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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투사, 양이원영 의원
    [동포투데이] 탈원전 운동가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양이원영 의원은 현재 더불어민주당 후쿠시마 원전 해양투기 저지 대책위원회 간사를 맡아 이 방면의 대표적인 국회의원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양이 의원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를 위해 의정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지난해 8월부터이다. 양이 의원은 야당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후쿠시마 원전 해양 방류 저지 대응단을 조직하여 4월 6일 일본을 방문했다. 대응단은 “오염수 방출하면 우리 국민의 먹거리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 우려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번 방문을 두고 여권에서는 ‘빈손 외교’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이에 양이원영은 “정부가 나서지 않으니 국회가 나선 것”이라고 받아쳤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계획을 발표한 이후 줄곧 미온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사회적으로 ‘정부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를 승인 것 아니냐?’는 여론이 들끓자 한국 정부는 ‘지지도 찬성도 한 적이 없다.’고 변명했다. 한국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해양 방류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거나 찬성한 적은 없으나 침묵해 온 것은 사실이다. ‘침묵은 오염수 방류 공범’이라는 것이 양이 의원의 생각이다. 양이 의원을 비롯한 오염수 방류 저지 대응단은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분노하여 이번에는 머나먼 유럽 영국에 날아갔다. 런던 현지 시간으로 9월 16일(토) 오후 4시 더불어민주당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대책총괄위원회 우원식 의원, 송기호 정책기획 본부장은 국제해사기구(IMO) 방문하여 현직 임기택 사무총장과 차기 사무총장으로 내정된 아르세뇨 도민게즈 국장을 1시간 40분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대응단은 “미래세대와 해양 생태계를 위해 일본 정부가 허용한 후쿠시마 원전 해양 방사성 폐수 투기는 런던의정서 법률 체계에 따라 즉시 중단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서한을 전달하고 또 다음과 같은 우려 사항을 말했다. 먼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최소 30년에서 앞으로 100년 이상 투기될 가능성이 높아 장기간 해양투기에 의한 누적 영향으로 먹이사슬을 통한 생태계 피해를 우려. 두 번째로 바다에 방사성 오염수를 투기하지 않는다는 대안 즉 육상에 보관하거나 수증기 증발 등 다양한 대안에 대해 검토하지 않고 가장 비용이 들지 않는 방법으로 바다를 오염시키는 결정을 한 것에 대한 우려. 마지막으로 원전사고로 인한 오염수 해양투기는 나쁜 선례가 되어 인류와 미래세대 모두의 자산인 바다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 대응단은 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와 관련해 가장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한국과 일본이 협의가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제해사기구가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왜 양이 의원을 비롯한 오염수 해양 방류 대응단이 이렇듯 동분서주하면서 적극 나설까? 만약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왔더라면 야권 의원들이 ‘설자리’는 별로 없을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양이 의원을 비롯한 야당 대응단의 동분서주는 한국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도쿄전력 1차 오염수 방류 3개월 전쯤 한국 정부는 사회여론의 압박이 거세지자 시찰단을 일본에 보냈다. 5월 21~26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시찰단은 단장인 유국희 원자력안전원장을 비롯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원전·방사선 전문가 19명,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해양환경 방사능 전문가 1명까지 총 21명으로 구성되었다. 정부 시찰단 인원수는 방대하나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해냈는지에 대해서 국민들이 의문을 표할 정도로 말 타고 꽃구경하다 온 것 아니냐는 시선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시찰단 명단조차 밝히지 않고 공명정대하지 못하고 어물어물 쉬쉬하면서 일본 방문을 진행했으니 국민들의 비판은 정부가 자초한 것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도쿄전력은 10월 5일부터 2차 방류를 시작한다는 계획을 지난 9월 28일에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1차 방류 때와 같이 지난 4일 국무조정실을 통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소속 전문가를 후쿠시마 현지로 파견한다.’고 밝혔고 “우리 정부는 지난 1차 방류 때와 마찬가지로, 방류 관련 실시간 데이터와 도쿄전력이 시료 채취 및 분석 후 공개하는 정보 등을 철저히 모니터링한다.”고 말했을 뿐 방류 자체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는 여전히 내지 않고 있다. 한때 윤석열 대통령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두고 “일본에서도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것은 아니다. 지진과 해일이 있어서 피해가 컸지만 원전 자체가 붕괴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방사능 유출은 기본적으로 안 됐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한 한국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는 윤석열 대통령의 과거 발언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추측이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데 비해 한국 정부는 반대는 고사하고 야권과 일부 시민단체의 반대 목소리에 수산물 오염은 괴담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대통령과 여당 대표를 비롯한 관료들이 수산시장을 방문하여 회를 먹는 쇼까지 벌이고 있다. 지금도 그렇거니와 앞으로도 윤석열 정부 임기 내에는 정부 차원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에 반대하는 입장은 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윤석열 정부에 오염수 방류 반대를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호랑이와 가죽 흥정을 벌이는 것과 같이 황당한 짓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한국 전체가 손을 놓고 강 건너 불구경할 수는 없다. 양이 의원 같은 분들을 비롯해 시민사회가 적극 나서야 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주변국과의 긴밀한 협조와 공조가 매우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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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9
  • [단독 인터뷰] 강창일 전 주일대사 “일본은 하나를 준다고 똑같이 하나를 내주는 나라가 아니야”
    [동포투데이] 얼마 전 G7 정상회담이 마무리되었다. 개최국인 일본의 초대를 받아 한국도 참석했는데, 이를 두고 단절됐던 한일관계가 회복 및 정상화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사이에 쌓여있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생각하면 한일관계를 마냥 낙관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생겨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약 130만 톤의 해양 방류와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금을 일본 기업 없이 마련하겠다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 갈수록 도가 지나치는 독도 영유권 문제까지.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한국인이라면 쉬이 넘어갈 수 없는 이슈가 산적해 있다. 이러한 해묵은 역사문제부터 최근 있었던 G7을 주제로 일본에 정통한 강창일 전 주일대사(현 동국대 석좌교수, 4선 국회의원과 한일의원연맹 회장 역임)와 일문일답을 진행하며,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 한국이 취해야 할 태도와 한국에 미칠 영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검증, 피해국도 포함되어야 - 일본의 오염수 방류 문제, 어떻게 생각하나 오염수 방류는 환경뿐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도 직결된 문제다. 그러므로 바다 환경 전문가, 세계보건기구(WHO), 국제해사기구(IMO), 그린피스 등 환경 전문가가 오염수 검증에 관여해야 한다. 그래야만 객관성이 담보된다. 그런데 국제원자력기구(IAEA)로만 검증한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시료 채취도 안 되는 시찰단을 보낸다? 결과에 대한 신뢰도 어려울 뿐더러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동남아 등 많은 국가가 피해를 입을 걸로 예상되는 국제적인 문제인데, 그렇게 간단하게 접근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 일본에서는 지속적으로 오염수가 인체에 해를 줄 수준은 아니라고 하던데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는 확인 또 확인을 거쳐야 한다.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위험하지 않다는 신뢰 가능한 객관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 게다가 이 문제와 전혀 관계없는 미국, 캐나다에서 검증할 게 아니라 피해국의 전문가가 검증단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 일본은 IAEA 외에 특정 국가에 검증을 허용하지 않는데, 한국의 시찰을 수용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시찰이야 누구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시료 채취도 못 하는 시찰은 의미가 없다. 시찰이 아니라 ‘검증'을 해야 한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중요한 자료를 절대 내놓지 않아서 객관적인 사실 확인이 불가한 상황이다. - 이번 시찰단 구성, 어떻게 되는지? 정부 기구 사람들이 있다고는 하는데 누군지 구체적으로 명단 공개도 안 한다.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여기서 지금 제일 문제인 건, 한국 정부가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기정사실화 한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방류를 전제로 하고 시찰단 파견을 한 것 같다. 이렇게 되면 결국 한국이 일본 오염수 방류 문제에 있어 들러리 선다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 - 그렇다면 이번 시찰, 신뢰할 만한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기대하기 어렵다. 시찰 결과도 분명 큰 이상 없다고 결론지어질 것이 뻔하다. 시료 채취도 안 되는 시찰단이 다녀와서 발표하는 결과에 대해서 신뢰할 수 있겠나. - IAEA에서도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 과정을 검증 중이다. 이 결과는 어떻게 예상하는지? 이 역시 마찬가지다. 문제없다고 할 것이다. 일본 정부 발표를 보면 결과는 나온 것 같다. ▶ 강제 징용 배상 문제, 멀티 트랙 접근법 필요 - 강제 동원 피해자에게 ‘제3자변제' 방식으로 배상하기로 했다. 이러한 행보를 어떻게 보나. 잘못된 행보라고 본다. 일본 정부를 동참시켜서, 일본 기업에 사과를 받아야 한다. 피해자들의 명예가 걸린 문제다. 그런데 제3자변제 방식을 통한 배상은 피해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방식이다. 일본 가해 기업이 아닌, 제3자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배상하는 방안인데 일본의 자발적 사과를 끌어내긴 커녕 우리 정부가 먼저 나서서 피해자들과 원만한 해결을 보겠다는 것이다. 이런 모양새는 말이 안 된다. -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너무 성급한 결정이♘다. 한일관계 정상화도 좋지만 이런 역사 문제엔 절차와 과정이 중요하지 않나. 피해자 의견과 국민 여론을 수렴해 진행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없♘다. 그러니 여론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 강제 징용 배상 해법에 피해자가 빠져선 안 된다. 해법 마련, 어떻게 해야 하나. 일본과 꾸준히, 계속해서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물밑 작업을 지속해 일본 기업이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는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없던 일로 치부하는 건 매국과 다를 게 없다. - 국익과 역사 문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한국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몇십 년 동안 역사는 역사, 경제는 경제, 안보는 안보 이렇게 각각 멀티 트랙으로 접근했다. 잘 유지되고 있♘고 앞으로도 멀티트랙으로 진행되♘어야 했는데 갑자기 모두 일원화시키며 과거 역사를 없애버렸다. 이는 결국 역사를 팔아버린 집단이 되는 것과 다름없다. 한국 국민에겐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 잠재된 어떤 정서가 있다. 물론 일본 여행도 잘 가고, 일본 문화도 좋아하지만, 과거사는 다른 문제다. 그러므로 경제는 경제대로 역사는 역사대로 멀티트랙으로 접근해야 한다. ▶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는 G7 정상회의 - 의장국인 일본의 초청을 받아 G7 정상회의에 참석하게 됐다. 한국이 일본의 초청을 받은 배경은 무엇인가. 한국도 G7 정상회의에 4번 참석한 이력이 있다. 그만큼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 그래서 당연히 초대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만 초대받은 게 아니라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코모로, 쿡 제도 등 엄청 많은 국가가 초대됐더라. 이번 정상회의 주인공은 일본의 기시다 총리와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조연 그 어디쯤이었을 거다. - G7 정상회담에서 후쿠시마산 식재료가 제공됐다고 하던데. 일본에서도 후쿠시마산 농산물은 잘 안 팔린다. 아마 방사능 전부 체크해서 안전한 음식만 갖다 놨을 거다. 술은 증류수라 괜찮다고 하는 술과 안전한 음식 몇 개만 준비한 걸로 알고 있다. 후쿠시마산 물도 안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후쿠시마산 식재료가 정상회의 식탁에 올라 안전하다는 식으로 어필하고 있다. - 원폭 희생자에 대한 참배 일정도 있었다. 한일 정상 참배는 처음이라던데. 이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대통령이 가는 건 당연한 건데, 기시다 총리가 간 게 중요하다. 그게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아마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을 배려해서 원폭 희생자 참배 일정을 진행한 게 아닐까 싶다. 이 참배 일정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 있는 원폭 피해자 14명이 히로시마로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정부에 전달했다. 히로시마 참배 일정 때 만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데 정부 쪽에서는 회신도 없고 가타부타 아무런 이야기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히로시마로 향했던 한국 원폭 피해자들은 다시 눈물을 흘리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피해자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참배를 진행한 거였다면, 한국에서 온 원폭 피해자들도 만나고 이야기를 들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진정성을 보여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G7 정상회의 후, 여당에서는 ‘국격을 높였다' 야당에서는 ‘들러리 선 꼴밖에 안 된다'라고 의견이 갈리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국가의 위상을 높인 건 없고, 한미일 회담을 아주 짧게 약식으로 진행했는데 정식으로 길게 진행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한다. - G7 정상회의 참석이 한국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하나. 딱히 변할 건 없어 보인다. 얻은 것과 손해 본 것 모두 없다. 다만 이번 회담을 통해 친미, 친일 구도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 올해 상반기에 나타난 중국무역적자, 친일본 행보와 관련이 있나. 안보 문제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협력 관계를 다져왔다. 그런데 이번 회담과 일련의 사건을 통해 경제마저도 친미/친일이 된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을 배제함으로써 ‘신냉전체제의 구축이다’와 같은 비판도 있었다. 다행히 이번 정상회의 때 중국에 원한 살 발언은 안 했지만, 국가 이익이 걸린 경제 문제이므로 항상 신중해야 한다. - 이에 대한 주변국의 견해는 어떤가. 주변국의 견해에 앞서 중요한 건 All of nothing이다. 경제적으로 수많은 나라가 엮여 있다는 소리다. 그러므로 앞서 계속 말한 것처럼 경제는 경제대로, 안보는 안보대로, 성격에 따라 트랙을 나눠 멀티로 접근해야 한다. ▶ 독도 문제, 과잉 대응하지 않는 것이 답 - 일본이 독도를 ‘일본 영토’에서 ‘일본 고유영토’로 지칭하고 있다.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입장이 더욱 강경해지고 있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독도 문제는 해결이 어렵다. 당장 할 수 있는 대처 방법은 독도 문제를 시끄럽게 다루지 않는 것이다. 일본이 원하는 게 바로 ‘분쟁'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독도 문제를 이슈화해서 세계에 알림으로써 유리한 쪽으로 상황을 끌고 나가려는 것이다. - 그렇다면 한국이 독도를 지키기 위한 영유권 주장은 어떻게 해야 하나. 지나치게 대응하지도, 예민하게 반응하지도 말아야 한다. 일본은 우리나라가 반응하길 원하고 있다. 그래서 계속 자극을 하는데, 독도 문제는 국제 분쟁으로 끌고 가면 안 된다. 독도문제가 이슈화되면 전 세계 사람들은 사실관계 확인을 떠나 ‘독도는 일본 땅인가?’라고 생각해버릴 수 있다. 그러니 독도 문제는 크게 반응하지 않는 게 좋다. - 독도 영유권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인식은 어떠한가. 다행히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 한국의 독도 영유권 강화를 위해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과잉 대응을 하지 않는 것. 무시가 답일 수도 있다. ▶ 한일관계, 큰 문제는 없을 것. 다만… - 통큰 양보를 하고도, 일본 측 태도 변화를 끌어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이나. 윤 정부가 일본을 몰라서 그렇다. 일본은 하나를 준다고 똑같이 하나를 주는 나라가 아니다. 오히려, ‘배 째라 버텼더니 이것들이 깨갱하는구나' 하면서 더 큰소리를 친다. 그러므로 일본과는 논쟁과 논의를 지속하며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반대로 문제를 해결할 명분을 주는 것도 방법이다. - 한일 관계 전망에 대해 어떻게 보나. 우리의 요구를 관철하고, 일본의 입장도 헤아리는 식으로 가면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인 문제만 없으면 된다. 인적 교류는 이미 잘 이뤄지고 있고, 일본과는 기술 등 협력할 여지가 많다. 일본은 강압적으로 하지 않고, 한국도 비굴하게 굴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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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29
  • [인터뷰] 박동웅 구로구의장, “구민과 더불어 외국인 주민도 살기 좋은 구로 만들 것”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한국은 노동력 공백에 따른 이주노동자와 국제결혼에 의한 결혼이민자의 증가로 사실상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를 보면 장단기 체류 외국인은 2021년 6월 말 기준 1,981,035명이다. 그중 서울시 구로구에 체류하고 있는 25,316명 외국인 주민 중 18,190명이 중국동포이다. 기자는 지난 4일 구로구의회 7대 후반기 부의장으로 또한 3선 의원으로서 지역발전과 의정활동에 열정을 바치고 이번 제8대 의회에서도 후반기 의장으로 지역주민은 물론 외국인 주민 민원이 발생한 곳은 어디든지 달려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박동웅 의장을 만나 그동안 의정활동 그리고 앞으로의 중국동포 및 외국인 주민 관련 정책과 지원계획에 대해 들어 봤다. 다음은 박동웅 구로구의회 의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Q. 현재 시행 중에 있거나 계획 중인 중국동포 관련 사업은? A. 한국 국적을 가진 아이들은 보육료를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는데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중국동포 아이들은 어린이집을 다닐 때 보육료를 전액 자비로 부담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안산에서는 아마 시행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제 구로구도 내년부터 보육료 20%가량 지원해주는 사업을 하려고 한다. 현재 한국에 있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외국인 주민 자녀들을 조사해보니 약 천명 조금 넘는데 그 아이들에 대해 우선 보육료 20% 정도 지원해주고 차후에는 그냥 100% 지원하는 쪽으로 준비해 나갈 예정이다. 그래서 올해 최초로 이와 관련한 예산 편성을 준비하려고 한다. 한 해에 7억 정도 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Q. 구민들이 반발할 것 같은데? A. 그런 분들도 있지만 우리끼리만 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글로벌시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만으로 먹고사는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서울에서 구로만, 구로구 사람들만 뭉치는 것도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이곳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동포분들도 다 같은 한민족이고 외국인이던 한국인이던 차별 없이 함께 사회에 흡수돼서 생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주민들에게 잘 이해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Q. 지역주민과 중국동포 간 소통과 화합에 대한 모범 답안이 있다면? A. 가리봉을 중심으로 구로구는 중국동포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다. 구로구에는 다문화 정책과가 있는데 중국동포들뿐만 아니라 베트남이라든가 필리핀 일본 등 이주민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우리 동포들도 명예 통장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고 또 구로구에는 봉사단이 매우 많다. 이를테면 구로 4동 같은 경우는 다문화 봉사자들이 야간 순찰도 하고 있고 다문화 경노당도 만들었다. 그런 면에서는 구로구가 소통을 많이 하고 있는 편이다. 근래 산발적으로 좀 많이 하고 있는데 향후에는 체계적인 시스템 상에서 동포들과 구청 간에 소통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Q. 현재 가장 시급한 현안과 해결책은? A. 현재 구로구에는 이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그중에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분들이 중국동포들이다. 과거 코로나 이전에는 우리 동포들이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장사가 잘 안되는 등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 변화에 대한 것은 우리가 추정할 수 있지만 정책은 정확한 수치를 갖고 하는 것이기에 다문화 정책과에서 우리 동포사회 실태 파악을 다시 해서 제도 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 Q. 상호우호도시 연변조선족자치주와 문화교류 계획은? A. 한국의 수출 규모를 보면 중국과의 교역이 미국을 앞서 나가고 있다. 그리고 중국에는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고 계시고 또한 중국과 한국 사이에 문화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문화적인 이해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연변과 교류(공무원 교류)를 했지만 사실 문화 교류라고 볼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향후에는 여러 중국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어서 서로 간 문화를 교류하고 우리 축제 때 해당 국가 도시의 전통적인 문화행사를 유치할 수 있도록 하고 또 거꾸로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떤 축제라든가 행사가 있을 때 우리 구로구에서도 문화예술단이 가서 공연을 할 수 있는 그런 교류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임기 내 꼭 이루고 싶은 것은? A. 현재로서는 일단 코로나19 사태가 빨리 안정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대한민국 자체도 K-방역을 통해서 그냥 열심히 뛰고 있지만 우리 구로구에서도 구로구만의 어떤 방향 시스템을 잘 구축해 구로구가 코로나19에서 좀 더 안전한 도시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돼야 구로에서 사업하시는 분들도 안정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고 지역경제도 활성화 될 것이다. Q. 중국동포에 대한 이해정도는? A. 한 예로 아마 한국사람 중에서 가장 양꼬치와 고량주를 많이 먹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정말 좋아한다. 젊었을 때 사실 한국에서 투자 목적으로 중국에 들어가려고 했었는데 여러 가지 어떤 사정 때문에 결국 못 들어간 경험이 있다. 개인적으로 도시계획 전공이다 보니 연변은 물론 선양, 광저우, 칭다오, 상하이, 홍콩, 마카오 등 중국의 많은 도시들을 다녀봤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중국에 대한 이해도는 많다고 생각하고 중국 양꼬치를 중국동포보다도 내가 더 많이 먹는다고 감히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Q. 중국동포에 한 말씀 부탁한다면? A. 한국에서 돈을 벌어서 고향으로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는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충 그냥 돈을 벌고 살다가 중국으로 가면 된다는 인식보다도 역시 우리 조상의 뿌리는 한국이기 때문에 한국이 잘 돼야 동포사회도 잘 될 수 있다는 생각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같은 한민족으로 역할을 한다면 지역주민들과 잘 화합할 수 있고 이제 동포들이 중국에 들어가서도 한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생활할 수 있다고 본다. 구로구의장으로서 향후 그 어떤 정책이나 개인적인 꿈도 있겠지만 중국 동포들이 구로구에 와서 잘 살고 여기에서 내가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그런 도시가 구로구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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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09
  • 中, 98세 “쿵푸 할머니” 온라인 돌풍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최근 한 지역 모임에서 무술을 시연하는 98세 중국 “쿵푸 할머니”의 동영상이 유튜브에서 44만 번 이상 조회되고 4,500개 이상의 좋아요가 쏟아지는 등 순식간에 히트를 치고 있다. “쿵푸 할머니”의 팬들은 “98세에도 걸을 수 있을까. 쿵푸가 장수의 관건일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를 올렸다. 심지어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에 대해 "쿵푸 정신은 늙지 않는다"고 언급하며 주목했다. 본명이 장헥셴(張鶴仙)인 “쿵푸 할머니”는 2017년에 이미 명성을 얻었지만 거의 10년 동안 고향인 저장(浙江)성 닝하이(寧海)현 장컹(張坑)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 이 영상이 유튜브에 퍼지자 조카딸은 “할머니는 이제 중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유명하시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키는 약 1.5미터이다. 그의 쿵푸 동작은 유창하고 걸음걸이는 꾸준하다. 할머니의 마을은 쿵푸와 오랜 관계를 맺어왔고 할머니는 5살 때 중국 남부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무술 스타일인 장복싱의 6대 계승자였던 아버지로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어릴 때는 매일 연습했다. 지금은 나이도 들고 힘도 예전보다 줄었지만 아직 원기 왕성하다”고 말했다. “쿵푸는 폭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고 필요할 때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평생 농부인 할머니는 이웃들과도 잘 지낸다. 막내아들인 펑은 “어머니는 항상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 어머니는 마을에서 결혼을 앞둔 사람들을 돕고 바느질도 하고 요리도 한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3남 1녀를 두고 있으며 모두 닝하이현에서 근무하고 있다. 닝하이현은 마을에서 차로 약 40분 거리에 있다. 할머니는 남편이 사망한 2012년부터 혼자 살고 있다. 할머니의 삶은 평범하지만 잘 짜여져 있다. 할머니는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매일 세 끼의 요리를 하는데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해산물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가끔 친구들을 찾아가서 수다를 떨기도 한다. 오후에는 쿵푸 연습을 한다. 장컹 마을은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할머니의 집은 산비탈에 있기 때문에 식료품을 사러 나가거나 친구를 만나러 갈 때 등산이 필요하다. 언덕을 오르면서 꾸준히 하는 운동이 할머니가 정력이 왕성한 원인일 수 있다. 펑은 “어머니에게 도시에서 함께 살기를 요청했지만 어머니는 혼자 사는 것을 즐겼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어쩌면 할머니를 자유롭고 편안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쿵푸 할머니”는 아버지의 장복싱 스타일을 주말과 휴일에 집에 오는 손주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최근 이웃 마을의 초등학교에서 무술 수업을 개설했다는 소식을 접한 할머니는 자원해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펑은 어머니와 가족들은 “쿵푸 정신을 젊은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고 그것이 그들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사람들
    2021-08-16
  • 중국에서 캉테로 불리는 조선족 축구선수 김경도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1992년 11월 18일, 김경도(진징다오·金敬道)는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에서 태어났다. 대부분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김경도도 매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시절 김경도는 축구에 대해 잘 몰랐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뛰어 노는 과정에서 축구에도 약간의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약간의 재능을 보였다. 연변은 축구의 전반적인 환경이 다른 곳과 다르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방과 후 첫 오락으로 축구를 한다. 이러한 축구 환경에서 많은 우수한 축구인재들이 배출되었다. 김경도는 2003년 옌볜(延邊)의 쑹칭링(宋慶嶺) 축구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인 축구 전문 훈련을 시작했다. 진징다오의 부모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한국으로 떠났으며 이러한 환경에서 김경도는 독립적이고 힘든 일을 잘 견디는 품성을 키웠다. 2008년 청소년대표팀에 뽑혀 첫 국제대회를 치른 김경도는 눈부신 활약으로 그해 U-20 대표팀에 발탁됐다. 2009년에는 U-20 대표팀 주장을 맡아 사상 두 번째로 국가대표팀 소수민족 주장 자리에 올랐다. U-20 대표팀 시절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2009년 김경도는 시리아와의 경기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포지션에서 2골을 넣으며 팀의 다음 라운드 진출을 도왔다. 김경도는 경기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이니에스타라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경기가 끝난 뒤 기자가 이니에스타와 연락해 상대방이 사인 유니폼을 선물한 것도 김경도를 오랫동안 기쁘게 했다고 한다. 2010년 김경도는 연변FC에 입단해 클럽 생활을 시작했다. 부모님도 곁에 안 계시고 이제 막 입단한 뒤라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김경도는 늘 팀 동료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봐야 만 했다. 마침 외사촌형인 박성(퍄오청·樸成)이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동생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퍄오청은 이때로부터 김경도를 돌보기 시작했다.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한국에 일하러 갔고 나는 연변FC에서 선수로 뛰었지만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 박성은 오래 전부터 축구를 했다. 그는 돈을 괜찮게 벌었고 보너스도 받았다. 그때 나는 그의 집에 짐을 풀었다. 그는 나를 위해 많은 것을 사주었고 체육관에 갈 수 있도록 돈도 대주었다. 그리고 내가 U-20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 그는 다른 선수들이 좋은 휴대폰과 명품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나에게 그것을 다 사주었다. 나중에는 또 휴대폰과 아이패드까지 사주며 축구를 잘하라고 격려 했다” 이는 사촌형인 박성에 대한 김경도의 평가다. 오늘도 두 사람은 여전히 절친한 사이로, 중국 슈퍼리그에서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2011년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에서 김경도는 벤치에서 나와 성인 남자 국가대표팀 데뷔를 알렸다. 이번 국가 대표팀 경험으로 김경도는 중국 슈퍼리그에서 쟁탈하는 인기 선수로 됐다. 2013년 이 쟁탈전에서 승리한 산둥 루넝(山東魯能)은 연봉 100만 위안, 이적료 800만 위안에 김경도를 영입했다. 하지만 루넝 합류 이후 김경도는 그렇다 할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고, 궈안과의 첫 경기에서 비정상적인 플레이로 결국 팬들의 욕설이 쏟아졌다. 다행히 동료들이 그를 격려했고 그가 힘을 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익숙한 포지션이 아니다 보니 김경도의 플레이는 매우 어색했다. 김경도의 가장 좋은 포지션은 미드필더와 풀백이다. 하지만 그런 위치에서도 김경도는 팀과 감독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달리기와 부상 스틸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많은 칭찬을 받았고, 팬들은 점차 그를 받아들였다. 그해 그는 좋은 활약을 펼쳤고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했다. 2016년, 마가트 감독은 김경도를 완전히 재탄생시켰다. 마가트는 유명한 "악마 감독"이다. 그는 선수들의 세부 사항에 대한 요구 사항이 매우 높았다. 그는 김경도가 수비형 미드필더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그를 풀백으로 변경 시켰다. 김경도는 당시 마가트 감독이 자신에 대한 요구사항이 높았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공을 빨리 잡아 다른 사람이 못 따라온다며 볼을 잡으면 상대 측면 수비수를 상대로 돌파하라고 했다. 처음에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우싱한(吳興涵)이나 류빈빈(劉彬彬) 같은 빠른 스피드 돌파가 없었다. 나중에 하오준민(蒿俊閔)의 도움으로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해 시즌 김경도는 윙백 포지션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고 루넝에서 가장 빛나는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은사 마가트 감독은 안타깝게도 팀의 부진한 경기력으로 인해 해고되었다. 김경도 역시 그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암울한 순간을 맞았다. 2016년 ACL 8강 1차전 서울 방문경기를 앞두고 몸에 살코기 성분이 들어 있는 것으로 밝혀져 소변검사 양성 판정을 받아 60일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때부터 고기는 거의 먹지 않고 음식에 신경을 썼던 김경도는 충격도 컸지만 선수 생활과 컨디션 유지에는 큰 힘이 됐다. 그 해 김경도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았다. 2016년 11월 13일 김경도가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왕융퍼(王永珀), 왕통(王彤), 송룡(宋龍) 등 동료들이 대거 참석해 축하하였으며 루넝도 공식 홈페지를 통해 결혼 축하와 함께 김경도 부부의 백년해로를 기원했다. 김경도의 감정 또한 매우 로맨틱하다. 그와 그의 아내는 서로를 수년간 알아왔다. 그들은 중학교 동창이었다. 그들은 학교 다닐 때 사귀지 않았지만 나중에 그들은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났고 서로에게 좋은 감정이 생겨 함께하게 되었다. 2017년 김경도는 징계에서 풀려나 팀에 복귀했고 루넝은 리샤오펑(李霄鵬)감독을 영입했다. 리샤오펑이 부임한 뒤 팀은 파격적인 변신을 하지 않고 마가트 감독의 플레이 스타일을 이어갔다. 김경도 역시 익숙한 윙백 포지션을 유지했다. 이후 두 시즌 동안 김경도는 좋은 활약을 펼치며 타르델리 및 펠레와 매우 묵계적인 관계를 형성했으며 종종 도움을 주거나 득점하며 루넝의 측면에서 날카로운 킬러가 되었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2018시즌 김경도의 수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시즌 29경기에 출전해 6골 6도움을 기록하며 경기당 평균 고강도 달리기, 스퍼트 횟수 1위, 경기당 평균 거리 2위, 가로채기 3위, 경기당 4위라는 맹활약으로 시즌 최고 인기 본토 선수상을 거머쥐었다. 이로써 김경도는 대표팀의 단골손님이 됐고 리피는 물론 가오훙보(高洪波), 리톄(李鐵) 등 본토 감독들에게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되었다. 다만 리피 시절에는 김경도에 대한 요해가 부족해 기술적인 특성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고 김경도 역시 월드컵 예선경기에서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리피 감독 후임으로 2021년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리톄 감독은 카타르 월드컵 2차예선 40강전 몇몇 경기에서 김경도의 활용에 신경을 썼다. 김경도는 움직임이 좋고 수비 면적이 넓으며 공격은 날카롭다. 현재 김경도는 대표팀 10번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자격을 갖춘 '프리 맨'이 됐다. 곧 카타르 월드컵 3차예선인 12강전이 시작된다. 12강전에서 절대 주전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김경도는 계속 자신의 색깔을 살려 대표팀을 위해 몇 골을 더 넣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스포츠
    2021-07-28

실시간 사람들 기사

  • “조선족 정신풍모 잘 보여주고 싶어요”
    [동포투데이] 제11회 중국 전국소수민족전통체육운동회 성화봉송식과 개막식에서 유난히 눈길을 끈 한 조선족대표가 있었다. 그녀가 바로 이번 운동회에 길림성대표단의 조선족대표로 참가한 원예련이다. 원예련은 매체를 통해 조선족 대표로 선발되여 운동회에 참가할 수 있어 너무 영광스럽고 자랑스럽다고 하면서 조선족의 정신풍모를 잘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국 여러 민족 인민이 석류 씨처럼 단단히 뭉쳐 단결하고 새 중국이 창립 70주년을 맞아 더욱 번영부강하길 바란다면서 조국을 사랑하고 고향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원예련은 중국음악학원 성악가극학부를 졸업한 연구생이다. 그는 가정환경의 영향을 받아 5살 때부터 어머니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는데 9살 때에 이미 전국피아노등급시험 9급을 통과했고 성급 및 전국 대회에서 금상을 여러번 수상했다. 또한 중앙텔레비죤 ‘오월의 생화’ 5.4운동 100주년 기념활동에 참가해 조선족을 대표해 선창했으며 여러개 조선족 문화기구의 홍보대사를 담당했다. 대표작에는 ‘행복한 새 시대’, ‘꿈을 쫓는 아리랑’, ‘아, 고향’ 등이 있다. 한편 제11회 중국 전국소수민족전통체육운동회는 지난 8일 저녁 한족과 조선족 등 중국 내 56개 민족이 참석한 가운데 허난성 정저우(鄭州) 올림픽체육센터 스타디움에서 개막했다.
    • 사람들
    2019-09-12
  • [인터뷰] 현대무용 공연의 주역·무용가 최효진
    [동포투데이 김나래 기자]현대무용가 최효진 교수(한양대 무용학과)는 현대무용의 인재 양성과 정기공연 활성화에 기여해온 대표적인 대한민국 무용계의 한 사람이다. 20여년이 넘도록, 현대무용계의 발전과 후학양성의 길을 걸어온 최효진 교수는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때쯤, 제자들과 함께하는 정기공연으로 6년째 우리 곁으로 찾아오고 있다. 2019년, 한국의 현대무용의 발전을 위해 쉴 틈 없이 달려온 최효진 교수는, 앞으로도 무용인의 예술혼과 젊은 제자들의 열정을 모아, 현대무용 예술의 정점을 춤의 미를 통해 관객의 마음 속으로 전달하려는 꿈을 꾸고 있다. Q. 정기공연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 A. 어릴 적부터 무용을 배워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기까지 긴 시간 동안 문화예술과 현대무용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나이가 들고 한 해가 지나갈 때마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젊은 제자들과 함께 현대무용 발전을 위해 열심히 달리고자 하였기에, 정기공연으로 관객에게 찾아갈 것을 결심했습니다. 무대를 준비 하는 것이 결코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님을 알지만, 항상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고 이 뜻을 지키기 위해 매년 무용단 정기공연으로 한 해를 시작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오늘도 초심을 향하여 열심히 달리고 있는 중입니다. Q. 공연 내용이 궁금하다. A. 공연은 어린 제자들의 축하공연으로 시작됩니다. “Happy Day”라는 작품을 통해 어린 소녀들의 꿈과 희망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꿈과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소녀들이 성장하여, 소외된 계층을 위해 손을 내밀며 “선물”처럼 다가갑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여성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 중 놓치고 살아가 “유실” 된 것에 대하여, 저와 제자들이 여성들의 일과 꿈에 정체성에 대해 춤으로 표현합니다. Q. 공연 제목이 왜 ‘The Lost유실’인가 A. 이번 공연은 <너무나 익숙한 일상에서 놓쳐 유실된 것>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번 공연에 제목은 몇 년 전 폭우로 인한 우면산 산사태에서 얻어졌는데, 그 시기에 저에게 춤에 대해 유익한 조언을 해주시던 선생님께서 저에게 이 제목을 제안하셨습니다. 춤으로 다루기 어려워 고민하던 차에, 한 편의 시를 읽고 저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시는 어딘가에서 아직도 벌어지고 있는 여성의 증폭되는 가사일과 일상의 부조리함을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영감을 받았고, 저의 삶 또한 이처럼 유실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하며 이 공연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열고 닫는 냉장고, 부르릉거리는 세탁기와 청소기 소리, TV에서 나오는 뉴스와 나도 모르는 라디오 음악, 테이블 위에 나뒹구는 잡동사니 그리고 아파트 문간에 쌓여만 가는 배달박스들 등. 우리 모두 자신도 모르게 그 속에 둘러싸여 있고, 저마다 조금씩 나를 유실하고 있는 건 아닐 지 생각했으면 합니다. ▲ 현대무용가 최효진교수, 한양대 무용학과, 한국문화예술교육총연합회 이사 Q. 마지막으로 감사한 분들이 있나 A. 저에게 춤을 처음 알게 해주신 장연향 선생님, 또 제 삶을 무용에 대한 신념 하나로 무용가와 교육자를 만들어 주신 이숙재 교수님, 공연 때마다 항상 저를 찾아와 응원해주시고, 한국문화예술발전에 열정을 가르쳐주시는 문예총 장유리 이사장님 등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특히, 이번 “유실”이라는 타이틀을 후배, 제자라는 보물들과 함께 하게 됨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추운 겨울, 김이 서리는 무용실에서 추위를 잊을 만큼 땀을 흘리며 연습했던 제자들에게 고맙고 사랑한다고 전합니다.
    • 사람들
    2019-02-15
  • 조선족 오페라가수 최경해, 국제음악콩클에서 2등상 수상
    [동포투데이 김나래 기자] 지난 10월 25일 저녁에 막을 내린 2018녕파국제성악콩클 무대에서 중국국립오페라단의 전속오페라가수인 최경해가 뛰어난 노래실력으로 2등을 따내여 중국조선족 음악인의 우수성을 또 한번 만방에 자랑했다고 현지 매체 길림신문이 전했다. 2000년도부터 시작된 중국국제성악콩클은 국제음악콩클 세계연맹의 성원행사이고 3년에 한차례씩 개최되는 국제음악행사이다. 다년래 최경해는 풍부한 표현력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국내외 여러 음악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최경해는 2011년 제15회 CCTV 청년가수상에 입상되였으며 39회 이딸리아 벨리니국제성악콩클 중국구 경연에서 3등, 2011년 평양 ‘4월의 봄’ 국제예술축전에서 금상을 받았다. 2011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한민족국제예술축전에서는 중국 대표로 참석하여 금상을 받기도 했다. 1987년 연길태생인 최경해는 중국조선족 소프라노 림정교수(현 중앙민족대학 음악학원 부원장)의 가르침과 추천으로 선후로 연변대학 예술학원과 중국음악학원 (진연교수 사사)성악학부를 졸업하고 학사학위를 수여 받았으며 한국국립예술종합대학 오페라과와 중앙민족대학 음악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수여받았다. 최경해는 2014년부터 중국국립중앙오페라단 전속오페라가수로 발탁되면서 중국오페라 무대에서 활약하는 메조소프라노로 성장하였고 2016년에는 중국문화부로부터 청년오페라인재 칭호를 수여받기도 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최경해는 수십편의 오페라 주역으로 국가대극원에서 공연하였으며, 천진, 항주,신강, 할빈 등 성시 국내유명필하모니와 성공적으로 협연하였으며, 북경, 상해,천진,장춘 등 중국 주요도시들에서 개인 콘서트를 열어 주목받기도 했다.
    • 사람들
    2018-10-30
  • 허영란 대광인견 대표, 한상네트워크 활용한 해외시장 노린다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풍기지역 대표 브랜드로 꼽히는 대광인견 제품이 '제17차 세계한상대회'에 참가해 전 세계 50개국에서 모여든 해외동포 기업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끌었다. 대광인견(대표 허영란)은 지난 10월 23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제17차 세계한상대회'에 여러 가지 ‘속옷과 겉옷, 이불’ 등을 출품, 많은 상인으로부터 관심을 받았다고 25일 밝혔다. 세계한상대회는 재외동포재단이 600만 해외동포의 경제적 교류를 위해 개최한 대규모 행사로, 올해는 ‘하나 된 한상, 함께 여는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인천 송도에서 세계 50개국에서 모인 경제인 4천여 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대광인견은 이번 대회에서 나무와 과학이 만난 환경친화적 자연소재인“인견”은 가볍고 수분 흡수가 빠르고 통기성이 뛰어난 외에 어린아이나 알레르기성 피부 아토피성 피부 등 피부가 약한 사람에게 좋다는 장점을 소개해 참가자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2대에 걸친 60여 년 전통과 기술력을 자랑하는 대광인견 제품은 경북 영주시 풍기지역에서 다양한 유통망을 확보하고 속옷과 겉옷, 이불 등 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대한민국의 풍기인견 대표 브랜드이다. 대광인견은 1997년 체크(원단) 의장등록을 마쳤으며 2008년에는 영주시 중소기업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 자연을 품은 인견, RAY PARK 상표등록을 출원했다. 허영란 대표는" 이번 세계한상대회에서 대광인견 제품을 체험한 한상들로부터 많은 관심이 잇따르고 있다"라면서 "한상대회에서 알게 된 해외기업과 전 세계 한상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세계시장 진출을 도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허영란 대표는 해마다 서울에서 열리는 한·중 청소년 문화축제의 후원사로 참여, 청소년들에게도 남다른 애정을 보여 화제가 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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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28
  • ‘몬스터 헌터: 월드’ 게임 BGM 작곡가 강정란 씨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일본의 유명한 컴퓨터게임기업 캡콤(Capcom)이 야심차게 개발한 신작 ‘몬스터헌터: 월드’(MHW)가 발매된지도 벌써 7개월이 훌쩍 지났다. 갈수록 많은 유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 게임은 기존의 게임에 비해 혁신적이란 호평을 받고 있는데 배경음악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 게임속의 BGM 상당수가 한 조선족 작곡가의 손을 직접 거쳐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매우 적을 것이다. 중국 길림성 연길 출신으로 현재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고 있는 강정란(康贞兰) 씨, 2006년 지린성 연변1중을 졸업하고 4년제 대학에서 “조경디자인(景观设计)”을 전공한 후 일본 규슈대학에 유학했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음악감각이 탁월했고 일본어 실력도 뛰어난 그는 캠퍼스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매우 빠르게 유학생활에 적응했다. 강정란 씨는 캑콤에 입사한 후 처음으로 편곡 맡은 게임 BGM은 ‘몬스터 헌터 : 월드’(MHW) ‘영웅의 증거’였다. 그는 나리타 아키히코 씨 밑에서 수행을 하며 제작하였고, 하나의 큰 과제인 "영웅의 증거"의 편곡을 맡았다. 나리타는 작곡가들의 특징과 개성을 파악하여 이를 최대한으로 살릴 수 있는 지휘를 항상 유념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부담감은 있었지만 자신에게 맡겨진 의미를 생각하며 제작에 임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지난 6월 일본 “플레이 스테이션 게임 뮤직 大賞” 앨범상과 음악상 부문에서 2위를 차지했다. “플레이 스테이션 게임 뮤직 大賞”은 인기 게임 사운드 트랙을 스포티하이(Spotify).내 재생횟수와 유저들의 투표수로 선정해 수여하는 상이다. 강정란 씨는 “금번 이런 영예로운 상을 주셔서 분에 넘치는 영광이라 생각한다. 많은 유저로부터 사랑 받고 있는 이 타이틀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기쁘지만, 큰 호평을 받아서 매우 놀랐다”며“트로피를 손에 들었을 때 소중한 시간을 내어 ‘몬스터 헌터: 월드’의 음악을 들어주신 여러분의 사랑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 감동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 사람들
    2018-08-03
  • 연변대학 최예령, "미스춘향 선"에 뽑혀
    ▲ 88회 춘향제 미스 춘향 선에 선발된 최예령양.ⓒ 남원시청 [동포투데이] 17일 오후 전라북도 남원시 광한루원에서 열린 춘향선발대회에서 최고 전통미인인 "미스춘향 선"에 연변대학 최예령이 뽑혔다. '미스춘향 진'에는 뛰어난 미모와 재치있는 말솜씨로 관객을 사로잡은 김진아(20·경기도 안양시·동아방송예술대)씨가 최고 전통미녀 자리에 올랐다. 올해 춘향선발대회에는 한국과 중국, 카나다 등에서 430명이 참가했으며 이 가운데 32명이 본선에 올라 경합을 벌였다. 최예령양은 중학교 2학년 때 연변예술학교 무용전공에 입학, 4년 후 대학본과생으로 연변대학 예술학원 무용과에 입학하여 재학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춘향선발대회에서 조선족 물동이춤으로 심사위원들을 홀릭하면서 최종 2등 격인 선의 영예를 수상한 최예령양은 트로피와 상금 300만원을 받았다. ▲ 제88회 춘향제 미스 춘향 입상자들. ⓒ남원시청 진에는 트로피와 시가 2000만원의 승용차가, 미에는 트로피와 상금 200만원이, 정과 숙, 현에는 트로피와 상금 100만원이 각각 전달됐다. 춘향선발대회는 제27회 춘향제가 개최된 1957년부터 춘향제 최대 하이라이트로 그동안 수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한편, 제88회 춘향제는 오는 5월 18일부터 22일까지 5일간 광한루원과 요천 일원에서 전통문화행사, 공연예술행사, 놀이체험행사, 부대행사 등 4개 분야 25개 종목으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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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18
  • 中 90后 몽골족 인기 여가수 울란투아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중국의 소수민족인 몽골족은 우리 조선족과 더불어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는 민족으로 그 소문이 높다. 몽골족 중에는 명망 높은 가수들이 많다. 푸런파야얼(布仁巴雅尔), 울란치치걸(乌兰齐齐格), 쟝잉줘마(降央卓玛), 쓰친파투(斯琴巴图), 몽골나라(蒙古娜拉)…이들 중 최근 가장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가수가 있다면 아마 섹시한 몸매와 이쁜 얼굴을 가진 여가수 울란투아(乌兰图雅)를 꼽아야 할 것 같다. 울란투아는 1990년 9월 9일, 내몽골 커얼친(科尔沁) 초원에서 태어난 90허우 여성으로 중앙민족대학 학력이다. 일찍 2011년 6월 21살 소녀인 울란투아는 가요 <토우마간(套马杆)>로 가요계에 데뷔, 그 이듬해인 2012년 12월 7일 <초원에서 북경을 바라보며(站在草原望北京)>를 열창해 인기가 급상승했으며 그해 이 노래는 중공중앙 선전부로부터 <중국몽(中国梦)> 우수가요로 선정되었다. 그 뒤 얼짱 소녀가수인 울란투어는 연속 흿트곡을 발표, 2013년에는 <나의 몽골말(我的蒙古马)>, 2014년에는 <초원에 정든 오빠(草原情哥哥)>, 2015년에는 <아얼산의 처녀(阿尔山的姑娘)>를 불러 관중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말아올렸다. 이 중 <아얼산의 처녀>는 중국문예지원자 우수작품으로 선정되었고 울란투어 또한 관광명승지 아얼산의 형상대사로 위촉받기도 했다. 최근 몇 년간 울란투아는 중국 각지에서 각광받는 초대가수로 발 돋음, 2016년에는 상해에서 출발해 전국의 10개 대도시를 순회하며 열창했고 2017년에는 <사계절 피는 꽃>이란 제목을 갖고 전국의 17개 도시를 순회하며 공연의 막을 올리기도 했다. 혈형 O형에 1.68미터인 훤칠한 키, 그리고 더 없이 사랑스럽고 귀여운 얼짱 미모인 몽골족 여가수 울란투아- 그 어디를 평해도 만점이다. 또한 최근 몇 년간의 폭발적인 인기로 향후 한동안 몽골족 가요계에서 울란투아의 시대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사람들
    2018-02-26
  • 중국 성악계의 조선족 거장- 최경호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중국 성악계에서 조선족 남성거장들로 보면 김영철, 송일 등 몇 명을 손꼽을 수 있다. 최경호도 이 중 일원으로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중 김영철, 송일은 테너와 베이스라면 최경호는 통속적인 대중가요로 인기몰이를 한 성악계의 거장이며 중국의 영화거나 TV드라마의 주제가 혹은 삽곡에서는 절대로 최경호를 외면할 수 없는 인물이다. 1972년 4월, 중국 흑룡강 성 목릉현의 한 보통 농민가정에서 태어난 최경호의 노래인생은 전문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었으며 또한 극히 어렵고 힘든 가정환경에서 각고한 노력을 경주해온 노래인생이었다. 일찍 어린 시절, 천부적인 예술적 자질을 갖고 있었던 최경호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즐겨들으면서 그것을 따라 불러 인근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경호가 9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불치의 병으로 돌아갔고 가뜩이나 어렵던 가정은 자식 6남매를 거느린 나약한 어머니 혼자의 어깨위에 놓여지게 되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최경호는 장차 커서 가수로 되려는 꿈을 꾸게 되었다. 하지만 궁핍한 가정환경은 그로 하여금 예술학교꿈을 접지 않으면 안되게 하였다. 1981년 최경호는 군에 입대, 그한테 있어서 군 생활은 자신의 장끼를 드러낼 훌륭한 활무대였다. 그는 연대에서 전사들 앞에서 음악지도로 활약했고 자주 군민연환모임(军民联欢会)에서 열창하여 인기몰이를 했는가 하면 사단에서 조직하는 문예콩쿠르에서도 여러 번 상을 받아 안았다. 1984년 군에서 제대하자 당시 중국의 호적원인으로 최경호는 본적지인 목릉현 농촌으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수의 꿈을 접을 수 없었던 그는 다시 농촌을 활무대로 노력을 경주, 그해 12월에 있은 현성 문예콩쿠르에서 <전사의 제2고향>과 일본 흑까이도 민요 <그물 당기기(拉网小调)> 등을 불러 관중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으며 당시 현 문화국 국장이던 형탁(邢铎)의 특별 인가로 현문공단에 입단했다. 이어 그는 문공단을 따라 목단강 지구에서 여러 차례 순회공연에 나서는 한편 성급 콩쿠르에도 수차 참가하여 음악전문가들의 인정을 받았으며 1987년에는 흑룡강성 조선족예술관 성악지도로 발탁되었다. 한편 이 시기 최경호한테는 한차례의 풍파가 닥쳐왔다. 당시 중국 내지에서는 기업들에서 예술단을 창립하는 기풍이 불었으며 이는 예술에 대한 갈망과 추구로 불타던 그한테 있어서 일종 매혹이 아닐 수 없었다. 헌데 갖가지 유혹으로 모 기업의 예술단에 입단한 결과, 이 예술단은 예술보다는 모 기업의 홍보작용으로 이용될 때가 많았으며 지어는 몇몇 기업일군들의 적적함을 달래주는 도구에 불과하기도 했다. 몇 번의 실망고비를 넘긴 최경호는 1992년 단연히 모 기업 예술단에서 사퇴하고는 다시 원 사업터였던 할빈시 조선족예술관으로 돌아왔으며 그해인즉 그한테 있어서 가장 많은 성과로 가장 묵직한 상들을 걸머쥐던 해이기도 했다. 최경호한테 있어서 1992년은 성악생애에서 많은 수확을 거둔 한해인 한편 중국의 저명한 작곡가 곡건분(谷建芬) 선생과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되어 성악인생의 일대 전환기를 맞이한 한해이기도 했다. 바로 곡건분 여사의 알선으로 1993년 홍콩에서 <93중국풍>으로 명명된 대형공연에 참가하게 되었고 후에 중국의 10대 작곡가로 평선된 서패동(徐沛东) 선생을 알게 되었으며 곡건분 여사와 서패동 선생을 통해 최경호는 예술수준이 큰 폭으로 제고된 한편 인생의 철리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 때로부터 최경호는 중국 영화와 TV드라마의 주제가 혹은 삽곡을 부르기 시작, <조상지(赵尚志)>, <우리의 아빠와 엄마(咱爸咱妈)>, <삼국연의<三国演义>, <서유기 속집(西游记续集)>, <평화연대(和平年代)> 등 30여부의 영화 및 드라마의 열창가수로 선정되었다. 한편 최경호는 각종 명목의 성금활동에도 적극 참가, 1996년 할빈시 조선족예술관의 주최로 개최된 <최경호 음악콘서트>가 끝난 후 자신한테 차례진 수익금 전부를 흑룡강성 오상시 사범학교에 기부했고, 1998년 흑룡강성 목단강시에서 있은 <이재민 돕기 최경호 콘서트>에서 모금된 200만위안 그 전부를 재해구에 보내주어 국가재해구제사업 선진개인으로 평선되기도 했다. 그리고 2003년 연변에서 있은 <우애의 손 내밀기(伸出友爱之手) 최경호 개인콘서트>에서 최경호는 수익금 그 전부를 연변지구의 빈곤학생 1248에게 기부해 조선족 집거구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표달, 그 중에는 그해 본기 대학신입생 215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기자가 최경호 가수를 처음 만나 취재를 한 것은 1998년 9월, 연변축구팬협회의 초청으로 연변체육관에서 <최경호 개인 콘서트> 열릴 무렵이었다. 콘서트가 열리기 전날 기자는 몇몇 축구팬들과 함께 연길시내의 한 규모가 작은 <개고기 전문점>에서 최경호와 만났다. 당시 그는 외관상으로는 아주 깔끔한 모습이었지만 성격상에서는 너무나도 시원시원한 남성으로 보였다. 그는 목청을 보호해야 하는 가수의 신분임에도 열혈축구팬들을 만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배갈 몇 잔 굽 내기도 했으며 “저의 목청을 보호하는 건 저 개인의 사정이고 연변축구를 밀어주는 건 우리 모두의 사정”이라고 하면서 조선족 축구에 대한 강한 애정을 표했다. 그리고 당시 연변오동팀의 감독 고훈과 선수단 전체가 참가한 가운데 콘서트 막이 오르자 중국가무단 가수(1996년 중국가무단 입단)로서 잘 부르는 한족노래가 많았으련만 그가 부른 첫 곡부터 마지막까지 <손에 손잡고>,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 한국가요와 <엄마생각> 등 조선족 가요 일색이어서 각별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최경호가 부른 <엄마생각>은 어릴 때 남편 없이 6남매를 키우며 고생하신 어머니를 그리며 부른 <사모곡>이어서 기자의 가슴을 허비면서 파고 들어서 코마루가 시큰해 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최경호는 지난 30여년간 12회에 달하는 개인콘서트를 가졌으며 명실에 부합되는 중국의 성악대가로 부상하였다. 최경호는 아직 40대 가수에 속한다. 40대라고 하면 인생의 황금기라 할 수 있다. 최경호가 이제 재차 가수생애의 황금기를 맞이하리라 믿어마지 않는다.
    • 사람들
    2018-02-24
  • 다재다능한 조선족 여가수- 최연희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최연희(崔莲姬)라고 하면 중국 조선족 연예인들 중 별반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다. 그리고 그의 나이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서류를 보면 최연희는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과는 달리 가창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무용에도 대단한 실력을 갖고 있었으며 중국어와 한국어에 유창한건 물론 일본어 구사에도 막힘이 없다. 또한 시가창작과 복장 코디(服装搭配)와 형상 디자인에 짙은 애착이 있는가 하면 한국어로 된 가이드 생활에도 어느 정도의 경력을 갖고 있어 말 그대로 다재다능한 조선족 인재라 할 수 있다. 그 외 최연희한테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은 그녀가 조선족이 많은 연변이나 동북 3성이 아닌 수도 베이징 태생이며 거기에 그 외모 또한 매우 귀엽고도 사랑스럽다는 점이다. 최연희의 홈페이지를 보면 각종 풍격의 사진이 많다. 무대에서의 현란하고도 미감적인 장면과 생활속의 진실한 모습, 스타들과의 합영모습 그러한 것들은 신중하고도 내성적인 그의 성격과는 달리 그 거개가 활달하고 씩씩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 사진들 중, 가장 흡인력이 있는 사진은 스키를 탈 때의 모습으로 당시 최연희가 입은 주황색의 스키복과 머리에 쓴 하늘색 모자, 손에 든 캐릭터 장갑(卡通手套) 등은 주위의 환경과 잘 어울리면서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최연희의 홈페이지에는 그녀를 찬양하는 글들로 도배되고 있다. 예하면 그녀가 한국가수 이정현(李贞贤)을 많이 닮았고 노래하는 것도 이정현과 너무 근사하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중국의 <보아(宝儿)>라고 찬양하는 글도 있었다. 모두 최연희에 대해 긍정하고 높이 평가하는 것들이었다. 현재 베이징에서 생활하고 있는 최연희는 연습과 공연 그리고 콩쿠르에 참가하는 외 겸직으로 글 번역, 가이드 등으로 자신의 생활을 풍부히 하고 있으며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낙관하는 것도, 그렇다고 비관하는 타입도 아니다. 인생에 대해 그냥 담담한 심태라고 할까? 이 역시 팬들이 그녀를 좋아하는 원인일 수도 있다. 내성적이며 자신에 대해 절대로 크게 떠들어대지 않는 타입인 최연희- 그녀의 향후 목표는 창작형의 여가수로 되는 것이라 한다. 경 력 제1회 베이징시 예술절에서 독무 <부채춤> 1등상 획득, 무용 <여해군의 풍채(女海军的风采)> 2등상 획득 <아름다운 행동> 전국 예술콩쿠르에서 노래 <두이우얼(独一无二)>과 무용 <용감성>으로 청춘미 소녀상 획득 CCTV 3 음악무대에서 1등상 획득 CCTV 3 음악무대에서 우수선수상 특별 프로상 획득 CCTV3 <싱광다도(星光大道)> 춘제만회에서 한국스타 장나라와 함께 아리랑 열창 중국 교육방송국 한국어교육프로 제작 CCTV3 <싱광다도(星光大道)>의 연경연 우수선수로 평선 개인열창집 <1분 1초(一分一秒)> 제작 길림성 제7회 신묘컵 예술계열콩쿠르에서 독무 2등상 획득 2010년 개인음반 출판 제37회 세계 관광아가씨 콩쿠르의 초대가수로 <여자천하(女孩天下)> 열창 앨 범 <1분 1초(一分一秒)> <당신, 당신(是你是你)> <사랑은 나의 공기(爱就是我的空气)> <사랑엔 이유가 없어(爱没什么道理)> <내가 발견한 나의 세계(我发现我的世界)> <나의 사랑은 말한다(我的爱在说)>
    • 사람들
    2018-02-14
  • [단독 인터뷰] ‘인생연습’ 한가빈, “따뜻한 가수로 남고 싶어요”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동장군의 기세에도 기죽지 않고 기세등등한 가수가 있다. 지난 상반기 유튜브 조회수 100만을 기록하며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는 트로트계의 ‘한가인’ 한가빈(27) 씨가 주인공. 최근에는 한 씨를 위한 전국 규모의 팬클럽이 생겼고, 네이버밴드 등 SNS에 그의 이름이 수 없이 올라 화제가 됐다. 방송사로부터 연일 러브콜을 받으며 주가도 크게 올랐다. 데뷔 후 어느 때보다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한가빈 씨를 만났다. Q : 안녕하세요. 최근 ‘한가빈 효과’라고 할 정도로 온·오프라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아요. 방영 중인 드라마 '밥상 차리는 남자' OST를 불러 많은 시청자들의 호평도 받았죠. 그간 소회와 OST ‘인생연습’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 포털이나 방송사 홈페이지를 보면 저를 응원하는 분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어요. 제 노래를 듣고 ‘펑펑 울었다’는 댓글을 보면 절로 힘이 납니다.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이게 꿈 인가 생신가 싶기도 하죠. 제가 부른 곡 ‘인생연습’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데뷔 6개월 만에 드라마의 OST, 그것도 공중파 드라마를 맡았다는 건 큰 영광이죠. 물론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어요. ‘제가 잘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호응은 어떨까’라고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감독님이 타이틀 곡 ‘꽃바람’을 들으신 후 “이 친구 OST 시켜야겠다”마음 먹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트로트 앨범에는 유일무이하게 기타 반주 하나로만 부른 어쿠스틱 발라드 버전이 있거든요. 그 버전이 너무 좋으셨다고 했습니다. Q : 다른 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A : 작곡하신 김종천 선생님도 곡 쓰시기 전부터 “한가빈에게 꼭 맞게 써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쓰셨다고 했어요. 그래서인지 저와 찰떡궁합입니다. 녹음 전까지 크게 고민 하지 않았고, 술술 풀렸으니까요. 음악이 공개된 후 방송국 게시판에 이 노래가 뭐냐는 문의가 폭주했다고 합니다. 그날 밤 종합 차트에서 아이유, 빙탄소년단을 제치고 1위를 하기도 했고요. 처음으로 비명이라는 걸 질러 봤습니다. Q : ‘인생연습’에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하던 데 어떤 내용인가요? A : 방송이나 행사에 가면 꼭 인생연습 불러달라는 요청이 많아요. 그때 마다 노래만 하지 않고 가사를 설명 드리곤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보통 인생을 얘기할 때, 인생에 연습이 어딨어 인생은 생방송이지… 이렇게 말씀을 많이 하시잖아요. 그런데 이 노래가 그 정의를 바꿉니다. 인생에도 연습이 있다고. 지금까지 아파했던 날 들은 인생의 연습이었다치고 이제부터 행복한 실전을 살아 갈 거야하고 다짐하는 곡입니다”라고 말하죠. 몇 마디로 전달 할 수 없지만 조금 이라도 더 와 닿으시라고 항상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인생 연습을 들으시고 조그마한 위로가 됐다면 저는 행복합니다. 수많은 날들이 인생연습이겠지만, 저 역시 그때마다 제 노래를 부르면서 이겨내려고 합니다. Q : 가수로 데뷔는 때는 언제 인가요? A : 중3 때 음악을 처음 접한 후 몸과 마음이 들떴습니다. 노래를 해볼 까 하다가 이게 꿈이 돼버렸죠. 인기가요를 보고 화려한 무대에 오른 가수와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본격적으로 가수 길을 걷기로 했어요. 그러다 중 3때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고, 21살 때 트로트계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때부터 말 그대로 고생길이 열렸죠. 이 회사 저 회사 돌아다니다 현재 소속사 마이클미디어를 만나 6년 간 산전수전 다 겪고 2015년 10월 “꽃바람”을 발표했죠. 다른 사람들은 첫 앨범을 내면 감격해 눈시울을 붉힌다고 하던데 저는 ‘이제 고생이다’는 생각에 기뻐할 시간도 없었어요. Q : 처음 무대에선 기분은 어땠나요? A : 솔직히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대신 아마추어 가수로는 수 없이 많이 무대에 올랐지만 대중가수로는 처음이었으니 긴장이 컸던 것 같아요. 한편으론 가수로서 무대에 오르는 일이 이렇게 힘들구나라는 생각에 슬프면서도 기쁘고 복잡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Q : 가장 좋아하는 가수와 즐겨 듣는 음악 장르는? A : 저는 시실 이런 질문이 가장 힘들어요. 다양한 장르의 가수와 음악을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콕 집어 얘기하면 제 감성과 가장 잘 통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트로트보다 발라드입니다. 대표적으로 린, 박화요비 선배님을 들 수 있죠. 그래서 제가 부른 트로트 음악은 감성적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아마도 이 두 가수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Q : 가수로 활동하면서 보람 있었던 때는 언제인가요? A : 어린 친구들로부터 쪽지와 메일을 종종 받아요. 그 중 “언니 같은 가수가 될 거에요”라는 내용이 많은데요. 저도 어릴 때 다른 가수를 보고 꿈을 키웠듯 이제 나도 누군가의 꿈이 되었구나 생각하면 기쁘고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 친구들 때문에 더 잘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 앞으로 어떤 가수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A : 따뜻한 느낌의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노래 잘하는 가수, 예쁜 가수보다 누군가 저를 봤을 때 “저 가수는 잘은 몰라도 참 따뜻해 보여”하는 말을 듣고 싶어요. 그래서 많은 분들에게 추운 겨울 따뜻한 난로처럼 항상 곁에 두고 싶은 가수로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Q : 끝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A : 제가 항상 팬들에게 이렇게 얘기해요. “우리는 서로 가수와 팬으로 만나지만 궁극적으론 가족입니다”라는 말입니다. 누구를 동경하고 가까이하지 못하는 사이가 아니라 함께 힘을 주고 기뻐하는 사이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가수와 팬은 함께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팬들을 위해 항상 기도하겠습니다. 트로트 계에 입문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그동안 숨어있던 내공이 한 번에 분출한 것일까. 그만큼 기대되는 가수다. 머지않아 한국 트로트 계를 주름 잡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 사람들
    2017-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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