 순간적인 집중력 부족으로 개인기량이 뛰어난 상대방 공격수를 막는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개인기량이 뛰어난 선수를 막는 방식은 대인방어보다는 조직적인 협력수비 그리고 공을 잡기전에 미리 움직임을 방해하는 선제적 수비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 연변은 이런 부분에서 다소 부족했다고 본다. 이번 원정경기에서 보여준 준비된 정신상태와 경기력이라고 한다면 연변은 앞으로 그 어떤 강팀을 만나도 자신만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승점도 챙길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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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09
  • 유능한 우리민족
    ● 철 민 일전 무심결에 중국축구 슈퍼리그 각 구단의 감독진 및 선수진 명단을 훑어 보다가 중국 슈퍼리그에 한국적 감독과 용병이 특히 많다는 것에 감탄하면서 무릎을 쳤다. 2017년 중국 슈퍼리그 16개 구단 중 한국감독 4명, 한국용병 10명이었다. 이 중 한국감독은 3명인 중국 본토감독보다 1명 더 많았다. 우리 한민족이 축구에 유능하다는 생각이다. 중국 축구계에 많은 한국인 감독과 선수가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변부덕 구단의 조선족 감독조리와 선수 20여명, 거기에 전국 각 슈퍼리그 구단들에 포진해 있는 조선족 선수 11명까지 합치면 우리 한민족 축구인들이야말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유능한 건 축구인들 뿐이 아니다. 인구 5천만명인 한국은 세계인구 70억의 14분의 1에 속하는 인구 중도국에 속하지만 유능한 사람이 많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 분야에는 유능한 사람이 많다. 2010년 밴큐버동계올림픽 여자피겨종목 금메달 리스트 김연아를 포함해 손연재, 박태환 등 쟁쟁한 인물들이 줄지어 있으며 그 외 전 유엔사무총장 반기문, 미국의 세계은행 행장 김용 등을 선두로 거물급 인사도 적지 않다. 다음 중국을 보자. 중국은 인구대국이다. 이 중 조선족은 지난 제6차 인구보편조사 때의 통계로 200만 명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200만명 중에도 유능한 인물이 많다. 우선 정치적 인물이자 군사가인 조남기 전 중국정치협상회 부주석 겸 중국군 총후근부 부장, 이덕수 전 중국 국가통전부 부장, 전철수 현임 중국 전국 공상연합회 주석 등을 포함해 각 분야에도 내노라 하는 인물들이 수두룩하다. 예하면 예술분야에선 중국의 4대 테너 일원이라는 성악가 김영철, 유명 바리톤 송일, 쏘프라노 방초선, 통속가요 왕자 최경호가 있는가 하면 군사계에는 정순주, 옥종환, 이영태, 김인섭 등이 있다. 특히 몇 년 전 중국군 제2포병부대의 미사일기술 여성 전문가 이현옥이 장군으로 진급해 일대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럼 전세계에 널려 있는 유능한 한민족 인물은 얼마나 되며 또 어떠한 인물들이 있을까? 이는 필자로서는 집계할 방법이 없다. 유능한 민족 - 한민족 만세! 이는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가장 중요한 동기이다. 우리 한민족은 머리가 비상하고 영리하며 또 끈질기며 강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친절하고 예의가 밝으며 남 돕기를 즐기는 민족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듯 타민족한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많은 우수성을 갖고 있는 우리 한민족임에도 부분적 약점들이 노출되어 있으니 그것도 어떤 병폐적인 약점은 아주 치명적인 것이어서 얼굴이 뜨거울 때가 자주 있어 부끄럽다. 우리 한민족의 얼이 얽힌 땅 한반도는 주변에 중국, 일본과 러시아 등 강대국들로 둘러싸여 있다. 또한 역사적 원인 및 인위적 원인 등으로 남과 북으로 분단된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우리 한민족이 지나치게 총명해서인지 한민족은 등에 강자(강국)를 업는 경우가 많다. 그 가장 뚜렷한 사례가 옛날에는 신라가 중국의 당나라를 등에 업고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이고 현재로는 전쟁의 화약고를 방불케 하는 한반도의 남과 북의 엄연한 현실이다. 한민족끼리 싸우는 경우가 허다하며 그렇게 싸울 때마다 각 자의 뒤에는 강자(강국)가 있었다. 다음 한민족은 뭉치지 못한다. 그 전형적인 사례로는 필자가 해외선원으로 근무하던 1991년 남미주의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한국선원들과 타이완선원들이 싸움을 벌였는데 싸움이 지속될수록 타이완선원들은 점점 많아지는 반면 한국선원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무리를 지어 싸우는 것을 비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타아완선원들은 싸움이 지속될수록 많아지고 한국선원들은 싸움이 지속될수록 적어졌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으며 생각되는 바가 많았다. 그리고 그 당시 마산출신의 서춘철 2기사가 필자한테 들려준 말에 더욱 생각되는 바가 많았다. “한국인은 1 대 1에는 무서운 것이 없지만 10 대 10의 대결에는 걱정되는 것이 많다.” 한민족의 열근성을 잘 설명하는 답이었다. 한편, 동족끼리 싸우는데는 목청이 높고 자못 격렬한 한민족이다. 크게는 남북끼리, 그 버금으로는 지역끼리, 정당끼리가 그렇다. 그 전형적인 사례 또한 이번 제19대 대통령 선거기간의 TV토론에서 각 후보들간의 기싸움에서 잘 반영되고 있었다. 앞날에 대해 방향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과거에 매달리면서 상대방 후보의 약점을 들추어 내면서 심지어 인격공격도 서슴지 않는 부분들이 아주 많았다. 그러면서도 중국의 <사드보복>과 미국의 <한국무시> 책략 등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인 한민족(정치인 및 외교인)이다. 또 있다. 바로 <용두사미(龍頭蛇尾)>란 사자성구가 생동하게 떠오르는 부분이다. 필자가 가장 잘아는 선명한 사례는 필자가 나서 자란 연변을 들 수가 있다. 주지하다 싶이 핑궈리(苹果梨-사과배), 가무(노래와 춤)와 축구는 전반 중국이 알아주는 연변의 3대 브랜드였고 중국조선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이었다. 이 중 핑궈리는 1921년 당시 육도하(지금의 용정시)에서 살고 있던 조선인 최범두가 조선 함경도 북청으로부터 6주의 사과나무 묘목을 가져와 당지의 돌배나무와 접목시켜 열리게 한 과일이 바로 핑궈리었고 1953년부터 전 연변 내에서 대대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수십 년 간 연변의 자랑으로 문사자료와 노래 등에 담아 남아 내려오게 되었다. 다음 연변의 가무는 원체 노래와 춤을 즐기는 우리민족인지라 연변이라는 민족 집거구가 생기자 연변 문공단(연변가무단 전신)의 창단을 계기로 각 시현마다 예술단을 세웠으며 이 중 연변 문공단은 지구 급을 뛰어넘어 성급 예술단체로 발돋음 하기도 했다. 우리민족 축구 또한 역대로 소문이 높았다. 지난 세기 50-60연대 중국 국내의 모든 전업축구단마다 조선족 선수가 있을 정도로 우리민족은 축구에 유능하기로 이름났으며 당시 중국 국가임업축구단에는 감독으로부터 선수에 이르기까지 100%가 조선족일 정도였다. 그리고 조선족이 절대 다수(한족이 단 1명-탕펑샹[唐鳳])인 길림성 축구단은 중국의 4대 강팀 중의 하나였으며 1965년에는 중국 전국축구 갑 급 연맹전의 우승고지를 점령하기도 했다. 헌데 이러한 것들이 이젠 “아, 옛날이여!”로 되고 있다. 연변의 핑궈리는 장기간의 기술양도와 당도와 수분 그리고 모양새 등 기술연구분야에서 새로운 업그레이드가 흐지부지한 탓에 이전에 연변에서 기술을 양도했던 깐수(甘肅). 닝샤(寧夏) 등지의 핑궈리에 비해 품질상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연변축구는 아직은 여전히 중국슈퍼무대에서 종횡무진하고 있으며 연변은 중국의 중점적인 축구발전지구로 선정되고 있지만 지난 세기 50-60년대에 비해서는 크게 각광받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자금상과 인력상의 요소 등으로 현상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앞날 또한 명랑하지 못하다는 것이 필자의 분석이다. 다음은 연변의 가무이다. 현재 연변에서는 주정부의 차원으로 연변가무단과 연길시 조선족예술단을 대폭 지원하고 있기에 연변의 가무는 여전히 중국 내에서 여전히 큰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소수민족예술이라는 점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지 그것을 배제하면 과연 전국을 놀라게 할만한 것이 있겠는가 하는 것도 의문스러울 정도이다. 그리고 현재 재정상황으로 연변 주 내 대부분 시와 현의 예술단체가 해체된 상황, 만약 정부측의 지원마저 없다면 연변가무단과 연길시 조선족예술단의 생존도 장담하기 어려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우리 한민족이 <용두사미>와 같다는 것은 경제분야에서도 노출되고 있다. 연변의 50-60대 조선족들은 거의 모두가 알다 싶이 연변의 유명한 기업이었던 연길 담배공장과 연길 맥주공장의 창업자들은 모두 우리민족 기업인들이었다. 하지만 이 두 기둥기업 역시 후에는 기업경영권을 한족들한테 내주었다가 이제는 타지의 기업과 합병하거나 매각까지 되었다. 연변 조선족경제의 허실을 진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한민족의 <용두사미>의 근성, 필자의 이 분석이 맞는다면 서로 입 싸움을 하면서 뭉치지 못하는 폐단과 더불어 민족의 발전과 장대에 아주 큰 걸림돌로 되고 있다. 지나치게 총명해서일까, 아니면 <약소민족과 약소국가한테는 외교가 없다>는 말이 통해서일까? 여하튼 여러 가지로 추리되고 분석된다. 그렇다고 우리민족이 희망이 없다는 건 결코 아니다. 필자한테는 한족친구들이 적지 않다. 중국에 있을 때 그 친구들은 “조선족은 깨끗하고 영리하며 한족에 비해 앞선 시대적 의식을 갖고 있다”며 평가하군 했었다. 이는 필자가 조선족이니 필자의 앞에서 좋은 말을 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들의 말에 일리가 있었으니 말이다. 무턱대고 사람과 사람, 민족과 민족을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민족은 확실히 다른 민족보다 여러 가지 우수성이 있었다. 적어도 문명, 예의, 스포츠와 예술에서 그랬고 군인 같은 강한 정신력 및 부지런하고 끈질긴 근로정신 등에서는 어느 민족한테도 짝지지 않다는 것도 그렇다. 다만 뭉치지 못하고, 시작은 훌륭하나 뒤끝이 흐지부지한 <용두사미>같은 열근성만 근절하면 우리민족은 지혜민족의 후손이라는 유대민족보다도, 약삭빠르고도 빈틈없다는 소화민족보다도, 한 우물만 파며 부지런하고 꾸준하다는 중화민족보다도 더욱 우수한 민족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더욱 당당하게 한민족 만세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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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06
  • [미니칼럼] 꼬마 축구팬의 눈물
    ● 김 혁(재중동포 소설가) “행복한 눈물(Happy Tears)”이라는 그림이 있다. 유명 광고나 만화책에서 이미지를 차용 해 작업하는 미국의 팝 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다. 그림은 2002년 뉴욕의 어느 한 경매에서 715만 9500 달러에 경매되였다. 당시 영국 BBC 뉴스는 이 작품이 고가에 판매, 경매 기록을 깼다는 기사를 내보낸 적 있다. 이 그림은 지금 한국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자택에 걸려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작품이 인상적이였다기 보다는 그 가격 자체가 충격적이였다. 오래 된 만화책에서나 볼법한 촌스러운 아가씨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운 그림이 수백만대를 호가한다니? 사람들은 과연 이 그림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지만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머금은 아가씨의 얼굴은 그로서 강렬한 이미지로 모두들의 뇌리에 남았다. 며칠전에도 우리는 행복한 눈물을 목격했다. 4월 16일, "백두의 호랑이" 연변팀 대 하북팀전에서 올 시즌 첫 꼴을 터뜨리자 꼴문을 연 용장 김승대와 그 꼴에 도움을 준 윤빛가람 못지 않게 관중들의 주목을 받은 축구팬이 있었다. 선수와 팬들이 흥분의 도가니로 들끓는 사이 생방송 카메라는 홀연 한 꼬마 축구팬을 포착했다. 부진에 시달리던 우리의 "호랑이"가 올 시즌 첫꼴을 선사하는 순간, 한 꼬마가 격동에 못이겨 그만 눈물 왈칵 눈물을 터뜨리는 장면이였다. 붉은 빛 응원 유니폼을 입은 앳된 얼굴의 소년은 목에 두르고 있던 응원 타올로 얼굴을 감싸고 오열을 터뜨렸다. 곁자리 친구의 다독임에 마음을 안추리고 다시 눈물 머금은 얼굴로 꼬마는 “연변팀 이겨라”를 목청껏 복창하고 있었다. 이 장면은 시청자들의 감동과 공명을 자아냈고 그 동영상이 인터넷과 위챗을 달구어 불과 며칠사이에 5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피폐한 환경, 풍토에 "안구건조증" 환자가 속출하고 눈물을 잃어가고있는 요즘 세월 인공눈물까지 등장하고 있다. 어느때 부터인가 세상은 진정한 눈물을 잃어버렸다. 대신 위장된 눈물, 계산된 눈물로 넘쳐난다. 돈으로 치환되는 눈물도 있다. 그에 비하면 한 꼬마 축구팬이 자신의 팀을 위해 흘린 눈물을 우리는 그야말로 거금으로도 환산할수 없는 수정같은 눈물이라 높이 사고 싶다. 그것은 정녕 순수한 눈물, 값진 눈물, 행복의 눈물이 아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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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21
  • [칼럼] 더민주 당원들 "누구를 밀어야 할까"
    ● 소정선 (칼럼니스트) 3일 마지막 경선 투표을 앞두고 민주당원들이 딜레마에 빠졌다. 당내 유력주자 문재인 전대표에 맞선 2위 안희정 충남지사의 국민적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경선과 대선이 따로 노는 여론의 불일치 현상이다. 호남, 충청, 영남 경선을 끝내고 마지막 격전지 수도권 경선을 앞둔 현재 문재인 후보의 누적득표율은 59%로 수도권에서 득표율 45%만 넘으면 본선 직행이 가능하다. 안희정지사와 이재명시장은 영남경선이 끝난 직후부터 전체 선거인단 3분의2에 해당하는 136만 5천명의 수도권 표를 겨냥한 최후의 선거운동에 나섰다. 다수 전문가들은 그러나 큰 이변이 없는 한 수도권에서 문재인후보가 45%을 넘겨 대선주자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대선후보 적합주자로 2위 안희정 지사가 여전히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가 3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양자 대결 시 문 전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는 각각 41.7% 대 39.3%로 오차범위(±3.1%포인트) 내에서 박빙 승부를 벌일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안 지사가 안 전 대표와 양자 대결을 벌일 경우 각각 44.8% 대 34.8%로 10%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 지사는 민주당 경선에서 문 전 대표에게 밀리고 있지만 본선 후보로선 경쟁력이 가장 높은 것이다. 이 조사가 가지는 의미는, 안지사는 경선 이전부터 대선후보 적합도에서 계속 수위를 달려왔는데 경선 막바지인 최근까지도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그 추세가 변함이 없다는데 있다. 오히려 문대표가 대선주자가 되면 안지사 지지표의 33.3%가 안철수 전대표로 옮겨간다는 것이다. 물론 다자대결이 될 경우 표가 다소 분산되지만 후보간 우열에는 큰차이가 없고, 또한 향후 대선은 양자 대결이 유력하다. 민주당을 진보로 볼 때 자유한국당, 바른정당의 지지도가 미미한 가운데 박근혜 전대통령의 구속 등의 영향으로 보수쪽의 지지율은 낮게 전망된다. 이럴 경우 중도 진보나 보수표의 일부가 안철수 전대표 지지로 기울면 문재인 후보는 선거에 패할 가능성도 크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경선이냐, 대선이냐’는 본질적 의문을 던지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근 경선을 빗대어 ‘안방대세 Vs 국민대세’로 비아냥 대기도 한다. 당내 경선에서는 문재인이 독주하지만 국민여론은 안지사가 우위에 있다는 의미다. 대선주자로서 문후보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경선초기부터 안지사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높아지면서 대다수 언론에서도 문 후보에 대한 불안감을 표시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조차 ‘절대 투표하지 않을 후보’로 문재인이 27.5%를 얻어 1위를 달리고 있다. 적폐청산을 주장하면서 줄세우기와 무차별 영입, 지역감정 조장 등 스스로 적폐세력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당내 경선에서도 댓글부대의 동원 등 문후보측의 더티플레이도 다른 경선주자를 자극하고 있다. 아들 취업비리, 개인 건강문제 등 혹독한 검증을 문후보가 견뎌낼지도 의문이다. 민주당내의 한 인사는 “박정희가 죽고 민주화를 염원했는데 전두환이 나타나 더 강한독재를 했고, 박근혜 탄핵되고 차원높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데 판박이의 더 교묘한 패권정치가 나타날 것”을 우려했다. 경선이 진행될수록 문후보에 대한 여론의 반감이 높아지면서 김종인, 홍석현등 원로그룹들에 의한 대연정론 시도 움직임도 최근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이들은 안철수 후보와 일부 보수 세력을 연합할 경우 보수를 안고 가는 후보가 당선될 것을 자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일각에서는 안지사의 탈당과 대연정 대선후보 옹립을 거론하는 인사들도 있다. 국민적 지지율이 당내 선두주자 문재인후보보다 높고, 정치역량에서는 안철수 전대표보다 우위에 있어 대선주자로 나설 경우 실제 지지율이 높을 것이라 장담한다. 지역 정치 경험 등에서 얻어진 자신감으로 다수를 아우를 유력후보이며, 원로그룹의 지지에다 대중적인 표 흡인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이다. 탈당 반대론자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민주당의 한 열심당원은“지지자들은 그럴 수 있겠지만 안지사는 그럴 생각이 없을 것이다. 민주당의 개혁과 정당중심 정치 지도자인 안희정이 원하는 길도 아니다. 대연정은 사회통합과 민주제도.개혁을 위한 방법이지 대연정이 목표는 아니”라고 강변한다. 과거 이인제 후보의 탈당을 추억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당시의 경우 새 트렌드인 노무현이 부상하면서 구세대인 이인제가 자연스럽게 탈락하는 과정이었지만 현재의 새트렌드는 안희정 지사라는 주장이다. 대연정론을 비롯한 안희정지사의 ‘정치적 상품성’이 범보수와 양심적 진보층의 지지를 얻을 경우 탈당의 명분을 상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탈당파의 한 관계자는 “안지사가 던진 대연정의 파장이 크다. 국민들도 이제 눈치를 채 버렸다. 일당 독주는 옳은 방법이 아니며 다른 방법도 얼마 던지 모색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제 널리 퍼졌다”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강조했다. 문재인 후보의 지도력에 대한 우려가 현존하는 현실에서 현재 여론 추세가 지속되면 진보진영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지지표만 굳은 상태에서 더 이상 표가 들어오지 않고 범보수와 안철수 지지층의 표가 결집하면 이번 대선에서도 민주당은 눈앞의 승리를 놓치게 된다. ‘확실한 필승 카드로 갈 것이냐, 관성적인 지지로 또한번 좌절할 것인가’ 민주당의 행로는 3일 고척돔의 선거인단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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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03
  • [칼럼] 연변말이 창피한가?!
    ● 허연화 연변에서 태여나고 자란 필자는 연변말이 참으로 정겹고 좋다. 일본에서 산지 오래되기에 연변말을 할 수 있는 지인을 만나서 연변말로 대화하는 시간이 너무나 즐겁고 소중하다. 하지만 중국의 다른 지역 조선족이거나 한국 지인, 자이니찌분(재일동포)들과 대화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연변말의 특유한 억양을 감추려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연변말의 특유한 억양과 특수한 중국식 우리말 단어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우리 민족들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에 영향을 줄수 있다는 배려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연변사투리를 혼자 한다는 것이 왠지 낯뜨겁다는 의식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연변말이 정겹고 좋은데 무의식적으로 “표준우리말”과 갈라서 사용하려 하였던 것이다. 아마 독자들 중에도 나와 같은 경험이 있거나 현재 이런 상황인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왜 이렇게 연변말을 “표준우리말”과 갈라서 사용하려는 상황이 발생할가? 그것은 단지 편의를 고려해서일 뿐일가? 본래 언어자체는 서렬을 매길 수 없다. 하지만 현실생활에서 의식조사를 해보면 어느 나라에든 낮게 평가되는 방언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 동북지역의 방언은 촌스럽고 열등하게 평가되며 이 지역 출신의 사람들은 일본 다른 지역에 갔을 때 방언을 억제하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또한 한국 국내에서도 서울 및 서울말의 패권주의가 사회적문제로 논의되기도 한다. 허나 같은 방언이라도 표준말보다 호의적이고 자랑스러워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의 교토, 오사카 지역에서 많이 사용하는 간사이벤(関西弁)이라는 방언은 현재 일본에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호의적인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교토지역은 교토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며 다른 지역으로부터 온화하고 아름답고 정중하다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 왜 어떤 방언은 열등감을 조성하고 어떤 방언은 자랑스럽다고 느끼는 것일가? 그것은 인간이 가지고있는 편견에서 온다. 편견이라는 단어는 종종 나쁜 결과와 연계할때가 많지만 사실 그렇지만은 않다. 편견이란 어떤 집단의 성원이 다른 집단에 대해 가지고있는 의견이나 태도를 말한다.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선입견은, 많은 경우 직접적인 증거라기보다 얻어들은 소문에 의한 경우가 많으며 새로운 정보를 눈앞에 직면해도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같은 편 의식”을 느끼는 집단에는 호의적인 편견을 갖고 있고 그렇지 않은 집단에는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 특정된 집단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 집단에 대해 공평하게 대하기를 거부한다. 그럼 이런 편견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가? 우선 매체의 영향으로부터 분석할 수 있다. 연변사람, 연변말의 경우 한국TV의 뉴스와 드라마, 연예프로에서 부각된 모습이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이 크다. 사실 한국에서의 “조선족”은 연변출신 뿐만은 아니라 흑룡강성, 요녕성출신도 많다. 연변 이외의 출신의 말투는 연변말투와 다르며 경상도쪽의 말투와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조선족”하면 연변사투리를 구사하는 사람이 부각된다. 문제는 메체에서 보도되는 “조선족”의 표상이 특히 한국 진출 초기에는 사회 밑층에서 사는 폭력적이고 거칠며 도시화되지 않은 모습이 위주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 진출 초기 조선족이 종사한 일이 같은 한국사람일지라도 천대받고 기피하는 원향어선이나 3D(Dirty, Difficult, Dangerous)업종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말이 통하는것 같은데 아닌것 같은, 서로 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느끼던 적응단계였기에 크고작은 많은 트러블이 생길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서의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매체에서 비춰지는 조선족의 이미지도 변화되고 있지만 아직도 초기단계의 이미지가 뿌리깊게 작용하고 있다. 하여 아직도 조선족이 쓰는 연변말은 흔히 조롱의 대상이 되군 하는게 사실이다.  연변말의 한국에서의 마이나스적 이미지의 영향은 한국사회 뿐만아니라 중국사회 및 중국의 조선족사회에도 파급된다. 한국과 만나기전의 연변말은 중국의 조선족들이 쓰는 여러 억양중의 하나에 불과했고 연변조선족자치주라는 이름이 보여주듯이 중국의 조선족사회에서는 중심이였고 연변말은 주류어였으며 연변에서는 “표준어”로 통했다. 같은 연변에서 사는 한족들도 연변말을 따라하거나 하여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쇼핑중심이였던 서시장일대를 가면 조선족이든 한족이든 “아재, 아재”하고 말을 걸어오군 한다. “아재”란 연변에서 젊은 여성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또한 연변은, 중국의 다른 민족으로부터 자기 민족의 특유한 문화를 유지하고 있고 춤 잘추고 노래 잘하며 깨끗하고 부지런한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55여개 소수민족 중에는 천만을 넘거나 가까운 소수민족도 많다. 200만명(2010년 인구조사에서는 183만명)도 안되는 조선족이지만 예술에 능하고 교육률이 높다는 평가를 받게 되기까지 중국인민해방군국가를 만든 정률성으로부터 시작하여 현재의 강경산원사(중국에서 과학기술방면의 최고학술칭호), 중국대지의 각 대학의 조선족교수들, 우리말/우리문화를 유지하려는 모든 조선족들의 노력이 있었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한국붐이 중국대지에 퍼지면서 한국 매체에 비춰지는 조선족의 이미지는 중국에서 알려진 이미지와 너무 다르다. 게다가 중국처럼 큰 땅떵어리에서 소수민족이라는 개념조차 없고 조선족이라는 이미지 자체가 없는 지방에서는 되려 한국 매체에서의 “조선족”의 이미지가 실제 이미지로 자리잡을 때가 많다. 매체의 마이나스적 효과는 연변이미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매체는 소외, 모방살인, 사람들사이의 무관심의 생성, 편견의 강화, 중대하고 복잡한 문제의 왜소화와 간단화를 조성할 수 있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왔다. 물론 시청취자들은 그냥 피동적으로 매체가 보여주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아니다. 시청취자들은 몰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절로 해석하고 분석하는 능동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력은 별개다. 영국의 어떤 대학의 연구팀에서는 과거 TV뉴스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력을 체크하는 과정에서 뉴스의 객관성보다 화면에 비춰진 폭력적인 기억이 고대로 사람들의 기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주류매체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연구결과이다. 매체가 만드는 것은 부정적인 편견 뿐만이 아니다. 우에서 말한 일본의 간사이지역 방언의 경우가 매체에 의해 전파된 긍정적인 편견에서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의 강호동, 류재석으로 통하는 산마, 신스께 등 개그맨거장들이 간사이 지역 출신이고 또한 연예프로그람에서 간사이 출신의 사람들이 자주 등장함으로써 간사이벤이라는 방언을 전 일본에 침투시켰다. 상업화된 매체가 주류인 현대사회에서 객관성을 가지기란 어려운 작업일 것이다. 하지만 매체를 비판적 눈으로 관찰해야 할 중요성은 계속 강조되어야 한다. 편견은 또한 한 집단이 처한 경제적위치와도 관련된다. 한국의 여러 동포들 중에서도 연변말투가 유독 촌스럽다고 부각되는 것은 왜일가? 그것은 한국과 중국이 만난20세기 90년대의 중국의 경제적 상황에 의한 것이 많다. 즉 같은 동포라 할지라도 재일, 재미 동포는 한국보다 발전한 나라에서 온 동경의 대상이고 중국, 구소련 동포들은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구소련 지역 출신의 동포, 재미, 재일 동포들은 우리말자체의 보유가 매우 어려운 역사적, 사회적 환경에 의하여 우리말 자체의 유지가 되어있지 못하고 사투리로라도 우리말을 구사할 수 없는 사람이 오히려 더 많다. 하지만 중국에 이주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노력과 중국소수민족정책이 유효하게 결합됨으로써 소수민족 집중 거주지에서 민족학교를 꾸리고 조선말로 공부를 할 수 있고 심지어 대학입시시험도 조선어로 시험을 볼 수 있다. 타향에 이주해서도 우리말로 말하고 글을 쓰는 매우 행운스러운 집단이 조선족인 것이다. 물론 연변말은 다른 모든 방언들과 마찬가지로 조선말에서 나왔지만 또 자기 지역의 특정에 따라 변이를 거친 것은 사실이다. 다른 민족들과 어울려 살면서도 자신의 언어를 잃지 않은 것에 대한 자부감을 갖고 있었는데 되려 “고국”에서 그렇게 소중하게 유지해온 우리말이 우리말이 아니라고 비웃음을 당한격이다. 못사는 나라에서 온 가난한 동포, “가난하다는건 게으른 것이고 못배워서이다”는 한국사회의 가치관이 바탕이 되여 조선족이 쓰는 언어마저 가난해지고 천대받게 된 것이다. 사실 알고 보면 한반도외에서 유지된 소중한 우리말의 변이인데도 말이다. 편견은 또한 역사적, 정치적 요인과도 관계된다. 예를 들면 일본의 동북지역방언이 자타평가에서 열등적으로 평가받는데는 이 지역이 역사상 분단되고 정치적세력이 약화됨으로써 이 지역의 문화자체도 부당한 평가를 받은 역사가 현재까지 내려온 것이 이유가 아닌가고 분석하기도 한다. 반면 교토는 오랜 세월 일본의 중심이었고 일본스러움의 모든 상징으로서 일본인의 귀속의식이 교토에 있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 언어의 이미지는 그 지역의 역사적인 평가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살면서 여러 지역의 우리민족과 접촉해보면 우리말의 다양성과 변이를 느낄 수 있다. 각 지역의 우리말들이 억양이 다르고 쓰는 단어도 다를 때가 있지만 서로 느끼는 우리말의 기본적인 정서는 공통한 것이 너무 많고 정겹다. 작년 3월, 일본의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学)에서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모임이 있었다. 시인이 남겨놓은 시를 읊는 부분에서 필자는 너무 감동을 먹었다. 우리가 다 아는 윤동주의 시들이 서울억양, 재일동포억양, 조선족억양, 일본인의 우리말발음억양으로 각각 읊어 귀에 들려오는 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감동에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연변말이 낯뜨거웠던 그 시절이 낯뜨겁던 순간이었다. “우리말”이라는 것이 “표준어”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범주로 의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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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3-29
  • [김정순 칼럼] '침묵의 나선이론' 노린 졸렬한 꼼수 아니길
    ●김정순 언론학 박사 / 휴먼에이드 미디어센터장  대통령선거일이 47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권의 대선 시계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대선경선 후보 간에 치열한 공방이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다수의 매체와 정치전문가들은 민주당 경선이 본선보다 더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며 핫이슈로 다루고 있고, 더불어민주당 후보들 간 공방전은 각 매체들의 머릿기사 소재로 등장한다. 이런 와중에 지난 22일 저녁, 더불어민주당 현장투표 개표 결과로 추정되는 미확인 자료가 SNS를 통해 유출되는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면서 당 안팎은 물론 정치권이 벌집 쑤셔놓은 듯하다. 괴문서에 의해 압도적 1위로 드러난 문 후보 측은 '이는 가짜'라며 '찌라시'쯤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안희정·이재명 후보 측은 당 지도부와 선관위를 향해 강하게 항의하고 있어 심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예비경선 유출 정보는 그자체로 파급력이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정보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유권자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선거일이 임박했을 때의 여론조사 발표를 금하고 있는데, 이는 '밴드왜곤효과(Bandwagon effect)'에 의해 여론이 우세한 쪽으로 쏠리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침묵의 나선이론(Spiral of Silence Theory)'도 있다. 여론 형성 과정이 한 방향으로 쏠리는 모습이 마치 나선형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이론은 독일의 여론조사 기관 설립자이자 커뮤니케이션·정치학자인 노엘레 노이만에 의해 이름 지어진 것으로, 이에 의하면 인간은 고립의 두려움이 있어 사회적으로 우세한 여론에 편승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지지자가 가장 우세해 자신이 다수편이라는 것이 확인되는 경우, 지지자를 떳떳이 밝혀 점점 나선모양으로 확장되면서 커지는데, 반대로 자신의 지지자가 열세인 것이 보이면 사회적 고립을 염려해 침묵하다가 마침내 심연 속으로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이론을 경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의 우리 정치현상에 적용하는 데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선거의 판세를 가름하는 호남경선을 앞둔 시점에 유출된 것이어서 경선 후보자들은 물론 유권자 입장에서도 여간 김이 빠지는 게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압도적 1위로 밝혀진 문 후보 측은 이번 기회를 통해 '대세론 굳히기'를 펼치기 좋은 호재를 얻었다. 반대로 1위를 추격하는 후발주자들 입장에서는 본게임도 치르기 전에 뚜껑이 열리고 내용물이 공개되는, 김이 새고 맥이 빠지는 기분일테다. 2, 3위를 지지하는 다수의 유권자들은 투표도 하기 전에 '지는 게임'으로 판단해 자칫 행동하지 않고 침묵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각 후보 진영의 유·불리를 떠나, 이번 괴문서의 내용이 실제 결과이고 이게 유출된 것이 맞다면 정말 큰 문제다. 민주당 지도부와 선관위의 경선 관리에 큰 오점이 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다시 태어나려는 대한민국의 정치에 희망을 걸고 싶은 국민에게도 찬물을 끼얹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득권과 주도권을 유지하려 불공정한 방법을 동원하는 졸렬한 꼼수 △권력 쟁취를 위해서라면 동지도 벗도 가볍게 저버리는 작태 △권모술수를 '정치의 기술' 쯤으로 여기는 태도 등, 어디서 많이 봤던 것들이다. 다름 아닌 더불어민주당이 청산하고자 하는 역겨운 '구악정치' 행태 아닌가. 이번에 벌어진 '괴문서 사건'은 결코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후보 당사자들의 이해를 떠나, 새 세상을 갈망하는 유권자들을 심하게 유린한 행위일 수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규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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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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