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수필]옥이할머니
 


글/ 오월의 꿈

지금 나의 눈앞에는 한자리에 선채로 움직이지 않는 가냘프고 자그마한 몸매의 할머니, 흰 머리칼을 바람에 나붓기며 석고상처럼 서있는 옥이 할머니의 형상이 우렷이 떠오른다.

그리고 옥이 할머니와의 평범치 않았던 지나간 나날들이 쿵쿵 가슴을 치면서 다가온다.
"채개조되지 않은 우파" 인 아버지의 "덕분" 에 우리 식구는 정들었던 도시를 떠나 촌으로 이사가게 되었다.   

그로부터 옥이 할머니와 우리의 인연은 시작된 것이다.   

옥이네는 바로 우리 뒤집에서 살고있었는데 우리 집 뒤문을 열면 옥이네 집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이 마을에 도착하여 처음 본 것이 뒤집이였고 처음 나눈 것이 옥이 할머니와의 인사였다.   

얼마 안되는 가정집물들이 집안의 이구석저구석에 옮겨지고 집안정리가 대충 되어갈 무렵이였다.

"계심둥?" 하는 소리에 내다보니 키가 자그마한 한 할머니가 보자기를 들고 서계시였다.

머리를 가쯘히 빗어 쪽졌고 팽팽한 얼굴은 점 하나없이 깨끗하였다.   

"난 이 뒤집에서 사는데 마을사람들은 모두 나를 옥이 할머니라 부른다오. " 어정쩡 서 계시던 어머니가 급히 보자기를 받아놓고 할머니의 손을 잡아 끄셨다.   

"그냥 오신것만도 감사한데 무얼 이렇게 들고 오세요? 빨리 올라 오세요." 어머니는 할머니의 자리를 마련하시느라 걸레를 가져다가 급히 구들 한쪽을 닦아 놓으셨다.   

"아니, 오늘은 할 일이 많을테니깐 나중에 시간이 날 때 놀러오지,"할머니는 어머니의 만류도 마다하고 돌아가셨다.

윤택이 자르르 흐르는 머리며 눈같이 휜 적삼이며 단정한 주름치마는 나의 눈에 무척 화사하게 안겨왔다.먹고 살기에도 힘든 그런 시절이라 옥이 할머니의 모습은 나에게 너무나 인상적이였다.   

이튿날부터 나는 짬만 나면 뒤집에 놀러 갔다. 뒤집에는 나와 동갑내기 옥이가 있었다. 나는 옥이와 한반에 다니게 되었고 친하게 되었다. 옥이에게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언제나 출입문 안쪽켠에 앉아있었다. 한다리는 앞으로 굽히고 다른 한다리는 뒤쪽으로 길게 뻗치였고 팔도 마찬가지로 오른쪽은 가슴앞에 굽히고 왼쪽은 뒤켠으로 늘어 뜨리고는 입으로 "으으아…."하고 길게 빼는 이상한 소리가 가끔씩 터져 나왔다.

그 집에 처음 놀러 갔을 때 그 애는 눈, 코, 입이 죄다 한쪽켠으로 몰리면서 웃는건지 우는건지 알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옥이 할머니는 긴장하게 서 있는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놀라지 마라. 우리 설이가 앓고 있는데 이제 치료를 받으면 나을거다. 그때면 우리 설이도 놀러 다니고 학교에도 다닐거야."맥 없이 흐늘거리는 설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옥이 할머니의 눈길에는 애틋한 사랑이 감돌고 있었다.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온 옥이와 내가 우리 집에서 숙제를 하는데 불시에 밖에서 징소리, 꽹꽈리소리와 사람들의 웨침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우리는 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옥이네 마당에 홍위병완장을 두른 사람들이 몰려와있었고 옥이 할아버지가 그 사람들의 손에 붙잡혀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옥이 할아버지 목에는 "자위단 단장 박중삼을 타도하자!" 라고 쓴 개패가 걸려 있었다.   

옥이 할아버지는 그 길로 홍위병들에게 끌려갔고 저녁에 학교 운동장에서 투쟁을 받았다. 투쟁대회에서 홍위병들의 몽둥이에 머리를 얻어 맞은 옥이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뒤로 넘어간 것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두달 후 옥이 아버지도 반란파들에게 시달리다 못해 자살하고 말았다.옥이네 식구는 할머니, 어머니, 옥이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헤실헤실 웃기만 하는 설이까지 녀자 넷이 남게 되었다.  

옥이 할머니와 나의 어머니는 "적"의 가족이라 그 어느 조직에서도 요구하지 않았다. 두분은 공장변두리에 늘려놓은 철조망 밑의 한자너비의 땅에다 옥수수와 열콩을 심었고 농민들이 논밭에 물을 대느라고 파놓은 도랑뚝의 가파른 비탈에다 각종 남새들을 심어서 생활에 보태군하였다. 가을이 되자 옥이 할머니와 어머니는 이삭 주으러 다니시였는데 옥이와 나도 따라 나설때가 많았다. 옥수수떡을 허리에 차고 이른아침에 떠나면 해가 넘어갈 때까지 가을걷이가 끝난 밭이면 어디든지 찾아갔다. 서로 마음이 통하는지라 두분은 신세타령을 잘하셨다. 옥이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그때,시집은 무서운 량반집이였다오. 식구가 열둘이나 되었는데 례의범절이 어찌나 엄한지 함부로 행동하지도 못하고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하였소. 처음에는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살았소. 그때 집에 큰 개 한 마리가 있었는데 하루는 그 개가 방안에 들어오지 않았겠소? 개를 쫓는다는 것이 그만 '이개 나가십소.' 라고 했지 뭐요."

"호호호, 호호호…개에게 존대말을 쓰셨군요.ㅎㅎㅎ."어머니가 웃음보를 터뜨렸고 옥이와 나도 덩달아 까르르 웃기 시작하였다. 한참 웃다가 머리를 들고보니 옥이 할머니는 저만치 앞서 가시고 있었다. 옥이 할머니는 우리가 뒤쫓아가자 다시 이야기를 계속하셨다.

"숨 한번 크게 못쉬고 5년을 사는 동안에 로인 세분이 세상을 뜨셨고 살림살이가 힘들어지자 신랑되는 사람이 토기를 굽기 시작했다오…"

"그럼 시집살이에서 해방되였겠네요."어머니가 다그쳐 물었다.

"천만에, 5년을 기다렸지만 태기가 없지 않겠소? 자식을 본다고 신랑이 첩을 했다오. 첩은 고이 놀고 먹기만 하고 집안 일은 나 혼자 도맡아해야 했소. 애를 못 낳은 죄로 새벽부터 온종일 일만 했더랬소. 새벽에 일어나려면 푹 자야하는데 자게 해야지…" 옥이 할머니는 고랑을 차고 나가면서 콩 꼬투리를 잽싸게 주어넣었다.

"왜요?"어머니가 물었다.

"그때 우리 집은 한족구들이였다오. 량쪽에 구들이 있고 그 복판이 봉당인데 그 사이에 얇은 천을 치고 살았댔소. 일밭에서 돌아와 저녁을 짓고 설겆이를 하고 아침준비를 하고나면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었다오. 잠 들려고 자리에 누우면 맞은 켠 구들에서 자는 신랑하고 작은댁네가 한창 설쳐대고있지 뭐요. 평소에는 그런대로 참는데 기분이 나쁜 날이면 어찌나 꼴 사나운지, 그럴 때는 후닥닥 일어나서 전등을 켜 버리지…" 옥이 할머니는 허리쉼을 할 모양으로 밭고랑에 주저 앉으시였다. 어머니가 그곁에 가 앉으시며 묻는다.

"그래서요?"

"신랑이 일어나 '될것도 안되겠다'고 하면서 속옷바람에 밖에 나가서는 그날 구워낸 토기그릇을 몽둥이로 쳐서 죄다 결단을 내지 뭐요…"

"호호호, 아이구 배야!"어머니는 배를 끌어안고 대굴대굴 구을면서 웃으셨다. 우리도 영문을 모른채 따라 웃었다. 옥이 할머니의 첫남편은 토기도 몇참 굽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옥이 할머니가 두 번째로 맞은 신랑이 할아버지였는데 어린 두 남매 즉 옥이 아버지와 고모를 친자식처럼 키웠다고 한다. 옥이 할머니의 지난 이야기는 우리들의 기 죽은 마음에 잠시나마 웃음을 갖다 주었고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주군 했다. 옥이 할머니는 젊은 나이에 독수공방하는 며느리의 마음을 헤아려 여러모로 위안을 해주셨고 친딸처럼 사랑하고 아껴 주셨다. 옥이네 집은 언제나 따뜻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옥이 할머니가 맹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옥이 어머니가 눈물을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모른다. 고추가루가 어디에 있는지, 된장독이 어느것인지 행방조차 모르고 살았으니 말이다. 옥이 할머니가 전부 챙겨주시는데 습관되였던 옥이 어머니는 할머니가 안 계시자 너무나 막막했다. 설이의 시중을 들어야지, 집안살림을 해야지, 출근을 해야지 개미 채바퀴 돌듯 돌아쳤지만 평소에 아예 손도 안 대던 일이라 막막하기만 했다. 그 후 우리 집은 아버지가 명예를 회복하여 복직되고 나도 사회생활에 뛰여 들면서 살림이 많이 펴이였다. 그러나 옥이네는 여전히 힘들었다. 옥이도 직장이 없고 옥이 어머니의 얼마 안 되는 로임으로 네식구가 살다보니 생활이 구차하기 말이 아니였다. 어느 한번 옥이가 병으로 병원에 입원하였다. 초저녁에 우리 집에 마실을 오신 옥이 할머니가 말씀도 별로 안 하시고 비가시만 뜯다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나가시는 옥이 할머니를 붙잡고 물으셨다.

"옥이 할머니, 무슨 할 말씀이 있으신게 아니예요?"

"아니, 아니요. 그냥 놀러 나온거요." 옥이 할머니가 돌아가신후 어머니는 뜯어놓은 비가시를 보면서 말씀하셨다.

"얼마나 말을 떼기 힘들었으면 비가시만 뜯다가 가시였을가?"사실 그날 옥이 할머니는 옥이의 입원비 때문에 나오셨다가 끝내 말을 꺼내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가신것이였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설이는 앉은 자리에서 뭉개면서도 녀자로 성숙되여 한달에 한번씩 장판에 붉은 칠을 해 놓군 하였다. 그때마다 옥이 할머니는 책망 한마디없이 깨끗이 닦아놓고는 설이한테 빨아놓은 옷으로 갈아 입히고는 설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설이야. 너랑 나랑 이렇게 살다가 내가 죽을 때 같이 죽자, 응?"불쌍한 손녀에 대한 사랑의 마음과 설이의 앞날에 대한 근심과 두려움에 생각이 깊어지신것같았다. 옥이 할머니의 눈가에는 맑은 이슬이 맺혀 있었다. 옥이 할머니는 그럴 때면 걸레를 찾아든다. 먼지 한점없이 깨끗한 집안 구석구석을 닦고 또 닦는다. 잡념을 닦아 없애려는듯 힘주어 닦는다.   

그후 얼마 안되여 우리는 원래 살던 시내집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옥이 할머니는 마을밖까지 나오시여 우리를 전
송하시였다. 우리가 멀리 사라질때까지 한자리에 선채로 움직이지 않던 그 가냘픈 몸매의 옥이 할머니, 어느새 새하얗게 흰 서리가 내린 머리칼을 바람에 나붓기며 서 있던 그 모습이 그토록 처량하고 구슬프게 내 마음을 울리였다.   

며느리의 일손을 하나라도 덜어주려고 팽이 돌 듯 일하시고 너무 일찍 남편을 잃은 며느리의 외로운 마음을 달래보려고 사랑을 주시고 웃음을 주시던 옥이 할머니가 그만 중풍을 맞아 반신불수가 되어버린것이였다. 옥이 할머니가 항상 걱정하시던 최악의 경우에 맞다들게 된것이였다.   

병원에 입원하여 이틀간 치료를 받은 옥이 할머니는 집에 돌아가겠다고 기어코 우기시였다. 어느날 옥이 할머니는 집이 잠깐 빈 틈을 타서 그전부터 남몰래 준비해놓았던 수면제와 양재물을 꺼내시였다. 옥이 할머니는 필생의 힘을 다하여 먼저 설이한테 수면제를 먹이고 자신은 양재물을 마시였다. 오래동안 별러왔던 무서운 일을 끝내 치르고야말았던것이다.   

우리가 옥이네 집에 이르렀을 때 옥이 어머니는 인사불성이 되어있었다. 얼마후 정신을 차린 옥이 어머니는 피타게 부르짖었다.

"어머니, 왜 저만 두고 가세요? 어머니없이 저와 옥이가 어떻게 살라고 그렇게 혼자 가세요? 어머니!~~~"   

옥이 어머니는 옥이와 같이 할머니를 따라가겠노라고 버둥거리는 바람에 옆 사람들은 그걸 말리느라 땀벌창이 되었다.   

"왜 안그러겠소? 친엄마보다 더 극진했는데….."   

"설이 때문에 며느리가 고생할가봐 당신이 끝까지 책임지신거지,'   

"이런 시어머니는 정말 조련찮아요." 마당에 몰려선 이웃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소리들이다.   

옥이 할머니는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불행하게 생각하셨을가?

그분은 언제 한번 생활이 힘들다거나 인생이 고달프다거나 자신이 불행하다거나 하는 말씀이 없으셨다.   

"비가 오냐? 그럼 비를 맞아야지.~~ 바람이 부냐? 그럼 바람을 맞아야지.~~"  

언제 봐도 담담하셨던 옥이 할머니의 그 자태. 비단 같은 마음을 가지셨다는 생각이 들게 하던 옥이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시면서 끔찍한 일을 저지르셨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옥이 할머니가 손녀한테 줄수 있는 마지막 사랑일 수밖에 없었다는 가슴 저린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너무나 가련하게 생겨난 손녀이기에. 누구한테도 맡기고 떠날 수 없는 귀중한 손녀이기에." 할머니는 그렇게 데리고 가신것이리라,   

나는 가끔 옥이 할머니가 저세상에 가시여 선녀가 되셨으리라는 꿈같은 생각을 한다. 설이를 데리고 상아선녀랑 어울려 떡방아를 찧으면서 이 세상의 헤아릴수 없는 기쁨과 슬픔들을 담담히 지켜보시고 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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