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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룡 칼럼]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한국 이념논쟁
    ●김정룡(다가치 포럼 대표) 현시대 유명 정치학자로 손꼽히는 하버드대학교 샤무엘 헌탕턴 교수는 1996년 저서 『문명의 충돌』을 출간했다. 책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로 반응이 뜨거웠다. 그는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2년 후 소련이 해체됨에 따라 냉전 시대가 종말을 맞았다. 냉전 시대 인간은 대체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 진영의 이념에 각각 속해 있었다. 냉전이 종말 된 미래사회에서는 이념이 무의미해졌고 따라서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갖게 되면서 다른 귀속처를 찾게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 귀속처가 바로 민족문화, 전통문화, 종교문화라고 제시하였다. 그가 말한 귀속처는 새로운 문명이 아니라 과거문화에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헌팅턴 교수의 예언대로 실제로 탈냉전 후 지구촌의 인간무리들은 민족문화, 전통문화, 종교문화에로 재편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중국의 경우 개혁개방 전 해외 화교 화인들 중 고국을 못 마땅해하는 사람들도 개혁개방 이후 즉시 돌아서서 고국에 투자를 서슴지 않았다. 아세아 최고 부자 리카싱(李佳成)이 투자에 나서자 주변에서 ‘사기당하면 어쩌냐?’고 말리자 그는 ‘사기당해도 고향사람들에게 당하는 것인데 사기라 생각하지 않고 도와주는 것이라 여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재벌은 남다른 배포가 있는 법이다. 싱가포르 리콴유(李光曜) 전 총리는 본래 반공자였다가 개혁개방 이후 유교 전도사를 자칭하고 나서 중국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이것이 바로 이념을 탈피하여 민족문화에로 회귀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2008년 북경올림픽 개막식 주제가 공자였는데 이것은 전통문화에로의 회귀를 뜻한다. 1990년 초 동구권에서 있었던 코소보 인종청소 전쟁은 종교문화에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아무튼 세상은 헌팅턴 교수의 예언대로 흘러가고 있는 추세이며 이미 새로운 역사 흐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지구촌의 흐름을 역행하는 곳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한반도이다. 동서 독일이 통일되고 남북 베트남도 통일되어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문화로 굴러가고 있다. 오로지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은 것은 남북한이다. 1990년 베이징아세아게임 때 한국관광객이 대량 백두산투어에 나섰다. 그때 한국여행사 에스코트 00사장이 한 말이 지금도 뇌리에서 생생하게 맴돌고 있다. “참 세월이 놀랍게 변했어요. 우리가 중국 땅을 밟으면서 백두산 구경을 할 것이라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현실로 되었어요. 이 추세대로라면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남북통일도 10년이면 되지 않겠어요!” 그 후 2000년 김대중 대통령께서 북한을 방문하자 매체들이 ‘10년 안에 통일이 이뤄질 것’처럼 떠들었다. 그런데 그 후 강산이 두 번 변하고도 3년이란 세월이 흘러가고 있는 현재 남북통일이 가까워지기는커녕 점점 더 요원해지다못해 요즘은 아주 적대관계가 심각해지고 있는 중이다. “가장 중요한 게 이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전에 국무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시중에서는 모두 뜬금없는 발언이라고 하기도 하고 때아닌 이념타령이라고 공격하기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 발언이 확실히 케케묵은 이념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이게 무슨 시대인데 아직도 이념타령이라니? 역사를 거스르는 행위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요즘 한국 사회는 홍범도 장군의 정체성을 갖고 논쟁 중이다. 양 진영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으로 부질없는 일이다. 1943년 홍범도 장군이 사망할 당시에는 침략당한 약소국가들에서 나라마다 민족주의가 우선이지 이념과 사상이 우선 과제가 아니었다. 강대국들도 마찬가지로 이념을 떠나 미국과 소련이 협력하여 반파시스 전쟁에 돌입하였다. 홍범도 장군이 소련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한 것은 사실이나 오늘날 이념논쟁을 일으킬 사안이 아니다. 한국 정치는 할 일이 하도 없어서 케케묵은 이념논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안타깝다. 문제는 왜 윤석열 대통령이 이념을 최대 이슈로 들고나왔는지? 맥락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 일부 진영에서는 아직도 빨갱이타령이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 종북좌파타령을 70년 동안 벌여오다가 요즘에는 종북좌파 타령이 질리기도 하고 그 실체도 주목을 받기가 조금 약발이 떨어져 친중좌파 공격으로 방향을 틀고 화살을 돌리고 열을 올리고 있다. 필자는 얼마 전에 한국 지인의 소개로 한국 엘리트들이 참여하고 있는 카톡방에 가입한 적이 있다. 카톡방은 흔히 그렇듯 좋은 정보도 나누고 서로 필요한 교류도 하고 인맥도 넓히고 등등 좋은 점이 많다. 하지만 인간무리에는 취향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인데 그 취향이 정치적인 성향이 강하면 골머리가 아파난다. 어느 한 분은 윤석열 대통령을 찬양하는 ‘윤비어천가’를 올렸는데 조선 창시자 이성계를 찬양한 ‘용비어천가’를 저리 가라 할 정도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수령을 찬양하는 ‘어천가’보다 훨씬 뛰어난 솜씨로 현직 대통령을 찬양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통령을 이렇게 신을 찬양하듯 하는 것을 처음 본다. 일각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을 평가하는 기준이 극명하게 나뉘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문재인은 빨갱이고 북한 간첩이다. 나라를 북한에 팔아 먹는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사고방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아무리 좌파 성향을 지닌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설마 나라를 팔아먹을 수가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그들은 상식을 벗어나 비합리적인 주장을 하면 이에 동조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억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친미를 확실하게 하면 다른 분야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문재인처럼 나라를 팔아먹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그들에게는 굳건하게 박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신을 찬양하듯 하는 행위는 필자와는 하도 상관없는 일이라 개의치 않고 그냥 넘겨버리고 말았는데 다음 일은 도무지 지나칠 수가 없었다. 기름 개구리를 산 채로 끓는 기름에 넣어 튀기다가 물을 넣고 끓여 먹는다. 한 분은 친중좌파들을 개구리 산 채로 튀겨먹고 끓여먹듯이 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머리카락이 곤두설 지경으로 정신이 아찔해졌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그만이라는 속담이 있다. “미친 아낙네의 악담보다 더 저질스럽다.”는 말을 남기고 나가기를 해 버렸다. 종북좌파 타령이나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친중좌파 타령이든 모두 같은 이념타령이다. 이런 이념타령이 시중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고 그 세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대통령의 이념논쟁을 때가 아닌 것이라 하거나 뜬금없는 일이라는 지적은 헛발 짚는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한편 한국사회에서 아직도 공산주의 빨갱이 타령이 심각한데 진짜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아는 자가 얼마나 될까? 의문이다. 무엇을 대상을 공격하려면 그 대상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나서 공격해야 마땅하나 한국에서 공산주의 빨갱이 공격은 실체를 모르는 막무내식이어서 안타깝다. tvn방송에 <어쩌다 어른>이라는 강연프로그램이 있다. 몇 년 동안 출연을 가장 많이 했던 최진기 강사가 있었다. 그는 자칭 ‘대한민국 최고 인문강사’이다. 액면 그대로 믿기로 하고 그가 이해하고 있는 공산주의란 무엇인지? 알아보자. 마르크스의 노동 분배 원칙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수요에 의해 분배한다.’는 것이다. 최진기 강사는 이 공산주의 핵심원칙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마르크스는 아마 아버지가 돈을 벌 능력이 있고 그 돈을 자녀가 학비로 사용하는 케이스에서 힌트를 얻어 내놓은 이론일 것이다.” 이어서 그는 유명 스타 연예인 강동원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사람을 어떻게 수요에 의해 분배할 것인가?”고 희죽거리면서 공산주의를 형편없는 애들장난처럼 매도하고 조롱하는 것이었다. 만약 공산주의가 최진기 강사의 말처럼 그렇듯 유치한 것이라면 어떻게 지구촌 반 되는 인간무리가 추종했겠는가? 능력에 따라 일한다는 것은 인간이 고도의 의식을 갖추면 타인의 능력과 비교하지 않고 또 타인의 노동기여도와 비교하지 않고 나의 능력껏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요에 의해 분배한다는 것은 공산주의사회는 물질이 풍부하고 인간의 의식이 고도로 발달되어 불필요한 물질을 탐내지 않고 사치를 탐내지 않는 전제하에서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것을 의미한다. 요점은 물질이 풍하고 인간의 의식이 고도로 발달된 사회에서 실천가능한 원칙이라는 것이다. 빨갱이 뜻은 사상이 빨갛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필자의 부친은 평생 당지서를 맡았는데 사상이 붉다못해 둘째 아들이 휴학하는 해에 참외 밭을 대신해 보게하고는 아들이 생산대 참외를 먹었다고 하여 장부에 가을에 떼어내게 기입해 놓았다고 한다. 필자가 자랄 때 동네 어른들이 늘 저한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너의 부친은 진짜 빨갛다.’는 말을 반복했다. 최진기의 자칭 최고 강사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대한민국 최고 인문강사의 공산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이 수준이라면 진짜 대한민국에서 공산주의를 제대로 알고 있는 자가 얼마나 될까? 묻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 서강대 00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산주의는 제도로서 실천은 실패했지만 그 이념과 사상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분단국가로 존재하고 이직도 케케묵은 이념논쟁에 빠져 있는 이 민족의 현실. 언제 가야 통일되고 하나가 되어 부질없는 다툼에서 벗어날 것인지? 민족의 운명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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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04
  • 일본 핵폐수 해양 방류 시작과 과정 그리고 결과는?
    ● 철 민(논설위원) 한·중·일 해양 안전 문제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신경전을 벌였던 일본 후쿠시마 제1 원전의 핵 오염수 처리 문제가 24일 일본 정부의 바다 방류 개시와 더불어 또 새로운 논쟁거리를 몰아오고 있다. 우선 일본 정부의 핵 오염수 바다 방류 행위를 두고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나라들로는 일본의 이웃 국가들인 중국과 한국(정당과 사회단체 등), 북한 등과 거리가 멀지만, 남태평양 도서국의 반발도 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후쿠시마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들기 시작해서 240일이면 중국 연해에 도착한다며 정부로부터 국민 매 개인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일본 정부의 핵 오염수 방류 결정을 국제 공공의 이익을 무시하는 극단적으로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위라고 강력히 규탄하고 있다. 한편 중국 정부는 일본산 수산물 수입의 전면 중단을 발표하였다. 한국 언론도 한국의 여러 해산물 시장이 거의 텅 비어 있어 어부들은 미래의 생계를 걱정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2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제주도 동문어시장에서 20년 넘게 해산물 장사를 해온 한 상인은 “예전에는 오전 10시경과 오후 5∼7시(두 시간대)에 장사가 안될 때도 시장은 붐볐지만, 요즘은 손님이 없는 텅 빈 고속도로”라며 “코로나19 기간에는 장사가 더 잘됐다”라고 우려했고 한국 서부 해안 도시 군산 출신의 한 어민은 “내일 해산물 경매장에 간다고 생각하니 답답하다”라며 “해산물 소비량이 4분의 1로 줄었고 가격도 더 낮아질 것 같다”라고 탄식했다. 부산종합어시장에서는 조기 한 박스가 보통 4만 원 또는 5만 원에 팔리는데, 전국 해산물의 약 30%가 이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번 주 수요일(23일)에는 조기 한 박스가 정상가의 절반 이하로 판매되었으며, 한국인들의 주요 해산물인 멸치는 평소보다 10~20% 정도 가격이 저렴하게 판매되었다. 24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담화문을 발표하여 일본이 이날 후쿠시마 제1 원전의 핵 오염수 방류를 개시한 것은 지구 생태환경을 파괴하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강력히 규탄하면서 핵 오염수 방류계획을 강행하는 것은 자신들의 사욕을 위해 인류에게 핵 재앙을 초래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반인도적 범죄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외 후쿠시마 핵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기로 한 일본의 결정을 알게 된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에 있는 한 비정부기구가 공개적으로 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글을 올렸으며 또 피지 수바에서 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시위에 나서기로 했다. 일본의 핵 오염수 바다 방류 강행은 해외의 국가와 사회단체의 규탄은 물론 일본 자국 내 어민 단체와 국민의 반발을 사고 있다. 특히 1945년 원폭 피해자 후손들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바다 방류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나섰다. 교도통신은 24일 원폭 피해자 후손들로 구성된 일본-전국 원폭 피해자 2세 단체 연락 협의회가 나가사키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후쿠시마 오염수의 바다 방류에 항의했다고 전했다. 이 단체는 원자폭탄의 피해자인 히로시마가 견딜 수 없다며 성명을 발표했고, 이 성명은 총리 관저에 우편으로 발송됐다. 성명은 “원폭 피해자 2세들은 부모들이 방사능 영향으로 고통받는 것을 오랫동안 목격했고, 자신들도 유전적 영향을 배제할 수 없어 건강을 염려하고 있다”라며 “정부와 도쿄전력이 책임을 지고 육상에서 보존·관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외에도 일본의 핵 오염수 바다 방류 강행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이루다 나열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많고도 높다. 일본의 핵 오염수 바다 방류계획은 국제원자력 기구(IAEA)의 감찰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IAEA의 권위성과 전문성은 인정하지만, 이 기구의 분석과 결론 모두를 믿는 건 아니다. 특히 IAEA 역시 일본의 핵 오염수 바다 방류계획에 대해 명확한 지지 혹은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도 않았다. IAEA 역시 사상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수치나 분석을 통해서는 함부로 결론을 내릴 수 없은 것으로 보인다. 세상의 모든 일이란 시작이나 과정을 통해서는 어떤 결과가 나타나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사례로 1945년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기 전에는 그 위력이 그 정도로 강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는 자료도 있다. 다음 우리는 일본이란 나라에 대해 더군다나 믿을 수 없다는 추리가 나온다. 일본인을 두고 말하자면 좋게 말하면 “총명하다”하고 할 수 있지만 다른 각도로 말하면 “잔머리를 잘 굴린다” 혹은 “비열하고 간교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은 조선과 중국 그리고 기타 태평양 지역 국가와 지역에 큰 피해를 주었다. 그것도 아주 음융하고 비열하고 잔혹한 수단과 명분 등으로 말이다. 조선 왕조의 명성황후 음해 사건, 중국 대만 강점과 한일 합방 그리고 지난 세기 30~40년대 조선에서 위안부를 모집할 때는 “방직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등 감언리설로 순진한 소녀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고 1920년대 말의 만주에서의 황구툰(皇姑屯) 사건과 루거우차오(卢沟桥) 사건 등을 분석 조명해보면 당시 일본이 강하다기에 앞서 음흉하고 뻔뻔스럽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 시 일본은 한편으로는 미국과 담판함과 아울러 이 어마어마한 사건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일본을 함부로 믿어서는 큰 코 다친다는 분석도 함께 나온다. 종합적으로 일본을 평가하면 일본인의 겉면을 보면 예의가 바르고 친절하고 생활이 아주 규칙적으로 보이지만 일본인의 속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겉과 속이 같은 한국인과는 달리, 웬간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 중국인과는 달리 또한 거만하지만 우쭐대지는 않는 서양인들과는 달리 일본인한테는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피해국에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역대의 독일 총리들과는 정반대로 일본은 오늘 현재도 기나긴 침략 역사에 대해 사과하거나 반성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교과서까지 뜯어고치면서 군국주의의 침략사를 미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의 핵 오염수 바다 방류 강행을 두고 각국은 여러 가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강경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중국과는 달리 미국은 지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한국 정부는 “지지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입장으로 나오고 있다. 여기서 미국은 태평양을 사이 두고 일본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속 궁리가 있는가 하면 다른 일종의 전략이 내포되어 있을 수도 있고 한국은 자국민들한테 미칠 손실보다는 일본과 정부 사이의 마찰을 우려하는 듯한 양상이다… 한편 일본의 핵 오염수 바다 방류 강행에 대해 지금 과학적이고 안심할 수 있다는 학술적 수치는 있으나 그 영원성을 장담하는 언사는 한 마디도 없다. 어찌 됐든 일본의 핵 오염수는 방류하지 않는 것이 방류하는 것보다는 ‘명지한 선택’이라 보여지며 방류하는 것으로 나쁜 결과가 있을지언정 반대로 좋은 결과는 제로라는 것만은 분명한 것이다. 가령 앞으로 방류 과정에 혹시라도 일본 자국 혹은 주변국들에 피해 사례라도 발생한다면 그때 가서 아무리 미국이나 국제원자력기구라 해도 결코 일본을 위해 대변할 수는 없을 것이며 일본이라는 이 섬나라의 위망은 일락 천장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서기 2023년 8월 24일, 이날은 인류 역사상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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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25
  • 독도는 ‘무주지(無主地)’ 섬이 아니었다.
    ● 김정룡 (多가치포럼' 대표) 민간속설에 ‘이웃이 먼 사촌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가령 이웃집에서 경사가 생기면 함께 기쁨을 나누고, 안 좋은 일에는 같이 슬픔을 나누고, 급한 일이 생기면 이웃이 가장 먼저 달려와 돕는 등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삶을 영위해온데서 생겨난 속담일 터. 민간백성들의 삶은 대개 이웃끼리 화목한데 비해 한 사람, 한 사람으로 구성된 국가의 경우 이웃나라끼리 사이는 그다지 화목하지 못하다. 바다를 사이 두고 이웃으로 살아온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으로 좋은 때도 있었지만 서로 반목하는 일들이 더 많았고 지금까지도 해묵은 갈등들이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는데 그 가운데서 독도의 영유권 문제, 종군위안부 문제, 일본전범기업 강제징용 배상문제 등이 주요 쟁점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가 새로운 갈등으로 부상하여 오랜 갈등들에 얹어져 가뜩이나 썰렁한 냉기를 더욱 차갑게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남아 내려온 갈등도, 새로 생겨나고 있는 갈등도 모두 일본 측의 책임이 크건만 정작 일본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후안무치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아주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어느 한 착실한 역사학자의 통계에 의하면 한반도는 서너 차례 모자라는 1천 번의 침략을 당해왔다고 한다. 무려 1천 번이나 침략을 당해왔으나 남을 침략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하니 얼마나 착한 민족인가? 누구인가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백의민족은 맞기만 하고 때릴 줄 모르니 선천적으로 DNA에 문제가 있다”고. 아무튼 그 1천 번 가운데서 일본의 침략이 다수였다. 일본은 지진이 많고 태풍이 많기로 지구촌에서도 이름난 곳이다. 게다가 땅이 척박하여 먹을 것이 늘 부족했다. ‘제집’ 내에서 해결책이 안 보이니 눈을 ‘옆집’에 돌릴 수밖에 없었다. 남의 것을 빼앗아오는 약탈행위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경상도와 전라도 해안가에 왜구의 노략질이 들끓었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곡식도 빼앗고, 옷도 강탈하고, 여자도 납치해가고 등 눈에 보이는 쓸 만한 ‘물건’이면 전부 빠트리지 않고 싹쓸이해갔다. 백의민족의 전통인사말은 ‘무사한가?’인데 그 유래가 바로 빈번한 외침을 당한데서 생겨난 것이다. 일본은 왜구의 노략질도 빈번했을 뿐만 아니라 정부차원의 침략도 감행하였고 그 궁극적인 목적은 한반도 식민화였다. 1592년 풍신수길이 발동한 임진왜란이 좋은 근거이다. 명나라 조선 파병 때문에 일본이 임진왜란에서 실패했으나 그 후 결코 한반도 식민화 정책은 포기하지 않았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진압을 위해 조선정부는 청나라와 일본을 불러들인 것이 화근이었다. 큰 전쟁을 피하고자 조선정부는 동학농민운동 측과 협상하여 평화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고 청나라 군과 일본군 모두 철회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모처럼 좋은 기회를 만난 일본이 철회할 리가 만무했다. 청나라와 군대 철회로 갈등을 빚다가 드디어 무력충돌이 발생하였고 그것이 바로 ‘중일갑오전쟁’이다. 일본을 ‘쌰오르번(小日本)’으로 하찮게 여겨왔던 청나라가 생각 밖으로 일본한테 패배한다. 조선을 청나라 속국에서 벗어나게 하고 ‘독립문’까지 세워준 일본이지만 정작 조선은 독립을 하지 못하고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만다. 호랑이가 나간 자리에 승냥이가 들어온 셈이었다. 일본은 강대했던 청나라를 물리쳤으나 또 다른 강대한 적인 러시아와 맞붙어 싸워 이겨야 만주와 조선에서의 이권을 모두 독차지할 수가 있었다. 1904년 일본은 한반도에서 자기네가 마음에 드는 곳에 어디든 군사기지를 세울 권리가 있었다. 러시아와 맞붙으려면 동해바다 섬에 군사기지를 세울 필요가 있었다. 하여 일본의 레이더망에 독도가 들어왔다. 1905년 일본은 독도를 ‘무주지(無主地)’라 주장하면서 영토편입을 시도하고 시마네현(島根縣)에 지방고시를 알린다. 남의 나라 땅을 침략하고 그 땅을 ‘무주지’라 주장하면서 자기네 소유로 만드는 수법은 유럽열강들이 지구촌을 식민지화 하는 과정에서 활발하게 써 먹었던 수법이었다. 즉 일본이 유럽열강들한테서 배운 것을 조선침략에 활용했다는 뜻이다. 독도는 1905년 전에 과연 ‘무주지’였을까? 아니다. 마찬가지로 유럽열강들이 지구촌에 이르는 곳마다 모두 ‘무주지’ 땅들이었을까? 아니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무주지’라 주장하는 것일까? ‘발견자우선주의’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활용했던 것이다. ‘발견자우선주의’의 본뜻은 최초로 발견한 사람들이 소유 우선권이 있다는 의미인데 백인들이 아메리카 땅을 발견하고 개척할 당시 수많은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다. 결코 백인들이 최초의 발견자가 아니다. 분명히 그 땅엔 인디언이라는 주인이 이미 있었다. 해가 지지 않는 식민지를 개척한 그 땅들에 주인이 없었던 것이 아니고 이미 오래 전부터 발견하고 삶을 영위해온 원주민들이 거주해왔다. 그렇다면 왜 유럽열강들이 ‘발견자우선주의’를 주장하면서 자기네 소유로 만들었을까? 주인이 이미 있었는데 ‘무주지’라 주장하고 거기다 한 술 더 떠 ‘발견자우선주의’를 떠드는 근거는? 유럽열강들은 지구촌 곳곳에 살고 있는 인류 집단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그 땅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3C’ 즉 기독교(Chrisianity), 문명(Civilization), 상업(Commerce)을 통해 식민지 정복을 정당화했다. 1455년 교황 니콜라오5세는 아프리카 서쪽 해안의 영토에 대한 포르투갈의 권리를 승인했다. 최초의 탐험시대부터 이미 그 땅에 인류가 살고 있든 말든 국가가 있든 말든 유럽열강들 중 그 누가 먼저 그 땅에 도착하면 자기네들이 주인이라는 ‘무주지’와 ‘발견자우선주의’를 적용했던 것이다. 독도는 1905년 이전에 조선의 소유이고 조선이 영유권을 갖고 있다는 역사적인 증거는 충분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산업혁명과 식민지개척 공부에 가장 모범생이었던 일본이 서구열강들이 식민지 개척 과정에서 정당화로 써먹었던 ‘무주지’와 ‘발견자우선주의’ 무기를 휘둘러 독도 영유권을 시마네현에 편입하는 고시를 알리는 수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있었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있을 때 일본 소유로 편입되었던 것들을 바로 잡는 조항에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등 제도들이 조선의 영유권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조선의 지리는 육지와 3170 개 섬으로 구성되어 있어 섬마다 일일이 모두 표기할 수가 없었고 그때 독도가 빠져있었던 것을 일본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다. 즉 이것 때문에 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한국정부가 독도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군대가 주둔하여 관리하고 있다. 6.25 전쟁 때 한국군 36명의 용사가 독도를 굳건하게 지켜냈고 지금까지도 한국이 독도에 주둔하고 관리하고 있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존재의 일차적인 이유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2016년 세월호사건과 지난해 10월 발생했던 이태원참사사건에 전체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가 바로 정부가 국가의 존재이유를 방기했다는 것이다. 다음 자국의 영토를 지키는 것도 국가존재의 주요 이유이다. 영토를 잃는 것은 안전을 잃어버리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기 때문이다. 한국정부의 독도에 대한 입장은 다음과 같다.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으로 명백한 우리 소유의 영토이다. 독도에 대한 영유권 분쟁은 존재하지 않으며 독도는 외교 교섭이나 사법적 해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우리 정부는 독도에 대한 확고한 영토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독도에 대한 어떠한 도발에도 단호하고 엄중하게 대응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독도에 대한 우리의 주권을 수호해 나아간다.” 다만 걱정이 하나 있다. 일본정치주류세력인 우익이 줄곧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에 대해 올해만 세 번 한일 양국정상이 만난 자리에서 아무 언급도 없었다. 윤석열 정부의 과거사를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는 대일외교방침 때문일까? 일각에서는 이대로 나아간다면 일본이 독도를 완전히 빼앗아가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공동관리 주장을 들고 나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한다. 독도분쟁은 대한민국의 자존심 문제이다. 자존심을 잃으면 나라의 존재이유가 사라질 만큼 국민의 사기가 저하된다. 그러므로 독도만은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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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31
  • [기고] 전주국제영화제 정준호-민성욱 공동집행위원장 투톱체제 성공을 바라며
    독립영화의 요람 전주국제영화제가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로 전환해 정체성 확립과 대중성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지 관심을 받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위원장 우범기 전주시장)는 지난 14일 이사회에서 민성욱 부집행위원장과 정준호 영화배우를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의결했고, 지난 26일 조직위원장 우범기 전주시장은 시장실에서 위촉장을 전달했다. 마력은 동력의 단위로 높을수록 좋다. 이번 쌍두마차 체제가 앞으로 3년 동안 시너지 효과를 일궈낼 것으로 기대된다. 백제예술대학교 방송연예과 교수인 민성욱 신임 공동집행위원장은 전주국제영화제 출범부터 조직위의 사무국장 및 부집행위원장을 역임한 '지킴이'이고, 정준호 신임 집행위원장은 높은 인지도를 가진 대중성을 확보한 영화배우이기 때문. 어떤 조직이나 더 큰 발전과 생존을 위한 변화와 혁신이 요구되는 시점이 있다. 세계 초일류 전자제품 회사로 대한민국을 빛내는 삼성이 만일 제일제당 시절처럼 사카린을 밀수해 설탕을 팔던 그대로 운영되고 있다면 지금의 영광도 없었을 것이다. 2020년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는 비경쟁 위주로 실시됐고 올해 2022년 23회 영화제는 국제경쟁, 한국경쟁, 한국단편경쟁, 특별부문(한국 장편 다큐멘터리, 지역공모작품, 비경쟁 아시아 영화)로 진행되며 업그레이드 됐다. 2023년 24회부터 3년간 시행될 공동집행위원장 체제가 기존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보다 더 대중성을 일으켜 더욱 큰 소통을 통해 영화계 발전과 주최지인 전주 지역발전에 더 크게 기여하는 영광이 실현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쌍두마차 체제가 된 전주국제영화제는 전주시민의 선택을 받은 우범기 시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이끄는 마차다. 우 조직위원장이 전주시 발전을 위한 고뇌 끝에 내놓은 묘수라고 풀이된다. 시장은 시민의 행복과 시의 발전을 도모하는 자리기 때문이다. 공동집행위원장 체제에 대해 기대가 큰 반면에 걱정과 반감도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14일 이사회에서 공동집행위원장 체제가 수립되자, 권해효 배우, 방은진·한승룡 감독이 이사직을 사퇴했다. 이사회에서 자신의 의견과 다르게 의결되었다고 사퇴하는 것이 영화제에 대한 진정성일 수도 있지만 무책임하게 보일 수도 있는 지점이다. 고 자니윤(고 윤종승) 코미디언은 2013년 2월28일 해외동포들과 판문점을 방문한 후 가진 뒷풀이에서 "한국 사람들은 너무 똑똑해요.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이XX 안돼, 저XX 안돼 하는거에요. 일을 해보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미국에서 한국계 코미디언으로 성공하고 그의 인프라를 총동원해 조국 대한민국 관광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싶었으나 좌절된데 대한 의견으로 들렸다. 대한민국은 625전쟁 후 폐허에서 일어나 세계 경제 10대 강국이 되었고 민주주의를 이루어낸 나라다. 지난 80년간 대한민국이 변화가 없었다면 우리 국민들은 헐벗고 굶주리고 억압속에서 지옥살이를 하고 있었을 게 자명하다.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는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이사회에서 결정된 사안이다. 임기는 3년이다. 3년간 응원하고 3년 후 큰 성공과 발전을 이루면 박수를 치고, 변화의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때 가서 비판해도 늦지 않다. 한국언론인연대 박상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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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30
  • "일본 Z세대 중국에 호감" 중국 호감도 세대별로 다른 원인
    ●오카다 미츠루(일본 저널리스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7일 방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3년 만에 처음으로 중·일 정상회담을 갖고 악화된 양국 관계를 '재조정'하기 시작했다. 기시다는 대중 관계 개선에서 반중 여론과 대중 강경 자민당 우파의 제약을 받고 있지만 반중 여론을 거론하면 일본의 Z세대(18~29세)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40% 이상으로 다른 연령층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Z세대의 정치적 의지가 선거의 키를 쥐고 있는 세계적 흐름을 보면 '반중 여론'과 '우파'에만 의존하는 기시다 외교가 위태롭다. 45분 동안 진행된 이번 일-중 정상회담은 3시간여에 걸친 중-미 정상회담에 비해 일본의 대중국 중요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일·중 정상은 회담에서 국방부 해상 및 항공 연락 메커니즘의 직통 전화선 조기 개통, 새로운 중일 고위급 경제 대화의 조기 개최, 새로운 중일 고위급 문화교류 협의 메커니즘 회의 조기 개최 등 몇 가지 공감대를 형성했다. 향후 중일관계 개선의 지표 중 하나로 정상 간 상호 방문을 실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의 대중 관계 개선의 한 가지 저항은 '반중(反中)' 여론 고조다. 일본의 대중(對中) 인식 악화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각부가 매년 발표하는 '외교에 관한 여론조사'에는 흥미로운 수치가 나온다. 예를 들어 지난 1월 발표된 조사에서 응답자의 20.66%가 중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지난해보다 1.4% 증가)고 답했다.그러나 연령별로는 Z세대 중 중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는 비율이 41.6%로 전체보다 배 이상 많았다. 60~69세 13.4%, 70세 이상 13.2%에 비해 Z세대는 중국에 대한 친근감이 높다. 그렇다면 왜 연령대에 따라 중국에 대한 태도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분석하고 싶다. 나는 젊었을 때(저자는 1948년생) 중국의 사회주의에 대한 동경심을 갖고 있었고, 일본이 침략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속죄의식을 갖고 있었다. 중국이라는 '타자' 위에 자신의 생각을 투영해 기대를 부풀렸다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일본이나 구미의 통치체계를 중국의 정치와 사회에 투영해 일본이나 구미의 기준으로 중국을 관찰하고 판단한다. 요즘 60~70대 일본인들이 중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그러나 Z세대는 생각이 다르다. 내가 가르친 대학생의 경우 태어나기도 전에 일본 경제가 침체에 빠졌고, 일본 경제의 고도성장기를 경험하지 못했다. 이들이 철들었을 때 중국은 이미 미국을 추격하는 대국이 됐고 IT 기술에서 일본을 앞섰으며 애니메이션과 게임 품질에서도 일본을 추월하고 있다. 또 Z세대가 다니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많은 곳에서 중국 유학생과 접촉할 기회가 종종 있다. 다시 말해 Z세대는 중국을 일종의 '대등한'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특별한 생각이 없기 때문에 특별한 환상은 없다.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의 버팀목이 될 때 일본인 전체의 대중국 관념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쇠락이라는 역사적 변화, '탈아입구((脫亞入歐)'의식을 심리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대가 '2선 후퇴'하면 일본의 '반중' 여론도 달라질 것이다. 기시다 정권도 언제까지 반중 익찬 여론에 의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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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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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동포의 “주폭”,이대로 가선 안돼
    중국동포의 “주폭”,이대로 가선 안돼 [동포투데이]지난 6월20일,서울 지방경찰청에서 열린 “중국동포 언론사 대표 및 단체장 초청 간담회”에서 중국동포를 포함한 외국인들의 “주폭”으로 인한 범죄 실정과 대책이 주로 논의됐다. 물론 한국내에서 '중국인 혐오증'로 확산될 수도 있는 우려를 차단하자는 취지에서 열린 간담회로 중국 동포들이 한국에 체류 함에 있어서 삶의 질을 높이고 한국 국민들과 더 불어 한국에서 열심히 살아 갈 수 있게 하려는데 목적을 뒀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날 경찰청이 발표한 자료 수치에서 나타난 중국동포의 “주폭”문제는 매우 심각하다는 점이다.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전체5대 외국인 범죄의 38.5%가 살인․강도․폭력 등 강폭력범죄로서 폭력범죄가 대부분 차지하는 가운데 중국인 범죄가 63.8%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외국인의 주취상태 범죄가 내국인보다 높은 편인 가운데 경찰관서 상대 주폭은 많지 않지만 외국인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이웃이나 주점 등에서 행패부리는 주폭은 상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주목할 것은 출신지역별 규합이나 각종 이권다툼에 간여하는 소규모 폭력배도 일부 존재하지만 대부분 주취중 사소한 시비로 인한 우발범이라는 점이다. 이날 동포세계신문 김용필편집국장은 중국 동포들의 음주 폭력은 우발적인 만큼 상습적인 내국인 음주폭력과 다른바 인권침해 등 요소를 고려하여 조심스레 접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간담회에서 참석한 중국동포 단체장들도 임금 체불. 장기간 가족과의 이별로 독신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고독감, 고용주와의 마찰 등의 스트레스가 싸인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이밖에 다른 한 참석자는 중국동포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가리봉 주변에 ‘주폭’자가 많다면서 “소주병 깨고 서로 머리 까는 거 하루에도 수없이 본다. 술은 이성을 무디게 하고 순간적인 초조함에서 벗어나게 한다. 하지만 장기화하면 주폭이 되고, 이들이 범죄자가 되지 않으리란 법 없다. 이들에게 법제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발적인 ‘주폭’자라도 상습적인 “주폭”자가 될 수 있고 아울러 강폭력 범죄를 저질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중국동포 단체장들과 중국동포 주요 언론사 대표들의 가장 궁금한 문제는 외국인범죄 처벌 기준이었지만 아쉽게도 경찰측은 명확한 답안을 주지 못했다. 지난 5월10일, 서울지방경찰청은 주민의 입장에서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치안복지’구현의 일환으로 ‘주폭수사전담팀’을 편성한 이래 서울에서만 116명의 ‘주폭’자를 구속했고 그중에는 중국 동포도 몇몇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범죄에 관련되면 경찰에 입건될지라도 이내 각 지역 출입국관리소로 인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간담회 한 참석자는 술먹고 사람을 때리면 감옥을 간다든가 강도 짓을 하면 강제추방을 준다든가 등의 구체적인 방안이 나와야 한다면서 “주폭”자에 대한 모호한 처벌 기준을 꼬집었다. 한편 경찰측은 경찰관 기동대를 동원한 외국인 폭력범죄에 대한 특별 단속과 예방활동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기능별 전문 경찰관을 강사로 지정, 결혼이주여성ㆍ외국인 노동자 등을 대상으로 국내법규 및 한국생활 적응교육 실시하고 산업인력공단 등 협의, 범죄에 취약한 외국인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국내법규 교육을 실시하는 등의 내실화 방안을 모색중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중국동포들을 위한 ‘문화공간’ 및 ‘여가 프로그램’을 마련해 잠재적 불안요인을 해소하는 목적에서 구청 등 지자체와 협의해 중국동포들이 놀이・오락을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 확충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허영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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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6-23
  • 결혼사진에 맺힌 한
    오늘도 구질 구질 싸늘한 가을비가 내리는날 저는 어머님 생각을하면서 속으로 이렇게 조용이 되뇌입니다. " 어머님 하늘 나라에서 부디 평안하시고 더는 가난때문에 속끓이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며느리도 이젠 결혼 사직을 찍어주지못한 어머님의 아픈 마음을 충분이 이해할 수 있으며 더는 이 일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짓고 잘 살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요. 어머님 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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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1-06
  • [수필]시어머니의 자식사랑
    양로원에 당도하니 호리원인듯한 아주머니 한분이 우리를 안내해주시는것이였다. 퍼그나 널직한 주방겸 활동실인듯한 방에 머리결이 하얀 노인들이 앉아서 한담을 하고 계셨다. 그 속에서 체구가 왜소한 어머님을 대뜸 알아보고 뛰여가서 부둥켜 안으면서 하고 불렀다. 예고도 없이 찾아간 나를 두고 꿈이냐 생시냐 싶은듯 라고 하시면서 원래 노화되여 잘 보이지 않은 눈을 부비고 또 부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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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1-06
  • [수필]옥이할머니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온 옥이와 내가 우리 집에서 숙제를 하는데 불시에 밖에서 징소리, 꽹꽈리소리와 사람들의 웨침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우리는 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옥이네 마당에 홍위병완장을 두른 사람들이 몰려와있었고 옥이 할아버지가 그 사람들의 손에 붙잡혀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옥이 할아버지 목에는 "자위단 단장 박중삼을 타도하자!" 라고 쓴 개패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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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1-06
  • [수필]잃었던 나를 찾아
    싸늘한 바람이 옷속을 파고드는 계절에 다급하게 쫓겨가는 마가을, 락엽이 산만하게 뒹구는 스산한 거리를 사람들은 잔뜩 목을 움츠리고 총총히 오간다. 붙잡아둘수 없는것이 세월인가보다.거리의 가로수들에 파란 물이 오르며 여린 새잎들이 뽀족뽀족 돋던것이 바로 어제 같은데 어느덧 그잎들은 락엽이 되여 한잎두잎 정처없이 흩날리고 사람들의 발길아래 이리저리 짓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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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1-06
  • [수필]먼저 사랑하는 사람이고싶다
    ●김양금 2007년 9월 24일, 프랑스 빠리의 동쪽 보농이란 시골마을 자택에서 침대에 가지런히 누워 숨진 로부부의 시체가 발견되였다. 남편은 유럽의 대표적좌파철학자로 추앙받던 84세의 앙드레 고르, 부인은 24년간 불치의 병으로 앓던 83세의 도린 고르였다. 청소부에게 시켜 출입문에 끼워놓은 쪽지엔 그들이 극약을 주사하고 동반자살한 시간이 이틀전으로 적혀있었다. 침대옆에 남긴 유언에는 두사람의 시체를 한데 화장하고 골회를 저택의 정원에 뿌려달라는 부탁외에 다른 아무 설명도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나리란걸 미리 예감하고있었다. 그 전해에 앙드레 고르가 ‘D에게’ 라는 긴 사랑의 편지를 안해에게 썼는데 그 편지가 책으로 출판되여 많은 사람들이 읽었기때문이다. 그 편지의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 밤이 되면 가끔 텅 빈 길에서, 황량한 풍경속에 관(棺)을 따라 걷고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봅니다. 내가 그 남자입니다. 관속에 누워있는것은 당신입니다. … 세상은 텅 비였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그러다 나는 잠에서 깨여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봅니다. 우리는 둘다 한사람이 죽고나서 혼자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두사람은 1947년 10월, 스위스에서 만났다. 오스트리아출신의 앙드레 고르는 그때 독일군의 징집을 피해 떠도는 나라 없고 돈도 없는 유태인젊은이였다. 도린 케어 역시 외로운 영국처녀였다. 도린은 일찍 부친을 잃고 어머니까지 가출하여 배급식량을 타 고양이와 나눠먹으며 살다가 유럽을 방랑하는중이였다. 고르는 아름답고 우아한 도린을 처음 보았을 때 감히 넘볼수 없는 녀자라고 생각하면서도 부지런히 따라가 함께 춤추러 가자고 제의해보았다. 뜻밖에 처녀의 동의를 받았다. 그뒤 그들은 폭풍처럼 격렬한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들의 사랑에는 아이마저 끼여들 틈이 없었다. 고르는 만일 아이가 있으면 자기는 아이에게로 가는 안해의 사랑을 질투할것 같으니 아이를 낳지 말자고 했던것이다. 두사람은 거울처럼 투명한 둘만의 세계에서 한쌍의 밤꾀꼬리처럼 정답게 60년을 살았다. 결혼초기 그들은 지난세기 50년대의 빠리에서 안해가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면서 남편은 작가로, 언론인으로, 철학자로 활약할수 있었다. 나중에 앙드레 고르는 유럽의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 평가받을만큼 유럽의 대표적언론인으로, 대표적좌파철학자로 자리를 굳히게 되였다. 1983년, 그들에게 불행이 떨어졌다. 도린이 척추수술후유증으로 근육위축이란 불치의 병에 걸린것이다. 고르는 자신에게 이젠 안해곁에 있어주는것보다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으며 그것을 안해가 느끼게 해주고싶었다. 주저없이 빠리의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가 24년동안 안해옆에서 안해를 돌보는 일에 전념했다. 안해의 건강이 점점 악화되자 이제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정시하고 그는 안해가 먼저 가게 된 죽음의 길을 함께 가기로 마음을 잡았던것이다. ‘D에게’ 라는 사랑의 긴 편지를 쓴것도 자기가 평생동안 많은 글을 썼지만 안해를 위해 쓴 글이 없었다는 사실을 느꼈기때문이라고 한다. 인생을 다시 살듯이 기억을 더듬으며 두사람의 사랑과 결혼생활을 회고한 그 편지는 철학자이고 작가인 고르가 안해에게 바친 사랑의 고백이였다. “당신은 이제 여든 두살이 됩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산지 쉰여덟해가 됐지만 나는 그 어느때보다 더 당신을 사랑합니다. …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 자리가 생겼습니다. 내 몸을 꼭 안아줄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워줄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렇게 절절한 편지는 선량한 한 인간의 진실한 사랑과 철학과 사상으로 전 세계를 감동시켰고 오래동안 읽어보지 못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란 극찬을 받았다. 다음해 여름, 그들의 동반자살을 계기로 편지는 여러 나라 말로 세계 각국에서 번역출판되였고 도서가의 베스트셀러코너를 후꾼 달구었다. 크고작은 매체들도 앞다투어 이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보도했다. 한국에서 이 책이 번역출판되였을 때 읽고나서 아이고 나는 언제 이런 사랑을 해볼꼬 라고 탄식하는 독자도 많았다고 한다. 하기야 작가가 꾸며낸 픽션도 아닌 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읽고 자신을 돌이켜보지 않을 사람은 없을것이다. 나도 그랬다. 나는 저도모르게 자신의 40여년의 결혼과 혼인생활을 돌이켜보게 되였다. 두남녀가 결혼하고 한지붕밑에서 운명을 같이하며 살게 된다는것은 본질적으로 말할 때 두사람은 그때로부터 서로가, 우리들의 입에는 아직 서툴고 린색한 말이지만 사랑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무언의 계약이라고 본다. 나와 남편은 서로가 상대의 건강이나 생활, 습관, 기호와 취미에 이르기까지 서로를 리해하고 관심하고 배려하는 부부에 속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친구들로부터 내가 남편의 사랑을 많이 받는 녀자라는 말도 꽤 들었고 나 자신도 그것을 느낄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젊은시절에 다투기도 어지간히 다투었다. 우리의 언쟁은 흔히 원칙적인 어떤 큰 문제보다 사소한 생활세절에서 자기와 다른 상대의 생각이나 습관 혹은 행위를 내가 수용하지 못하는데서 벌어지곤 하였다. 수양이 부족한 나는 언쟁이 벌어지면 남편의 가슴에 깡치로 남을수 있는 험한 말도 거르지 않고 그대로 내뱉고는 했다. 그런 깡치가 오래 쌓이면 상대의 사랑에 대해 의심이 드는건 당연하다. 언제부턴가 나는 자신의 이런 버릇에 대해 남편은 정나미가 떨어져한다는것을 눈치채고 위기감을 느꼈다. 나의 관심과 배려를 거부하는 남편앞에서 비로소 ‘사랑받지 못하는것은 슬프다. 그러나 사랑할수 없다는것은 훨씬 더 슬프다.’ 라고 한 스페인작가 우나무노의 명언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로부터 받는 사랑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상대를 사랑할데 대한 례의가 부족했던 자신의 오만과 무성의가 초래한 위기라는것을 반성하게 했다. 실존주의철학자 앙드레 고르는 안해가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입에 발린 추상적인 사랑보다도 자신이 안해옆에 있어주는것으로 안해가 자신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었고 마지막 죽음의 길까지도 함께 가주었다. 남녀의 사랑에 대해 혹자는 엄숙하게 해석하고 혹자는 아름다운 꿈에 불과하다고 가볍게 말하지만 지내보면 그것은 결국 상대를 아끼고 위하는 마음에서 상대가 편안하고 행복할수 있도록 한없이 베풀수 있는 배려가 아닐가싶다. 한사람의 의식의 변화는 아무래도 그의 행위에 나타나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내 입이 이전처럼 함부로 까불지 않고 남편의 밥상이며 옷이며 약이며 잠자리며를 더 편안하게 챙겨주려고 들이는 나의 정성을 남편은 무슨 변덕이냐싶은지 시큰둥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정성이 진심이냐고 물었다. 바락바락 대들던 때를 생각하면 진심이라고 믿기 어렵다는것이다. 나의 까진입이 상대에게 준 상처가 얼마나 컸을가를 느끼게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는 너무 늦게야 철이 들어서 이제야 당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의 어느 류행가처럼 있을 때 잘하고싶다는 생각도 숨기지 않았다. 비로소 남편은 나의 진심을 믿어주었고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부드러워졌다. 돌이켜보면 내가 남편을 꼬집는데 비하여 남편은 언제나 나에게 관대하였다. 그사람이라고 왜 나에게 거슬리는 점이 없었겠는가. 지금 내가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고싶어 때로는 달갑게 장님이 돼주고 벙어리가 돼주고 바보로 돼주는것처럼 그사람은 진작 그런 각오쯤은 돼있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서양부부들이 입에 바르고 사는 ‘사랑해요’보다 상대를 따뜻하게 배려하는 우리들의 사랑방법이 더욱 앙드레 고르의 실존주의적사랑철학에 부합되는것이 아닐가. 늘 쥐구멍을 지키며 나오기를 기다리는 고양이처럼 신경을 세우지 말고 힘들면 시름없이 상대의 품에 쓰러져 쉬고 힘들어하면 내가 껴안아주면서 편안히 살고싶다. 어느 철학자의 생명까지 함께 휘말아간 폭풍같은 사랑은 아니더라도 봄날의 새싹을 어루만지는 잔잔한 바람결 같은 그런 따뜻한 사랑을 위하여, 내 남자인 내 남편의 있는 그대로를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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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6-14
  • [수필]중매 좀 해주세요
    내가 중매나 잘하게 생겼는지 나보고 중매를 서달라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찾아온다. 그런데 우리 집 남자가 중매라면 영 반기를 드는것이다. 그것도 그냥 해보는 소리가 아니고 중매에 무슨 콤플렉스나 있는 사람처럼 거부감을 갖고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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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6-03
  • [수필]사탕 씹어먹어
     사탕 씹어먹어 ▲ 사탕 엄마가 새벽같이 일어나서 밥을 지어놓고 거울을 마주하는 날은 장보러 가는 날이였다.그만큼 우리집은 화룡시가지에서 40리나 떨어진 시골에 있었고, 엄마는 두달 혹은 석달에 한번 꼴로 화룡에 장보러 다녀오군 했다. 그런 날이면 우리 네형제는 공연히 들떠있었다. 어쩌다가 개눈깔사탕이나 반달사탕이 차례지는 날도 바로 그런 날이였기 때문이다.이제나 저제나 하고 요행 기다려낸 버스 맨뒤에서 올망졸망한 보자기들을 들고 내려오는 엄마가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었다.언제나 그러하듯, 그날도 엄마는 어느 장보따리 맨 밑에서 사탕 한봉지를 꺼냈다. 그리고는 거기에서 아버지몫으로 한줌가량 갈라놓은 다음, 나머지를 네몫으로 똑같이 나누어서는 우리 네형제에게 내밀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오금을 박았다.<<엄마가 다음에 화룡갈때까지 아껴먹어야 한다. 알았지?>>엄마가 다음에, 화룡으로 가기전까지 이 사탕을 아껴먹어야 한다. 나는 속으로 다시한번 곱창하며 사탕봉지를 소중히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그 파랗고 빨간 사탕알들을 정겹게 바라보다가 급기야 한알 꺼내 입안에 넣었다. 참, 그 입안 가득 차오르는 달콤함이라니!바로 그때였다. 깨드득, 깨드득, 사탕 부서지는 소리가 내앞에 달려온 것은, 절대로 사탕을 씹어먹지 말라고 귀아프게 말하는 엄마의 잔소리는, 그러나 오빠앞에서 물보라처럼 부서지고마는 것이다.<<경이야, 오빠는 누운채로 이 사탕을 공중에 올리뿌려 받아먹을수 있다. 너 그렇게 못하지?>><<피, 거짓말.>><<정말이야, 너 한번 보겠니?>><<응>><<그 사탕 한알 줘봐,>><<싫어,>><<요 고집불통아, 오빠가 그깟 네 사탕 빼앗아 먹을가봐 그래? 시범만 보여주고 사탕은 절대 안먹는다.>><<정말이지?>><<그럼.>>나는 그제야 안심하고 사탕 한알 내밀었다.오빠는 구들에 반듯이 누웠다. 그리고 나는 사탕 한알이 공중을 나는것과 거의 동시에 깨드득, 하는 사탕 부서지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나는 황급히 달려들어 두손으로 오빠의 입을 벌려보지만, 그 안에 사탕이 있을리 없다.<<이번에건 아니야, 너무 발리 부서져버렸단 말이야, 이번엔 잘 봐 응? 절대로 안 넘어가게 할게.>> 나는 오빠가 분명 내 사탕을 얼려먹으려는것이라는걸 알고있었다. 하지만 그 파랗고 빨간 사탕들이 은빛을 뿌리며 공중을 나는 황홀함,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싱그럽게 하는 그 깨드득소리에 못이겨 또다시 사탕 한알 내민다.오빠에겐, 공중을 나는 그 사탕을 면바로 입안에 집어넣는 그 어떤 마법이라도 있는걸가? 언제나 그것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공중을 나느것과 같이 깨드득 하고 오빠의 이발사이로 부서지군 했다.그리하여 나는 주고 또 주고, 그러다가 급기야는 사탕이 얼마 남지않았음을 발견하고 황급히 사탕주머니를 졸라맸다. 오빠도 더 이상은 안된다는걸 알아채고 딱지를 주어들고 달려나갔다.나는 한동안, 오빠가 떠나간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아무리 주머니를 들여다보아도 겨우 일곱알, 그나마 한알은 절반가량 깨진거였다. 이제 내겐 이 일곱알의 사탕밖엔 없는것이였다. 그리고 엄마가 이제 다음에 화룡으로 가는 때가 과연 두달후인지, 석달후인지 그건 기약할수조차 없는것이였다. 그것은 그 어떤 엄연한 한계를 알려주는듯했다.그때였다. 뭔가가 내 가슴 한귀퉁이를 울리며 다가온 것은, 드이여 나는 그 어떤 비장한 결심을 내린 듯 입술을 깨물었고, 사탕 한알을 꺼내 까드득, 소리나게 씹었다. 이몸이 아팠다. 까드득, 까드득, 사탕 일곱알이 몽땅 부서져나갔다.달착지근한 사탕물이 입안 가득 차올랐다.그리고, 나는 그 사탕주머니를 던져버렸다.그러고났을 때, 나는 그 어던 아늑함이 내 온몸을 감싸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평온이라고난 하락? 그런 안온함이 내 마음을 홀가분하게 했다.나는 아무일도 없었던 듯 밥상을 펴놓고 숙제를 했다.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나는 더는 오빠한테 빼앗긴 사탕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엄마가 언제 다시 장에 가고, 다시 사탕을 먹을수 있을가도 기다리지 않았다.나는 내 인생의 스냅속에 든 무수한 나자신의 모습을 거의 미워하지만 그날 그 일곱알의 사탕을 씹어버린 아이의 용기만은 무한히 숭배하고 있다.성인이 된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아도 그것은 너무도 잘한 일이 아닌가.내게 있는 한봉지의 사탕, 그것은 언제든지 누군가에게 빼앗길수도 도적말힐수도 있는 것이 아닐가, 뭔가를 소유하고있다는건 결국 그것을 상실할수도 있음을 의미하니깐,허나 그것이 이미 없어졌을 때 누가 감히 다시 나를 엿볼가.그때 어떻게 되어 내가 그토록 과단하게 그 일곱알의 사탕을 씹어버렸는지는 나 자신도 알지 못하고 있다.하지만 그것으로 나는 당시 나를 억누르고있던 괴로움의 그늘에서 벗어나 평온의 해빛을 찾을수 있었던게 아닐가.뭔가를 가지고잇다는건 결국 그것을 보존하고 지키고 키워내야 하는 또다른 의미라는걸 문득 깨달아본다.어쩌면 그 일곱알의 사탕이 내게 가르친 삶의 지혜이기도 하다.사탕 씹어먹어,까드득, 까드득 어데선가 사탕 씹어먹는 소리가 달려오고 있다.글/홍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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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6-03
  • 어서 가세요
    왜 그랬을가, ㅎㅎ 며칠전 일이다. 걍 이제는 생활처럼 되여버린 서빙질을 시작했다. 때는 열두시가 좀 안됐는지 그렇다, 하루장사 시작이고 첫 손님이 들어오는 시간이다. 어째 오늘은 좀 늦나 하고 기웃거리는데 하얀 차가 한대 서더니 아저씨 한분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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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6-03
  • 리조트해변의 아름다움은
    클럽 파라다이스 리조트의 해변가. 들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하얀 백사장이 곱게 숨쉬고있는가운데, 막대기 네개를 엇비슷하게 정방형모양으로 꽂고 거기에 그물을 둘러서, 마치 닭장같기도 하고 새장같기도 하게 보이는 그런 앙증맞은 사진이였다. 헌데 그게 무슨 닭장이나 새장이 아니라는것이다. 거부기가 백사장에 묻어놓은 알들이 행여 의외의 피해라도 당할가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라는것이다. 외계로부터 오는 위험을 저 보잘것 없는 네개의 막대기와 가는 선으로 이어진 그물이 막아준다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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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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