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두월생은 옛 상하이의 <중국의 갱스터 보스(黑帮老大)>, <중국의 제1호 방주(第一帮主)>로 불려온 인물이다.
1937년 상해가 함락되었다. 그 뒤함께 손잡고 일하자는 일본군의 요청을 거절한 두월생은 그 이듬해 봄 중국적십자총회 이사진을 홍콩으로 전이시키고 자신이 직접 판사처를 설치하고 사업을 주최하면서 해외의 후원물자를 접수하는 동시에 기타 구국활동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기도 했다.
홍콩에 거주하는 동안, 두월생은 자신의 방회를 이용하여 계속 항일구국사업에 정진, 그가 장악하고 있는 상해적후사업 통일위원회는 각종 방법으로 상해 경제계의 거두들인 우흡경(虞洽卿) 등이 안전하게 상해를 떠나 중경에 도착할 수 있도록 알선해주었고 자신은 물론 고종무(高宗武), 도희성(陶希圣) 등 인사들까지 매국역적 왕정위(汪精卫)와 결렬할수 있도록 기획하기도 했다.
1940년 두월생은 홍콩에서 인민행동위원회를 조직, 실제상 중국방회(中国帮会)의 용두(龙头)로 군림한다.
1942년, 태평양 전쟁이 폭발하자 두월생은 중경으로 전이하여 항사총사(恒社总社)를 건립하면서 대 후방에서의 세력을 발전시켜 나갔으며 선후로 중화무역신탁회사(中华贸易信托公司), 통제회사(通济公司) 등 경제실체를 만들어 일본군 점령지구와의 물자무역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 외 중경에서 규모가 큰 병원을 설립, 이는 당시 가장 선진적인 전시 후방병원으로 이 병원의 탄생은 여러 언론계의 절찬을 받았었다.
한편, 일생을 반 문맹으로 살아온 두월생이었건만 자녀의 교육만은 고도로 중시하였으며 상해 프랑스조계지 선종로(善钟路)에 중학교를 한 개 소를 세우고 자신이 직접 이사장을 맡았았다. 뿐만 아니라 <포동 두씨장서루(浦东杜氏藏书楼)>를 세워 공산당이 출판한 진보적인 서적 <서행만기(西行漫记)>, <노신전집(鲁迅全集)> 등 서적까지 장서로 구입해 열람용으로 진열했다.
항일전쟁이 승리한 후 상해로 돌아온 두월생은 재 부활을 꿈꾸면서 많은 사업에 서두르면서 적지 않게 가업 및 사회사업을 복구하였으나 그런 세월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1948년 봄, 두월생은 남경정부가 소집한 국민당 <헌법실행(行宪)> 대회에서 장개석이 재차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도록 적극 밀어주었다.
한편 이 시기 당시 장개석은 엄중한 재정위기를 만회하기 위하여 장경국을 상해에 보내 개혁을 강행, 금원권을 발행하여 민간에서 유통되고 있는 외화 및 금은 장신구를 일률로 금원권으로 바꾸도록 요구했다. 하지만 두월생의 아들 두유병(杜维屏)이 이런 개혁을 따라주지 않아 장경국에 의해 체포되었고 후에 유기형 6개월로 판결받았다. 이는 두월생한테 큰 충격을 주었다.
1949년 4월, 장개석은 두월생을 단독으로 만나 자기와 함께 대만으로 가 줄 것을 희망했고 공산당 또한 비밀경로를 통해 두월생을 만나 그로 하여금 상해에 남아 줄 것을 희망했다. 하지만 두월생은 장개석의 요구대로 대만으로 가지도 않았고, 상해에 남지도 않았으며 그가 선택한 것은 당시 영국행정권에 있는 홍콩을 선택했다.
1951년 8월 16일, 두월생은 홍콩에서 병으로 사망, 63세란 그닥 길지 않은 일생을 마감했다.
BEST 뉴스
-
[연변 기행 ⑥] 한눈에 3국을 품은 땅, 훈춘 방천… 국경 끝에서 만나는 동북아의 역사
중국 지린성 훈춘시 방천민속촌 입구. 전통 양식의 대형 패루를 중심으로 조선족 문화 체험과 향토음식, 민속공연을 즐기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인터내셔널포커스] 연길의 조선족 문화와 서시장의 활기까지 둘러본 연변 기행은 이제 동북아의 가장 동쪽 끝을 향... -
[민국의 그림자 ④] ‘구국’을 내세운 투항…왕징웨이의 선택은 왜 실패했나
[인터내셔널포커스] 1910년 봄, 청나라의 수도 베이징에서 섭정왕 자이펑을 겨냥한 폭탄 암살 계획이 적발됐다. 주도자는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20대 혁명가 왕징웨이(汪精卫·왕정위)였다. 체포된 그는 죽음을 각오한 듯 자신의 책임을 인정했다. 옥중에서 남긴 “칼을 끌어 한 번 통쾌하게 죽어 젊은 날의 뜻을 ... -
줄 하나 못 지키면서 관광대국을 말할 수 있나
인천국제공항은 대한민국의 관문이다. 이곳에서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첨단 시설이 아니라 '질서'다. 그런데 최근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에서 일부 중국인 이용객 수십 명이 체크인 카운터가 열리자 차단봉 아래를 통과해 한꺼번에 뛰어가는 장면이 공개됐다. 정상적으로 줄을 서 있던 승객들은 순... -
[연변 기행 ⑦]두만강이 들려주는 역사… 도문에서 만난 국경과 독립운동의 현장
중국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국문(國門) 일대. 북한으로 이어지는 철도와 국경 관문이 나란히 자리한 중국 대표 국경도시의 모습. [인터내셔널포커스] 연변 기행 여섯 번째 이야기인 훈춘 방천이 '한눈에 3국을 바라보는 동북아의 끝'이었다면, 이번에는 두만강을 따라 서쪽으로 ... -
[연변 기행 ⑧] 홍범도의 함성이 울려 퍼진 봉오동… 화룡에 새겨진 독립전쟁의 기억
중국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봉오동 전투기념비. 1920년 홍범도 장군이 이끈 대한독립군이 일본군을 격파한 봉오동 전투를 기리는 역사 현장이다. [인터내셔널포커스] 도문을 떠나 남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달리자 두만강을 따라 이어지던 국경 풍경은 어느새 깊은 산세로 바뀌기 시... -
천년의 '해동성국'…훈춘 발해고진, 역사와 야경이 빚어낸 여름 명소
[인터내셔널포커스] 천년의 역사를 품은 발해 문화와 현대 관광 콘텐츠가 만난 중국 지린성 국경도시 훈춘의 발해고진이 여름 관광 성수기를 맞아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다. 당나라 양식의 건축미와 다양한 역사문화 체험, 화려한 야간 콘텐츠가 어우러지며 중국 각지뿐 아니라 러시아 등 해외 관광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