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9(일)
 
 
지난 4월 영등포와 수원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이 사건이 조선족에 의해 일어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조선족을 국내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흘러나왔다.

언론에서는 연일 사건 수사 경과를 낱낱이 밝히며 잔인한 범죄 내용만을 부각시켰고, 조선족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고 있다며 이주민 사회 내의 분위기를 전했다. 사건 발생 한 달이 지난 뒤, 조선족들이 많이 사는 가리봉동, 대림, 안산 등지의 분위기는 그런 사건이 언제 일어났었냐는 듯 조용했다. 그러나 4월에 일어났던 사건과 이어진 보도를 통해 이주민 사회 전반을 돌이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개인에 의해 일어났던 사건을 이주민 전체의 잘못으로 매도하지 말고, 이주민에 대한 이해를 통해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외국인 거리는 평온해 보였지만, 이들에 대해 들끓고 있는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 역시 이곳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 4월 살인 사건 이후 조선족에 대한 혐오 게시물이 많이 올라와 곤욕을 치렀다는 조선족대모임 허을진 대표.


조선족 모두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6만 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중국조선족대모임(조선족대모임)’ 다음 카페는 허을진 대표가 개설한 조선족 친목 카페다. 조선족 사이에서 소식통으로 통하는 이 카페는 오프라인에서도 200명이 넘게 모여 정기 모임을 할 만큼 조선족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 그러나 지난 4월 다음 아고라 등지에서 조선인 추방 서명 운동을 벌이는 등 온라인에서 조선인에 대한 반감이 커지자, 해당 카페에서까지 조선족에 대한 혐오 발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회원들은 이러한 발언을 올리는 네티즌들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카페 분위기가 이러다 보니 정기 모임의 참여율도 평소에 비해 낮아졌다. 지난 5월 6일 모임에서는 평소보다 적은 140여 명이 참석했고, 자주 참석했던 한국인들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허 대표는 “온라인에서의 분위기가 흉흉하다보니 회원들이 모임에 잘 나오려 하지 않았고 서로 어울리기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해당 카페에는 ‘조선족을 욕하는 글을 왜 지우지 않느냐’는 회원들의 불만이 담긴 게시물도 많았다. 허 대표는 “실제 회원들이 삭제를 요구하며 항의하기도 했다”며 “누구든지 발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삭제 등의 조치를 자제하고 있지만, 해당 사건 이후 많은 게시물이 올라와 곤욕을 치렀다”고 전했다.

이렇게 외국인에 대한 혐오 게시물이 많아지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서는 지난 1월 1일부터 4월 17일까지의 게시물과 관련해 심의를 진행했다. 방심위는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제 8조 제 2호 중 바 목의 ‘과도한 욕설 등 저속한 언어 등을 사용하여 혐오감 또는 불쾌감을 주는 내용’, 제 3호 바 목의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연령, 사회적 신분, 인종, 지역, 직업 등을 차별하거나 이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내용’ 등을 적용해 심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 때 삭제나 이용 해지 등의 조치를 받은 게시물은 총 11건이었고, 이 중 이주민에 대한 비방 건수는 6건에 불과했다.

대림역 근처에서 만난 조선족 A씨는 “심의를 한지도 몰랐다”며 “온라인에 그렇게 많은 욕설이 난무했는데 일부만 심의 조치한 것이 말이 되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A씨는 “조치를 받은 네티즌들이야 경각심을 갖게 됐을지 몰라도, 아무 근거 없이 조선족을 비방한 사람들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은 셈이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방심위의 관계자는 “심의의 영향력이나 결과에 대해 조사된 바는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렇듯 이주민 사회에서는 특정 사건에 근거해 이주민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가리봉동 연변거리에서 만난 한 이주민 B씨는 “수원 살인 사건의 경우 범인이 조선족이라는 것보다 잔인한 살인 수법과 피해자의 안타까운 사연에 더욱 놀랐다”며 “범인이 조선족이라고 해서 조선족을 싸잡아 비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 조사과의 한 관계자 역시 “이런 사건들 때문에 죄를 짓지 않은 조선족들까지 피해를 볼 수 있다”며 “한국 사람들에게 오해를 살까봐 일부 이주민들이 더 조심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안산이주민센터 김영선 사무국장도 “한국 사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범인이 개인이 아닌 ‘조선족’으로 분류됐다”며 “범인이 개인이 아닌 ‘조선족’으로 다뤄지면서 조선족을 비롯한 이주민 전체가 문제가 되는 것처럼 부각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심지어 안산이주민센터에는 이들 단체가 마치 그들의 범죄까지도 보호하는 것 아니냐는 항의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가리봉동 인근에 모여 있는 조선족 사람들. 이때 만난 B씨는 조선족 전체가 비판받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피부가 ‘흰’ 외국인에게는 우호적인 한국 사회의 이중 잣대
이주민들에 대한 원색적인 시선이 모든 외국인들에게 가해지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에서 온 흰 피부의 외국인들에게는 우호적인 태도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강남 등지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는 C씨는 “미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영어가 능숙한데도, 일부 학원가에서는 피부가 희지 않다는 이유로 임금을 적게 주거나 수업을 많이 맡기지 않는다”라며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백인 선생님의 수업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선생님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노동자’로 인식하는 학생마저 있어 마음에 상처가 됐다”고 씁쓸함을 드러냈다. 특정 외국인에의 우호적인 시각이 다른 외국인들에게는 더 큰 차별적 시선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나라의 다문화 가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통계청의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우리나라의 다문화 가정은 약 38만 가구로 이들 가정에서 출생한 자녀들은 약 2만여 명이었다. 이는 전체 출생아 100명 중 4명이 다문화 가정 자녀라는 의미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에서 태어난 어린이들은 자신의 집이 다문화 가정이라는 것을 알리기 꺼려하기도 한다. 구로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한 학부모는 동남아 출신의 여성과 결혼한 다문화 가정의 아버지였다. 그는 “엄마가 동남아 출신 외국인이라는 것을 다른 아이들이 알고 괴롭힐까봐, 아내가 아이를 데리러 가지 못하게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주민과 다문화 가정의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는 다문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안산이주민센터 김영선 사무국장.


편견으로 인해 차별까지 받는 외국인들
이주민에 대한 편견이 많다보니, 이들이 많이 사는 곳 근처에 있는 한국인들은 불안감을 느낄 때도 있다.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 조사과의 한 관계자는 “최근 조선족이 많이 사는 곳을 조선족 문화 거리 등으로 명칭을 바꾸려고 했는데, 그 곳에 있는 한국인들이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며 우려해 무산된 적도 있다”고 밝혔다. 가리봉동 인근에 사는 주민 D씨는 “조선족들이 많이 사는 거리를 지나가는 것이 꺼려질 때가 있다”며 “다 나쁜 사람들은 아니겠지만, 조선족들이 모여서 시끄럽게 떠들거나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을 보면 괜히 빨리 지나가게 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안산이주민센터 김영선 사무국장은 “사실 우리가 필요해서 이주민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한 것인데, 지금은 사람들이 그러한 생각을 전혀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밝혔다. 실제 일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입국한 이주민들은 3D 업종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채워주는 경우가 많다. 또 국제결혼의 비율이 증가하다보니, 한국에서 다문화 가정을 꾸리는 경우 역시 많다. 그런데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온 사람’, ‘몸을 파는 결혼을 하는 사람’이라는 전제 하에 이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김 사무국장은 “임금 체불 등의 노동 문제나 외국인 차별 등 다문화 사회의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이주민들을 ‘막 대해도 되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편견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분석했다. 실제 이주민들이 한국 사회의 법 질서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을 악용해 이들을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1년 이상 계약을 맺으면 퇴직금을 지불해야 하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6개월 단위로 나눠 외국인을 고용하는 경우도 있다. 노동자들을 사업장으로 파견한 파견 업체가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고 갑자기 사라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가리봉동에서 만난 이주민 A씨는 “사실 수원 살인사건보다는 오히려 조선족에 대한 차별 대우로 논란이 됐던 영등포 살인 사건이 조선족 사회에서 더 뜨거운 이슈가 됐다”고 밝혔다. 영등포 살인 사건은 조선족 노동자가 직업 소개소장과 밀린 임금을 두고 다툰 끝에 그를 흉기로 찔러 우발적으로 살해한 사건이다. 조선족들은 직업소개소와의 관계에서 ‘을’이 될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입장을 생각하며 해당 사건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김 사무국장은 “물론 그런 환경에 있다고 해서 모두 죄를 짓는 것도 아니고,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악덕 직업소개소 때문에 열악한 환경에 놓인 이주민들이 너무나 많다”며 “‘아쉬운 사정으로 한국에 온 사람들’이라는 편견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로 인한 차별적인 대우는 계속될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조선족들이 많이 모여 사는 가리봉동 인근 거리의 모습. 이들과 우리가 ‘다르다’는 점은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아야 한다.


‘그들’이 아닌, ‘우리’가 함께 하는 다문화 사회
이주민 사회를 한국 사회와 조화롭게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이주민들의 노력 역시 필수적이다.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 조사과 관계자는 “열악한 노동 조건과 시설 등에 대한 관리도 필요하지만 이주민들이 한국의 법 질서를 잘 지키려는 노력 역시 중요하다”며 “이주민의 수와 이주민 사회의 질서를 유지해야 질서를 지킬 수 있고 다음에 한국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다”고 당부했다.
 
약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불법 체류 이주민들이 취약한 신분으로 인해 제대로 된 노동 환경에서 일하기 어려운 만큼, 질서를 잘 지켜야 더 많은 이주민들이 차별없는 조건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관계자는 “특히 마작 등의 도박을 ‘문화’라며 한국에 들어와서 하는 외국인들이 많은데, 한국의 문화를 존중해야 우리도 이들을 편견 없이 대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조선족대모임 허을진 대표는 “한국의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일부 조선족들이 무시당하기도 하지만, 처음 조선족들이 한국에 왔을 때 한국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줬다”며 “조선족들도 한국의 질서를 잘 지키고 모르는 것은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안산이주민센터를 비롯한 다문화 단체에서는 다양한 국가에서 온 이주민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이주민들과 내국인들이 어울릴 수 있는 장을 만들고 다문화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것이 주된 목표다. 김영선 사무국장은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행사 위주로 다문화 캠페인을 벌였지만,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거나 이들에 대한 차별을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문화를 표방하는 행사는 많지만, 제대로 된 다문화의 장을 만들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 조사과 관계자 역시 “다문화 가정에 대한 지원은 많지만, 이주민 노동자에 대해서는 아직 지원이 미흡하다”며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이들을 골고루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한국 사회에 들어와 있는 이주민은 총 200만 명 가량 된다. 그러나 특정 사건으로 인해 이들 전체에 대한 편견을 심화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피부색에 따라 특정 외국인에게 가해지는 차별어린 시선은 이들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나날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커져가고 있는 이주민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의 외국인 그리고 한국인들. 이들을 배제한 일회성 다문화 행사가 아니라, 이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사회가 조화로운 다문화 사회일 것이다.

이지연 기자 / leejy379@snu.ac.kr

/서울대저널
서울대저널 이지연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그들에게만’ 가해졌던 편견과 차별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