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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국동포 위한 '한민족타운' 구성 필수"
    ● 박휴버트 공주대 교수, 대회서 특강 [동포투데이=서울] 14일 오후, 세계 한인언론인연합회(이하 “세계한언”)와 한국 “연합뉴스”의 주최로 제13회 세계한인언론인대회가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막됐다. 첫날 오후 6시에 정식으로 개시된 개막식에는 이건기 세계한인언론인연합회 회장을 비롯해 원유철 새누리당 재외국민위원장, 김성곤 세계한인민주회의 수석 부의장, 조규형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나의균 군산대 총장, 김중섭 경희대 국제교육원장, 노영혜 종이문화재단 이사장, 박기태 반크 단장 등 내외빈 도합 100여명이 참가해 선보였다. 대회 3일째인 16일, 공주대학교 귀국동포 박휴버트 교수가 “전 세계에서 흩어져 살다 고국으로 돌아오는 재외동포를 위한 ‘한민족타운’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제기되는 특강을 하였다. 특강에서 박 교수는 “재외동포 1세와 2세가 언제든지 찾아와 터를 잡아 살 수 있고,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터전이 필요하다”며 동포타운 건설 제안을 입에 담았다. 1976년 박휴버트 교수는 호주로 이민, 멜버른과 브리즈번에서 거주하면서 호주 국적까지 취득한 상황이었다. 그러다 박 교수는 2000년 8월, 24년만에 귀국했으며, 현재는 공주대학교 영어교육과 전임교수로 근무중이다. 외국적을 갖고 처음으로 국립대학교 전임교수가 된 박 교수는 이전의 객원교수 시절을 회고하면서 “퀸즈랜드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나름대로 자신 있게 귀국했지만, 귀국동포에 대한 국내의 문턱이 아주 높았다, 가장 서그렀던 것이 ‘제대로 된 대접을 못받는 일’이었다” 국내의 페단을 꼬집었다. 계속해 그는 일을 아무리 잘해도 사람들이 제대로 평가해 주지 않았다면서, “귀국 동포들이 대접을 잘 받으면서 편하게 쉴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됐다”고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박 교수는 진작 동포타운 건설에 앞서 재외동포 자녀에게 한민족 정신을 심어줄 수 있는 교육 공간을 만들겠다고 작심, 공주대학 내에 한민족교육문화원을 건립하는 일에 앞장섰으며, 2009년 옥룡동 캠퍼스에 '재외동포교육센터'를 설립하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루었었다. 그는 “이민 1세대들은 한민족 정신을 자녀에게 가르쳐 주는 것에 모두 반대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정신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라며 “사람들은 세계를 흔드는 K-팝을 흔히 '융합적 창조'라고 말하지만, 이는 한국인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한국문화”라고 강조하여 지적했다. 그 뜻인즉 K-팝은 우리 민족의 끈질긴 정신으로 무장해 일궈 낸 결과이며 우리만의 독창적인 문화라는 것이다. 총적으로 박 교수는 “전혀 다른 문화권에 살고 있던 재외동포를 고국으로 초청해 우리만의 독창적 문화를 가르치려면 ‘한민족타운’이 제격”이라고 개괄했다. 한편 이번에 열린 “세계한언”은 14일 부터 닷새 동안 서울시, 세종시, 충남 공주시, 충북 청원군 오송읍, 전북 군산시에서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한 재외동포의 역할”이란 주제를 내걸고 지방 대회를 개최하는 걸로 알려지고 있다. 동포투데이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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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7
  • '다동이 정책포럼' 창립식 및 제1회 포럼 개최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4월 18일 (금)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 2층 제2대연회실에서 '다동이 정책 포럼' 창립식 및 제1회 포럼이 개최된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을 지낸 석동현 동포교육지원단 이사장이 대표를 맡은'다동이 정책 포럼' 앞으로 다문화가족과 동포, 외국인 노동자, 탈북자, 난민 등 우리 사회에 유입된 모든 이주민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정책 공론장의 역할을 할 전망이다. 이날 포럼 창립식에는 정의화 국회의원, 이완영 국회의원, 김회선 국회의원과 서경석 조선족교회 목사 등이 축사를 하기 위해 참석한다. 그 외에 이민희 전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장, 김창석 IOM이민정책연구원 부원장, 이철우 이민학회장, 이진영 재외한인학회장 등을 비롯한 다문화, 동포, 이주민 관련 정부, 학계, 민간단체 관계자 15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제1회 포럼에서는 “이민, 선진국을 향한 국가발전전략”이라는 제목으로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현, KAIST 금융전문대학원 초빙교수)가 기조 발제를 맡았고, 패널토론은 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과 설동훈 전북대학교 교수가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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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7
  • 박 대통령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구조에 최선 다해야”
    박근혜 대통령은 16일 전남 진도 해상의 여객선 침몰 사고와 관련,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생존자들을 빨리 구출하는 일이니 여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 1층에 마련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을 방문해 이경옥 안전행정부 2차관으로부터 사고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과 승객들이 이런 불행한 사고를 당하게 돼서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라며 이같이 지시했다고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특히 “아직도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승객이나 학생들을 구조하는데 단 한명이라도 어디 생존자가 있을 것 같으면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다 동원을 하고 있는 걸로 알지만 중대본을 중심으로 동원가능한 모든 인력과 장비를 다 동원해서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고 거듭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아울러 “무엇보다 가장 힘든 분들이 가족들이실 텐데 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모든 편의를 다 제공해 드리고 설명도 해 드리라”며 “지금 현장으로 달려가는 분들도 있는데 그분들이 현장 가는데도 불편함이 없도록 편의를 최대한 제공하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이어 “(저도) 지금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나왔는데 가족들 심정이 오죽하겠나. 현장에 달려간 가족도 있지만 또 가지 못하는 가족도 있는데 가지 못하면서 마음이 불안하고 심정이 많이 힘드실 것” 이라며 “이분들에 대해서 어떻게 돼 가고 있는지 설명도 드리면서 세심하게 준비를 해 달라”고 주문했다. 또 박 대통령은 “처음에 구조 인원 발표된 것과 나중에 확인된 것의 차이가 무려 200명이나 있었는데 어떻게 그런 큰 차이가 날 수 있나”라고 물었고 이 차관은 “구조해서 출발하는 곳과 도착하는 곳에서 중복 카운트를 해서…”라고 답했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은 경찰 특공대 등 구조인력 투입 상황과 부상자 치료 상황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박 대통령은 중대본에서 보고 청취와 지시가 끝난 뒤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중대본 방문에는 김기춘 비서실장과 박흥렬 경호실장, 박준우 정무수석 등이 수행했다. 한편 민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이던 17일 공공기관장 워크숍은 이번 사고 수습과 대책 마련을 위해 무기한 연기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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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7
  • 여성가족부, 결혼이민자 조기정착 위한 가족생활지도사 배치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정부는 4월 16일(수) 오후 3시 여성가족부 회의실에서 여성가족부 차관 주재로 법무부, 안행부, 문체부, 교육부, 통계청 등 다문화정책 관련 관계부처 국장이 참석하는「제1차 초기적응분과 실무협의체」를 개최하였다. 초기적응분과는 입국초기 다문화가족 정착을 위한 협업과제 발굴, 부처간 유사결혼이민자 조기정착 위한 가족생활지도사 배치중복사업 사전조정을 위해 운영되는 협의체로 여성가족부와 법무부가 공동 주관한다.이번 회의에서는 협업과제로 부처간 다문화가족 정보 공유·연계, 한국어교육협의체 구성을 위한 방안 등이 논의되었다. 먼저, 결혼이민자의 초기적응을 위해 5월부터 결혼이민자가 많은 전국 60여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다문화가족생활지도사를 배치한다. 가족생활지도사는 입국 초기 다문화가족을 대상으로 맞춤형 정보제공과 조기 적응을 지원하고, 결혼이민자간 정서적 지원을 돕는 일대일 멘토링 프로그램과 자조모임 등을 운영한다. 또한 관련부처간 한국어교육협의체 구성·운영 방안을 마련하고, 부처간 정보공유를 강화하여 지역별 수요에 맞는 교육 지원방안을 논의할 예정입니다.결혼이민자 대상 한국어교육은 종전 부처별 지원에서 지자체 중심 지원으로 전환되어 확대 실시되며, 한국어교육 위탁기관이 자체 시설 이외 마을회관이나 주민센터 등에서도 한국어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밖에도, 다양한 형태의 다문화가족의 실태를 파악하여 정책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욕구에 맞는 맞춤형 정책서비스를 제공하고자 각 부처에서 보유하고 있는 다문화가족에 대한 통계 조사방식을 개선하고 정보를 연계하여 다문화가족에 대한 체계적이고 일관된 데이터 구축을 위해 협조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실무협의체는 지난 1월 15일 개최된 제8차 다문화가족정책위원회 (총리 주재)의 후속조치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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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7
  • 서예대가 최원택 작품전 창춘서
    지난 15일, 중국 조선족 서예대가 최원택 선생의작품전이 중국 지린성 창춘시 쑹왠호텔에서 개막됐다. “필묵속에 펼쳐진 중국 꿈”을 전시하기 위해 진행된 이번 전람회에는 중국 8•1서예원 동북 분원의 주최로 최원택 서예가의 작품 200여폭이 전시됐다. 작품은 “중국 꿈”과 관련해 해석, 진술 등을 묵향으로전하면서 시대의 목소리와 함께 생활, 예술에 대한 작자의 열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람회 첫날 지린성 및 창춘시 지도자외 노간부, 창춘시 각 지역 간부, 서예애호가, 시민 등 각계 인사 수백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현시대 서예대가의 작품감상과 함께 새로운 형식으로 “중국 꿈”에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적수천석”작품으로 서예대가 반열에 중국 서예원 1급 서예가인 최원택 선생은 2011년적수천석(滴水穿石)이란 작품으로 국내외 서예계에 이름을 날렸으며당당히 중국내 서예대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3년에 거쳐 완성된 “적수천석”은 예서(隶书), 해서(楷书), 전서(篆书), 초서(草书), 행서(行书) 글자체외 현재 발전하고 있는 형의서체(象意书体)로 글자를 연결해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 역대 첫 시도이기도 하다. 최원택 서예가는 “예술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화사회건설과 함께 서예작품에 여섯 가지 글자체를 모두 넣에 조화를 표달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작품 창작동기였던것이다. “조화서체(书体)”를 통해 그는 “중국내 56개 민족의 단결, 조화사회, 중국 꿈 실현”이라는염원과 “세계 5대 주 평화로운 대가정 실현”이라는 염원을 담았다. 중국과 국제의 유명 서예가들은 이 작품을 6체 합일(六体合一)의창조물이라고 절찬을 아끼지 않는다. 전람회에 전시된 또 하나의 “기적작품”은 바로 2011년기네스 기록에 등재된 “천자문”이다. 이는 세계에서 제일긴 “한자와 조선어 대조서법”작품으로 그 길이는 46미터에 달한다. 당날 많은 참가자들은 “천자문”작품을 책으로 펴낼 것을 희망했으며 몇몇 출판사 역시 출판의향을보이기도 했다. 민족에 대한 긍지 공익사업에도 적극 일찍 1942년 중국 헤이룽장성 미산현에서 태어난 최원택 선생은 어려서부터 서예를 무척 즐겼고특히 모스크바대학 졸업생이었던 큰 아버지에게서 많은 지도를 받았으며 중국 서예대학을 졸업한 뒤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재직 시 애호로 여러 전람회, 서예전에 참가해 인정을 받았지만 서예 황금기에 들어선 것은 퇴직 후였다. 미산시정부에서 사업하다 퇴직한 후 그는 아내와 함께 두 딸이 거주하고 있는 베이징으로 향한다. 수도에서생활하면서 전람회에 참가하던 그는 조선족도 중국내서예계 최고 수준에 오를수 있음을 증명하려고 결심한다. 그후 각종 전람회, 서예원을 다니면서 공력을 닦기 시작, 끈질긴노력으로 북경에 간지 6년 만에 중국내 최정상에 오르게 된다. 현 최원택 서예가는 중국 “국무원 국가(손님)선물특별제공예술가”, 중국 서예원 1급 서예가, 유엔 국제미술가 연합총회 부주석, 세계 명가서예원 부원장 등 묵직한사회직무로 활약하고 있다. 2011년 그는 중국 해협양안 서예가협회로부터 “덕예겸비 서예가”훈장을, 2012년 “당창건 90주년경축중국서예전”에서 금상 등 수두룩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그의 수많은 작품은 중국주재 조선대사관과 프랑스대사관등에 수장돼 있다. 현재 중국공익사업 형상대사이기도 한 최원택 서예가는 공익사업에도 적극 참가, 대량의 작품 경매를통해 빈곤학교, 재해지역 등을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요해에 따르면 “최원택 서예전”은 장춘에 이어 오는 5월 중순 연길에서 개최하게 된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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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7
  • 오묘한 세계 대백과(6) 행성중의 “맏형”- 목성
    태양의 나이는 이미 50억세가된다고 한다. 이제 50억년이 더 지나면 태양의 나이는 100억세가 된다. 그 때에 가면 태양은 곧 꺼지게 될 것이며 다시더는 빛과 열을 발산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그 때 가서 그 무엇이 태양을 대신하여 우리를 위해 “봉사”할까? 이에 과학가들은 목성이 가능하게 하나의 합리한 계승자가 된다고인정하고 있다. 목성은 태양계 중에서 가장 큰 행성으로서 8대항성 중의 “맏형”으로 얼마든지 빛과 열을 발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목성이 외부에 발산하는 거대한에너지는 태양으로 받는 에너지의 11배에 달한다고도 한다. 목성핵심의 온도는 28만도에 달한다. 목성은 또한 자체로 에너지를산생하는 외 태양에서 발산하는 에너지를 저축하기도 한단다. 때문에 목성의 에너지 비축양은 갈수록 커진다. 현재 목성의 발전추세로 보면 태양계 중에서 태양의 “계승자”로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1975년 미국에서 발사한 목성탐측기가 목성외형의 사진을 찍었다. 사진에서 보다 시피 목성의 표면에는 하나의 색채가 선명한 큰 붉은 반점이 있는데 목성의 남반구에 위치해 있다. 이 큰 붉은 반점은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고 부단히 이동하고 있었다. 이큰 붉은 반점은 남북의 너비가 1.4만킬로미터를 경상적으로 유지했고 동서의 길이는 고정적이 아니었다. (동포투데이 김철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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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7
  •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문명기적 시리즈 (6) 북경의 고궁
    북경고궁의 자료 소속대륙: 아시아주, 소속국가: 중국, 지점: 북경의 도심 함의: 세계에서 보존되여있는 규모가 제일 크고 가장 완정하게 보존되어 있는 제왕궁전임. 북경의 고궁의 원명은 자금성이며 중국 명조와 청조에 거쳐 황궁으로 쓰이던 궁전이다. 북경의 고궁은 명조의 황제 주제정(朱棣征)이 수많은 유능한 건축공들을 불러 들여 14년에 거쳐 건설한 위대한 건축물이다. 고궁의 부지면적은 72만평방미터이고 꾸며진 방만 해도 9000여칸이나 되며 현재 세계에서 규모가 제일 크고 가장 완정하게 보존되어 있는 고대황궁 건축군으로 되고 있다. 궁전은 남북으로 통하는 중축선으로 배열되며 좌우가 대칭되고 배치도가 아주 정연하다. 1955년 고궁박물원이 성립된 후 일반 백성들은 드디어 이 웅장하고도 신비한 황제가족이 살던 궁전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고궁의 3대 전당 고궁의 건축배치는 외조(外朝)와 내정(内廷)으로 구분된다. 그 중 전반 부분은 외조이며 그것이 곧 황제가 사무를 보던 곳이다. 외조 중 가장 주목을 끄는 곳은 세개의 전당으로 태화전(太和殿), 중화전(中和殿)과 보화전(保和殿) 등으로, 이를 3대 전당이라고 한다. 태화전은 속칭으로 “금란전(金銮殿)”이라고도 하며 황제가 등극하거나 황제가 행사를 거행하는 곳이다. 전반 전당은 금빛휘황하고 장엄하고도 눈부시게 아름답다. 다음 중화전은 황제가 태화전에서 행사를 거행하기 전에 휴식하거나 예의를 연습하는 곳이며 보화전은 황제가 입궁시험을 보거나 황제가 연회를 차리는 곳이기도 하다. 황제와 왕비들이 생활하던 곳 고궁의 후반 부분의 건축물은 내정이다. 내정에는 간청궁(乾清宫), 교태전(交泰殿)과 곤녕궁(坤宁宫)을 중심으로 동서 양측에 동육궁(东六宫)과 서육궁(西六宫)이 있다. 이곳은 황제와 왕비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내정의 건축은 외조의 웅위롭고 화려한 외조의 건축과는 다르다. 내정은 생활적 분위기가 농후하다. 그 중 간청궁은 황제가 잠을 자는 침궁(寝宫)이고 곤녕궁은 중국 명조시기 황후의 거처였으며 곤녕궁 뒤 울안의 어화원(御花园)은 황제가 전문 왕비들과 휴식하고 즐기는 장소로 제공되었으며 울안의 높다른 송백과 진귀한 화목 및 인조석산 등은 아주 영롱하고도 일치한 환경을 이루고 있다. (동포투데이 김철균)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14-04-17
  • 중국조선족 축구원로 시리즈(9) “축구선수란 자아풍격 즉 개성 있어야”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중국조선족 축구원로 하면 고 최철봉옹을 빼놓을 수 없다.일찍 지난 세기 50연대 중기 주로 조선족들로 무어진 길림성 축구팀에서 최철봉 하면 모르는 축구팬들은 많아도 “무쇠머리”라고 하면 모르는 축구팬이란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기장에서의 최철봉 원로는 이악스럽기도 하거니와 헤딩기술이 출중해 상대방 문전에서의 헤딩 세개 중 하나는 득점으로 이어지군 했다고 한다. 최철봉옹은 축구선수생애가 별로 길지 못했다. 1955년 길림성 축구팀이 창립될 때 그는 32세의 나이에 전업선수가 됐으니 길림성팀의 “아바이선수”란 말도 들었다. 하지만 그는 젊은 선수 못지 않게 왕성한 체력을 보존하고 있었으며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특히 헤딩기술이 중국축구계에서도 가장 출중한 선수 중의 한명이였다. 그리고 공중볼을 쟁탈하면서 높이 솟구치며 헤딩을 하다보면 흔히 상대방 선수와 머리와 머리를 부딪칠 때도 많았는데 그 때마다 상대방 선수들이 그의 머리에 강타를 당해 담가에 실려 경기장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최철봉옹은 특히 “무쇠머리”란 별호를 갖게 되었다. “요즘의 선수들은 이전의 길림성팀에 비하여 기술이 많이 제고되고 기전술 구사도 좋은 건 사실이다. 허나 반면에 이악스러운데는 이전의 선수들보다 못한 것 같다. 참, 우리의 축구가 전통풍격을 잃지 말아야 하고 자아나름대로의 개성도 있어야 할텐데…” 최철봉옹의 회억에 따르면 당시 지난 세기 50-60년대의 길림성 축구팀 선수들한테는 많은 별호가 있게 됐다고 한다. 예하면 “탱크” – 이광수, “대포” – 지청용, “제비” – 문정오/동경춘, “도리깨” - 김동하, “특공대” – 정종섭, “참새” – 손중천, “집게” – 김익갑 등이었다. 그리고 그 모두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 헌데 그 후에 들어 1990연대의 오동팀을 볼 때 중원발동기 – 고종훈 외에는 그렇다 할 별호를 달아줄 선수가 없다는 것이 최철봉옹의 일가견이었다. 한편 옛날의 선수들은 나중엔 초죽음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번 께임의 경기만은 최선을 다한데 반해 그 후의 선수들 특히 지난 세기 90연대에 들어서면서 축구가 프로화로 되면서 적지 않은 조선족 선수들은 장기적인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인지 몸을 좀 아끼는 것 같다고 했다. 또한 조선족의 축구풍격이 조선족으로 구성된 연변선수중에서 점차 희미해지고 오히려 한족선수들로 구성된 기타 팀들에서 재현되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들 지경이란다. 그러면서 조선족이 중국축구무대에서 버텨내는 것은 그래도 정신력이나 응집력이지 기술로는 다른 팀과 도무지 비길 수 없다고 고집하기도 했다. 최철봉옹의 다른 한 회고에 따르면 1965년도 그가 인솔한 연변 운수공사축구팀(서병철, 박정운, 손중천 등 길림성팀에서 퇴역한 선수들로 무은 팀)은 전국을급축구리그에서 6등을 하고 또 그해 갑급팀에서 우승한 길림성팀과도 평가전을 치러 2 : 0으로 이겼는데 이에 몹시 감개무량해하는 동시에 후에 그럴만한 과외축구팀이 없는 것에 대해서도 큰 유감을 표했다… 축구를 그렇게 좋아하고 축구경기에 대해 일가견이라도 내놓으라고 하면 쉽게 격동되고 흥분하군 하던 최철봉 원로ㅡ 2000연대 초반, 최철봉온 당시의 오동팀이 절강으로 매각되는 것을 끝으로 연변팀이 갑급무대에 재등장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다. 고 최철봉 축구원로ㅡ 저기 저 하늘 나라에서도 연변 조선족 축구를 걱정하고 계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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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7
  • 다시 듣고 싶은 아버지의 “잔소리”
    ■ 이진숙 나의 아버지는 한평생 교원이었다. 직업병이라 할까? 고질병이라 할까? 딱 온집식구가 밥상에 마주 앉으면 단 한마디라도 “잔소리”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버지셨다. 어릴 적 그 시절엔 그 “잔소리”가 정말 싫었다. 언니나 동생에게 “옷에 탐 적게 내고 신문이나 한 글자 더 봐라”하며 했던 말 또 한다. 그리고 늘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 “사람은 먹물을 먹어야 한다”, “빈 바게스는 소리뿐이야” “…” 생각해보면 자식들더러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이지만 좋은 노래도 세 번 들으면 듣기 싫다 했다. 나중에 아버지의 훈시가 잔소리로만 들리면서 반감이 생겨 마이동풍격으로 됐다. “너희들은 절대 교원질을 하지 말라. 훈장의 똥은 개도 안 먹느니라.” 우리가 점점 커가니 아버지는 이게 또 걱정인 모양이다. 하지만 귀에 못박히게 들어온 아버지의 말씀은 잔소리로 흘려 보냈는지 운명은 묘하게도 5형제중 오빠, 언니, 나까지 셋이나 교원사업에 몸을 담구게 했다. 내가 대학을 나와 교육사업에 금방 발을 들여놓자 아버지의 “훈시”는 끝이 없었다. “학생들에게 한 사발의 물을 주려면 물 한동이는 물을 준비해야 하느니라.” “애들에게 절대 손을 대지 말아.” “힘들어도 담임을 해라. 그래야 보람이 있고 후날에라도 찾아오는 애들이 있다.” “…” 얼마나 현명한 말씀인가. 황금 천냥인양 주옥같은 아버지의 말씀은 감로수마냥 마음속에 흘러들어 교원생활의 초행길에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참, 나중엔 너무도 귀찮았다. 잔소리로 생각된 그 순간부터 나는 말머리를 돌리지 않으면 벌떡 일어나 다른 일을 하는척 했다. 정말이지 지금 생각하면 후회된다. 그때 아버지는 얼마나 서운했을까? 첩약 한 두첩 먹고 효과를 보니 나중엔 상을 찡그리며 대충 먹고는 버리는 격이다. 배은망덕이 또 따로 있을까. 짜증나는 잔소리 또 있다. 밥상에 마주 앉으면 어김없이 되풀이 하는 말 “먹던 오이나 파를 그대로 장그릇에 넣어 찍어먹지 말라. 위생적이 못돼.” “밥을 먹을 때 쩝쩝, 후룩후룩 소리를 내지 말라.” “…” 아버지가 필경 “량반전”을 읽으신 분은 아닌데 남들의 말처럼 틀림없는 “량반”이요 “선비”였다. 그것은 지난 세기 60연대 초 온 나라가 굶주리던 대식품시기였다. 한참 자라는 때라 엄마는 우리가 배를 곯을가봐 모진 애를 쓰셨다. 산에 가서 가둑나무잎을 뜯어 말리워 가루를 낸 후 물에다 수십번 우려서 떡을 만들고 또 술찌꺼기를 얻어다 떡을 만들었며 눈속을 뚜져 누런 배추떡잎을 줏어다 삶아서는 장국이라도 걸게 끓여 우리의 배를 불려주었다. 부지런한 엄마덕에 우리는 똥배를 잔뜩 늘구었다. 어느 설날, 엄마는 이삭을 주어 모은 입쌀로 죽을 끓였다. 그 시절엔 정말 희귀한 음식이었다. 군침을 꼴깍 삼키며 밥상에 마주 앉은 나는 후후 불며 급히 먹다가 나중엔 아예 사발채로 후루룩 소리내며 마셨다. 웬걸, 여기서 그만 사달이 났다. “너 무슨 음식버릇이야, 추물스럽게 말이다…” 그 말에 나는 화가 울컥 치밀었다. 나는 뒤 말은 더 듣지도 않은 채 숟가락을 탕 놓고 울면서 휑-하니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미웠다. 엄마는 설날 아침에 웬 잔소리냐며 아버지를 나무람했다. “내가 틀린 말 했수? 그렇게 애들을 감싸고 돌아보지, 쯧쯧…” 언제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였다. 공자는 “60이 이순(60而耳顺)”이라 했다. 그 후 오랜 세월속에서 더구나 이순의 막 끝에 오른 지금에 와서 나는 종종 아버지를 떠올리며 미안과 후회로 가슴을 뜯는다. 아, 단 한번만이라도 아버지의 그 잔소리를 들어봤으면… 항상 자식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가정교육”이란 이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우리 자녀들더러 인생을 당당하게 살라고 가르친 것이었겠는데 왜 그 때는 몰랐을가? 방법상 잠시 자녀들의 반감을 자아내긴 했어도 아버지의 그 잔소리 때문에 우리는 한결같이 인생을 참답게,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던가. 현대사람들처럼 그 때 만약 “긍정적 사고방식”과 “이해 만세”를 알았더라면 아버지를 섭섭하게 하지 않았을텐데… 지금은 생각이 완연 바뀌었다. 아버지도 세상뜬지가 오래고 우리 세 자매 모두 흰 머리와 주름살로 세월의 흔적을 안고 살지만 아버지 잔소리에 대한 마음의 천평과 양심의 호소는 더욱 눈부시게 찬란하다. “그 애비에 그 딸”이라고나 할까? 나도 자식들에게 아버지처럼 “잔소리 교육학”을 하나하나 가르치며 그들한테 옳바른 삶을 기대한다. 어느 날, 우리 세 자매는 입체조를 하면서 그 옛날 아버지의 잔소리를 앞다투어 떠올렸다. “뒤에서 다른 사람의 흉을 절대 하지 말라, 바람 안 새는 벽은 없느니라.” “앉아서 주고 서서 받는다. 친구 잃고 돈 잃는다. 남과 돈거래를 하지 말라.” “동네 어른 보면 공순히 인사 드려라.” “…”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의 잔소리 틀린 말 한마디도 없어, 모두가 우릴 위한 말씀이었는데…” 셋은 한입을 모았다. “지혜의 말이 네게 보약이 되리라. 보약이 사람의 배속까지 스며들어 몸을 튼튼하게 해주듯 네가 옳바르게 삶을 살아가게 해 주리라.” 옛날 이스라엘의 지혜의 왕 솔로몬이 한 말이다. 아버지의 잔소리는 정녕 보약이였다. 아, 꿈결에라도 듣고 싶은 아버지의 그 잔소리, 지금도 정말 듣고 싶다! 2014년 2월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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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7
  • 일본 인구 연속 3년째 감소, 65세 이상 전체의 1/4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일본 총무성은 15일 보고서를 통해 일본 인구가 연속 3년째 위축되고 있으며 년령이 65세 이상의 인구비례가 새로운 기록을 냈는바 이는 일본에 중대한 도전으로 된다고 지적했다고 16일 중국 텅쉰망이 전했다. 총무성의 수치에 따르면 일본의 총 인구는 2013년 10월 1일 끝난 1년간 0.17% 하락한 1억 2733만명(세계 제10위 인구대국)이며 출생률은 그 전해 같은 시기와 마찬가지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출산붐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현재 점차 퇴직함에 따라 65세거나 그 이상의 국민은 인구 총수의 1/4을 점해 사상 최고의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일본의 채무부담이 이미 경제총량의 두배 이상이나 되는 데에는 노령화인구가 광범위하게 건강과 사회복리 항목의 원가를 급격히 증가시킨 원인도 일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에서는 4월 1일부터 판매세 세률을 5%로부터 8%로 인상하고 있으며 아베총리는 더욱 많은 여성들이 취직하게 함으로써 경제를 진흥시키고 국고를 충족시키려 하고 있다. 또 일본정부는 이민에 대한 제한제도를 늦추어 노동력을 보충하려 하고 있다. 미즈호증권회사의 수석 시장경제학자 우에노 야스나리는 4월 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우리는 수차례 일본정부에 호주 및 미국의 이민정책을 따라 배울 것을 제기했다. 그들은 성공적으로 세계 각국으로부터 오는 이민들을 환영해 적잖은 이득을 보았다”고 썼다. 노동력인구의 감소는 일본정부에 부담을 더욱 증가시키고 있다. 총무성의 보고서에서 15세―64세 노동력인구는 2013년에 8000만명 이하로 감소돼 32년래의 처음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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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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