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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룡 칼럼]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한국 이념논쟁
    ●김정룡(다가치 포럼 대표) 현시대 유명 정치학자로 손꼽히는 하버드대학교 샤무엘 헌탕턴 교수는 1996년 저서 『문명의 충돌』을 출간했다. 책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로 반응이 뜨거웠다. 그는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2년 후 소련이 해체됨에 따라 냉전 시대가 종말을 맞았다. 냉전 시대 인간은 대체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 진영의 이념에 각각 속해 있었다. 냉전이 종말 된 미래사회에서는 이념이 무의미해졌고 따라서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갖게 되면서 다른 귀속처를 찾게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 귀속처가 바로 민족문화, 전통문화, 종교문화라고 제시하였다. 그가 말한 귀속처는 새로운 문명이 아니라 과거문화에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헌팅턴 교수의 예언대로 실제로 탈냉전 후 지구촌의 인간무리들은 민족문화, 전통문화, 종교문화에로 재편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중국의 경우 개혁개방 전 해외 화교 화인들 중 고국을 못 마땅해하는 사람들도 개혁개방 이후 즉시 돌아서서 고국에 투자를 서슴지 않았다. 아세아 최고 부자 리카싱(李佳成)이 투자에 나서자 주변에서 ‘사기당하면 어쩌냐?’고 말리자 그는 ‘사기당해도 고향사람들에게 당하는 것인데 사기라 생각하지 않고 도와주는 것이라 여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재벌은 남다른 배포가 있는 법이다. 싱가포르 리콴유(李光曜) 전 총리는 본래 반공자였다가 개혁개방 이후 유교 전도사를 자칭하고 나서 중국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이것이 바로 이념을 탈피하여 민족문화에로 회귀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2008년 북경올림픽 개막식 주제가 공자였는데 이것은 전통문화에로의 회귀를 뜻한다. 1990년 초 동구권에서 있었던 코소보 인종청소 전쟁은 종교문화에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아무튼 세상은 헌팅턴 교수의 예언대로 흘러가고 있는 추세이며 이미 새로운 역사 흐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지구촌의 흐름을 역행하는 곳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한반도이다. 동서 독일이 통일되고 남북 베트남도 통일되어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문화로 굴러가고 있다. 오로지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은 것은 남북한이다. 1990년 베이징아세아게임 때 한국관광객이 대량 백두산투어에 나섰다. 그때 한국여행사 에스코트 00사장이 한 말이 지금도 뇌리에서 생생하게 맴돌고 있다. “참 세월이 놀랍게 변했어요. 우리가 중국 땅을 밟으면서 백두산 구경을 할 것이라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현실로 되었어요. 이 추세대로라면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남북통일도 10년이면 되지 않겠어요!” 그 후 2000년 김대중 대통령께서 북한을 방문하자 매체들이 ‘10년 안에 통일이 이뤄질 것’처럼 떠들었다. 그런데 그 후 강산이 두 번 변하고도 3년이란 세월이 흘러가고 있는 현재 남북통일이 가까워지기는커녕 점점 더 요원해지다못해 요즘은 아주 적대관계가 심각해지고 있는 중이다. “가장 중요한 게 이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전에 국무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시중에서는 모두 뜬금없는 발언이라고 하기도 하고 때아닌 이념타령이라고 공격하기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 발언이 확실히 케케묵은 이념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이게 무슨 시대인데 아직도 이념타령이라니? 역사를 거스르는 행위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요즘 한국 사회는 홍범도 장군의 정체성을 갖고 논쟁 중이다. 양 진영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으로 부질없는 일이다. 1943년 홍범도 장군이 사망할 당시에는 침략당한 약소국가들에서 나라마다 민족주의가 우선이지 이념과 사상이 우선 과제가 아니었다. 강대국들도 마찬가지로 이념을 떠나 미국과 소련이 협력하여 반파시스 전쟁에 돌입하였다. 홍범도 장군이 소련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한 것은 사실이나 오늘날 이념논쟁을 일으킬 사안이 아니다. 한국 정치는 할 일이 하도 없어서 케케묵은 이념논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안타깝다. 문제는 왜 윤석열 대통령이 이념을 최대 이슈로 들고나왔는지? 맥락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 일부 진영에서는 아직도 빨갱이타령이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 종북좌파타령을 70년 동안 벌여오다가 요즘에는 종북좌파 타령이 질리기도 하고 그 실체도 주목을 받기가 조금 약발이 떨어져 친중좌파 공격으로 방향을 틀고 화살을 돌리고 열을 올리고 있다. 필자는 얼마 전에 한국 지인의 소개로 한국 엘리트들이 참여하고 있는 카톡방에 가입한 적이 있다. 카톡방은 흔히 그렇듯 좋은 정보도 나누고 서로 필요한 교류도 하고 인맥도 넓히고 등등 좋은 점이 많다. 하지만 인간무리에는 취향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인데 그 취향이 정치적인 성향이 강하면 골머리가 아파난다. 어느 한 분은 윤석열 대통령을 찬양하는 ‘윤비어천가’를 올렸는데 조선 창시자 이성계를 찬양한 ‘용비어천가’를 저리 가라 할 정도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수령을 찬양하는 ‘어천가’보다 훨씬 뛰어난 솜씨로 현직 대통령을 찬양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통령을 이렇게 신을 찬양하듯 하는 것을 처음 본다. 일각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을 평가하는 기준이 극명하게 나뉘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문재인은 빨갱이고 북한 간첩이다. 나라를 북한에 팔아 먹는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사고방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아무리 좌파 성향을 지닌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설마 나라를 팔아먹을 수가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그들은 상식을 벗어나 비합리적인 주장을 하면 이에 동조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억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친미를 확실하게 하면 다른 분야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문재인처럼 나라를 팔아먹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그들에게는 굳건하게 박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신을 찬양하듯 하는 행위는 필자와는 하도 상관없는 일이라 개의치 않고 그냥 넘겨버리고 말았는데 다음 일은 도무지 지나칠 수가 없었다. 기름 개구리를 산 채로 끓는 기름에 넣어 튀기다가 물을 넣고 끓여 먹는다. 한 분은 친중좌파들을 개구리 산 채로 튀겨먹고 끓여먹듯이 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머리카락이 곤두설 지경으로 정신이 아찔해졌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그만이라는 속담이 있다. “미친 아낙네의 악담보다 더 저질스럽다.”는 말을 남기고 나가기를 해 버렸다. 종북좌파 타령이나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친중좌파 타령이든 모두 같은 이념타령이다. 이런 이념타령이 시중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고 그 세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대통령의 이념논쟁을 때가 아닌 것이라 하거나 뜬금없는 일이라는 지적은 헛발 짚는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한편 한국사회에서 아직도 공산주의 빨갱이 타령이 심각한데 진짜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아는 자가 얼마나 될까? 의문이다. 무엇을 대상을 공격하려면 그 대상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나서 공격해야 마땅하나 한국에서 공산주의 빨갱이 공격은 실체를 모르는 막무내식이어서 안타깝다. tvn방송에 <어쩌다 어른>이라는 강연프로그램이 있다. 몇 년 동안 출연을 가장 많이 했던 최진기 강사가 있었다. 그는 자칭 ‘대한민국 최고 인문강사’이다. 액면 그대로 믿기로 하고 그가 이해하고 있는 공산주의란 무엇인지? 알아보자. 마르크스의 노동 분배 원칙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수요에 의해 분배한다.’는 것이다. 최진기 강사는 이 공산주의 핵심원칙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마르크스는 아마 아버지가 돈을 벌 능력이 있고 그 돈을 자녀가 학비로 사용하는 케이스에서 힌트를 얻어 내놓은 이론일 것이다.” 이어서 그는 유명 스타 연예인 강동원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사람을 어떻게 수요에 의해 분배할 것인가?”고 희죽거리면서 공산주의를 형편없는 애들장난처럼 매도하고 조롱하는 것이었다. 만약 공산주의가 최진기 강사의 말처럼 그렇듯 유치한 것이라면 어떻게 지구촌 반 되는 인간무리가 추종했겠는가? 능력에 따라 일한다는 것은 인간이 고도의 의식을 갖추면 타인의 능력과 비교하지 않고 또 타인의 노동기여도와 비교하지 않고 나의 능력껏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요에 의해 분배한다는 것은 공산주의사회는 물질이 풍부하고 인간의 의식이 고도로 발달되어 불필요한 물질을 탐내지 않고 사치를 탐내지 않는 전제하에서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것을 의미한다. 요점은 물질이 풍하고 인간의 의식이 고도로 발달된 사회에서 실천가능한 원칙이라는 것이다. 빨갱이 뜻은 사상이 빨갛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필자의 부친은 평생 당지서를 맡았는데 사상이 붉다못해 둘째 아들이 휴학하는 해에 참외 밭을 대신해 보게하고는 아들이 생산대 참외를 먹었다고 하여 장부에 가을에 떼어내게 기입해 놓았다고 한다. 필자가 자랄 때 동네 어른들이 늘 저한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너의 부친은 진짜 빨갛다.’는 말을 반복했다. 최진기의 자칭 최고 강사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대한민국 최고 인문강사의 공산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이 수준이라면 진짜 대한민국에서 공산주의를 제대로 알고 있는 자가 얼마나 될까? 묻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 서강대 00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산주의는 제도로서 실천은 실패했지만 그 이념과 사상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분단국가로 존재하고 이직도 케케묵은 이념논쟁에 빠져 있는 이 민족의 현실. 언제 가야 통일되고 하나가 되어 부질없는 다툼에서 벗어날 것인지? 민족의 운명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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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04
  • 일본 핵폐수 해양 방류 시작과 과정 그리고 결과는?
    ● 철 민(논설위원) 한·중·일 해양 안전 문제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신경전을 벌였던 일본 후쿠시마 제1 원전의 핵 오염수 처리 문제가 24일 일본 정부의 바다 방류 개시와 더불어 또 새로운 논쟁거리를 몰아오고 있다. 우선 일본 정부의 핵 오염수 바다 방류 행위를 두고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나라들로는 일본의 이웃 국가들인 중국과 한국(정당과 사회단체 등), 북한 등과 거리가 멀지만, 남태평양 도서국의 반발도 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후쿠시마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들기 시작해서 240일이면 중국 연해에 도착한다며 정부로부터 국민 매 개인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일본 정부의 핵 오염수 방류 결정을 국제 공공의 이익을 무시하는 극단적으로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위라고 강력히 규탄하고 있다. 한편 중국 정부는 일본산 수산물 수입의 전면 중단을 발표하였다. 한국 언론도 한국의 여러 해산물 시장이 거의 텅 비어 있어 어부들은 미래의 생계를 걱정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2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제주도 동문어시장에서 20년 넘게 해산물 장사를 해온 한 상인은 “예전에는 오전 10시경과 오후 5∼7시(두 시간대)에 장사가 안될 때도 시장은 붐볐지만, 요즘은 손님이 없는 텅 빈 고속도로”라며 “코로나19 기간에는 장사가 더 잘됐다”라고 우려했고 한국 서부 해안 도시 군산 출신의 한 어민은 “내일 해산물 경매장에 간다고 생각하니 답답하다”라며 “해산물 소비량이 4분의 1로 줄었고 가격도 더 낮아질 것 같다”라고 탄식했다. 부산종합어시장에서는 조기 한 박스가 보통 4만 원 또는 5만 원에 팔리는데, 전국 해산물의 약 30%가 이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번 주 수요일(23일)에는 조기 한 박스가 정상가의 절반 이하로 판매되었으며, 한국인들의 주요 해산물인 멸치는 평소보다 10~20% 정도 가격이 저렴하게 판매되었다. 24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담화문을 발표하여 일본이 이날 후쿠시마 제1 원전의 핵 오염수 방류를 개시한 것은 지구 생태환경을 파괴하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강력히 규탄하면서 핵 오염수 방류계획을 강행하는 것은 자신들의 사욕을 위해 인류에게 핵 재앙을 초래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반인도적 범죄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외 후쿠시마 핵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기로 한 일본의 결정을 알게 된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에 있는 한 비정부기구가 공개적으로 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글을 올렸으며 또 피지 수바에서 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시위에 나서기로 했다. 일본의 핵 오염수 바다 방류 강행은 해외의 국가와 사회단체의 규탄은 물론 일본 자국 내 어민 단체와 국민의 반발을 사고 있다. 특히 1945년 원폭 피해자 후손들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바다 방류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나섰다. 교도통신은 24일 원폭 피해자 후손들로 구성된 일본-전국 원폭 피해자 2세 단체 연락 협의회가 나가사키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후쿠시마 오염수의 바다 방류에 항의했다고 전했다. 이 단체는 원자폭탄의 피해자인 히로시마가 견딜 수 없다며 성명을 발표했고, 이 성명은 총리 관저에 우편으로 발송됐다. 성명은 “원폭 피해자 2세들은 부모들이 방사능 영향으로 고통받는 것을 오랫동안 목격했고, 자신들도 유전적 영향을 배제할 수 없어 건강을 염려하고 있다”라며 “정부와 도쿄전력이 책임을 지고 육상에서 보존·관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외에도 일본의 핵 오염수 바다 방류 강행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이루다 나열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많고도 높다. 일본의 핵 오염수 바다 방류계획은 국제원자력 기구(IAEA)의 감찰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IAEA의 권위성과 전문성은 인정하지만, 이 기구의 분석과 결론 모두를 믿는 건 아니다. 특히 IAEA 역시 일본의 핵 오염수 바다 방류계획에 대해 명확한 지지 혹은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도 않았다. IAEA 역시 사상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수치나 분석을 통해서는 함부로 결론을 내릴 수 없은 것으로 보인다. 세상의 모든 일이란 시작이나 과정을 통해서는 어떤 결과가 나타나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사례로 1945년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기 전에는 그 위력이 그 정도로 강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는 자료도 있다. 다음 우리는 일본이란 나라에 대해 더군다나 믿을 수 없다는 추리가 나온다. 일본인을 두고 말하자면 좋게 말하면 “총명하다”하고 할 수 있지만 다른 각도로 말하면 “잔머리를 잘 굴린다” 혹은 “비열하고 간교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은 조선과 중국 그리고 기타 태평양 지역 국가와 지역에 큰 피해를 주었다. 그것도 아주 음융하고 비열하고 잔혹한 수단과 명분 등으로 말이다. 조선 왕조의 명성황후 음해 사건, 중국 대만 강점과 한일 합방 그리고 지난 세기 30~40년대 조선에서 위안부를 모집할 때는 “방직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등 감언리설로 순진한 소녀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고 1920년대 말의 만주에서의 황구툰(皇姑屯) 사건과 루거우차오(卢沟桥) 사건 등을 분석 조명해보면 당시 일본이 강하다기에 앞서 음흉하고 뻔뻔스럽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 시 일본은 한편으로는 미국과 담판함과 아울러 이 어마어마한 사건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일본을 함부로 믿어서는 큰 코 다친다는 분석도 함께 나온다. 종합적으로 일본을 평가하면 일본인의 겉면을 보면 예의가 바르고 친절하고 생활이 아주 규칙적으로 보이지만 일본인의 속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겉과 속이 같은 한국인과는 달리, 웬간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 중국인과는 달리 또한 거만하지만 우쭐대지는 않는 서양인들과는 달리 일본인한테는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피해국에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역대의 독일 총리들과는 정반대로 일본은 오늘 현재도 기나긴 침략 역사에 대해 사과하거나 반성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교과서까지 뜯어고치면서 군국주의의 침략사를 미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의 핵 오염수 바다 방류 강행을 두고 각국은 여러 가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강경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중국과는 달리 미국은 지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한국 정부는 “지지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입장으로 나오고 있다. 여기서 미국은 태평양을 사이 두고 일본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속 궁리가 있는가 하면 다른 일종의 전략이 내포되어 있을 수도 있고 한국은 자국민들한테 미칠 손실보다는 일본과 정부 사이의 마찰을 우려하는 듯한 양상이다… 한편 일본의 핵 오염수 바다 방류 강행에 대해 지금 과학적이고 안심할 수 있다는 학술적 수치는 있으나 그 영원성을 장담하는 언사는 한 마디도 없다. 어찌 됐든 일본의 핵 오염수는 방류하지 않는 것이 방류하는 것보다는 ‘명지한 선택’이라 보여지며 방류하는 것으로 나쁜 결과가 있을지언정 반대로 좋은 결과는 제로라는 것만은 분명한 것이다. 가령 앞으로 방류 과정에 혹시라도 일본 자국 혹은 주변국들에 피해 사례라도 발생한다면 그때 가서 아무리 미국이나 국제원자력기구라 해도 결코 일본을 위해 대변할 수는 없을 것이며 일본이라는 이 섬나라의 위망은 일락 천장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서기 2023년 8월 24일, 이날은 인류 역사상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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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25
  • 독도는 ‘무주지(無主地)’ 섬이 아니었다.
    ● 김정룡 (多가치포럼' 대표) 민간속설에 ‘이웃이 먼 사촌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가령 이웃집에서 경사가 생기면 함께 기쁨을 나누고, 안 좋은 일에는 같이 슬픔을 나누고, 급한 일이 생기면 이웃이 가장 먼저 달려와 돕는 등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삶을 영위해온데서 생겨난 속담일 터. 민간백성들의 삶은 대개 이웃끼리 화목한데 비해 한 사람, 한 사람으로 구성된 국가의 경우 이웃나라끼리 사이는 그다지 화목하지 못하다. 바다를 사이 두고 이웃으로 살아온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으로 좋은 때도 있었지만 서로 반목하는 일들이 더 많았고 지금까지도 해묵은 갈등들이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는데 그 가운데서 독도의 영유권 문제, 종군위안부 문제, 일본전범기업 강제징용 배상문제 등이 주요 쟁점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가 새로운 갈등으로 부상하여 오랜 갈등들에 얹어져 가뜩이나 썰렁한 냉기를 더욱 차갑게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남아 내려온 갈등도, 새로 생겨나고 있는 갈등도 모두 일본 측의 책임이 크건만 정작 일본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후안무치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아주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어느 한 착실한 역사학자의 통계에 의하면 한반도는 서너 차례 모자라는 1천 번의 침략을 당해왔다고 한다. 무려 1천 번이나 침략을 당해왔으나 남을 침략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하니 얼마나 착한 민족인가? 누구인가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백의민족은 맞기만 하고 때릴 줄 모르니 선천적으로 DNA에 문제가 있다”고. 아무튼 그 1천 번 가운데서 일본의 침략이 다수였다. 일본은 지진이 많고 태풍이 많기로 지구촌에서도 이름난 곳이다. 게다가 땅이 척박하여 먹을 것이 늘 부족했다. ‘제집’ 내에서 해결책이 안 보이니 눈을 ‘옆집’에 돌릴 수밖에 없었다. 남의 것을 빼앗아오는 약탈행위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경상도와 전라도 해안가에 왜구의 노략질이 들끓었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곡식도 빼앗고, 옷도 강탈하고, 여자도 납치해가고 등 눈에 보이는 쓸 만한 ‘물건’이면 전부 빠트리지 않고 싹쓸이해갔다. 백의민족의 전통인사말은 ‘무사한가?’인데 그 유래가 바로 빈번한 외침을 당한데서 생겨난 것이다. 일본은 왜구의 노략질도 빈번했을 뿐만 아니라 정부차원의 침략도 감행하였고 그 궁극적인 목적은 한반도 식민화였다. 1592년 풍신수길이 발동한 임진왜란이 좋은 근거이다. 명나라 조선 파병 때문에 일본이 임진왜란에서 실패했으나 그 후 결코 한반도 식민화 정책은 포기하지 않았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진압을 위해 조선정부는 청나라와 일본을 불러들인 것이 화근이었다. 큰 전쟁을 피하고자 조선정부는 동학농민운동 측과 협상하여 평화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고 청나라 군과 일본군 모두 철회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모처럼 좋은 기회를 만난 일본이 철회할 리가 만무했다. 청나라와 군대 철회로 갈등을 빚다가 드디어 무력충돌이 발생하였고 그것이 바로 ‘중일갑오전쟁’이다. 일본을 ‘쌰오르번(小日本)’으로 하찮게 여겨왔던 청나라가 생각 밖으로 일본한테 패배한다. 조선을 청나라 속국에서 벗어나게 하고 ‘독립문’까지 세워준 일본이지만 정작 조선은 독립을 하지 못하고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만다. 호랑이가 나간 자리에 승냥이가 들어온 셈이었다. 일본은 강대했던 청나라를 물리쳤으나 또 다른 강대한 적인 러시아와 맞붙어 싸워 이겨야 만주와 조선에서의 이권을 모두 독차지할 수가 있었다. 1904년 일본은 한반도에서 자기네가 마음에 드는 곳에 어디든 군사기지를 세울 권리가 있었다. 러시아와 맞붙으려면 동해바다 섬에 군사기지를 세울 필요가 있었다. 하여 일본의 레이더망에 독도가 들어왔다. 1905년 일본은 독도를 ‘무주지(無主地)’라 주장하면서 영토편입을 시도하고 시마네현(島根縣)에 지방고시를 알린다. 남의 나라 땅을 침략하고 그 땅을 ‘무주지’라 주장하면서 자기네 소유로 만드는 수법은 유럽열강들이 지구촌을 식민지화 하는 과정에서 활발하게 써 먹었던 수법이었다. 즉 일본이 유럽열강들한테서 배운 것을 조선침략에 활용했다는 뜻이다. 독도는 1905년 전에 과연 ‘무주지’였을까? 아니다. 마찬가지로 유럽열강들이 지구촌에 이르는 곳마다 모두 ‘무주지’ 땅들이었을까? 아니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무주지’라 주장하는 것일까? ‘발견자우선주의’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활용했던 것이다. ‘발견자우선주의’의 본뜻은 최초로 발견한 사람들이 소유 우선권이 있다는 의미인데 백인들이 아메리카 땅을 발견하고 개척할 당시 수많은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다. 결코 백인들이 최초의 발견자가 아니다. 분명히 그 땅엔 인디언이라는 주인이 이미 있었다. 해가 지지 않는 식민지를 개척한 그 땅들에 주인이 없었던 것이 아니고 이미 오래 전부터 발견하고 삶을 영위해온 원주민들이 거주해왔다. 그렇다면 왜 유럽열강들이 ‘발견자우선주의’를 주장하면서 자기네 소유로 만들었을까? 주인이 이미 있었는데 ‘무주지’라 주장하고 거기다 한 술 더 떠 ‘발견자우선주의’를 떠드는 근거는? 유럽열강들은 지구촌 곳곳에 살고 있는 인류 집단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그 땅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3C’ 즉 기독교(Chrisianity), 문명(Civilization), 상업(Commerce)을 통해 식민지 정복을 정당화했다. 1455년 교황 니콜라오5세는 아프리카 서쪽 해안의 영토에 대한 포르투갈의 권리를 승인했다. 최초의 탐험시대부터 이미 그 땅에 인류가 살고 있든 말든 국가가 있든 말든 유럽열강들 중 그 누가 먼저 그 땅에 도착하면 자기네들이 주인이라는 ‘무주지’와 ‘발견자우선주의’를 적용했던 것이다. 독도는 1905년 이전에 조선의 소유이고 조선이 영유권을 갖고 있다는 역사적인 증거는 충분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산업혁명과 식민지개척 공부에 가장 모범생이었던 일본이 서구열강들이 식민지 개척 과정에서 정당화로 써먹었던 ‘무주지’와 ‘발견자우선주의’ 무기를 휘둘러 독도 영유권을 시마네현에 편입하는 고시를 알리는 수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있었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있을 때 일본 소유로 편입되었던 것들을 바로 잡는 조항에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등 제도들이 조선의 영유권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조선의 지리는 육지와 3170 개 섬으로 구성되어 있어 섬마다 일일이 모두 표기할 수가 없었고 그때 독도가 빠져있었던 것을 일본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다. 즉 이것 때문에 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한국정부가 독도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군대가 주둔하여 관리하고 있다. 6.25 전쟁 때 한국군 36명의 용사가 독도를 굳건하게 지켜냈고 지금까지도 한국이 독도에 주둔하고 관리하고 있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존재의 일차적인 이유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2016년 세월호사건과 지난해 10월 발생했던 이태원참사사건에 전체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가 바로 정부가 국가의 존재이유를 방기했다는 것이다. 다음 자국의 영토를 지키는 것도 국가존재의 주요 이유이다. 영토를 잃는 것은 안전을 잃어버리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기 때문이다. 한국정부의 독도에 대한 입장은 다음과 같다.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으로 명백한 우리 소유의 영토이다. 독도에 대한 영유권 분쟁은 존재하지 않으며 독도는 외교 교섭이나 사법적 해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우리 정부는 독도에 대한 확고한 영토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독도에 대한 어떠한 도발에도 단호하고 엄중하게 대응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독도에 대한 우리의 주권을 수호해 나아간다.” 다만 걱정이 하나 있다. 일본정치주류세력인 우익이 줄곧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에 대해 올해만 세 번 한일 양국정상이 만난 자리에서 아무 언급도 없었다. 윤석열 정부의 과거사를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는 대일외교방침 때문일까? 일각에서는 이대로 나아간다면 일본이 독도를 완전히 빼앗아가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공동관리 주장을 들고 나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한다. 독도분쟁은 대한민국의 자존심 문제이다. 자존심을 잃으면 나라의 존재이유가 사라질 만큼 국민의 사기가 저하된다. 그러므로 독도만은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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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31
  • [기고] 전주국제영화제 정준호-민성욱 공동집행위원장 투톱체제 성공을 바라며
    독립영화의 요람 전주국제영화제가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로 전환해 정체성 확립과 대중성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지 관심을 받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위원장 우범기 전주시장)는 지난 14일 이사회에서 민성욱 부집행위원장과 정준호 영화배우를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의결했고, 지난 26일 조직위원장 우범기 전주시장은 시장실에서 위촉장을 전달했다. 마력은 동력의 단위로 높을수록 좋다. 이번 쌍두마차 체제가 앞으로 3년 동안 시너지 효과를 일궈낼 것으로 기대된다. 백제예술대학교 방송연예과 교수인 민성욱 신임 공동집행위원장은 전주국제영화제 출범부터 조직위의 사무국장 및 부집행위원장을 역임한 '지킴이'이고, 정준호 신임 집행위원장은 높은 인지도를 가진 대중성을 확보한 영화배우이기 때문. 어떤 조직이나 더 큰 발전과 생존을 위한 변화와 혁신이 요구되는 시점이 있다. 세계 초일류 전자제품 회사로 대한민국을 빛내는 삼성이 만일 제일제당 시절처럼 사카린을 밀수해 설탕을 팔던 그대로 운영되고 있다면 지금의 영광도 없었을 것이다. 2020년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는 비경쟁 위주로 실시됐고 올해 2022년 23회 영화제는 국제경쟁, 한국경쟁, 한국단편경쟁, 특별부문(한국 장편 다큐멘터리, 지역공모작품, 비경쟁 아시아 영화)로 진행되며 업그레이드 됐다. 2023년 24회부터 3년간 시행될 공동집행위원장 체제가 기존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보다 더 대중성을 일으켜 더욱 큰 소통을 통해 영화계 발전과 주최지인 전주 지역발전에 더 크게 기여하는 영광이 실현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쌍두마차 체제가 된 전주국제영화제는 전주시민의 선택을 받은 우범기 시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이끄는 마차다. 우 조직위원장이 전주시 발전을 위한 고뇌 끝에 내놓은 묘수라고 풀이된다. 시장은 시민의 행복과 시의 발전을 도모하는 자리기 때문이다. 공동집행위원장 체제에 대해 기대가 큰 반면에 걱정과 반감도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14일 이사회에서 공동집행위원장 체제가 수립되자, 권해효 배우, 방은진·한승룡 감독이 이사직을 사퇴했다. 이사회에서 자신의 의견과 다르게 의결되었다고 사퇴하는 것이 영화제에 대한 진정성일 수도 있지만 무책임하게 보일 수도 있는 지점이다. 고 자니윤(고 윤종승) 코미디언은 2013년 2월28일 해외동포들과 판문점을 방문한 후 가진 뒷풀이에서 "한국 사람들은 너무 똑똑해요.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이XX 안돼, 저XX 안돼 하는거에요. 일을 해보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미국에서 한국계 코미디언으로 성공하고 그의 인프라를 총동원해 조국 대한민국 관광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싶었으나 좌절된데 대한 의견으로 들렸다. 대한민국은 625전쟁 후 폐허에서 일어나 세계 경제 10대 강국이 되었고 민주주의를 이루어낸 나라다. 지난 80년간 대한민국이 변화가 없었다면 우리 국민들은 헐벗고 굶주리고 억압속에서 지옥살이를 하고 있었을 게 자명하다.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는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이사회에서 결정된 사안이다. 임기는 3년이다. 3년간 응원하고 3년 후 큰 성공과 발전을 이루면 박수를 치고, 변화의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때 가서 비판해도 늦지 않다. 한국언론인연대 박상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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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30
  • "일본 Z세대 중국에 호감" 중국 호감도 세대별로 다른 원인
    ●오카다 미츠루(일본 저널리스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7일 방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3년 만에 처음으로 중·일 정상회담을 갖고 악화된 양국 관계를 '재조정'하기 시작했다. 기시다는 대중 관계 개선에서 반중 여론과 대중 강경 자민당 우파의 제약을 받고 있지만 반중 여론을 거론하면 일본의 Z세대(18~29세)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40% 이상으로 다른 연령층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Z세대의 정치적 의지가 선거의 키를 쥐고 있는 세계적 흐름을 보면 '반중 여론'과 '우파'에만 의존하는 기시다 외교가 위태롭다. 45분 동안 진행된 이번 일-중 정상회담은 3시간여에 걸친 중-미 정상회담에 비해 일본의 대중국 중요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일·중 정상은 회담에서 국방부 해상 및 항공 연락 메커니즘의 직통 전화선 조기 개통, 새로운 중일 고위급 경제 대화의 조기 개최, 새로운 중일 고위급 문화교류 협의 메커니즘 회의 조기 개최 등 몇 가지 공감대를 형성했다. 향후 중일관계 개선의 지표 중 하나로 정상 간 상호 방문을 실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의 대중 관계 개선의 한 가지 저항은 '반중(反中)' 여론 고조다. 일본의 대중(對中) 인식 악화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각부가 매년 발표하는 '외교에 관한 여론조사'에는 흥미로운 수치가 나온다. 예를 들어 지난 1월 발표된 조사에서 응답자의 20.66%가 중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지난해보다 1.4% 증가)고 답했다.그러나 연령별로는 Z세대 중 중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는 비율이 41.6%로 전체보다 배 이상 많았다. 60~69세 13.4%, 70세 이상 13.2%에 비해 Z세대는 중국에 대한 친근감이 높다. 그렇다면 왜 연령대에 따라 중국에 대한 태도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분석하고 싶다. 나는 젊었을 때(저자는 1948년생) 중국의 사회주의에 대한 동경심을 갖고 있었고, 일본이 침략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속죄의식을 갖고 있었다. 중국이라는 '타자' 위에 자신의 생각을 투영해 기대를 부풀렸다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일본이나 구미의 통치체계를 중국의 정치와 사회에 투영해 일본이나 구미의 기준으로 중국을 관찰하고 판단한다. 요즘 60~70대 일본인들이 중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그러나 Z세대는 생각이 다르다. 내가 가르친 대학생의 경우 태어나기도 전에 일본 경제가 침체에 빠졌고, 일본 경제의 고도성장기를 경험하지 못했다. 이들이 철들었을 때 중국은 이미 미국을 추격하는 대국이 됐고 IT 기술에서 일본을 앞섰으며 애니메이션과 게임 품질에서도 일본을 추월하고 있다. 또 Z세대가 다니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많은 곳에서 중국 유학생과 접촉할 기회가 종종 있다. 다시 말해 Z세대는 중국을 일종의 '대등한'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특별한 생각이 없기 때문에 특별한 환상은 없다.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의 버팀목이 될 때 일본인 전체의 대중국 관념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쇠락이라는 역사적 변화, '탈아입구((脫亞入歐)'의식을 심리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대가 '2선 후퇴'하면 일본의 '반중' 여론도 달라질 것이다. 기시다 정권도 언제까지 반중 익찬 여론에 의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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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3

실시간 칼럼/기고 기사

  • [학생작문] 엄마와 함께 태산에 올랐던 날
    ▲ 연변대학사범분원부속소학교 3학년 5반 허정윤 [동포투데이] 나는 이번 겨울방학에 엄마와 같이 산동성에 있는 태산으로 놀러 갔습니다. 우리는 아침 일찍 고속렬차를 타고 길림에 도착한 다음 다시 태안으로 가는 보통렬차로 갈아탔습니다. 렬차는 거의 20여시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천하제일 명산으로 불리는 태산은 뿌연 안개 속에 어렴풋이 보였는데 연길에 있는 모아산보다 훨씬 높아보였습니다. ▲ 연변대학사범분원부속소학교 3학년 5반 허정윤 우리는 호텔에서 하루밤 묵은 후 이튿날 오전 관광뻐스를 타고 태산으로 향했습니다. 태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인 중천문에서 우리는 삭도를 타고 남천문으로 올라갔습니다. 삭도를 타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높고 우람진 나무들도 그림 속의 나무처럼 작아보였습니다. 얼마 후 우리는 남천문에 도착했습니다. 남천문은 태산 정상에 있는 옥황정과 매우 가깝습니다. 가파로운 계단을 따라 옥황정에 오른 나는 숨이 차고 땀이 비 오듯 쏟아져 그 자리에 폴싹 주저앉았습니다. 숨을 돌린 후 일어나 아래를 내려다본 순간 저도 모르게“야!”하고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저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산봉우리 사이로 흰구름이 두둥실 떠가고 있었습니다. ▲ 연변대학사범분원부속소학교 3학년 5반 허정윤 우리는 이날 공자가 글을 남겼다는 비석 앞에서 찰칵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옛 황제들도 와서 절을 했다던 절당에서 소원도 빌었습니다. 저녁이 되여 호텔로 돌아온 나는 태산에 직접 올라가 보고 느낀 것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일기장에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연변대학사범분원부속소학교 3학년 5반 허정윤 / 지도교원:배춘화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18-10-29
  • '고국'도 아니고 ‘모국’도 아니다
    ● 권진홍 지난 8월, 여름방학이 거의 마감될 쯤, 북경정음우리말학교 학생들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비록 함께 간 건 아니지만 워낙 인터넷이 발달하고 위챗사용이 활발한지라 거의 실시간 뉴스처럼 화면들을 접할 수 있었다. 아이들의 유쾌한 모습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보던 중 플래카드 표어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정음우리말학교 고국탐방”… 처음 기획 시에는 ‘모국탐방’이라고 했다가 여러 선생님들이 ‘모국’이라는 용어는 타당치 않은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아서 쓰지 않았는데 최종에는 ‘고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단체방문일 경우에는 개인적인 방문에 비해 표어도 있고, 공식적인 행사도 있기 때문에 용어사용에 여러 면으로 신경을 써야 한다. 그렇지만 많은 단체들에서 크게 중시를 하지 않고 한국에서 사용하는 대로 받아들여서 쓰고 있는 현상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이 ‘모국’과 ‘고국’에 대해 좀 알아보고 싶다. 그래야 앞으로 사용할지 말지를 정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 한국의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봤다. 모국: 1. 자기가 태어난 나라. 흔히 외국에 나가있는 사람이 자기 나라를 가리킬 때에 쓰는 말. 2. 따로 떨어져나간 나라에서 그 본국을 이르는 말. 고국: 주로 남의 나라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조상 때부터 살던 나라를 이르는 말. 사전해석이 알려주듯이 현재 중국에서 중국국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한국을 ‘모국’이라고 사용하는 건 옳지 않은 사용법이다. 한국이 일부 이민 1세의 모국 이였겠지만 3대 4대에 걸치는 우리가 태어난 나라는 아니다. ‘고국’이라고 사용하는 건 더더욱 삼가해야 할 것 같다. 사전에 보면 ‘남의 나라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석을 하고 있다. 즉 한국을 ‘고국’이라고 하면 스스로 지금 살고 있는 나라를 ‘남의 나라’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만들고 있는 자세이다. 가끔 조선족을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이방인으로 자처하는 글들을 본다. 같은 피가 흐른다고 친절한 대우를 받을 줄로만 예상하고 있던 한국에서 차별대우를 받을 뿐더러 원래 쓰던 한글 이름마저 그대로 기입하지 못하게 하는 취급을 받는다면서 억울함을 호소한다. 억울함이란 잘못한 것이 없는데 불합리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억울하다고 생각하기 전에 먼저 내 처신이 맞았는지부터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 가서 무작정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만 믿고 다른 면들도 다 같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어릴 때부터 길들여진 습관이 하루아침에 다 없어질 수는 없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억울하다는 생각을 가지기 전에, 이방인 취급을 당한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나 자신이 잘 처신했는지부터 돌아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비록 간단한 하나의 어휘에 지나지 않는 것 같지만 언어가 지니는 파급력은 무시할 수 없다. 언어는 사용하는 사람의 의사표명이고, 보고 듣는 사람이 이해하는 가장 직접적인 매체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어휘 하나 사용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지금 민족 언어를 유지해나가고, 민족 예의범절을 몸에 익혀 민족 특색을 오래오래 이어나가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고 앞으로도 기성세대들이 많은 심혈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명확히 해야 할 부분도 꼭 잊지 말아야 한다. 조금 더 단단하고 성숙된 문화를 만들고 숙성시켜가는 과정에 우리부터 먼저 분명한 의식세계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아직 사유능력이 여물지 않은 아이들도 우리말, 우리문화를 정확하게 배우고 수용하면서 우리만의 우세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전통을 알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작정 주입시켜 혼란을 주는 것보다는 차츰차츰 혼자의 인지능력으로 판단해나가고 선택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어떤 어휘를 사용하든, 어떤 판단기준을 가지든 그것을 정확하게 알고 선택하자는 것이다. 주: 본문은 본지의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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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9-22
  • 안희정 前 충남지사는 가정으로 돌아갈 의무를 질 수 있을까
    중학교때부터 정치인을 꿈꿔온 민주화 운동 86세대, 보수의 텃밭 충남에서 도지사 재선으로 민주당의 세 확산, 대통령 예비후보로 문재인 대통령 다음가는 인기를 구가하던 안희정 전 지사가 '미투' 쓰나미에 휩쓸려 전 여직원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안희정 전 지사는 도덕적·사회적 비판은 감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법적 판단은 재판부에 맡긴다며 '합의한 성관계'로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지사와 함께 근무했던 K씨는 작년인 2017년 7월부터 2018년 2월까지 4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성폭행'이라면 2017년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법적인 조치나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하지 않고 안 전 지사의 주변에서 맴돌며 일하고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E교육회사 Y 전 대표는 대표 재임시인 지난 2014년 7월 입사지원을 했으나 면접을 보고 "입사하지 않겠다"는 20대 여성 A씨에게 만남을 요청하고, 차안에서 껴안고 가슴과 엉덩이를 만진 혐의로 기소됐고, 또 같은해 10월 6일과 20일 비서 B씨를 "예뻐보인다. 한 번 안아보자"며 추행하자 B씨는 이 일이 있은 후 사직했으며, 양 전 대표는 A,B씨에게 성추행한 점이 인정되어 2016년 4월 법정구속됐었다. 피해자들이 즉시 성추행을 고소하거나 사퇴하여 재발을 방지한 사례다. 2017년 7월부터 2018년 2월은 무려 7개월이나 된다. 성폭행이었다면, 무섭고 징그럽고 불쾌한 일을 자행한 이를 지근거리에서 상사로 모시며 수행하고 법적 조치를 하지도 않으며 간헐적으로 성관계를 갖는다는 것이 위의 사례와 너무나 판이하게 달라, 법적 조치를 7개월만에 한 이유에 대해 주목이 되고 있다. K씨가 JTBC TV 생방송에 나와 안희정 전 지사가 성폭행을 했다고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며 진행한 인터뷰 시점은, 안 전 지사가 3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이후이다. 또한, K씨가 안 전지사를 밀착 보좌하는 수행비서에서 정무비서로 근무형태가 바뀐 이후이기도 하다. 비서실 등 정무직은 보통 지사 등 정치인의 임기와 같이 근무하고 함께 그 직을 그만두는 것이 통상적이다. 안 전 지사가 임기를 3개월여 남겨두고 사퇴하고 비서실장 등 정무직 직원들이 동반사퇴한 것도 그런 관례때문이다. K씨는 안희정 대선예비후보 캠프때부터 합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안 전 지사는, 민주당이 강세인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 다음으로 안 전 지사가 2위를 함으로써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확실히 올랐고, K씨를 도지사 비서직에 채용하고 수행비서로 임명해 수개월을 함께 지냈고 성관계(K씨 주장은 성폭행)까지 한 사이인데, K씨는 수행비서에서 정무비서로 자리가 바뀌면서 안 전 지사를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고, 안 전 지사가 도지사 3선에 도전하지 않음으로써 K씨의 직장은 사라질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성폭행이냐 합의된 성관계냐는 재판부가 판단할 몫이다. 그러나, 무려 7개월간 4차례의 관계가 있었는데 성폭행으로 법적 조치를 하지 않았고, 피해를 주장하는 자가 피의자와 곁에서 보좌하는 일을 했으며 직장에서 퇴출될 위기가 다가오는 시점에 법에 성폭행이라고 뒤늦게 호소한 점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성관계가 있던 장소도 무인도나 감금된 상태도 아니었고 폭행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충분히 뿌리치고 도망치거나 성폭행하지 말라고 싫다고 비명을 지르고 구조를 요청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특히, 최초 관계가 있은 후 이 관계가 성폭행이었다면 즉시 수행비서직을 사퇴하고 안 전 지사를 성폭행으로 고소했어야 추가 성폭행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감금되어 묶인채로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여 도망칠 의지가 상실된 상태가 아니거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 아니라면,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도망치고 싫다고 분명히 항거하였어야 추가 관계를 갖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간통죄가 사라졌지만 안 전 지사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부분이 없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한번 발을 삐끗했다고 영원히 매장하는 일은 개인을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좋은 마무리는 아니다. 바람핀것이든 성범죄를 저지른 것이든 충분히 반성하고 (성범죄라면 처벌을 받고) 다시 가정으로, 직업을 되찾을 기회를 줘야 하지 않나 싶은 것이다. K씨가 생방송에 나오지 않고도 안 전 지사를 법적인 조치만 해도 정치적으로 매장이 될 것인데, 생방송까지 나와서 일방적 주장을 함으로써 이미지가 회복되기 어려울만큼 훼손된 상태다. K씨가 피해자라면 가해자인 안 전 지사를 고소할 권리가 있듯이, 안 전 지사도 부인 이외의 여자와의 관계를 그만 둘, '헤어질 권리'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안 전 지사는 가정으로 돌아갈 의무를 질 수 있을까.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1심 선고는 오는 8월14일 있을 예정이다. [기고=박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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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7-30
  • 사랑하는 아들에게- 선물보다 값진 사랑의 편지
    나의 아들 유성아~ 엄마는 지금 (우리 아들이 머하고 있을가?...)하는 궁금증으로 너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이 편지를 쓴단다....이번 6.1절이 너에겐 마지막 아동절이더구나...니가 태여나서 너무나 기뻐했던 날들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소학교생활을 마감하게 되는 어엿한 청소년으로 되였네~~엄마가 아들 곁에서 축하해주고 놀아주지 못해서 참 아쉽구 미안하구나.... 너랑 이렇게 떨어져 지낸지 3년 3개월... 한국 행 짐을 싸고 있는 엄마를 잠결에 깨서 보고는 말없이 머리 숙여 문뒤에 앉아 떼쓰고 싶어하는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구나... 그리고는 한참 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스스로 툭툭 털고 일어나 세수하고 옷 입고 책가방을 메고 애써 웃음 지으며 학교 가던 니 모습을 생각하면 엄마는 지금도 가슴이 미여진단다... 엄마도 여느 엄마들처럼 니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너의 든든한 '슈퍼우먼'이 되고 싶었는데 안되네.... 매사 남과 비교하지 않고 항상 타인을 배려해주는 니가 엄마는 참 뿌듯하단다... 그리고 이젠 니가 엄마의 '슈퍼맨'이 되는 듯 싶어서 하루하루가 힘이 나고 마음이 든든해진단다... 비록 몸은 니 옆에 없지만 엄마의 마음은 단 1초도 너의 곂을 떠나지 않았다는 걸 알지.... 아들~~ 6.1 절 선생님들과 친구들이랑 잼 있게 쇠고 새로운 꿈을 향해 오늘도 래일도 열심히 뛰여보세요~~사랑해 나의 '슈퍼맨'아들~~ 한국에서 엄마가. 용정시실험소학교 6학년 1반 전유성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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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6-05
  • [정호원 칼럼] 연변조선족자치주 인구
    장백산 아래 오붓한 백도라지마을이라면 당연히 연변조선족자치주 판도를 지칭하는 상징패턴이라겠다. 치마저고리, 열사탑, 민속촌, 용드레우물, 만무과원, 백옥미, 인삼, 담비가죽, 녹용···조선족집단지의 외곽 이미지이다. 허나 최근 들어 인구감소가 급격하다고 아우성이다. 인구규모, 인구구성, 인구동태 등과 같은 인구의 특성은 경제성장, 건강, 교육, 가족구조, 범죄유형, 언어,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인류사회의 거의 모든 면들이 인구추세에 관련되여있다고 일찍 인구학은 제시했다. 2000년 11월 1일 0시까지 연변 상주인구는 220만 9646명이다. 돈화시 48만 834명, 연길시 43만 239명, 용정시 26만 1551명, 왕청현 25만 5882명, 안도현 22만 315명, 화룡시 21만 5266명, 훈춘시 21만 1091명, 도문시 13만 2368명이다. 도합 71만 1845세대의 가정이 있으며 남자가 113만 4382명으로 51.34%이다. 특기할 것은 한족인구가 134만 3239명으로 60.79%를 차지하며 여러 소수민족인구가 86만 6407명으로서 39.21%를 점한다. 2000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조선족인구는 80.12만명이다. 1990년 제4차 조사 때와 비하면 한족인구가 15만 5977명으로 13.14% 증가하고 여러 소수민족인구가 2만 6233명 줄어들어 2.9% 감소되었다. 여러 소수민족인구의 범위는 물론 조선족이 절대 다수 비중을 점함을 알아야겠다. 도시인구가 148만 5483명으로 67.23%이고 농촌인구가 72만 4163명으로 32.77%를 차지한다. 이 공보는 인공수표 방법으로 쾌속 종합한 총수자이다. 그러나 꼭 주해로 제기하고픈 건 상기 조선족인구수자 속에 몇십년 전에 연변내의 한족들이 사사로이 암거래로 배우자 일방을 소수민족으로 고쳐 자식을 조선족, 만족, 회족, 몽골족, 쫭족, 시버족, 묘족… 등 15개 소수민족 일원으로 출생신고를 등록했다는 사실이다. 결과 86만 6407명 여러 소수민족인구 속엔 한족개입이 호적화, 법률화, 합헌화됐다는거다. 2010년 전국인구조사 수자에 의하면 연변의 상주인구는 227만 1600명이 된다. 2000년 11월 1일 0시의 제5차 전국인구 조사와 대비할 때, 십년간 모두 6만 1950명이 증가되였고 2.80% 증장되였으며 년평균 증장률은 0.28%였다. 연변상주인구 중, 모두 84만 8380가구가 있는데 인구는 219만 4868명이며 평균 매 가구의 인구는 2.59명이다. 이는 2000년 제5차전국인구조사 중의 2.99명보다 0.40명 감소된 셈이다. 2010년말까지 연변에는 조, 한, 만, 회 등 20여개 민족이 살고 있다. 조선족인구는 82만명으로 37.7%를 차지하며 한족이 59.29%를 차지하고 기타 소수민족이 3.01%를 차지했다. 2013년말 기준 연변주 인구 227만 6000여명중 조선족은 79만 9000여명으로 전체의 35.1%를 차지했다. 2016년말, 호적 총인구는 146.6만명으로서 총인구의 69.2%를 차지했다. 인구 출생률은 8.36%, 사망률은 6.87%, 자연증장률은 1.49%였다. 2016년말, 총인구중 조선족인구는 75.9만명으로서 총인구의 35.8%를 차지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인구감소는 흑룡강성, 요녕성 산재지역과는 다른 그 자체의 특수한 시대적 배경이 있다. 한국을 비롯한 기타 우리 민족이 집중한 여느 나라에서도 동포인구 감소가 비일비재라는 보도가 나돌고 있으나 필경 연변 경우와는 이질적으로 다르다. 자치주인구라는 통계수치가 시사하는 바를 결코 간과해선 안될 줄 안다. 조선족이 주축의 35.8%라는 집계는 수자열세, 인구감소라는 위기에 몰닉했음을 판정한다. 패밀리 사이즈가 국가제정의 생육지표도 완성 못해 ‘낙제생’부부들이 부지기수렸다. 현행 ‘연변조선족자치주 위생 및 계획생육위원회’라는 간판의 내함을 체크하지 않을 수 없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인구감소가 주는 충격 내지 화제는 왜라서 이처럼 심각하고 민감한가?! 그것은 바로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중국권내에서 제일 처음 조선족자치주라는 민족공동체 패찰을 단 종족집단 부호의 위력 때문일 것이고 다음은 전반 연변판도가 조선족이 제일 많이 모여사는 집거구라는 데서일 것이다. 이 양자의 우세특징으로 규정된 연변이미지는 집중과 중심의 매력으로 각광을 받았기에 그만큼 오늘날 실망감 역시 큰 걸로 해석된다. 단순한 자치주인구라는 통계이지만 공동체의 존재가치를 시사한 까닭도 역시 세대교체의 사명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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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19
  • 항일‘여장군’- 허성숙의 발자취를 찾아서
    [동포투데이] 연변대학 새일대관심사업위원회(약칭 ‘관공위’关心下一代工作委员会) 에서는 2017년 가을 어느 주말에 대학 공청단위원회와 함께 안도현 혁명교육기지 참관 행사를 마련하였다. 대형버스를 탑승하고 고속도로 한 시간 정도 주행해 안도현 정부 소재지 명월진에 이르렀다. 지난 여름에 홍수 피해로 이곳 주민들이 많이 고생하였다고 들었는데 복구사업을 잘 해서 2,3개월 지난 뒤에 그 피해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안도현 인민대표대회 부주임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고 동행하면서 오늘 행사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많은 수고를 하였다. 안도현 소재지를 벗어나 버스로 약 30분 정도 달리니 신합향십칠가(新合乡十七街)에 이르렀다. 아스팔트 포장도로 옆에 있는 모 기관 청사 정원에 동북항일연군 2군 지도부 장령들의 늠름한 모습이 커다란 조각상으로 제작되어 높이 세워져 있었다. ▲ 사진제공 : 김병활 동북항일연군 제2군(약칭 2군)은 중국 공산당의 영도 하에 조직된 항일무장대오로서 주로 한족, 조선족 등 민족으로 구성되었다.2군은 1936년 3월에 안도 신합향 미혼진(新合乡迷魂阵)에서 원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을 동북항일연군 제2군으로 개편했다. 2군 군장으로는 왕덕태(王德泰), 정치위원은 위증민(魏拯民), 참모장은 류한흥(刘汉兴)이었다. 산하에 3개 사가 있었고 병력은 대략 2천여명이였다. 2군은 주로 길림성과 흑룡강성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하면서 혁혁한 전공을 이룩하였다. 2군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항일투사로는 조선족 <여장군>이라고 불리운 허성숙(许成淑)이다. 조각상을 측면으로 보니 뒤에 군복 차림을 한 여성이 씩씩한 자태로 서 있는데 이 분이 아마 <여장군> 허성숙일 것이다. ▲ 사진제공 : 김병활 기념촬영을 마친 뒤 다음 목적지 - 영경향 대사하툰(大沙河屯)에 위치한 2군 밀영유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버스는 먼저 민속촌으로 유명한 만보향홍기촌에 이르러 잠간 휴식하였다. 그리고지난 세기 노동모범 류창은씨가 고산지대에 적응된 벼 품종을 개발했다는 사적을 떠올리면서이 지역에서 보기드믈 정도로 넓은 만보향 수전 벌판을 차창 너머로 바라보며 갈길을 재촉했다. 대사하툰 2군 밀영유적지에 이르니 규모가 큰 민속박물관이 나타난다. 지금 지방 정부에서는 여기에 홍색 관광과 만족민속관광을 결합해 규모가 꽤 큰관광지를 조성하였다. 입장료는 120 위안이라고 밝혔는데 안도현 인대회 부주임의 도움을 받아 우리 일행은 특수 할인을 받은 것 같았다. ▲ 사진제공 : 김병활 밀영유적지에 복구된 당시 항일 전사들이 주둔하고 있었던 허름한 집들을 보면서 그들이 겪었던 어려움과 그런 환경에서 용감히 항일 무장투쟁에 떨쳐나선 영웅 기개와 완강한 의지력에 가슴이 찡해났다. 여기서 남달리 눈에 띄었던 것은 바로 대사하전적 기념관 앞마당에 세워진 항일 <여장군> 허성숙의 조각상이다. ▲ 사진제공 : 김병활 허성숙 조각상 뒤에 있는 기념관 안에는 아주 큰 편폭으로 허성숙의 영웅적 사적을 소개하고 있다. 허성숙, 여, 조선족, 1915년 안도현 중평촌 출생, 허성숙은 어려서부터 중평촌 농민학교에서 공부하면서 항일구국사상을 받아들였고 마을에서 전개되고 있는 반일활동에 적극 참가하였으며 1931년에는 소년선봉대에 가입하였다. 1933년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하면서 반일투쟁에 적극 투신하였다. 1933년 허성숙은 연길현유격대에 가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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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01
  • 중국의 고정관념과 중국 여인
    ● 철 민 그대는 중국 여인을 아는가? 안다면 얼마나 알고, 또 어느 정도 알고 있는가? 고정관념으로 말하면 중국 여인은 나태하고 구질구질하며 담배 질을 잘하는가 하면 마작 쪽이나 만지면서 노상 노름에 빠져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입이 쌍스러워 못하는 말이 없으며 남편을 걸레짝으로 아는가 하면 시부모한테도 입에 담지 못할 막말로 욕을 해대며 남편한테 귀 쌈을 후려갈기는 행위에도 서슴없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중국 여인은 독하고도 무서우며 또한 구역질이 나면서, 사랑은커녕 상대하기조차 싫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헌데 중국 남성들은 자국의 이런 여인들을 반기고 아끼며 자못 애지중지 사랑한다고 한다. 그네들의 말을 빈다면 “어떻게 여자를 욕하거나 때리겠는가?”, “어떻게 여자를 소나 말처럼 부릴 수가 있는가”, “여자한테 져주는 것이 남자다” 라는 것 등등이다. 중국은 5000년의 전통을 가진 봉건국가였다. 자고로 나라적으로는 여성을 기시하고 학대해왔다. 그 사례로 여인한테 쫑발(전족)을 하도록 했고 황제가 죽으면 그 궁녀들도 함께 매장다는 관례도 있었으며 여성을 크게 중용도 하지 않았었다. 중화민국이 건립되기 전 청조말년까지 중국에는 크게 벼슬을 한 여성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공화국 시대인 20세기에 와서도 정부나 사회적으로 크게 활약하는 여성거두들이 많지 않았으며 지금까지도 중국의 공산당 중앙이나 국가정부내의 여성지도일꾼 비율은 아주 가련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 정부나 정당 내에서 내노라 하는 위인들도 가정 내에서는 부인의 말을 곧 잘 듣는 <로봇>으로 되기가 일쑤이다. 언젠가 한편의 글을 번역하다가 이런 내용을 본적이 있다. “민국의 첫 외교장관의 부인 황혜란은 남편 고유균의 내연녀한테 질투한 나머지 마작을 놀고 있는 고유균의 머리에 찻물을 쏟아 던졌다. 이에 고유균은 그녀의 그런 막된 행위에도 꾸중 한번 하지 않았으며 그냥 마작 쪽만 만지었다고 한다.” 그럼 나라 적으로는 크게 중용하지 않으나 왜 가정 내에서는 여성한테 고분고분할까?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중국 남성들은 여인을 감상용으로 볼 때가 많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민국의 외교장관 고유균의 경우만 해도 그랬다. 그리고 여인에 대한 남편들의 기대란 밤생활 배동을 잘해주고 자녀나 잘 낳아주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국 남성들의 말을 따르면 중국 여인은 밤 생활에서 아주 주동적이고도 적극적이어서 남편한테 아주 큰 즐거움과 만족을 준다는 것이다. 이는 낮에 남편을 대하는 행위와는 정반대되는 중국여인들의 밤생활 모습이다. 또한 중국 여인들의 말을 빈다면 낮에 보는 남편은 마치 자신의 남동생이나 아들 같기에 욕도 하고 심지어 때리기도 한단다. 이 외 역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중국 여인들은 남편만 요구하면 언제든지 애를 낳아줄 각오로 산다고 한다. 이렇듯 중국 여인들이 자녀출산에 적극적이기에 중국 인구가 14억으로 육박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죽했으면 중국에는 <생육유격대>란 소품도 있다. 즉 계획생육을 제창하던 시기, 산아제한을 피해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출산을 견지했다는 이야기다. 이는 아내의 동조가 없으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중국 여인들은 남편을 버리고 도망가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 지금은 많이 개방되었지만 아직도 그 옛날 전족전통의 뿌리가 남아있는 모양이다. 이는 쩍하면 <이혼>이요, <졸혼>이요 하면서 가출을 밥먹 듯 하는 한국 여인(조선족 여인 포함)들과는 판판 다른 모습이다. 현재 중국에는 결혼적령기 독신자가 약 2억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전체 인구 14억의 약 7분의 1에 달한다. 아직 통계를 보지 못했으나 이런 폐단은 한국이나 중국 조선족의 경우는 몇 배 더 심각하다는 분석이다. 이 외 중국인들 중에는 용감하고 견정하며 재능이 출중한 여인들이 많다. 그제 날 항일전쟁 시기에는 유격대 대장으로 조일만(赵一曼)처럼 모젤 권총을 뽑아들고 진격에 앞장서는 여장군을 흔히 볼 수 있었는가 하면 그 뒤 제4차 국내전쟁 시기에는 강죽균(江竹筠)이나 유호란(刘胡兰)같은 견정한 의지의 여 영웅이 자주 나타나기도 했다. 또 있다면 건국 후에는 수많은 여성 노동모범 혹은 선진일꾼이 출현했으며 특히 문화예술 및 스포츠 분야에는 출중한 여 스타들이 많았다. 이 중 중국이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같은 대형 경기에 나가 따낸 메달 가운데서 여성선수들이 따낸 메달(금, 은, 동)이 3분의 2정도가 된다는 집계도 있으니 중국 여인들의 활약상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남자배구나 남자축구와는 달리 중국의 여자축구와 여자배구는 그래도 한동안 세계를 석권한 자랑할 만한 역사도 있었다. 이 글의 서두에서는 고정관념으로 말하면 중국 여인들은 나태하고 구질구질…어떻고 어떠한 것으로 전해져 왔다고 썼다. 헌데 이렇게 전해온 것과는 달리 현재의 중국여인들은 대단히 부지런하다. 중국 여인들이 게으르다는 것은 그제 날 부지런해도 그 수입, 게을러도 그 수입이던 때의 얘기다. 지금의 중국 여인들은 대단히 부지런하다. 그 사례로 중국 연변의 서시장이란 곳에 가보면 곧 알게 된다. 새벽부터 도매시장에 가 물건을 구입해서는 하루 동안 매장에서 부지런히 물건을 팔며 조선족을 대상으로 “아바이(할아버지), 물고기를 삽소”, “아재(이모), 이 옷을 사우다”라고 하며 조선말도 아주 유창하게 잘한다. 이런 중국 여인들을 두고 근로하고 부지런하다고 칭찬은 못해줄망정 게으르다고 비양 댈 수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중국 여인들이 입이 쌍스럽다는 말도 주로 북방의 여인들을 두고 하는 얘기지 남방으로 가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여러 가지 사례를 들었지만 중국에서의 여인의 역할은 대단하다. 각 분야별로 보면 특히 경제 ‧ 서비스 분야 ‧ 문화스포츠 분야와 교육 ‧ 의료 ‧ 위생 분야 등은 여성인구가 50% 혹은 그 이상의 비율을 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죽하면 중국의 건국 수령 모택동도 <여성은 절반 하늘>이라고까지 평가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중국 인들은 여성한테 큰 벼슬은 주지 않는다. 의심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서 여성 대통령 혹은 여성 총리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봉건전통이 심했던 한국에서도 여 대통령(박근혜)이 선거된 적이 있다. 그럼 개혁개방이 된지도 40년이 된다는 중국에서도 여성 주석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림도 없다는 분석이다. 지금 중국에서는 자주 모 기관의 여성간부 비율이 얼마요 하며 그 집계를 공개하고 있지만 그것은 기층의 집계이지 당 중앙이나 국가정부 기관의 여성 지도자 비율은 그저 <흉내>를 내는데 그치고 있다는 분석이 좋다. 그것도 정급은 별로 없고 부급(한국의 차관)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중국 남성들은 여인을 감상용으로 대할 때가 많다고 위에서도 언급됐다. 그네들의 말을 빈다면 화를 내는 여인을 보면 귀여우며, 우는 여인을 보면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 남성들은 “당신의 부인은 진짜 아름답습니다”란 말을 들으면 매우 기뻐한다. 부인이 아름답다는 말을 들으면 기뻐하지 않을 남편이 어디 있으련만 중국 남성들은 각별하다. 반면에 중국 남성들은 “당신의 부인의 실력이 대단합니다”라는 말에는 썩 내켜하지 않는다. 중국 남성들은 의심이 많으며 속이 검은 사람이 적지 않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직설적인 여성의 성격에 비해 중국 남성들은 흔히 속이 좁고 음흉하며 말을 해도 에둘러대기가 일쑤이다. 중국에는 <남자의 재능에 여인의 미모(男才女貌)>란 사자성구가 있다. 하다면 의심이 많고 속이 좁으며 음흉하고 말을 에둘러대는 것도 남자의 재능이라면 그 범주에 속할 수도 있으리라. 지난 세기 80년대 초까지도 중국의 연변에서 조선족 여인이 한족남성과 결혼하는 경우는 종종 있어도 한족여인과 결혼하는 조선족 남성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젠 한족여인과 결혼하는 남성의 사례는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니다. 그건 조선족 여인의 유출인구가 많아지는 원인도 있겠지만 한족여인을 보는 조선족 남성들의 고정적인 관념이 그만큼 깨어졌으며 또한 그만큼 한족여인이 좋아서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필자는 동포투데이 논설위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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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08
  • 한반도의 봄 이제 진짜 오는가?
    ● 철 민 3월이 왔다. 꽃이 핀다는 춘삼월이다. 이제 곧 저기 제주도 한라산 기슭으로부터 훈훈한 봄바람이 불면서 버들개지 움트고 유채꽃이 만개될 것이다. 그리고 봄은 서서히 북상하면서 광주, 청주, 서울을 거슬러 올라가다 다시 휴전선을 넘어 평양, 함흥을 거쳐 북단의 신의주에도 가닿을 것이다. 봄, 반도의 봄은 철따라 분명 오고 있다. 아니,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과 북(북과 남)의 고위급 회담이 재개되면서, 또한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북측고위급 대표단, 응원단 및 예술단과의 만남을 통해 꽁꽁 얼어붙었던 대한민국의 최북단 강원도 땅에도화기애애한 봄소식은 진작 전해졌다. 그렇다. 다가오는 한반도의 봄은 계절 따라 오는 자연계의 봄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하나>라며 서로 손잡은 사람들, 손에서 흐르는 난류를 통해 계절보다 앞당겨 오는 봄을 느꼈을 것이며 또한 모두들 이를 기다렸을 수도 있다. 이젠 평창 동계올림픽은 막이 내렸다. 북측대표단은 돌아갔다. 하지만 화해의 무드는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이란 <단기행위>로 끝나지 말아야 하며 자연계의 봄과 더불어 남북교류의 새봄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기대감이다. 즉 봄처럼 훈훈하고 여름처럼 뜨겁다가, 다시 가을처럼 쌀쌀하고 겨울처럼 얼어붙는 현상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민족은 슬기롭고 위대한 민족이다. 스포츠에 자질이 뛰어나고 노래와 춤에도 인기가 있는 민족이며 남성은 용맹하고 여성은 부드럽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한국은 금메달 5매, 은메달 8매, 동메달 4매로 종합순위 7위를 기록, 11위인 일본과 16위인 중국을 훨씬 추월해 아시아 국가로서는 최강자 위치를 확립했다. 인구 5000만 명에 불과한 대한민국이 인구 1억 2000만 명을 가진 일본과 인구 14억 명을 가진 중국을 제치고 동계올림픽에서 아시아의 최강자로 군림했다는 현실, 그리고 몇 년 전 기네스북에도 오른 북한(조선)의 대형집단예술체조 공연(10만 명 출연) 역시 웬만한 국가나 민족으로서는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구 2500만 명밖에 안되는 북한이 창출해낸 세계적인 예술로 주목을 받았었다. 그 외에도 세계적으로 위치를 굳힌 한국의 반도체 제조업, 선박제조업과 자동차공업 등 이루다 자랑할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우리 민족은 싸움도 잘 한다. 헌데 싸움이라면 별로 자랑거리로 될 것 같지 못하다. 옛날 이순신 장군처럼 왜적과의 싸움에서 용감한 것을 사례로 들라면 자랑거리겠으나 반대로 자기 민족끼리도 잘 싸운다는 점, 이는 자랑거리보다는 수치이며 치명적인 약점이다. 크게는 남과 북으로 마라톤식 싸움이 계속 이어져 왔고 작게는 지역끼리 싸움이 잘 날이 별로 없었다. 남한만 보더라도 지역끼리, 정당끼리 곧 잘 싸웠으며 더 작게는 잘 어울려오던 친구끼리도 돈 때문에 싸우고, 여자 때문에 싸우고, 함께 술 마시다가 싸우고 등을 반복한다. 우리 민족은 1945년 미소(美苏)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된 뒤 지금까지 70여 년간 통일을 부르짖어 왔다. 통일의 기회가 없은 것도 아니라는 분석이다. <평화통일>이란 목소리가 높았고 염원도 같았으나 그 목소리가 합치지 못했으며 그 방법과 수단이 각각 달랐기에 이념과 체제가 다른 두 개의 정부가 나타났고 대화와 타협에 의한 <평화통일>에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동족상잔의 <6.25>가 터졌고 300만 명의 수난자와 1000만 명의 이산가족이 생기었으며 오히려 분단의 골을 더욱 깊어만 갔다. <6.25>란 화제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당시 <통일전쟁>이란 슬로건은 죄악의 계기었지만 전쟁초기 남측 정부가 진정 민족을 생각했더라면 북측과 타협해 전쟁을 멈추고 유엔군 참여도 없게 만들어 통일을 완수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반대로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할 때 북측 정부 역시 맥아더 장군의 투항제안을 받아들였더라면 중국군의 참전을 막고 통일이 가능했을 수도 있었다는 안타까운 마음에 엉뚱한 분석도 해보았다. 적절한 추리인지 모르겠다. 옛날 필자는 부친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살기 힘들고 고달픈 곳이 조선(반도)이다. 왜 그런가 하면 일본이 중국을 치자면 반드시 거쳐할 관문이 조선이고 또한 중국이 일본을 막자면 반드시 조선에서 일본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리가 있었다. 옛날에 그랬는가 하면 오늘까지도 미국은 반도를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중국 역시 반도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군사학자 및 역사학자들은 반도를 <완충지대(缓冲地带)>라고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객관요소 등으로 반도의 통일이 그만큼 힘들고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다. 한편 주관적으로 볼 때 우리 민족은 남비처럼 빨리 끓고 빨리 식는 성격을 갖고 있다는 자아분석이다. <6.25> 이후 남과 북이 마주 앉아 통일과제를 추진한 적도 몇 번 있은 걸로 알고 있다. 특히 1972년에는 이른바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고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도 갈망하던 통일이 당장 다가오는 줄로 여기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불과 1년 뒤 한동안 북적이던 통일의 열은 급기야 식으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남비 식으로 빨리 달아올라 끓었고 또 인차 식으면서 겨울처럼 결빙되었었다. 그리고 그 뒤 전두한 및 노태우 정부 시절에도 남북의 화해시도는 있은 것 같았으나 여전히 별다른 결과가 없었으며 2000년에 있은 <6.15> 남북공동성명이 있은 후 남북관계는 급물살을 탄 듯 개선되는 양상을 보이었다. 그것을 계기로 노무현 정부시대에는 개성공단 가동, 남북철도연결 등 일련의 대형사항들이 이뤄지면서 역시 통일이 멀지 않겠구나 하는 기대감도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이것이 이명박 정부 시대에 들어서면서 180도로 바뀌었다. 남과 북(북과 남)이 재차 급속도로 냉전 상태로 돌아갔고 이어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사건> 등이 터지면서 박근혜 정부 시대에는 판문점 전화선 차단, 휴전선 대북방송 재개 및 개성공단 중단 등으로 그 동안 통일을 위해 양측이 들였던 노력이 물거품으로 되고 말았다. 지금은 이미 서기 2020년을 향해 육박하고 있다. 분단의 역사도 세기를 뛰어넘어 70년을 넘기고 있으며 1945년 이전 비록 일제의 치하에서 생활했지만 남과 북을 넘나들며 살았던 세대들도 한 두 명씩 우리의 곁을 떠나고 있다. 통일의 중요성을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세대들이다. 반대로 이들에 비해 필자와 비슷한 나이의 세대는 통일의 절박성에 대해 어느 정도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며 지금 한창 자라고 있는 세대들은 더욱 분단의 아픔이란 뭔지도 모르는 세대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이들은 북한이란 <국가>가 있으며 그 곳에서도 우리와 같은 민족이 살고 있다는 정도로 알고 있을 것이고, 70여 년 전에는 분단된 반도가 아니었다는 것도 역사교과서를 통해서나 배웠을 뿐 그것을 정녕 피부로는 느끼지 못했을 세대들이다. 우리 나이의 세대보다 더욱 모호하다는 뜻이다. 맹목적인 통일을 갈망하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통일이난 먼 앞날의 일로 될 수도 있다. 때문에 우선 통일을 위한 인프라구축부터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남과 북 서로에 유리한 행사들을 자주 만들고 교류를 벌이며 또한 이러한 것들을 통해 가까워져야 한다. 큰 갈등은 작은 갈등으로 취급하고 서로간의 신뢰를 보여주고 그것들을 이행해야 할 것이며 또한 그것이 세대가 바뀌고 정부가 교체되더라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분석이다. 필자는 반도인 혈통의 중국인이다. 이전에는 이북에도 가보았고 지금은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몸이다. 이렇게 북과 남을 오가면서 남측에 대한 북측 사람들이 보는 시각, 북측을 보는 남측사람들의 시각 등을 모두 체험했으며 중국 본토인들이 남과 북을 보는 분석도 자주 들어보군 했다. 총적으로 북측을 보는 시각이 남측 사람들보다 더 객관적이고도 합리적이며 남측을 보는 북측 사람들보다 더 객관적이고도 합리적일 수 있다. 현재 남측이나 북측 사람들은 <평화통일>을 부르짖으면서도 서로 간 상대방을 과장하여 비난하고 또한 이빨을 갈기도 하는 현상이 비교적 심하다. 이에 중국 본토인들은 어찌 보면 잘코사니를 부르는 양상이다. 아니 비웃는 것이 분명했다. “서로 <개싸움>을 하는 꼬리방즈(高丽棒子)들”이라고 비꼬아대는 사람도 보았다. 이럴 때마다 필자로서는 수치감과 더불어 안타깝기만 했다. 그것은 필자 자신이 중국인이 아닌 <반도인>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중국인으로 생각하면 그런 것에 신경 쓸 필요조차 없을 것이 아닌가?! 바로 반도인으로, 또한 한반도가 나의 모국(조국?)으로 생각하기에 울화가 치밀어 중국 본토인들과 언쟁을 벌이고 그들한테 한대 갈겨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으며 오늘은 또 말밥에 오르거나 큰 비난을 당할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지난 세기 90년대엔가 일본에서 활동하는 문인 김문학씨가 <한중일 삼국지>를 펴내어 화제에 올랐다. 가령 필자가 김문학씨처럼 자신의 <한중일 삼국지>를 쓴다면 일본인은 섬나라에서 호시탐탐 바다 건너 그 뭔가를 노리는 <열도(列岛)인>으로, 14억을 품고 있는 중국인은 그들 내속을 알기 어려운 <대륙인(大陆)인>으로, 한국인은 각각으로 외세를 등에 업고 감정풀이나 잘하는 <반도(半岛)인>으로 묘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지나온 역사가 그것을 잘 증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요즘 필자는 이런 한탄도 자주 해본다. 지난 세기 70년대 베트남 사람들은 전쟁으로 통일을 했고, 독일 사람들은 하룻 새에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면서 통일에 성공하였지만 우리 민족은 왜 1950년대의 전쟁통일에도 실패하였고 오늘까지도 그 통일에 전전긍긍만 하고 있는 걸까?! 한반도의 통일이 힘든 것이 외세 때문인가 아니면 우리 민족 자신 때문일까?! 가령 독일 사람들 같은 성격이라면 한반도의 통일이 지금까지 지연되었을까?! 그러면서 지금까지 내려온 비극적 역사를 개변시키는 것이 반도의 지금의 세대 혹은 아래 세대 사람들한테 맡겨진 역사적 사명이라는 생각이다. 통일된 한반도는 만들지 못하더라도 계속 전쟁위기를 겪는 반도를 세세대대로 물려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요즘 반도는 어렵게 찾아온 화해적인 분위기인 것 같다. 상대방에 대한 고강도 비난도 한결 누그러들었고 계절적인 봄도 다가오고 있다. 이를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통일을 위한 다음 단계의 일에 착수하는 것이 우선인 것 같다. 계절과 함께 찾아온 남과 북의 <화해의 봄> 이는 이제 진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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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01
  • 헐, 바닥이 드러나네
    ●진 언 국민일보, 뉴스시 등 신문에 “北 선수만 '삼성 올림픽 스마트폰' 못 받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이 났기에 스쳐보니 기자의 저의도 비리거니와 북에 관한 기사라고 범벅이에 쉬파리떼 같이 달려들어 댓글(1636개)을 단 애국지사들의 쾌거가 어처구니 없다 못해 우습게도 눈물겨워질가 한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3000명가량 선수들은 삼성 갤럭시 S8 스마트폰과 나이키 유니폼 등을 선물로 받는다. 하지만 북한 선수 22명은 이 선물을 받을 수 없다. 북한이 유엔 안보리와 미국 등의 제재 대상 국가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북한 선수단에 편의를 제공하면서도 각종 제재에 위반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이에 여자 아이스하키팀의 유니폼은 미국의 나이키사가 제작한 것이 아닌 핀란드 회사가 만든 유니폼을 사용하도록 했다. 하키 스틱 역시 핀란드 회사가 제작한 것을 사용하는데 ‘임대’ 형식이며 북한 선수들은 한국을 떠나기 전에 이를 반드시 반납해야 한다.…” ▲ 북선수단과 응원단 기자씨가 모쪼록 이런 글을 올린 것이 선각자의 발견인지, 악어의 눈물인지 직접 물을 수는 없으나 그 저의가 참 비릿함은 분명 느낄 수 있다. 그건 그렇고, 댓글을 다느라 팔을 걷어부친 누리꾼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해서 경이원지하게 되는데 입을 벌리면 평화통일이니 민족융합이니 떠들어치는 국내상황에 비추어 보면 일본놈들이 이래서 “반도인”은 안된다구, 죠센징은 몽둥이로 다스려야 한다고 나발분 근거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아래에 참으로 경탄스러운 댓글 1351개 중에서 일부를 베껴본다. ※ 개불쌍 뭐하러 줘? 가면 다 뺏어서 못된일에 사용할텐데. ※. 고마움도 모르고 또 뒤통수 칠 것들이다..줄 필요없다. 우리 국민들 냐눠줘라~~ ※ 줘봤자 외화벌이용으로 수거해 되팔겠지. 아님 고위간부가 가져다 쓰거나. ※ 지상낙원에서 왔는데 그게 무슨 소용있나 ※ 한창 휴대폰에 관심이 많을 세대인데 마음이 야좋네요. ㅠㅠ ※ 줘도 쓰지도 못하는 동네고 줘봤자 간부들에 뺏겨서 다 팔리고 그돈은 ○○은 사치품 사가는데 쓰이는데 당연하지. ※ 이젠 무상 지원 없애야 한다. 핵무기 만드는 잘사는 나라에 왜 공짜로 주는지 참 알수가 없다. 북한 선수들 잘 먹고 잘 산다. ※ 그렇게 퍼줄돈 있으면 국내어려운 가정이나 불우아동들에게 사용해라! ※ 저것들한테 숙소랑 식사제공하는것도 짜증난다 ※ 구충제나 주자 초코파이좀 던저주고 ※ 줘도 쓸줄도 모르고 가져가봐야 다 뺏긴다 외화벌이 해서 핵탄두 만드는데 보태 겠지,,, ※ 올림픽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 하면서 이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건 뭔데? 니가하면 무죄이고 내가 하면 유죄냐? 뭐 이런 개 같은경우가 다 있냐?(량지가 있음) ※ 주지마 가져가봐와 ○○이줄텐데 왜주냐 북한애들주느니 우리영세민주시오 ※ 미친 빨괭이 따위에게 핸드폰이 가당키나 하나 옥수수나 던져줘 ※ 이런 취급을 받는 무리들을 상전으로 주공으로 모시니 나라의 운이 다 되었다.... ※ 걍 돌려보내 시끄럽게 하지말구 ※ 주는거 없이도 너희들 북한은 시르다 ※ 짝짝짝 지금 이라도 ♬♬ 는 쫓아버리자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걸치는 양아치 한테 무슨 대접을 해 ※ 초코파이나 처먹으라고 던져줘라 ※ 줄 필요없다 폰 아깝다 차라리 자원봉사에게 주라 ※ 아니 유니품도 대주냐 북이할수있는것이 뭐냐 그런걸왜 우리가 대주냐 이해불가다 ※ 이럴꺼면 뭐하러 올림픽 불러 참가하도록 한거니(어쩌다 인물났네) ※ 적국인 북한놈들한테 왜 비싼 삼성스마트폰을 준단 말인가? 뺨을 서너차례 때려주고 싶은데..... ※ 비용한푼안들이고 오는주제에도 모가지 힘주고 다니는데 안주는게 맞다.. 여기서 민족이란 단어 씨부리는넘들 아가리를 찟어버린다..민족이 뭐냐??? 족발이냐?? ※ 북한은 외국이라 본다. 언제까지 외국 북한에게 퍼주고 끌려 다닐건지?? ※ 적국국민을 왜 줌? 동맹국 미국민한테나 하나 더 주지 ※ 북괴놈들 폰 못 가져가는 것도 걱정이냐 별 더러운 기레기를 다보겠네 너 문빠냐 북한놈 챙기게 ※ 추운데 고생한 자원봉사자들에게 하나씩 선물로 주었으면 좋겠다. ※ 누구누구의 논리라면, 북한 선수단 밥도 주지 말아야 한다. 식사를 제공하면 밥 먹은 힘으로 ○○은 동지를 위해 충성하면서 핵무기 만드는 데 힘을 합해서 우리의 종주국 미국, 일본에 위협이 된다. 따라서 밥도 주지 말아야 한다. ※ 전세기허용,공연장 무료제공,유니폼 제공,체제비 all 부담하면 됐지,, 갤S8까지 줄 필요는 없어! 문재앙 주사파 촛불폭도들! UN제재 결의안 반하는 꼼수 부리지마라,, 국제신뢰 바닥인데 한미동맹마저 완전 파괴돼 수습불가능한 고립무원 국제왕따 된다! 이번올림픽으로 북한이 얼마나 괴씸하고 이기적인 놈들인지 다시한번 느낀다. ※ 당연하다 ᆢ적국 이라는것 잊지마라 ※ 하여간 희한한 짓거리 해대는 이상한 것들 땜시 대한민국이 엿같은 짓하는 나라가 됐으니...(그래도 생각이 올똘한 사람이 있네) ※ 잘한다 선은 확실히 긋는게 좋다 ※ 빨 개이라 재앙이가 줘라 같은 빨개이 고향 ※ 추접구로 뭐하는짓이고? 선수들한테 그럴거 뭐있냐? 초코파이 던져주라는것들 ~ 저질인지 ,수준이 낮은건지,어린애 인지...( 량지가 있는 사람의 당연한 질타) ※ 그 넘들 먹여 주고 재워 주는것 만도 고맙지 그런걸 왜 줘 ! 주면 그게 걔덜꺼 되니 ? 전부 압수 해서 똥돼지 떨거지 넘들이 가져 가겠지 ! 못 줘서 아쉽냐 ? ※ 주지마라. 임대형식이라도 줘서는 않돼. ※불쌍한 북괴선수!가장 좋은 휴대폰 갖을수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태여난 땅이 문제구나.그래도 몇일간 잘먹고 잘놀았잔여.... 중구난방의 고견들을 여기까지 옮기고 접어두련다. 썩은 나무 몇그루를 보고 온 수림이 썪었다고 말하면 안되지만 일엽지추라고 작은 남녘땅에 “나라의 흥망성쇠는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고염무의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자기 국가앞에 책임지고 나서는 우국지사들이 저리도 많음에 감탄이 묻어나오고 한편 저리도 잘난 똑똑이들이 왜 댓글질이나 하면서 표현욕망을 만족시키는지 곤혹스럽기만 하다. 미운정도 고운정도 정이란다. 미워도 무서워도 한피줄 겨레이다. 장기간의 분단상황에서 이질화되었더라도 피는 영원히 물보다 진하건만 오히려 불구대천의 원쑤로 절치부심하며 이를 뿌득뿌득 가는 양자가 대견스럽지가 않지만 수많은 인재들이 초야에 묻혀 육도삼략을 썩인다고 생각하니 싱거운 개탄이 나온다. 옆구리 터진 도토리만큼한 그릇들이니 그럴 수 밖에 있겠냐 하면서도… 조선민족의 전통속담에 동냥은 주지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라고 했거늘, 주지도 않겠다며 웬 성화인가? 아무리 삼성스마폰이던들 그것으로 일국의 재정을 보탤 수 있단말인가? 스마트폰 22개 값이 얼마냐? 중국에서 웬간만한 사람이면 단번에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따위로 네티즌들이 앞다퉈 목에 핏대를 세우고 쾌지나 칭칭하며 멋에 겨워있다만 인간성의 밑바닥을 드러냈다고 생각못하는가? 말한마디에 천냥빚도 갚는다고 한다. 그러나 말한마디로 말하는 자의 위인됨이 확인된다. 아무튼 그 놀라운 동족증오병에 열뜬 투사들을 두고 혀가 홰홰 내둘러진다. 트럼프가 알고 찾아와 어깨를 도닥여주고 엄지를 내흔들며 치하를 하지 않으면 공념불이 될듯, 그리고 한다하는 삼성이 고작 22개의 스마폰을 못주는 이유를 무슨 제재타령으로 뭉그리지만 결국 세계인들이 짝이 없는 쪼잔함에 갈채를 보낼만도 하겠다. 유엔총부에서도 유엔결의를 잘 집행한다고 큼직한 상장을 보내줄가? 아무튼 이를데 없이 찌질한 그 작태에서 국민의식 수준을 가늠하게 된다. 어이 없지만 감탄하던차 동족증오병 환자들에게 곰팡이 낀 말로 일침을 가하고싶다. 알만한 사람이 다들 알고 있고 정설이 아니라 와전된 것이라 하지만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소름끼쳤던 “예언”을 여기에 옮기나니 그저 코웃음만 치고 그냥 간과할 것이 아니라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한번 다시 읽어 보시라. 그래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면 구제불능이구,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한 위대했던 옛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놓았다. 결국 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日本は敗れたが、朝鮮が勝利したわけではない。大言壮語ハゴンデ朝鮮が第我に返ってきらびやかで偉大な昔の朝鮮の栄光を取り戻すには、100年という歳月がはるかにかかるだろう。私たち日本は、朝鮮国民に銃と大砲よりも恐ろしいの植民地教育を植えて置いた。結局、朝鮮人たちはお互いに仲違いし、奴隷的な生活を送るのだ。見よ!実に朝鮮は偉大した絢爛だったが、現在の朝鮮は結局日本の植民地教育の奴隷に転落した。そして、私の阿部は再度もどって来る” 아베 노부유키가 패망하면서 조선국민에게 쏜 저주의 화살이 자신으로 향하도록 정신 똑바로 차리고 보여줘야 하건만 오히려 그들과 합창하고 있지는 않는가 한번 생각해 보라!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은 우리 선조님들이 오늘을 내다 본듯 경계하여 남기는 경세지언일진대 일심전력하여 단합된 배달민족의 홍익인간을 세계만방에 떨친다면 아니 좋은 일인가? 모래알은 아무리 많이, 높이 쌓여도 그냥 모래무지이지 장성이 못된다. 뭉쳐도 어떨가 하는 위태위태한 판에 호시탐탐하는 외세에 어부지리를 마련하려고 광분하며 기세충천하니 타국에 백발로옹이라도 넘 감격해서 즉흥적으로 끄적거려 본다. 시끌한 인간세상 탈도 많다만 분단족 어쩌다 잘해 보자는데 천하에 몹쓸 잡것들 납뜨누나 옆구리 터진 도토리 심통이라 그리 보채며 성화를 부리느냐 뿌리 깊은 노예근성 못말려도 열강들 멋대로 가지고 노는데 자존은 없더라도 치욕도 없냐 ※ 본지에 기고되는 논문이나 나의주장, 칼럼은 순수한 기고자의 주장임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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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15
  • 남의 눈으로 본 “청년경찰”
    ●김인섭 영화 “청년경찰”이 빚어낸 논란이 그냥 발효하고 있다.한국 땅에서 차별과 수모를 받으며 누적된 상처가 긁히어 발로되는 아픔일 것이다.   영화가 조선족을 악역으로 내세우고 애꿎은 대림동마저 마적굴로 만들어 500만의 관객에게 전염성 메시지를 건넸으니 혈한을 쏟던 조선족들이 침묵으로 일관할 수 없다. 그들은 이미 한국 생활의 부조화 단계를 뛰어넘어 지역 사회에 융합되고 지역민들과 화합을 이루는 새 시대를 열었는데 이 친구들이 지엽으로 나무숲을 가리는 시나리오를 꾸민 편협한 사고가 이상하다.꺼지는 불에 기름을 쏟고 ‘동족상잔’ 정서를 부추기는 행태이니 피해 당사자들과 지성인들의 반발은 리유가 충분하다. 이 작품을 반민족적이라 문책하면 도를 넘지만 그의 사촌 친척이라면 모자람도 없다.   대림동은 재한 조선족들이 ‘코리안 드림’을 펼치며 일궈낸 집거지로서 한국에서 일명 차이나타운이라고도 부른다. 그들은 몇십년간 설음을 이겨내며 생계 전쟁을 거치면서 여기는 이미 한국,중국,조선족 문화가 어울린 독특한 문화지역으로 변신하였으며 미래 한국의 다문화사회 모델이라는 긍정적인 기대도 부풀고 있다. 물론 조선족들의 범죄나 후진적 작태들이 오래동안 이슈화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초기 적응이라는 원시 수준을 뛰어넘어 지역사회 건설에 책임지는 성숙된 이방인으로 변신하고 있다.그런데 “청년경찰”이라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다.   오늘 한국 속의 조선족 사회 형성은 주류사회의 드팀없는 지원,지지와 지도가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단언한다. 조선족들도 병주고향(竝州故鄕)을 건설한다는 진지한 감정으로 자체 도덕 개선의 절박성을 인식하며 주인적 자태로 나서고 있다. 현실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단점을 들추고 침소봉대식으로 과장하며 동족 화합의 숲에 악병(恶病) 바이러스를 뿌려댄다.자기보다 나은 사람이면 환대하고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이면 멸시하는 한국 사회의 저급문화의 발현이라고 지성인들이 말하고 있다.   지난 50,60년대 한국이 어렵던 시기 수많은 한국 남녀들이 독일에 건너가 그 나라 사람들이 기피하는 광부와 간호사로 되어 핏땀을 쏟으면서 가난한 조국에 종잣돈을 만들어 보냈다. 수만으로 헤아리는 사람들이 ‘아메리칸 드림’에 매혹되어 쓸만한 수단은 다 부려가며 가난한 조국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또 중국을 내놓고도 미국,유럽 지역에서 한국인들의 범죄가 쟁점으로 되어 한국에 먹물을 들씌우던 무색할 통양(痛痒)도 수없이 있었다. 이것은 오늘 조선족의 '코리안 드림'과 궤적(轨迹)을 같이 하는 한국 역사의 단면이다. 그렇다면 영화의 제작진들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명철한 사고로 조선족의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각설하고, "청년경찰"을 도문질타(到门叱咤)할 때 삶의 개선을 위해 찾아간 조선족들은 그 나라의 법질서와 국민들에 책임을 지는 신실한 자태가 있었던가 성찰이 있어야 한다. 지연,혈연,인연 등등 연고 문화가 뿌리깊고 혹독한 상하서열과 위계질서를 지켜야 하는 한국 땅이었다. 자기 치부를 감추는 가추불외양(家丑不外扬)심리와 아니꼬운 남이면 흉을 가배로 불궈놓는 속심은 인간 본성의 일부분이다. 어느 외인이던 그 공동체 속에서 불미스런 행위를 저지른다면 냉대는 말말고 공격의 과녁이 되고 동네북이 되는 현실은 자연스러운 인간세태이다. ‘한가마밥을 먹은 사람이 한울음을 우는’ 필연성도 당연한 인지상정으로 각인되고 있다. 그럴진대 재한 조선족들고 같은 처지면 똑 같아 진다는 역지개연 (易地皆然) 의 당위성으로부터 영화의 매개 측면을 고루 인식하고 만약 내라면 어떻겠나 관대하게 헤아려봐야 할 것이다.   현재 조선족 사회는 한국에 정착하는 추세를 이루고 있으며 많은 경제,문화,예술 단체들도 이미지 개선과 소통,상생,화목을 위하여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대림동이 ‘조선족 수도’로 격상한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뭐라해도 한국 땅은 조선족들에게 있어서 매력이 넘치는 땅이 틀림없다. 그렇다면“청년경찰”을 향해 진상 규명과 시비 판단을 호소할 때 영화 소재를 제공한 당신은 무었이었던가를 동시 고민해야 마땅하다. 특히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종시속(从时俗)의 고마운 실천이 관철되였던가를 내성(内省)하고 반성해야 한다.    언행범절의 곱냐밉냐에 따라 ‘주러 와도 미운 놈 있고, 가지러 와도 고운 놈 있다’는 세속의 도리는 따져볼 만한 리치이다. 조선족들에게 ‘가지고도 고운 놈’이 되는 지혜가 없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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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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