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김경화

 
자연과 인간의 조화라는 사진 한장을 본적이 있다.

클럽 파라다이스 리조트의 해변가. 들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하얀 백사장이 곱게 숨쉬고있는가운데, 막대기 네개를 엇비슷하게 정방형모양으로 꽂고 거기에 그물을 둘러서, 마치 닭장같기도 하고 새장같기도 하게 보이는 그런 앙증맞은 사진이였다. 헌데 그게 무슨 닭장이나 새장이 아니라는것이다. 거부기가 백사장에 묻어놓은 알들이 행여 의외의 피해라도 당할가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라는것이다. 외계로부터 오는 위험을 저 보잘것 없는 네개의 막대기와 가는 선으로 이어진 그물이 막아준다는것이다.

평범한 사진 한장이 나에게 준 감동은 사뭇 컸다.

작은 막대기 네개, 거기에 약간은 허름하기까지 한 그물, 그것이 보여주는것은 자연과 함께 숨쉬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로운 인간의 모습이였다.

내가 태여난 고장은 산과 강을 주요생계수단으로 하고있는 명실상부한 산동네다.

봄가을이면 골짜기에 통발을 놓기도 하고 강물을 막고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고 산에 가서 나물을 캐고 버섯을 따오고 잣을 따고 그렇게 얻은 수입으로 꽤 윤택하게 살아 린근동네의 부러움을 자아냈었다.

고요한 호수에 돌멩이 한개가 던져진것 같은 파문이 인것은, 언제부터인가 어느 머리좋은 분이 발명하셨는지 기름개구리들이 많이 다니는 밭머리나 산기슭에 개구리가 뛰여올라가지 못할 정도의 높이로 비닐박막을 치고 밑에 구뎅이를 파서 개구리를 잡기 시작한게 발단이였다.

예전처럼 고생스럽게 반두질을 하기보다 아침전이나 야밤에 한번씩 구뎅이들을 돌아다니면서 개구리를 주어내니 품도 덜 들고 수확도 곱절이였다.

하나 둘 너나없이 비닐박막을 치고 개구리잡이에 나서나싶더니 마을주변은 온통 하얀 비닐천지로 변해갔다. 그 구뎅이안에는 어미개구리며 숫개구리며 아직 올챙이를 금방 벗어난 새끼들이며 수없이 걸려들었고 그중에서 톈진유(기름개구리기름)를 추출해낼수 있는 어미개구리가 가장 비싼 값으로 팔려가는것이였고 숫놈이나 새끼개구리는 조금 싼값으로 장사군들한테 팔려가 바싹 말리워 기름에 튀겨졌고 일품술안주로 급부상했다.

더러 동네어른들이 새끼까지 멸종한다고 혀를 끌끌 차기도 했지만 고소한 안주와 돈에 눈이 달아오른 사람들의 귀에 그런 말이 들어올리 만무했다.

손쉽게 기름개구리를 잡아 폭리를 얻을수 있는데 누가 바보같이 물을 막고 반두질을 하랴는것이였다. 머리 어데가 잘못되지 않은 한.

기름개구리가 국가급보호동물로 되면서 더러 진의 파출소에서 마을에 와서 비닐박막을 낫으로 찢어버리고 가기도 했지만 전날 찢긴 비닐박막은 이튿날이면 그 자리에 거짓말처럼 팔락였다.

그시절, 아직 소녀였던 나는 언젠가 그런 구뎅이안에서 미이라처럼 바싹 말라죽은 새끼개구리 한마리를 본적 있다. 한껏 우로 톺아오르려고 했던것일가.

개구리는 뛰는 자세 그대로 다리를 옴츠리고있었고 머리쪽은 하늘을 향한채로 구뎅이안벽에 붙어서 죽어있었다.

아직 피여나지도 못한 그 작은 개구리에겐 어떤 꿈이 있었을가. 멀거니 구뎅이안을 바라보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서는 등뒤로 서글픔이 떼구름처럼 몰려오는것을 느끼며 눈물이 괜히 글썽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무연고방문취업제로 한국에 가볼양으로 인터넷등록을 위탁하려고 휘여휘여 그 먼 산골에서 나를 찾아온 고향분한테서 듣는 고향소식은 씁쓸하다못해 비참해지기까지 했다.

기름개구리가 멸종되다싶이 해서 기름개구리부업도 바라볼수가 없게 되였고 송이버섯가격이 폭등하면서 하도 사람들이 산을 뚜지고 따녀서 송이버섯은 물론이고 다른 버섯도 잘 나지 않는다는것이다. 다른것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누군가 먼저 두릎나무를 마구 베여서 쉽게 뜯었고 뛰뛰하게 그 사람을 나무라는 소리도 들렸지만 이내 너나없이 그렇게 마구 나무를 베고 쉽게 뜯어 쉽게 돈버는 행렬에 가담했고 이내 그것은 오미자나 잣같은데까지 령역을 넓혀갔다는것이다. 그렇게 수년세월이 지난 지금, 고향은 이제 기름개구리도 멸종에 가깝고 송이버섯을 비롯한 버섯종류들도 먼 산에 가야 혹간 있는 정도라고 한다. 두릅나무를 베고, 오미자넝쿨을 걷어다가 팔고, 잣나무도 우둠지를 뭉청뭉청 끊이고, 생계의 원천은 사라져가고 사람들은 네탓을 하고, 그러다가 못살 고장이라고 나무람하면서 하나 둘 뜨기 시작해서 이제 마을에는 얼마 안남은 사람들이 산비탈뙈기밭을 부치며 힘들게 살고계시다는것이였다.

비속을 달려왔음에도 먼지가 풀썩풀썩 일것 같이 메마른 그분 얼굴의 시커먼 절망과 막막함을 읽으며 나는 불쑥 그날 그 웅뎅이안에서 보았던 새끼개구리의 시체를 떠올렸다.

사람은 이 거대한 자연계에 던져진 하나의 생명임에 불과하다. 다른 생명과 구분되는 점이라면 사유할줄 안다는것이다. 내가 필요로 하는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좀 더 편리한가를 알고, 그래서 산도 강도, 생명을 가진 어떠한 맹장류도 다스려 자기것으로 만드는 대단한 재능을 가진 생명체라는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나 혼자는 살수 없는것임을 어찌하랴, 아무리 대단한 마력을 가진 생명체라 할지라도 이 땅덩어리우에서 생존하고 살아가려면 이 땅우에 나하고 함께 숨쉬고 날개를 펴는 모든것들과 함께 공존하면서 주고받고 그래야 함을 어찌하랴.

미이라로 되여버린 그 새끼개구리, 그것은 꿈을 가지고 자라 언젠가 나의 몸을 튼튼하게 해주고 생명을 살려주는 명약이 되여올수도 있었을것을 사람들은 왜 잊고 있었을가. 그를 죽이는 일이 결국 나를 죽이는것임을, 그의 죽음은 결국 머지 않은 앞날의 나의 운명을 보여주고있음을.

종이 한장 적게 쓰면 나무 한그루 적게 베여질것이고 그러면 결국 그 나무로 인해 나는 시원한 공기를 마실수 있고 마음까지 화창해지지 않을가.

리조트해변의 거부기알보호용아지트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건 자연과 동물을 보호한다는 단순한 개념만은 아닐것이다.

거기에는 이 세상 모든 만물의 생존하는 법과 공존해야만 살아갈수 있는 리치가 담겨져있지 않을가.

생활의 원천을 잃은 내 고향 사람들은 과연 그 옛날 웅뎅이안에서 미이라로 말라가던 그 작은 개구리의 웨침을 알고있을가.

보금자리를 잃은 고향사람들의 절망의 아픔에서 우리는 지구를 잃은 전 인류의 아픔을 보아야지 않을가.

자연과 친화하는것, 우리가 조금은 욕심을 버릴줄 아는것, 조금은 불편함을 감수해내는것,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자연을 보호하는 작은 정성을 기울이는것,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이 땅우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들이 펼쳐나가야 할 사명이 아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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