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김양금


2007년 9월 24일, 프랑스 빠리의 동쪽 보농이란 시골마을 자택에서 침대에 가지런히 누워 숨진 로부부의 시체가 발견되였다. 남편은 유럽의 대표적좌파철학자로 추앙받던 84세의 앙드레 고르, 부인은 24년간 불치의 병으로 앓던 83세의 도린 고르였다. 청소부에게 시켜 출입문에 끼워놓은 쪽지엔 그들이 극약을 주사하고 동반자살한 시간이 이틀전으로 적혀있었다. 침대옆에 남긴 유언에는 두사람의 시체를 한데 화장하고 골회를 저택의 정원에 뿌려달라는 부탁외에 다른 아무 설명도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나리란걸 미리 예감하고있었다. 그 전해에 앙드레 고르가 ‘D에게’ 라는 긴 사랑의 편지를 안해에게 썼는데 그 편지가 책으로 출판되여 많은 사람들이 읽었기때문이다. 그 편지의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 밤이 되면 가끔 텅 빈 길에서, 황량한 풍경속에 관(棺)을 따라 걷고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봅니다. 내가 그 남자입니다. 관속에 누워있는것은 당신입니다. … 세상은 텅 비였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그러다 나는 잠에서 깨여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봅니다. 우리는 둘다 한사람이 죽고나서 혼자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두사람은 1947년 10월, 스위스에서 만났다. 오스트리아출신의 앙드레 고르는 그때 독일군의 징집을 피해 떠도는 나라 없고 돈도 없는 유태인젊은이였다. 도린 케어 역시 외로운 영국처녀였다. 도린은 일찍 부친을 잃고 어머니까지 가출하여 배급식량을 타 고양이와 나눠먹으며 살다가 유럽을 방랑하는중이였다.

고르는 아름답고 우아한 도린을 처음 보았을 때 감히 넘볼수 없는 녀자라고 생각하면서도 부지런히 따라가 함께 춤추러 가자고 제의해보았다. 뜻밖에 처녀의 동의를 받았다. 그뒤 그들은 폭풍처럼 격렬한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들의 사랑에는 아이마저 끼여들 틈이 없었다. 고르는 만일 아이가 있으면 자기는 아이에게로 가는 안해의 사랑을 질투할것 같으니 아이를 낳지 말자고 했던것이다. 두사람은 거울처럼 투명한 둘만의 세계에서 한쌍의 밤꾀꼬리처럼 정답게 60년을 살았다.

결혼초기 그들은 지난세기 50년대의 빠리에서 안해가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면서 남편은 작가로, 언론인으로, 철학자로 활약할수 있었다. 나중에 앙드레 고르는 유럽의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 평가받을만큼 유럽의 대표적언론인으로, 대표적좌파철학자로 자리를 굳히게 되였다.

1983년, 그들에게 불행이 떨어졌다. 도린이 척추수술후유증으로 근육위축이란 불치의 병에 걸린것이다. 고르는 자신에게 이젠 안해곁에 있어주는것보다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으며 그것을 안해가 느끼게 해주고싶었다. 주저없이 빠리의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가 24년동안 안해옆에서 안해를 돌보는 일에 전념했다.

안해의 건강이 점점 악화되자 이제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정시하고 그는 안해가 먼저 가게 된 죽음의 길을 함께 가기로 마음을 잡았던것이다. ‘D에게’ 라는 사랑의 긴 편지를 쓴것도 자기가 평생동안 많은 글을 썼지만 안해를 위해 쓴 글이 없었다는 사실을 느꼈기때문이라고 한다. 인생을 다시 살듯이 기억을 더듬으며 두사람의 사랑과 결혼생활을 회고한 그 편지는 철학자이고 작가인 고르가 안해에게 바친 사랑의 고백이였다.

“당신은 이제 여든 두살이 됩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산지 쉰여덟해가 됐지만 나는 그 어느때보다 더 당신을 사랑합니다. …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 자리가 생겼습니다. 내 몸을 꼭 안아줄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워줄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렇게 절절한 편지는 선량한 한 인간의 진실한 사랑과 철학과 사상으로 전 세계를 감동시켰고 오래동안 읽어보지 못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란 극찬을 받았다. 다음해 여름, 그들의 동반자살을 계기로 편지는 여러 나라 말로 세계 각국에서 번역출판되였고 도서가의 베스트셀러코너를 후꾼 달구었다. 크고작은 매체들도 앞다투어 이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보도했다. 한국에서 이 책이 번역출판되였을 때 읽고나서 아이고 나는 언제 이런 사랑을 해볼꼬 라고 탄식하는 독자도 많았다고 한다. 하기야 작가가 꾸며낸 픽션도 아닌 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읽고 자신을 돌이켜보지 않을 사람은 없을것이다. 나도 그랬다. 나는 저도모르게 자신의 40여년의 결혼과 혼인생활을 돌이켜보게 되였다.

두남녀가 결혼하고 한지붕밑에서 운명을 같이하며 살게 된다는것은 본질적으로 말할 때 두사람은 그때로부터 서로가, 우리들의 입에는 아직 서툴고 린색한 말이지만 사랑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무언의 계약이라고 본다. 나와 남편은 서로가 상대의 건강이나 생활, 습관, 기호와 취미에 이르기까지 서로를 리해하고 관심하고 배려하는 부부에 속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친구들로부터 내가 남편의 사랑을 많이 받는 녀자라는 말도 꽤 들었고 나 자신도 그것을 느낄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젊은시절에 다투기도 어지간히 다투었다. 우리의 언쟁은 흔히 원칙적인 어떤 큰 문제보다 사소한 생활세절에서 자기와 다른 상대의 생각이나 습관 혹은 행위를 내가 수용하지 못하는데서 벌어지곤 하였다. 수양이 부족한 나는 언쟁이 벌어지면 남편의 가슴에 깡치로 남을수 있는 험한 말도 거르지 않고 그대로 내뱉고는 했다. 그런 깡치가 오래 쌓이면 상대의 사랑에 대해 의심이 드는건 당연하다.

언제부턴가 나는 자신의 이런 버릇에 대해 남편은 정나미가 떨어져한다는것을 눈치채고 위기감을 느꼈다. 나의 관심과 배려를 거부하는 남편앞에서 비로소 ‘사랑받지 못하는것은 슬프다. 그러나 사랑할수 없다는것은 훨씬 더 슬프다.’ 라고 한 스페인작가 우나무노의 명언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로부터 받는 사랑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상대를 사랑할데 대한 례의가 부족했던 자신의 오만과 무성의가 초래한 위기라는것을 반성하게 했다.

실존주의철학자 앙드레 고르는 안해가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입에 발린 추상적인 사랑보다도 자신이 안해옆에 있어주는것으로 안해가 자신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었고 마지막 죽음의 길까지도 함께 가주었다. 남녀의 사랑에 대해 혹자는 엄숙하게 해석하고 혹자는 아름다운 꿈에 불과하다고 가볍게 말하지만 지내보면 그것은 결국 상대를 아끼고 위하는 마음에서 상대가 편안하고 행복할수 있도록 한없이 베풀수 있는 배려가 아닐가싶다.

한사람의 의식의 변화는 아무래도 그의 행위에 나타나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내 입이 이전처럼 함부로 까불지 않고 남편의 밥상이며 옷이며 약이며 잠자리며를 더 편안하게 챙겨주려고 들이는 나의 정성을 남편은 무슨 변덕이냐싶은지 시큰둥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정성이 진심이냐고 물었다. 바락바락 대들던 때를 생각하면 진심이라고 믿기 어렵다는것이다. 나의 까진입이 상대에게 준 상처가 얼마나 컸을가를 느끼게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는 너무 늦게야 철이 들어서 이제야 당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의 어느 류행가처럼 있을 때 잘하고싶다는 생각도 숨기지 않았다. 비로소 남편은 나의 진심을 믿어주었고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부드러워졌다.

돌이켜보면 내가 남편을 꼬집는데 비하여 남편은 언제나 나에게 관대하였다. 그사람이라고 왜 나에게 거슬리는 점이 없었겠는가. 지금 내가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고싶어 때로는 달갑게 장님이 돼주고 벙어리가 돼주고 바보로 돼주는것처럼 그사람은 진작 그런 각오쯤은 돼있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서양부부들이 입에 바르고 사는 ‘사랑해요’보다 상대를 따뜻하게 배려하는 우리들의 사랑방법이 더욱 앙드레 고르의 실존주의적사랑철학에 부합되는것이 아닐가. 늘 쥐구멍을 지키며 나오기를 기다리는 고양이처럼 신경을 세우지 말고 힘들면 시름없이 상대의 품에 쓰러져 쉬고 힘들어하면 내가 껴안아주면서 편안히 살고싶다. 어느 철학자의 생명까지 함께 휘말아간 폭풍같은 사랑은 아니더라도 봄날의 새싹을 어루만지는 잔잔한 바람결 같은 그런 따뜻한 사랑을 위하여, 내 남자인 내 남편의 있는 그대로를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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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먼저 사랑하는 사람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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